2012.11.30 18:54
포로 귀환과 야곱의 구속
(이사야 48장 20-22절)
“너희는 바벨론에서 나와서 갈대아인을 피하고 즐거운 소리로 이를 선파하여 들리며 땅 끝까지 반포하여 이르기를 여호와께서 그 종 야곱을 구속하셨다 하라 여호와께서 그들을 사막으로 통과하게 하시던 때에 그들로 목마르지 않게 하시되 그들을 위하여 바위에서 물이 흘러나게 하시며 바위를 쪼개사 물로 솟아나게 하셨느니라 여호와께서 말씀하시되 악인에게는 평강이 없다 하셨느니라”
성도 여러분, 제가 그동안 우리 동인교회는 명품 교회가 되어야 하고, 여러분은 명품 성도가 되어야 된다는 말씀을 늘 해 왔습니다. 여러분, 오늘날 우리가 예수를 십년을 믿고 모태에서부터 믿어오고 했어도 성경을 모르기 때문에 세상은 이 모양으로 돌아가고 있으며, 시대의 변화도 알지 못하다 보니 지금 교회가 잠자고 있어도 모르고 있습니다. 절대로 예수를 오래 믿었다고 해서 주님 나라에 가서 상급을 받는 것이 아닙니다. 이제 성경을 바로 알 때가 왔습니다.
오늘 이 자리에 계신 여러분, 본문 이사야 48장 20절에 보면 이스라엘 백성이 바벨론에 포로 되어 가기 약 100년 전인데도 이미 포로에서 돌아오는 소리를 말하고 있습니다. 그러면 이사야가 이 말을 하고 나서 백 년 후에 이스라엘 백성이 포로로 잡혀갔는데 이미 이사야는 포로 되어 간 백성들이 나오면서 기쁜 노래를 부르라고 하고 있습니다. 그러니 선지자의 말씀이 얼마나 정확한가를 보십시오. 오늘 이사야 선지자는 백년 뒤에 바벨론에 포로로 잡혀갈 백성들을 앞에 놓고 “바벨론에서 황급히 나오너라. 그리고 야곱을 구속했다고 세계만방에 알리라”고 말합니다. 이사야는 백년 후에 될 일이기에 이 말씀이 해당도 안 되었습니다. 그리고 또 여기에 이사야가 무엇을 말하느냐면 출애굽 사건을 말합니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을 애굽에서 이끌어 낼 때에 얼마나 정확하게 하지 않았느냐면서 이스라엘 백성이 애굽에서 정확하게 나온 것을 너희들이 믿는다면 바벨론에서 나오는 것도 그렇게 정확하게 된다는 것을 말합니다. 그리고 그것을 들어서 종말을 예언하고 있습니다. 마지막 때 역시 틀림이 그렇게 된다는 겁니다. 그러기 때문에 이사야는 출애굽 때 이루어진 역사를 가지고 바벨론에서 나올 것도 정확하게 이루어질 것을 예언한 겁니다. 그러면 우리는 이사야의 예언이 정확하게 이루어질 줄을 믿어야 된다는 말입니다.
그래서 세상 끝 날에 큰 기쁨, 큰 구원, 영원한 즐거움이 있을 것을 우리에게 예언을 했는데 이스라엘 백성들이 애굽에서 나오던 날과 같은 역사를 기억하게 하면서 출 바벨론 역사와 같은 역사를 마지막 때에도 그대로 하게 된다는 것을 이사야 선지자가 예언을 하고 있습니다. 여러분, 본 장 48장 3절에 또 무슨 말씀을 했는지 잘 보십시오. 하나님은 그때그때에 즉흥적으로 역사하시는 분이 아니라 이미 옛적에 장래사를 다 고해 놨다고 했습니다. 그 옛날 옛적에 세상 끝날에 어떻게 될 것을 이미 하나님은 말해 놨다는 겁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는 자기 입에서 이미 내어 보냈고 하나님 자신이 홀연히 행하시고 이루신다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세상 끝날에 될 일을 아예 처음부터 전부 계획을 해 놓으시고 완벽한 그 계획대로 하나하나 진행하고 계신다는 말입니다. 하나님은 그때그때 역사하시는 하나님이 아니라 이미 창조 때에 세상 끝날에 어떻게 하실 것까지를 하나님은 말씀해놨다는 겁니다. 그리고 그대로 실천하십니다. 그래서 오늘 우리는 출애굽 사건도 그대로 이루어졌고 출 바벨론 사건도 그대로 이루어졌다면 오늘 우리 역시 애굽과 같은 세상에서 포로 생활을 하고, 바벨론과 같은 세상에서 살지만 이제 우리의 고향인 주의 나라에 가는 역사도 반드시 일어날 줄로 믿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여기에 이스라엘이 바벨론에 포로 되어 갔다가 나오는 것과 같은 역사가 그대로 이뤄질것을 말해 놨습니다. 그런데 놀라운 것은 아직 바벨론에 끌려가지도 않았는데도 이미 백 년 전에 해방 받아 나올 것을 이사야를 통하여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여러분 보십시오. 이사야가 백년 뒤에 일어날 일을 예언을 하면서, “내 백성아! 너희는 바벨론에서 나와서 갈대아인을 피하고 즐거운 소리로 이를 선파하여 들리며 땅 끝까지 반포하여 이르기를 여호와께서 그 종 야곱을 구속하셨다 하라”고 했습니다. 여기 갈대아인은 바벨론 백성입니다. 그 갈대아 백성을 피하고 즐거운 소리로 이제 해방받았다고 소리를 지르라고 했는데 ‘소리 지른다’는 것은 반포하고 선언하라는 것입니다. 땅 끝까지 공포하여 이르기를 “여호와께서 그 종 야곱을 구속하셨다”고 소리를 아주 크게 지르라는 겁니다. 이는 마지막에는 세계적인 역사이기 때문입니다.
여러분, 하나님께서 출 바벨론 사건이 이렇게 정확할 것을 예언한 대로 백년 후에 그대로 진행이 되고 고레스를 통하여 해방을 시킵니다. 그렇다면 하나님의 말씀은 일점일획도 가감이 없이 다 이루어진다는 것인데 오늘날 교회에서 왜 성경을 가르쳐 주지 않습니까? 이는 지도자가 하나님 앞에 부끄러움을 당하게 되어 있다는 말입니다. 여러분, 그냥 교회만 갔다 왔다 하는 것은 예배가 아닙니다. 하나님 앞에 기뻐 받으시는 제사가 되어야 됩니다. 예배가 하나님 앞에 영광이 되어야 되는데 여기엔 형식이 있을 수 없습니다. 그러니까 이사야 1장 보면, 하나님의 백성이 예배드리러 오는 것이 아니라 ‘내 마당만 밟으러 온다’ 그랬어요. 제가 광주에서 집회 할 때의 일이 잊혀지지 않는데 거기 목사님이 ‘우리 교회는 마당이 없습니다’라고 해요.
그래서 제가 ‘계단이라도 있겠지요’라고 했습니다. 마당만 밟으러 온다는 소리가 무슨 소리입니까? 꼭 마당만 밟으러 온다는 것이 아니라 예배가 그저 형식적으로 슬쩍 지나가고 있는데 그것이 바른 예배를 드리는 줄로 알고 있다는 것입니다. 전에 어느 목사님이 저에게 ‘목사님 교회는 명절 때에 새벽 예배를 주일 낮 예배처럼 드리지 않습니까?’라고 해서 저희 교회는 그런 것이 없다고 하니까 자기네 교회는 5시의 새벽예배를 1부 예배로 드려줘야 그 예배를 얼른 드리고 고향에 가게 한다는 겁니다. 그리고 11시 낮 예배를 10시에 또 당겨서 드리니까 예배가 좀 되는 것 같더라는 겁니다. 왜냐면 성도들이 주일 예배를 안 드리고 그냥 가다가 교통사고라도 날 것 같으니까 그렇게라도 한다는 겁니다. 즉 마당이라도 밟고 가야 된다는 겁니다.
여러분, 이스라엘 백성들이 시내산 아래에 도착했을 때 모세가 형 아론에게 이스라엘 백성을 맡기고 법궤를 받으러 시내산에 올라갔는데 그 모세가 더디 내려오니까 금송아지 우상을 만들었다가 벼락 맞아 버렸습니다. 분명히 시내산에 올라간 모세가 올 줄을 믿고 아론이 백성들을 잘 다스려야 되는데 안 오니까 금 송아지 우상을 만들었다가 그 산 밑에서 얼마나 많은 피가 쏟아졌고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죽었습니까? 그런데 그렇게 많은 희생당한 것을 가지고 ‘이것이 하나님 앞에 제사라’ 그랬습니다. 오늘날 역시 다시 오시겠다고 약속하시고 가신 예수님이 아직 오시지 않으니까 별별 짓을 기독교인들이 다하고 있습니다. 주님은 가실 때 다시 오신다고 분명히 말씀했다면 오실 줄 믿어야죠? 그래서 오늘 이스라엘 백성이 바벨론에서 돌아오는 과정을 가지고 마지막을 예언한 것입니다. 본문에 “야곱을 구속하였다고 하라”고 했습니다.
그러면 오늘 성경에 왜 야곱의 구속이 나옵니까? 야곱도 두 종류가 있다는 것을 제가 여러번 성경 말씀을 들어서 말씀 드렸었습니다. 이사야 59장 20절에 보면 “구속자가 시온에 임하며 야곱 중에 죄과를 떠난 자에게 임하리라”고 했습니다. 제가 항상 이 구절을 많이 인용합니다만 여기 구속자는 예수그리스도 아닙니까? 그 구속자가 시온에 임하며 야곱 중에 죄과를 떠나는 자에게 임하리라고 했으니 성경에는 야곱을 두 종류로 나눴습니다. 예수님께서도 이 땅에 계실 때에 하나님의 백성을 두 종류로 나눴습니다. 매를 가는 사람 중에도 두 종류로 나눴습니다. 자고 있는 사람도 두 종류로 나눴고 신랑을 기다리는 사람도 두 종류로 나눴습니다. 그러면 이 말씀을 듣는 자중에도 두 종류가 있을 줄 압니다. 그 두 종류 중에 여러분은 주님을 맞이하는 종류가 되기를 바랍니다.
오늘 본문에도 “야곱을 구속했다고 하라”고 했는데 여러분은 이 야곱이 되어야 합니다. 그런데 내가 좀 보기 싫은 사람이라고 해서 인사도 안하고, 내가 또 속상하다고 외면하고 하면 야곱이 되지 못합니다. 언제나 야곱은 쓸개를 빼야 합니다. 그리고 야곱은 얼굴 낯짝이 두꺼워야 됩니다. 야곱은 쓸개가 없어야 되요. 여러분, 영생이 그렇게 쉬운 것이 아닙니다. 이 죽을 몸이, 썩을 몸이, 멸망당할 몸이 영생한다는 것은 얼마나 놀라운 일입니까? 그러니 우리는 내가 찾아가면서 인사도 하고 날 구속해주신 주님을 생각하면서 감사도 하길 바랍니다. 예수님도 얼굴에 입 맞추는 가룟유다에게 ‘친구야!’라고 했는데 우리는 조상이나 부모를 죽인 원수도 아닌데 어쩌면 기독교인만큼 쌀쌀하고 못되게 행동하는지 모릅니다. 오늘 여러분, 성경을 그냥 지나가지 마세요. 그냥 읽지 마세요. 성경은 나와 주님과의 계약서입니다. 나와 주님과의 약속한 말씀입니다.
그런데 “야곱을 구속했다”고 온 세상에 왜 반포합니까? 여러분, 이것은 조그마한 저 중동지역의 이스라엘 땅에 있는 사람들을 보고 한 소리가 아닙니다. 오늘은 여러분이 야곱이 되어야 됩니다. 이사야 59장 20절에 “구속자가 시온에 임할 때에 야곱 중에 죄과를 떠난 자에게 임한다”고 했는데 주님을 맞이하는 야곱이 되기를 바랍니다. 히브리서 9장 28절에 보면 우리 주님께서 “죄와 상관없는 자를 구원해주시려고 두 번째 나타난다”고 했습니다. 첫 번째로 오신 초림의 주님은 죄인을 위하여 죽으시러 오셨지만 두 번째 오시는 주님은 죄인을 심판하러 오시는 주님입니다. 그러니까 이 날부터 내 속에 있는 쓸개를 빼내 버리고 그저 웃음꽃이 내 속에 피기를 바랍니다. 웃음은 해석할 필요가 없습니다. 세계 공통어가 웃음이에요. 제가 그랬죠? 꽃 중에 일 년 내내 추운 겨울에나 봄이나 더운 여름이나 가을이나 피는 꽃은 웃음꽃이라 그랬습니다. 그 꽃은 돈도 들지 않습니다. 돈 안 드는 것이 몇 가지 있습니다. 나이 먹는 것도 돈 안 들어요. 돈 안 드니까 저도 어떻게 먹었던지 72살이나 먹었어요. 올해도 역시 주워 먹을 사람이 꽉 찼습니다. 그러나 오늘 이 자리에 계신 여러분은 명절 기분만 내지 마시고 우리는 주님 앞에 제사에 인정받기를 바랍니다. 저는 불교 집안에서 목사가 태어났기 때문에 너무 불교계를 잘 압니다. 세상에 그런 지옥에 들어가야 될 집안에서 목사가 나오고 그 목사 중에서 특별히 신원의 날에 오실 주님에 대한 말씀을 전할 수 있도록 말씀의 선물을 주신 것이 너무나 감사해서 이 몸이 부서질 때까지 충성해야겠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오늘 본문에 이사야 선지자는 이스라엘 백성이 아직 포로로 잡혀가지 않았는데도 바벨론 포로에서 나오는 역사가 얼마나 정확한지를 보라면서 여기에 출애굽 사건을 넣었습니다. 그러면 오늘 우리는 출바벨론과 출애굽 사건이 너무나 정확하다는 것을 믿고 이 말씀을 붙들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21절에 보면 “여호와께서 그들을 사막으로 통과하게 하시던 때에 그들로 목마르지 않게 하시되 그들을 위하여 바위에서 물이 흘러나게 하시며 바위를 쪼개사 물로 솟아나게 하셨느니라”면서 출애굽 사건을 말했습니다. 앞으로 바벨론 포로에서 해방되어 고향 가는 역사도 이렇게 정확하다는 것이죠. 여러분, 애굽에서 고난 받던 이스라엘 백성을 해방시키고 고향가게 되는 것은 보통 사건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역사가 없으면 이스라엘 백성이 출애굽을 못합니다.
오늘날 여러분, 세계가 어느 날 갑자기 역사가 일어날 때에 준비되지 아니하면 감당을 못합니다. 그러기에 마음을 너무 안일하게 먹어서도 안 됩니다. 여러분, 저희 집에 이런 일이 있었습니다. 전기가 나갔는데 다른 집에도 전기가 나간 줄 알고 30분을 기다렸어요. 그래서 초를 찾으니까 없더라고요. 그런데 전기가 너무 안 들어와서 밑의 층과 위의 층을 보니 전기가 다 들어와 있더라고요. 우리집만 차단기가 내려왔던 겁니다. 그것도 모르고 30분 동안 얼마나 당황해하고 난리를 쳤는지 모릅니다. 오늘 여러분, 하나님의 말씀의 준비가 없으면 주님이 오시는데도 모르고 굿 치고 있는 사람들이 없겠습니까? 이제는 조심해야 될 때가 왔어요. 특히 내 영혼이 주님 앞에 서기 위해서는 말씀 안에서 조심을 해야 합니다. 이것은 예수를 오래 믿었다고 해결되는 것이 아닙니다. 물건은 오래된 물건이 값이 비쌀지 몰라도 예수를 오래 믿었다고 값이 나가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역사는 항상 현재에 어떤 생활을 하고 있나를 보고 계십니다.
오늘 본문에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을 애굽에서 이끌어 낼 때에 만나뿐 아니라, 목마를 때에도 물을 마시게 했다는 것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출애굽기 17장에 목이 말라서 백성들이 난리를 칠때 모세가 반석을 두 번 치는 사건이 나오죠. 반석을 칠 때에 물이 막 강같이 흐르게 했다고 시편 78편16절에 기록 되어 있습니다. 이사야 43장20절에 보면 ‘사막에 강을 내서 나의 택한 백성을 마시게 하겠다’고 했습니다. 시편 105편 41절 42절에 보면 ‘하나님이 아브라함을 기억해서 반석을 갈라 물이 흘러나게 하시고 마른땅에 강같이 물이 흘러가게 했다’고 했습니다.
오늘 이 자리에 계신 여러분, 말씀이 이렇게 정확하게 이루어졌습니다. 그러면 마지막 출애굽 때와 같은 역사가 우리에게 남아있습니다. 마지막에 바벨론과 같은 역사가 우리에게 남아있습니다. 그래서 오늘 본문에 이것을 알리라는 말입니다. 이제는 우리 앞에 큰 역사가 남아 있습니다. 오늘 여러분은 이때에 구속받는 야곱이 되기를 바랍니다. 여러분, 얼마나 이 죄악 세상이 괴롭습니까? 얼마나 세상이 불안합니까? 이제는 사람을 만나기가 위험하고 두렵고 이제는 밤이 되면 바깥에 나가기조차가 어렵습니다. 옛날에는 달밤에 바깥에 나가서 휘영청 밝은 달을 바라보면서 내 마음을 내어놓고 시도 읊기도 하고 옛 얘기도 했건만은 이제는 옛날에 일어났던 사건이 되고 말았습니다.
오늘 이 자리에 계신 여러분, 여기는 눈물의 세상입니다. 괴로움의 세상입니다. 슬픔의 세상입니다. 죽음의 세상입니다. 마음에 한이 쌓이는 세상입니다. 이런 세상에서 이제 야곱이 구속받는 역사가 우리 주님 오실 때에 일어나게 됩니다. 이 날을 바라보고 오늘 여러분은 하나님의 집을 찾은 줄로 믿습니다. 그래서 22절에는 “악인에게는 평강이 없다”고 했는데 여기 악인은 누구입니까? 이스라엘 백성을 괴롭혔던 바벨론 사람들입니다. 또한 여기 악인은 이스라엘 백성을 괴롭혔던 애굽 사람들입니다. 이들은 심판 날에 하나님이 용서치 않겠다는 것입니다. 오늘날도 고향 가는 하나님의 백성을 괴롭힌 사람들은 바벨론인들과 같고 애굽인과 같습니다. 세상 끝날에도 현대판 애굽인이 있고 현대판 바벨론 사람이 있습니다. 심판 날에 이들에겐 평강이 없어집니다. 은혜가 없어집니다. 축복이 없어집니다.
오늘 여러분, 그러기에 우리에게는 정말로 해방 될 날이 있고, 우리가 주 앞에서 영광 돌릴 명절이 있습니다. 축복의 명절은 이제 돌아옵니다. 안 믿는 사람들을 보십시오. 오늘이 추석명절이라고 어제 밤중까지 죽자 살자 쫒아가서 오늘 또 죽자 살자하고 쫒아 올라옵니다. 이건 아마 국가에서 시켜놨으면 죽을 사람 몇이 나옵니다. 그런데 이 고향 가는 일이 좋은 일이라고 가고, 부모님 만나는 길이라고 선물 꾸러미를 들고 밤새도록 갔다가 또 밤새도록 옵니다. 그래도 즐겁거든요. 왜냐면 고향이라는 곳이 그렇습니다.
오늘 우리는 우리의 고향인 주님 나라에 가는 즐거움과 새 하늘과 새 땅에서 주님 맞이하는 즐거움이 있기를 바랍니다. 그래서 우리는 괴로워도 힘들어도 어려워도 소망 중에 그 주님을 기다리면서 영생하는 야곱의 구속이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