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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씀녹취

 

너희가 전심으로 나를 찾고 찾으면 만나리라

(예레미야 29장 8절 ~ 13절)

만군의 여호와 이스라엘의 하나님이 이같이 말하노라 너희 중 선지자들에게와 복술에게 혹하지 말며 너희가 꾼바 꿈도 신청하지 말라 내가 그들을 보내지 아니하였어도 그들이 내 이름으로 거짓을 예언함이니라 여호와의 말이니라 나 여호와가 이같이 말하노라 바벨론에서 칠십년이 차면 내가 너희를 권고하고 나의 선한 말을 너희에게 실행하여 너희를 이곳으로 돌아오게 하리라 나 여호와가 말하노라 너희를 향한 나의 생각은 내가 아나니 재앙이 아니라 곧 평안이요 너희 장래에 소망을 주려하는 생각이라 너희는 내게 부르짖으며 와서 내게 기도하면 내가 너희를 들을 것이요 너희가 전심으로 나를 찾고 찾으면 나를 만나리라 ”

 

오늘 여러분, 설교 제목을 보시면 “너희가 전심으로 나를 찾고 찾으면 만나리라”입니다. 이는 하나님께서 바벨론 땅으로 포로 되어간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예레미야를 통하여 하신 말씀입니다. 그런데 이 말씀이 바벨론에 포로 되어간 그 이스라엘 백성에게 하신 말씀 같지만 오늘 이 말씀은 현대판 바벨 세상에서 살아가는 우리에게 해당되는 말씀이요, 우리에게 응하는 말씀인줄로 믿기를 바랍니다. 여러분, 우리가 마음과 정성과 모든 것을 다 바쳐서 하나님을 찾고 또 찾으면 그 분이 우리를 만나 주시겠다고 하십니다. 만약에 ‘너희가 아무리 나를 찾아봐라 내가 만나주나’라고 한다면 절망입니다만 오늘 본문은 “너희가 나를 전심으로 반드시 찾겠다고 전심전력을 다 쏟으면 내가 꼭 만나 주겠고, 응답해 주실 것이다”라고 했으니 이 얼마나 감사한 약속입니까? 여러분은 꼭 그 주님을 만나기를 바랍니다. 우리의 목적이 그것이요 우리의 소망이 그것입니다.

 

그런데 오늘 우리가 여기서 한 가지 생각해야 봐야 될 것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나라가 망하려고 하니 참 선지자의 말을 듣지 아니하고 거짓 선지자의 말을 듣고 추종하며 따라가다가 나라가 망합니다. 아무리 ‘거짓 선지자의 말을 따라가지 말라’고 그래도 나라가 망하고 민족이 망하려고 하면 참 선지자의 말을 안 듣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저 할례 받지 못한 강대한 나라 바벨로니아라는 무서운 나라를 보내서 이스라엘 백성을 삼켜버린 것입니다. 그런데 그 땅에 포로 되어 가서 살면서도 정신을 차리지 못합니다. 그 땅에서 스스로 나타난 선지자들이 득세하고, 그 득세할 때에 그 땅에 사는 하나님의 백성들이 또 그들의 말을 듣고 추종하며 믿고 따라가고 있습니다. 한번 겪고 한번 당했으면 말아야 되는데 계속해서 그들을 따라갑니다. 거짓 선지자의 말을 듣고 따라간다고 하는 것은 그 백성들이 하나님의 말씀에 대해서 너무 빈약해서 그렇습니다. 왜냐하면 거짓 선지자는 감언이설로 아닌 것을 맞는 것 같이 말하고, 안 되는 것을 될 것과 같이 아주 교묘하게 말해주기 때문에 그 달콤한 말을 이 백성들이 분별하지 못하고 넘어갑니다. 오늘 여러분이 그 당시에 그들이 한 말이 과연 참 선지자의 말인지 거짓 선지자의 말인지 체험을 해 보시기 바랍니다. 예레미야 28장 2절을 보시고 판단해 보시기 바랍니다.

 

여러분, 사탄의 역사는 ‘내가 거짓 선지자입니다, 내가 여러분을 오늘 미혹하러 왔습니다’라고 말 한다면 아무도 넘어가지 않습니다. 그런데 참 선지자와 같이, 하나님께서 보낸 자와 같이 나타나니 속을 수밖에 없는 겁니다. 2절에서 4절까지를 보면 “만군의 여호와 이스라엘의 하나님이 이 같이 말씀하여 가라사대 내가 바벨론 왕의 멍에를 꺾었느니라. 내가 바벨론왕 느부갓네살의 이곳에서 바벨론으로 옮겨간 여호와의 집 모든 기구를 두 해가 차기 전에 다시 이곳으로 가져오게 하겠고, 내가 또 유다왕 여호야김의 아들 여고니야와 바벨론으로 간 유다 모든 포로들을 다시 이곳으로 돌아오게 하리니 이는 내가 바벨론 왕의 멍에를 꺾을 것임이니라 여호와의 말이니라 하셨다 하느니라”고 했는데 이게 누굽니까? 거짓 선지자의 소리입니다. 그러니 누가 이것을 거짓 선지자의 소리라고 말할 수가 있겠습니까? “만군의 여호와의 말이라”고 그랬고, “하나님께서 명령으로 이 소리를 했다”고 하니 다 넘어가게 됩니다. 그런데 여기에 보면 참 선지자는 “70년 만에 포로로 갔다가 돌아온다”고 하는데, 거짓 선지자는 “두 해가 못돼서 돌아온다”고 달콤한 소리를 하니까 많은 사람들이 참 선지자인 예레미야의 말을 듣지 않고 거짓 선지자의 말을 듣습니다. 홀딱 속아서 넘어갑니다. 누가 이 말이 거짓 선지자의 말이라고 구별하겠습니까?

 

오늘 여러분, 오늘 우리가 현대판 바벨론 세상에 살면서 자기가 하나님의 사람이라고 하면서 나타나고, 하나님의 말씀이라고 하면서 말씀을 전해올 때 안 넘어갈 자가 과연 얼마나 있겠습니까? ‘내가 무당이다, 내가 점쟁이다, 내가 중이다’라고 하면 안 넘어갑니다. 넘어갈 이유가 없습니다. 그런데 ‘만군의 여호와의 말이니라, 하나님께서 내가 너희들에게 명령하는 말을 내가 전하러 왔노라’고 하면서 이 따위 수작을 하니 누가 안 넘어 가겠느냐 이 말입니다. 그래서 마지막 때인 오늘날, 현대판 바벨론 세상에 살아가는 우리에게 하나님의 말씀을 빙자해서 영혼을 사냥하는 자들이 얼마나 많을 것인지 우리가 알 수 있습니다.

 

그래서 오늘 본문에 예레미야 선지자가 바벨론 포로 생활하는 이스라엘 백성에게 “제발 이 말을 들으면 안 된다”고 하면서 본문의 편지를 써 보낸 것입니다. “저 말을 들으면 망한다. 절대로 안 된다”라고 하면서 예레미야가 안타까운 심령으로 바벨론에 있는 이스라엘 백성에게 편지를 써 보낸 것이 오늘 본문입니다. 여러분 어떻습니까? 참으로 분간하기 어렵죠? 가짜가 진짜보다 더 아름다워 보입니다. 가짜의 소리가 더 달콤하게 들립니다. 예레미야는 ‘70년이 돼야 해방된다’고 하고 거짓 선지자는 ‘여호와의 말씀에 두해가 못돼서 돌아갈 것이다’라고 하면서 자기가 느부갓네살 왕을 칠 것이다라고 하니 어느 말이 더 좋습니까? 여러분, 하나님의 말씀을 모르면 말씀을 인용한 거짓 것들이 성도들의 마음을 얼마나 요동칠런지 오늘날 현 세상에서도 동일하다고 여러분은 봐야 됩니다. 그래서 본문 8절과 9절에 예레미야는 “거짓 선지자의 말을 믿거나 받아들이면 안 된다”는 편지를 보낸 것입니다.

 

그래서 예레미야는 “절대로 그곳에서 하나님께서 너희를 해방시켜 보낼 때까지 살아라. 그리고 그 땅에서 기도해라. 그 땅이 평안해야 너희가 평안할 수 있다”라고 하는데 백성들은 선지자의 말을 받아들이지도 않습니다. 그러니까 예레미야는 안타까운 마음으로 다시 이스라엘 백성에게 이 편지를 써서 보냈는데, 오늘 이 편지가 바벨론에 있는 이스라엘 백성에게 보낸 편지라고 하지 마시고 현대판 바벨론 땅에 사는 우리에게 하신 말씀입니다. 오늘 우리에게 정신을 차리고 거짓 선지자가 아무리 하나님의 말씀이라면서 확고하게 말하더라도 그런 달콤한 소리에 여러분은 흔들리지 말아 달라고 부탁의 말씀이라고 믿어야 됩니다.

 

그래서 본문 8절에 “너희중 선지자들에게와 복술에게 혹하지 말며”라고 그랬습니다. 만약에 ‘내가 거짓 선지자’라고 하면 누가 그 말을 듣겠습니까? 그런데 거짓 선지자가 나타나면서 꼭 참 선지자라고 합니다. 그리고 거짓선지자가 ‘참 선지자는 잘못됐다’고 말합니다. 본문에 보면 “거짓 선지자들에게와 복술에 혹하지 말라”고 했는데 ‘복술’은 ‘점괘’입니다. 아주 족집게같이 점을 잘 치는 복술 무당에게 혹하지 말라는 것인데 여기 ‘혹하다’는 단어는 ‘미혹이 되다. 속아 넘어가다’라는 뜻입니다. 그러니까 여러분을 넘어뜨리기 위해서 거룩한 선지자 모양으로, 그리고 족집게같이 묻는 질문에 대해서 다 알아맞히고 하는 이런 일들이 일어나더라도 너희는 받아들이지 말라고 합니다. 그리고 “꿈도 신청하지 말라”고 했는데 여기 ‘신청한다’는 것은 접수하듯이 하는 신청이 아니고 ‘믿을 신’ 자와 ‘들을 청’ 자를 쓰고 있습니다. ‘그들을 믿고 듣지 말라’는 말입니다. 중국 성경에는 ‘청신하지 말라’로 단어를 바꿨더라고요. 우리는 ‘신청’이라고 했고 중국 성경은 ‘청신’으로 되어 있는데 중국은 ‘듣고 믿지 말라’는 것이고 우리말은 ‘믿고 듣지도 말라’는 표현으로 해놨습니다. 어쨌든 간에 ‘신청하다’라는 말은 ‘그 말을 들어주다. 받아들이다’는 말입니다. 그래서 ‘절대로 너희는 받아들이지 마라’는 것입니다. 왜냐면 그들이 하나님의 이름을 빙자하여 여러분을 속이기 때문입니다.

 

신명기 18장 22절에 보면 “만일 선지자가 있어 여호와의 이름으로 말하는 일에 증험도 없고 성취함도 없으면 이는 여호와가 말씀하신 것이 아니요 그 선지자가 방자히 한 말이니 너는 그를 두려워 말지니라”고 했습니다. 신명기 13장1절에도 선지자나 꿈꾸는 자가 일어나서 표적과 이적 기사를 보이고 그 표적과 기사가 그 말대로 이룰지라도 따라가지 말고 신용하지 말라고 했습니다. 왜냐면 마귀는 기독교인들이 이적 기사를 참으로 좋아하는 것을 먼저 압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 뭐라고 얘기합니까? “유대인은 표적을 구하고 헬라인은 지식을 구한다”고 그랬습니다. 헬라인이 뭡니까? 현대판 과학자들입니다. 과학자들은 과학에 맞지 않거나 지식에 맞지 않으면 받아들이지 않습니다. 그러나 유대인들은 믿는 자들인데 이적 기사는 과학과 지식을 초월할 수 있으니까, 이적 기사라고 그러면 아주 미친 듯이 물불을 가리지 아니하고 달려듭니다. 지난번에 어떤 단체에서는 기도하고 나면 이빨이 전부 다 금이빨로 바뀐다고 하면서 유혹한다는 소리를 들었는데 만약 가난한 사람이나 카드 빚진 사람들은 몇 번 가면 아파트도 한 채는 살 수 있다는 건가요? 그런 허무맹랑한 소리나 어떤 이적 기사를 보고도 그것이 하나님의 역사라고 하면서 따라가는 자들도 있습니다. 그래서 참 성도들은 설령 그들이 말한 대로 이적과 기사가 이루어진다고 할지라도 따라가지 말라는 것입니다. 예레미야서 에스겔서를 보면 이러한 말씀들이 많이 나옵니다. 또한 예레미야서 23장 25절에서 32절까지를 보면 이런 말씀이 나옵니다. “하나님 이름으로 거짓 예언하는 선지자들이 몽사를 얻었다며 거짓 예언을 할 때에 거짓말하는 그들을 하나님께서 칠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여러분, 살기가 어렵고 경제가 어려워지고 세상이 불안해지면 이 무당귀신들이 아주 판을 칩니다. IMF때 삼성동 무당들이 큰 돈을 벌었다고 그러지 않습니까? 제가 전에도 얘기했습니다만 그 유명한 점쟁이들이 주일날 문을 여는 이유가 교회 다니는 성도들이 성경 찬송을 들고 예배 끝나고 들려서 돈도 꽤 잘 내놓고 간다면서 그들이 빈정대며 하는 소리를 신문 기사에 실은 것을 본적이 있습니다. 그런 소리를 들을 때 얼마나 속이 상했는지 모릅니다. 그런 자들은 절대 교회에 헌금도 잘 안합니다. 그래서 그 기자가 그들이 예수 믿는 사람인줄 어떻게 아느냐고 그러니까 그들 가방 속에 달러가 들어있으면 달러 장사인줄 알겠지만 그 속에 성경 찬송가가 들은 것을 보면 그것은 누가 봐도 예수쟁이가 아니냐는 말까지 기사화 했더라고요. 오늘날 기독교인들이 얼마나 기가 막히게 예수를 믿는지, 하나님의 말씀에는 귀를 기울이지 못하고 그런 행동을 합니다.

 

주님 오실 때가 되면 점점 더 합니다. 그래서 마태복음23장에 보면 예수님께서 감람산에 앉았을 때에 제자들에게 “예루살렘이 무너지는 일이 언제 있겠사오며, 세상 끝 날에 무슨 징조가 있겠습니까?” 라고 말할 때에 “난리와 난리 소문이 나겠으나 너희는 그런 것을 두려워하지 말고, 내 이름으로 많은 사람들이 와서 미혹할 것이다. 이적기사를 가지고 미혹할 때에 그 미혹을 주의하라”고 했습니다. 예수님이 직접 그 말씀을 했습니다. 여러분, 난리와 난리는 육의 문제지만 이적기사로 영혼을 사냥하면 영이 죽게 되고 결국 육체까지 멸망을 당하는 것입니다.

 

오늘 이 자리에 계신 여러분, 또 이 방송을 듣는 여러분, “과연 이 말씀이 하나님의 말씀인가?”, “과연 이 선지자가 하나님의 선지자인가?”를 정확하게 아시기를 바랍니다. 그래서 우리는 오늘 이런 말씀을 들을 때에 내 마음이 시원해야 됩니다. 이 말씀을 들을 때에 내 마음이 뜨거워져야 되고, 이 말씀을 들을 때에 내 머리속의 번민들이 사라져야 됩니다. 그리고 내 마음의 근심 걱정 등 모든 것이 물러가야 됩니다. 갈급한 자에게 생수가 내리듯이 이 모든 것이 다 내게 응답으로 와야 됩니다. 하나님의 역사는 불안한 것이 아닙니다. 성령의 역사는 괴로운 것이 아닙니다. 그러나 사탄의 역사는 위협입니다. 하나님의 역사는 따뜻한 봄날의 햇살이 얼음을 녹이고 눈을 녹이듯이 우리 마음도 녹게 하는 것이 하나님의 역사입니다.

 

오늘 여러분, 본문 9절을 보면 “내가 그들을 보내지 아니하셨어도 그들이 내 이름으로 거짓을 예언함이니라 여호와의 말이니라”고 했습니다. 여러분, 그 앞장 28장 2~4절 이하에 보니까 여기도 “여호와의 말이니라”고 합니다. 그러니 그것이 참인지 어떻게 분별하겠습니까? 제가 오래전에 전주에서 세미나를 했는데 많은 목사님들이 모였지만 그중에 성경을 삼백독한 장로가 와가지고 저하고 붙어버렸습니다. 그분은 은혜 받으려고 질문하는 것이 아니고 이 집회에서 강사를 골탕을 먹이려고 온 사람이었습니다. 그런데 몇가지 구절을 가지고 저랑 붙어버렸습니다. 그런데 제가 다 답변을 해서 이겼습니다. 그 당시 여러 목사님들이 쫙 앉아서 그 광경을 봅니다.

 

그중에 한 문제가 죽은 사무엘에 대한 것이었는데 곤경에 빠진 사울 왕이 자기가 죽게 되었을 때에 전에 가장 존경하고 사랑했던 사무엘을 찾습니다. 그런데 죽은 사무엘이 왔습니다. 그래서 그 사무엘이 온 것을 말하면서 “그것이 진짜 사무엘이냐?”고 질문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제가 그것은 사무엘이 아니라고 그랬습니다. 여러분 마귀는 예수님의 모습으로도 나타날 수가 있고, 바울의 모습으로도 나타날 수가 있으며 아브라함의 모습으로도 나타날 수가 있습니다. 한 가지 예를 들면 거기 성경에 보면 하늘에 올라간 사무엘이 “땅에서 올라온다”고 나옵니다. 그런 사무엘이 어디 있느냐면서 그 장로에게 오히려 해석해 보라고 했더니 대답을 안 해요. 여러분, 죽은 사무엘이 땅에서 올라왔다는 그 자체가 말씀 역사가 아닙니다. 나중에는 그 장로가 화를 내면서 가버리더라구요.

 

오늘 여러분, 성경을 모르면 성경 가지고 치고 들어올 때에 어떻게 이깁니까? 보십시오. “내가 이단이다, 내가 거짓선지자다”라고 하고 나타나면 되겠는데, “여호와의 말이니라” 고 하고 들어오니 어떻게 싸우겠습니까? 어떻게 이기겠습니까? 거짓 선지자들도 “여호와의 말이니라”고 하고, 예레미야도 “여호와의 말이니라”고 하니 백성들이 분별을 못합니다. 그러니 예레미야를 따르는 자가 얼마 없고, 거짓 선지자를 따르는 무리들이 아주 많습니다. 여러분이 그 당시에 계셨다면 과연 어느 편에 서겠습니까? ‘권사님, 대답해 보십시오’. “두 해 전에 고향으로 갈 것이라”는 소리를 들을 때 그들은 “아! 이것이 맞겠구나” “이것이 나에게 소망이구나”라고 합니다. 그런데 예레미야는 “70년이 차야 고향에 간다”고 하니, “저 자는 저주하는 늙은이가 아니냐?”고 하면서 그 선지자를 두들겨 팬 것입니다. 여러분, 하나님의 말씀은 인간 생각으로 그런 말씀을 하시지 않는다는 것을 우리는 알아야 됩니다.

 

그래서 본문 10절에 보면 참 선지자는 “나 여호와가 이같이 말하노라. 바벨론에서 70년이 차면 내가 너희를 권고하고 나의 선한 말을 너희에게 실행하여 너희를 이곳으로 돌아오게 하리라”고 합니다. 여기 ‘권고하다’는 말은 ‘보살펴주겠다’고 하는 말인데 언제까지 보살펴주느냐면 70년까지입니다. 그러면 그 기간 안에는 그냥 던져놓겠다는 말입니다. 두 선지자가 하나는 두 해 전에 돌아온다고 하고, 하나는 70년만에 돌아온다고 하니 많은 사람들이 두 해 전에 온다는 그 쪽으로 쏠립니다. 그래서 예레미야가 “절대로 저 말을 믿으면 안 된다”고 하는데 백성들은 그 말을 더 잘 믿습니다. 안 죽는다는 말보다 죽는다는 말을 믿어야 되는데 백성들은 반대로 믿습니다. 하나님은 ‘선악과를 먹으면 죽는다’고 했는데 그 놈의 마귀는 ‘안 죽는다’고 그랬습니다. 그러니까 하와가 ‘안 죽는다’는 소리를 듣고 선악과를 따 먹습니다.

 

오늘 여러분, 마귀는 얼마나 우리에게 아름다운 소리로 미혹해 오는지 모릅니다. 매우 교묘하고 간교하게 접근해 들어옵니다. 여러분은 말씀의 옷을 입기를 바랍니다. 앞으로 우리의 싸움은 혈과 육이 아닙니다. 김집사와 이집사와의 싸움이 아니고, 또한 이 교회와 저 교회의 교파 싸움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용의 세력인 사탄과의 싸움입니다. 그러기에 우리는 반드시 이겨야 됩니다. 이기려면 무장이 되어야 됩니다. 그리고 훈련이 되어야 되고 무기가 있어야 됩니다. 여러분은 반드시 말씀으로 무장이 되기를 바랍니다. 참 선지자는 ‘70년이 끝나야 고국에 돌아간다’고 말했는데 거짓 선지자의 말은 ‘두 해가 되기 전에 온다’고 그랬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사람인 참 선지자가 미움을 받고, 쫓겨남을 당하고 어려움을 당합니다.

 

오늘 이 말씀을 듣는 여러분, 그런데 70년이 딱 되니까 그들이 믿거나 말거나, 알거나 모르거나 하나님께서 대제사장 여호수아와 스룹바벨을 앞세워서 이스라엘 백성을 고국으로 끌고 갑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여러분, 이스라엘의 70년 해방이 예언대로 그대로 이뤄졌다면 영적 이스라엘인 우리에게 70이레의 완전한 해방도 반드시 이뤄진다는 것을 말하고 있습니다. 70이레가 끝나면 이스라엘의 70년 포로보다 더 좋은 영광의 날이 올 것이라고 성경은 말씀했습니다. 이 약속을 가진 여러분, 이 약속을 믿는 여러분, 이 세상에 어려움이 온다 할지라도, 아무리 나를 괴롭히는 일이 있다 할지라도 낙심하지 말기를 바랍니다. 우리는 약속이 있기 때문에 낙심할 수가 없습니다. 아무리 힘이 들어도 쓰러질 수가 없습니다. 아무리 억울한 소리를 해도 좌절하고 낙담할 수가 없습니다. 어려운 환경이 나를 좌우로 흔든다 해도 뒤돌아보지 말고 그 약속 붙들고 끝까지 완주하시길 바랍니다. 이 바벨론과 같은 세상에서 권세를 부리고, 화려하게 부귀영화를 누리고 산다고 해도 세상 끝 날에 대한 보장이 되어 있지 않다면 그 사람은 불행한 사람입니다. 그러나 시련을 겪으며 큰 환난을 앞에 놓고 있어도 훈련 받고 있는 우리를 하나님께서 그 환난에서 이기게 해주시겠다고 하는 보장만 되어 있다면 우리는 얼마나 큰 소망이 있는 자며, 얼마나 큰 희망이 있는 자입니까? 여러분, “나는 희망을 가지고 있다. 나는 소망을 가지고 있다”고 하는 이 약속을 빼앗기지 않기를 바랍니다.

 

제가 이런 설교를 많이 합니다. 요셉이 아버지와 어머니를 잃고, 동생을 잃고, 자기가 살던 가족을 다 잃고 노예시장에 팔려가서 자기 인생이 풍전등화와 같이 정말로 사지 구덩이에까지 내려갔지만 하나님께서 그에게 준 꿈은 버리지 않았습니다. 결국 그 꿈대로 요셉에게 꿈이 이루어졌습니다. 오늘날 우리가 이 땅 위에 살면서 어떤 시련이 오고, 어떤 어려움이 오고, 어떤 중상모략을 당하고, 어떤 모함이 오고, 숨이 막혀 죽을 정도까지 왔다 할지라도 이 약속만은 붙들고 놓치지 말기 바랍니다. 반드시 약속은 약속하신 분이 약속한 자에게 성취하십니다. 여러분에게 반드시 그렇게 되기를 바랍니다.

 

그런데 참으로 놀랍고도 감사한 것은 본문 12절과 13절입니다. “너희가 내게 부르짖고 와서 기도하면 내가 너희를 들으실 것이요, 전심으로 나를 찾고 찾으면 만나줄 것이다”고 했습니다. 이 말씀은 자꾸 보고 자꾸 들어도 싫증이 나지 않는 말씀입니다. 오늘 여러분, 험한 세상을 살아가면서 내가 빌 곳이 있다는 것이 얼마나 소망입니까? 여러분, 부탁할 때에 들어줄 분이 있다고 하는 것이 얼마나 행복한 줄 압니까? 허무한 바위에도 빌고, 나무에도 빌고, 돌에도 빌고, 목석에도 빌고, 숨도 쉬지도 못하고 말도 못하는 우상을 만들어 놓고 그 앞에 빌던 우리가 살아계신 하나님 앞에 아버지라고 부르고, 빌 곳을 찾았다고 하는 것은 축복 중의 축복이요, 소망 중의 소망입니다. 이것이 우리가 사는 보람이지 않습니까? 내 사정을 아시고 말할 때에 들어줄 데가 있다는 것은 얼마나 귀한 축복인지 모릅니다. 여러분, 스트레스를 많이 받아서 안절부절 하는 자가 있으면 그 사연을 들어주십시요. 많이 들어주면 스트레스가 풀리고 그러면 바른 정신이 오게 됩니다.

 

그러기 때문에 오늘 여러분은 힘들어도 포기하지 말고 기도하고 부르짖을 때에 분명히 하나님이 들어 주신다고 했기에 그분을 찾고 빌기를 바랍니다. 여기에 11절 중간에 보면 “평안”이라는 말이 나옵니다. “재앙이 아니라 곧 평안이요 너희 장래에 소망을 주려 하는 생각이라”고 했습니다. 주님은 우리에게 평안을 주겠다고 하셨습니다. 여러분, 세상이 점점 불안해집니다. 얼마나 불안한지 모릅니다. 자다가도 불안이요 일어나서도 불안이고 직장 가서도 불안이며 퇴근하고 출근해도 다 불안입니다. 그런데 여기에 평안을 주겠다고 했습니다. ‘샬롬’이라고 그랬습니다. 참 평안을 줄 것이라는 겁니다. 그 다음에는 ‘장래에 소망’입니다. 훗날에 희망을 준다는 겁니다. 그런데 중국 성경에는 ‘말세 소망’으로 되어있어요. 우리 말로 ‘장래에 소망’보다 ‘말세에 소망’이 더 좋죠? 중국성경은 ‘말세에 우리에게 소망을 주겠다’고 했습니다. 오늘 여러분, 말세지 말(末)을 살아가는 우리에게 이 소망을 주겠다고 했으니 이 소망을 잃어버리지 말기를 바랍니다. 여러분, 돈이 없고 가난하며 다리가 잘려서 발이 없어도 남대문 시장 등에서 마차를 끌고 다니며 장사하는 분들을 보십시오. 그들이 마음에 병이 안 드니까 그래도 살아갑니다. 그런데 은금 보화를 갖고 있고 외제차를 굴리고 아주 좋은 집에서 살아도 마음에 병이 들면 자살해 버립니다.

 

오늘 여러분, 본문 말씀에 우리에게 “말세에 소망을 주시려는 생각이라”고 했습니다. 우리 아버지께서 마지막 때에 우리에게 소망을 주시겠다고 했기에 이는 아무에게나 주는 소망이 아니고 당신의 자식에게 주는 소망입니다. 오늘 우리는 천지를 창조한 신을 아버지라고 부르는데, 그 아버지가 소망을 주겠다는 말입니다. 말세의 소망이라고 하는 이 약속을 가진 여러분은 마음이 뜨거워지기 바랍니다. 그래서 “소망을 주기 위해서라”고 하면서 “너희는 내게 부르짖으며 와서 내게 기도하면 내가 너희를 들을 것이요 너희가 전심으로 나를 찾고 찾으면 나를 만나리라”고 했습니다. 여기 ‘부르짖다’는 말은 ‘소리를 내다’는 말입니다. 그러니까 소리 지르며 내게 기도하면 그 기도에 응답해주겠다는 것이니 얼마나 소망입니까? 만약에 불러도 대답이 없고, 기도해도 응답이 없으면 내가 좌절이 될텐데, 내 기도를 들어주신다고 했습니다.

 

여러분, 손자가 이쁘니까 말하는 그 주둥이도 이쁘더라고요. 손주와 아들과는 촌수가 달라요. 내 새끼 코는 안 더럽더니 손주 코는 만지기가 ‘어이쿠’ 그러면서 화장지에 얼른 닦게 되는데 그것도 촌수를 나타내더라고요. 정말로 내 새끼가 이쁜 소리하니까 주는 것도 이쁘고 이빨도 제대로 나지 않은 것이 오물 오물하며 먹는 것도 이뻐요. 그렇다면은 우리가 나이가 들어도 주님 앞에는 생각이 어리고 부족하지 않습니까? 여러분들끼리도 말을 들어보면 서로 서로간에 저 말은 안해도 되는데라고 느끼시죠? 그래서 모두 푼수들끼리 살면서 느끼는 겁니다. 그런 우리에게 하나님께서 푼수대기라고 하지 아니하고 우리 소리를 들어주겠다는 겁니다. 그분이 우리를 만나주겠다는 거예요. 미국의 오바마 대통령이나 중국의 시진핑이 만나주겠다며 우리 집에 찾아오겠다 하면 집 청소를 아마 일주일전부터 할겁니다.

 

그런데 천지를 창조하신 주께서 나를 만나주겠다고 하고 우리를 찾아 오시겠다며 이런 좋은 말씀, 이런 기쁜 말씀을 해 주셨습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 마태복음 7장 7절 이하에나 누가복음 11장 9절 이하에 보면 “구하라 그러면 너희에게 주실 것이요, 찾으라 그러면 찾을 것이요. 문을 두드리면 너희에게 열리리니 구하는 이마다 얻을 것이요 찾는 이가 찾을 것이요 두드리는 이에게 열리리라”고 했습니다. 이것은 주님이 주고 싶어 한다는 겁니다. 여러분, 진짜로 주고 싶을 때는 내가 안 먹고도 주고 싶고 내가 안 입고도 주고 싶은 것이 있습니다.

 

하나님이 다 자기사람, 자기가 아끼는 사람이 와서 기도하고 부탁하면 들어주겠다고 하십니다. 여러분, 그럼 누가 주려고 안달이 나 있습니까? 주님께서 오히려 더 주시려고 안달이 나 있습니다. 여기 “너희가 전심으로 나를 찾고 찾으면”이라고 했는데 “전심으로”라는 단어는 “모든 마음으로”입니다. 즉, 몸과 마음과 뜻을 다하여 나를 계속하여 포기하지 않고 찾으면 만나 주겠다는 겁니다. 오늘 이 약속의 말씀이 꼭 여러분의 말씀이 되어서 그대로 성취되기를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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