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02.16 21:53
노아, 다니엘, 욥, 이 세 사람
(에스겔14:12-20)
“여호와의 말씀이 또 내게 임하여 가라사대 인자야 가령 어느 나라가 불법하여 내게 범죄하므로 내가 손을 그 위에 펴서 그 의뢰하는 양식을 끊어 기근을 내려서 사람과 짐승을 그 나라에서 끊는다 하자 비록 노아, 다니엘, 욥, 이 세 사람이 거기 있을찌라도 그들은 자기의 의로 자기의 생명만 건지리라 나 주 여호와의 말이니라 가령 내가 사나운 짐승으로 그 땅에 통행하여 적막케 하며 황무케 하여 사람으로 그 짐승을 인하여 능히 통행하지 못하게 한다 하자 비록 이 세 사람이 거기 있을찌라도 나의 삶을 두고 맹세하노니 그들은 자녀도 건지지 못하고 자기만 건지겠고 그 땅은 황무하리라 나 주 여호와의 말이니라 가령 내가 칼로 그 땅에 임하게 하고 명하기를 칼아 이 땅에 통행하라 하여 사람과 짐승을 거기서 끊는다 하자 비록 이 세 사람이 거기 있을찌라도 나의 삶을 두고 맹세하노니 그들은 자녀도 건지지 못하고 자기만 건지리라 나 주 여호와의 말이니라 가령 내가 그 땅에 온역을 내려 죽임으로 내 분을 그 위에 쏟아 사람과 짐승을 거기서 끊는다 하자 비록 노아, 다니엘, 욥이 거기 있을찌라도 나의 삶을 두고 맹세하노니 그들은 자녀도 건지지 못하고 자기의 의로 자기의 생명만 건지리라 나 주 여호와의 말이니라 하시니라”
오늘은 민족의 대 이동이 있는 설날인데 이 설을 중심해서 많은 사람들이 가고 오고 하기 때문에 굉장히 바쁜 날입니다. 이런 때에 가정이 신앙으로 하나가 되지 않으면 손님들이 오고, 음식을 장만하여 대접을 해야 하기 때문에 이런 것들을 떨쳐버리고 교회에 온다는 것은 상당히 어렵습니다. 그래서 아마 오늘 힘들게 교회에 나오신 분도 없지 않아 있을 줄로 압니다. 다음 명절 때에는 여러분의 가정이 신앙으로 하나가 되는 역사가 있기를 바랍니다.
여러분, 오늘 본문의 저자인 에스겔과 다니엘과 예레미아 선지자는 조금의 차이는 있지만 거의 동시대에 활동했던 선지자들입니다. 이 선지자들이 활동하는 시대에는 불법이 성하고, 범죄가 난무하고, 죄질이 극도로 악한 시대였습니다. 죄질이 너무 악해서 정말로 사람이 사람을 쳐다보기가 힘들 정도로 어려운 시대였는데, 그런 시대에 이분들이 하나님의 부름을 받아서 선지자로 활동을 했습니다. 창세기 6장에 노아 홍수 심판 직전의 사회상을 보면 그 땅의 백성들이 얼마나 악해졌는지 모르며, 소돔, 고모라 심판 때에 또한 그 땅이 얼마나 악해졌는지 모릅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는 마지막 때는 “마치 노아의 때와 같고 롯의 때와 같다”고 말씀을 하셨습니다. 그렇다면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시대가 그 시대가 아닌가하는 생각이 듭니다.
오늘 본장 13절에 보면, “가령 어느 나라가 불법을 행하여 범죄할 때에 하나님께서 진노의 손을 펴겠다”라고 말씀하십니다. 어느 때나 정치적으로나 종교적으로나 사회적으로 부패해져 간다고 하는 것은 심판 때가 가까이 왔다는 징조인데, 그 때가 하나님의 진노의 손을 들 때입니다. 그러니까 언제나 심판이 갑자기 오는 것이 아니라 심판이 올 수 있는 여건이 만들어지고 그 백성들이 그 쪽으로 몰려가고, 세상은 어두워지고 악해질 때에 심판이 들어오는 것입니다. 제가 어젯밤 12시 30분경에 TV에서 북한 김정은에 대한 상황을 공개 하길래 그것이 성경과 관계가 되기 때문에 필히 좀 봐야 되겠다 싶어서 늦게까지 봤습니다만 북한 김정일이가 죽고 그 아들 김정은이를 후계자로 만들 때에 이미 오래전에 죽은 김일성이가 환생해서 김정은이가 나온것 처럼 해가지고 그것을 국민들에게 막 주입을 시켰더라고요. 그래서 그를 김일성 스타일로 만드는 겁니다. 공부할 때는 저렇게 뚱뚱하지 않았다는데 그렇게 만들었고, 심지어 그 손짓하는 것까지도 모방을 했더라구요. 여러분, 지금이 어떤 세상인데 죽은 김일성이가 환생해서 김정은이가 나온 것으로 만들어서 어버이 수령으로 모시도록 하는 짓을 합니까? 저것이 이제 망할 징조입니다. 저것이 심판할 때가 왔다는 징조입니다.
오늘 여러분들은 본문의 말씀을 보면서, 과연 시대가 어떻게 되어질 것인가라고 하는 것을 선지자적 입장에서 내다볼 줄 알기를 바랍니다. 본문 12절에서 20절까지의 내용을 보면 거의 동일한데 그중에 동일하지 않은 것이 네 가지가 나옵니다. 첫째는 13절에 기근으로 인해 식량을 끊겠다는 재앙이 나오고, 15절에는 사나운 짐승으로 인해 환란을 보내겠다는 것이 나오며, 17절에는 칼을 보내서 징계를 내리겠다고 하는 것이 나옵니다. 그 다음에 19절에는 온역을 내려서 이 땅을 심판하시겠다고 했습니다. 13절, 15절, 17절, 19절의 말씀대로 이런 재앙이 올 때에 노아, 다니엘, 욥 이 세 사람이 거기에 있을지라도 그 가족과 식구도 구원하지 못하고 자기만 구원하게 될 것이다라고 기록해 놨습니다.
그럼 오늘 저와 여러분이 생각해야 될 말씀은 심판기에 나타나는 네 가지의 재앙인데 13절에 먼저 기근이 이 땅에 엄습할 것을 말했습니다. 이것은 곧 식량의 막대기로 환난을 일으켜 징계하겠다는 것입니다. 그다음에 15절에 사나운 짐승으로 환난을 일으키겠다고 그랬는데 이것이 뭐냐면 사나운 짐승이기 때문인 식인 동물로 맹수가 우글거리도록 하겠다는 것입니다. 계시록 13장에 보면 이 식인 동물을 뭐라고 했냐면 “바다에서 나온 악한 짐승”이라고 말했는데 하나님을 모르는 악한 자가 나올 것을 말합니다. 그다음에 17절에는 칼의 재앙으로 징계하겠다는 것인데 이는 원수의 칼날을 의미하는 것으로 전쟁을 말하는 것입니다. 이 칼이 이 땅에 통행하며 사람과 짐승을 끊겠다고 그랬습니다. 이 땅위에 이 칼이 돌아다니겠다는 겁니다. 그다음에 네 번째로 19절에는 온역이 이 땅 위에 유행하겠다고 했는데 무서운 질병이 이 땅 위에 유행하게 하겠다고 했습니다. 국가적으로나 대도시에 이런 재앙이 내려지면 온 백성이 두려움 속에 쓰러지게 됩니다.
그런데 여기 나오는 네 가지가 어디에 또 나오냐면 요한계시록 6장의 넷째 인을 뗄 때에 나옵니다. 요한계시록 6장 7절에 청황색 짐승이 나오는데 그 때의 내용과 본문이 똑같습니다. 그러면 청황색 짐승이 어떻게 이 땅 위에서 무섭게 활동을 할 것인지에 대하여 오늘 여기 에스겔서에 이미 예언을 해놓은 것입니다. 요한계시록 6장에 보면 “청황색 말이 나오는데 그 탄 자의 이름은 사망이요 음부가 그 뒤를 따르더라”고 그랬습니다. 사망과 음부가 뒤를 따른다는 것은 많은 죽음이 이 땅 위에 올 것이라는 것인데 무엇 때문에 그런 사망이 이렇게 기습을 하게 될 것인가 하는 것도 알아야 합니다. 여러분, 거기에 보면 붉은말도 있고 검정말도 있고 흰말도 있는데 청황색 말이 나오는데, 그것은 푸른 청색과 누런 황색이 합해진 연녹색입니다. 이 연녹색을 가진 짐승이 여러분 앞에 나타난다고 한번 상상을 해보십시오. 얼마나 기절할 일입니까? 그런데 그 짐승이 나타나는데 이름은 사망이요 음부라고 했는데 그 음부가 뭡니까? 지옥입니다. 그 사망과 음부가 뒤를 따른다고 하는 것은 대단히 두려운 일입니다.
그런데 오늘 본문을 보면 사도 요한이 밧모섬에서 계시를 받기 전에 먼저 에스겔에게나 예레미야에게도 보여준 것을 보게 됩니다. 에스겔에게나 예레미야에게 미리 보여준 이 네 가지가 요한계시록에 다 나옵니다. 요한계시록에도 검이 나오는데 오늘 본문 17절에 칼 재앙이 나옵니다. 즉 전쟁입니다. 그다음에 요한계시록에 흉년이 나오는데 본문 13절에 기근 재앙이 나옵니다. 역시 같습니다. 그리고 요한계시록에 사망이 나오는데 에스겔서엔 온역 질병으로 죽게 된다고 했습니다. 그러니까 앞으로는 이런 것들이 오게 되어있는 것입니다. 요한계시록에 짐승으로써 많은 사람이 죽는다고 그랬는데 여기 에스겔 15절에도 식인맹수로 인해 이런 환란이 일어날 것을 기록했습니다. 그래서 요한계시록에 네째 인을 뗄 때에 나오는 청황색 말 역사와 오늘 에스겔서 14장 13~20절 내용이 똑같습니다.
그러면 여러분, 우리는 이 재앙에 앞서서 앞을 내다보고 있는 겁니다. 그래서 이 재앙을 피할 자는 어떻게 해야 되는지를 알아야 합니다. 그러니까 여러분, 우리가 영생한다는 것 자체가 참으로 어려운 것입니다. 그렇게 쉬운 것이 아닙니다. 그러기 때문에 오늘 여기 에스겔서에 나오는 이 네 가지가 계시록에 또한 네 가지로 나오고 있다는 말입니다. 그런데 이런 환란 때에 거기에 노아, 다니엘, 욥, 이 세 사람이 있다고 해도 가족도 처자식도 아무도 구출하지 못하고 자기만 구출하게 될 것이다라는 말입니다. 이것은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그러면 이것이 어느 때에 일어날 것인가를 알아야 합니다.
먼저 그러기 전에 노아와 다니엘과 욥은 어떤 사람인가를 알아야 됩니다. 창세기 6장 9절~10절을 보면 노아는 의인이요, 당대에 완전한 자라 그랬습니다. 온 땅이 패괴하고 강포가 땅에 충만하다고 그랬습니다. 온 땅에 악이 성행하고 살인과 강간과 사기가 판을 치는 그런 때에 하나님이 노아를 찾아와서 “노아야! 방주를 지어라”고 했습니다. 그래서 노아는 하나님의 명령을 따라 순종하고 그 노아의 아내는 남편의 말을 들었고, 며느리는 그 시아버지의 말에 순종하고 그 아들들 역시 아버지의 말에 순종해서 방주를 지으므로 그 가정 식구가 온 인류가 물로 심판당하는 날에 함께 구원을 받았습니다. 노아는 그런 가운데 구원 받은 사람입니다. 그 다음에 다니엘을 보면 비록 그가 바벨론 땅에 포로로 잡혀갔지만 신앙 사상을 저버리지 않았다고 했습니다. 바벨론 사상에 마음을 섞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신앙의 지조를 지켰습니다. 그리고 고향 땅 예루살렘 성전이 있는 곳을 향하여 하루에 세 번씩 기도를 합니다. “이 나라 이 백성들이 이렇게 포로 되어 와서 고생하는 것을 하나님이 보시고 속히 해방시켜서 고국으로 돌아가서 하나님 앞에 제단을 쌓게 하옵소서”라고 하면서 항상 정기적으로 하루 세 번씩 예루살렘 성전이 있는 고향 하늘을 바라보고 기도한 분이 다니엘입니다. 그래서 사자 굴에 집어 넣었어도 그 굶주린 사자가 그 하나님의 사람을 물어 씹지 않았다고 하는 내용이 다니엘서 6장에 나옵니다. 그러나 다니엘을 모함했던 자는 그 가족들과 함께 사자 굴에 집어 넣었더니 땅에 닿기도 전에 뼈까지 다 사자가 먹어버렸습니다. 그런 다니엘에게 70년 포로 환난에서 해방 될 것을 9장에 하나님이 알려줬습니다. 그 보다 더 완전한 해방인 70이레 해방의 비밀을 다니엘에게 알려줬습니다. 그래서 그는 사자 굴에서도 살아 남았고 그 바벨론 사람들이 모함하는데서도 살아나왔습니다. 그는 하나님께 크게 은총을 받은 자입니다. 이는 그의 사명 때문입니다. 그런 분이 다니엘입니다. 대단한 사람 아닙니까?
그리고 또한 욥이 어떤 사람입니까? 욥기서 1장 1절 이하에 보면 “우스 땅에 사는 욥이라는 사람은 순전하고 정직하여 하나님을 경외하고 악에서 떠난 사람이라” 그랬습니다. 자, 그가 아들 일곱이요 딸이 셋으로 십남매를 데리고 살았습니다. 양이 칠천, 약대가 삼천, 소가 오백 겨리, 암나귀가 오백으로 그는 동방에서 부자라 그랬습니다. 종도 많았습니다. 그 욥이 하루아침에 자식을 잃습니다. 하루아침에 재산을 잃고 하루아침에 건강도 잃습니다. 마누라도 잃었습니다. 하루아침에 친구도 다 잃어버렸습니다. 그래도 욥은 “내가 이 땅위에 적신으로 왔으니 내가 적신으로 가는 것이 당연하다. 주시는 이도 아버지시오 가져가시는 이도 아버지신데, 여호와 하나님 이름에 찬양을 돌려야 된다”고 고백합니다. 자식과 부인을 잃고, 재산도 잃고, 친구도 잃고 건강을 다 잃었어도 하나님을 원망하지 않고 입술로 범죄치 아니한 사람이 욥입니다.
그러한 세 사람이 여기에 나왔습니다. 이 세 사람은 최고의 인물들입니다. 그런데 이 세 사람이 무서운 환란 날에 거기에 있다고 그래도 가족 구원도 할 수 없고, 자식도 구원 받을 수 없고 자기 혼자만 구원 받는다고 했습니다. 그럼 이것이 언제 이뤄지는 것일까요? 여러분, 이것이 만약에 지금 같으면 노아의 말에 가족도 함께 구원을 받을 수가 있고, 다니엘의 말에 그 측근들도 구원을 받을 수 있습니다. 그리고 욥의 말에 그 이웃이 구원 받을 수 있을 겁니다. 그런데 이것이 어느 때이기에 가족도 구원을 못 시키는 시대가 오느냐 이 말입니다. 이는 이미 준비할 시대 끝났다는 겁니다.
여러분, 이제 준비할 시대가 끝납니다. 저는 청황색 말이 역사할 때는 이미 5개월 환난이 들어온 때라고 봅니다. 그렇다면 오늘 우리는 그 전에 준비를 해야 됩니다. 여러분, 제가 늘 그러죠? 죽어 천당 가는 길은 준비 없어도 됩니다. 내가 지금 이 순식간에 죽으면 “주님 내 영혼 부탁합니다”라고 하면 됩니다. 간단합니다. 그러나 오실 주님을 맞이하는데는 그 앞에 큰 전쟁을 앞에 두고 있기 때문에 그 날이 오기 전에 준비를 해야 합니다. 오늘 에스겔의 이 말씀의 역사가 일어나기 전에 준비를 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만약에 이 재앙의 날이 엄습해 온다고 그러면 노아 같은 사람도 자기 혼자 밖에는 구원을 못 받고, 다니엘 같은 선지자도 자기 혼자 밖에 구원 받지 못하며, 아무리 동방의 의인이요, 인내로 참는 그런 욥이 거기 있다고 해도 그 환난에서는 자기 혼자 밖에 구원을 받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제가 이 말씀을 보면서 어느 때이기에 이런 위대한 사람들도 자기 혼자 밖에 구원받지 못한다 하는가? 라는 것을 생각할 때에 계시록 6장이 스쳐가서 그 말씀을 딱 잡고 연결하니까 넷째 인을 뗄 때에는 벌써 청황색 말이 날뛴다고 했기 때문에 이미 그 무서운 환난에 접어 들었구나라는 것을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여러분, 만약에 그 환난이 접어들었다면 그 전까지 여러분의 가정을 구원시키지 못하면 여기 와서는 소용없다는 겁니다. 이제 개인만 구원을 받게 됩니다. 여러분, 이것은 저의 말씀이 아니고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여러분, “설마”하고 생각할지 모르지만 절대로 설마는 믿음이 아닙니다. 오늘 이 말씀을 듣는 여러분, 이 세 사람이 있어도 본인 외에 남을 구원할 수 없다고 했으면 이 환난이 얼마나 무섭고 큰 환난입니까? 그런 환난이 오는데 아들, 딸도 구해내지 못하고 본인만 빠듯이 구원을 받을 수 있다고 그런다면 이 시대는 복음을 전파하며 돌아오라고 외치던 시대는 이미 지나갔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예레미야 15장 1절에 보면 모세와 사무엘이 나옵니다. “모세와 사무엘이 하나님 앞에 섰다고 할지라도 내 마음이 이 백성을 향하지 않겠다”고 하면서 “그 백성들을 내 앞에서 쫓아내어버리겠다”고 그랬습니다. 오늘 여러분, 모세와 사무엘은 중보기도의 용사입니다. 이 백성을 위해서 아무리 중보 기도를 해도 그 기도를 안 받겠다는 겁니다. 왜 그럴까요? 그 안 받는 자의 환난이 또 여기와 연결이 됩니다. 그래서 여러분, 예레미야 15장 1절 내용과 에스겔 14장 13절 이하 내용과 요한계시록 6장 7절 내용과 묶어져야 됩니다. 왜 모세와 사무엘이 아무리 이 문제를 놓고 하나님 앞에 대언 기도하고, 중보기도를 한다고 해도 그들의 기도를 받아주지 않겠다고 했으면 언제 이 기도를 안 받아 준다는 것일까요? 이 환난 때입니다.
그래서 그들이 말하기를 “모세 기도도 안 들어주고, 사무엘 기도도 안 들어주면 우리가 어디로 가야합니까?” 라고 하니까 여호와의 말씀에 “사망할 자는 사망으로 가게 두고, 칼을 받을 자는 칼을 받도록 가게 두고, 기근을 당할 자는 기근을 당하도록 가게 두고 포로 될 자는 포로 됨으로 나갈찌니라”고 했으니 다 같은 말이죠? 이제 안 된다는 말입니다. 아무리 중보 기도를 할 수 있는 모세가 있다고 그래도, 아무리 이스라엘 민족 앞에 기도하는 사무엘이 있다고 해도 이 중보기도는 안 받겠다고 했으니 이제 때가 지났다는 겁니다. 이제 중보기도를 받을 때도 지났다는 겁니다. 이미 복음을 전파할 때 받아들일 기회를 놓쳤다는 겁니다.
이것이 넷 째 말의 역사입니다. 청황색 말이 날뛸 때는 이렇게 된다는 겁니다. 여러분, 자식들이 귀하지 않습니까? 내 손자가 귀하지 않습니까? 이 자리에 앉아계신 여러분은 국회의원처럼 대표로 나와서는 안 됩니다. 지방의회 의원들이 아닙니다. 기회를 놓치지 마십시오. 기회를 잃지 마십시오. 저는 앞으로 얼마 남지 않아서 에브라임이 무너진다고 생각할 때는 이미 좀 늦은 감이 있다고 봅니다. 에브라임이 무너질 때는 준비하기에는 이미 늦었습니다. 누가 그렇다는 겁니까? 선구자는 이미 늦었다는 겁니다. 까지껏 따라가다가 떨어질망정 따라간다면 모르지만 선구자는 그렇지 않습니다. 저는 그래서 이번 대통령 임기가 대단히 중요하다고 봅니다. 지금이 내 가정을 노아의 가정으로 만드는 기간이라고 생각하고 말씀 준비를 하기 바랍니다.
오늘 여러분, 만약에 이것을 놓치면 에스겔14장의 본문 구절이나 예레미야 15장 1절 구절이나 계시록 6장 7절의 역사를 피할 길이 없습니다. 그래서 우리끼리는 잔정도 있고 적당히도 있지만 하나님은 말씀대로 잣대를 갖다 댑니다. 하나님은 말씀대로 달아봅니다. 오늘 이 자리에 계신 여러분, 그래서 오늘 설교 제목이 ‘노아, 다니엘, 욥, 이 세사람’이라고 했습니다. 성경에 나오는 이 사람들은 다 존경받을만한 사람들이요, 이 사람들은 전부다 우리가 우러러 봐야 될 사람들인데, 이 사람들보다 못한 우리 아닙니까? 이 사람들이 거기 있다고 그래도 한사람도 구원하지 못하고 자기만 구원한다고 하는 것은 기회를 놓친 때를 말하는 겁니다.
그런데 본장 21절에 보면 여기 네 가지 재앙이 한꺼번에 온다고 했습니다. 이스라엘 역사에 이 재앙들이 한꺼번에 온 역사가 한 번도 없었습니다. “내가 나의 네가지 중한 벌 곧 칼과 기근과 사나운 짐승과 온역을 예루살렘에 한꺼번에 내려 사람과 짐승을 그중에서 끊으리니”라고 했습니다. 즉 계시록 6장 7절과 맞지요? 청황색 말 역사와 맞고, 오늘 본문의 구절하고 맞습니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재앙을 내릴 때에는 한 가지씩 내리고 말았어요. 한 가지씩 던지고 말았습니다. 그런데 네 가지를 한꺼번에 쏟아 붓겠다는 건, 청황색 말이 나오는 계시록 6장 7절밖에 없습니다. 그리고 에스겔 14장 21절, 여기 밖에 없습니다. 그리고 이런 모세와 사무엘의 기도도 안 듣겠다고 하는 말은 예레미야 15장 1절밖에 없습니다. 그러면 이것이 지금 우리 앞에 남아있습니까? 지나갔습니까? 남아있습니다.
오늘 여러분은 이 소리를 듣고 어떻게 하겠습니까? 그래서 애걸복걸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그래서 예수님께서 잡혀 갈 때에 우는 여인들을 향하여 “나를 위하여 울지 말고 너와 너희 자식들을 위하여 울라”고 했습니다. 왜냐면 너무나 엄청난 환란이 오기 때문에 주님이 그 말씀을 하셨는데 그러고 난 다음에 AD70년경에 로마 디도 장군이 와가지고 유대 땅이 피바다가 되었습니다. 얼마나 죽이고 포로로 잡아가버렸는지 모릅니다. 그리고 예루살렘 성전은 무너지고 말았습니다. 그 성전의 큰 돌을 놓고 “돌 위에 돌 하나도 놓이지 않겠다”고 했는데 이는 그 돌 사이에 금을 끼어 놓았기에 그 금을 빼 간다고 예루살렘 성전의 두 돌도 붙어있지 않고 싹 부서져 버렸던 것입니다. 그것이 예수님이 말씀 하시고 나서 얼마 되지 않아서 이스라엘 땅에서 이루어졌습니다.
성도 여러분, 오늘 이 말씀은 예언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이 날이 오기 전에 준비를 해야 합니다. 내가 죽어서 주님 나라 간다고 하면 화장터에 가든지 공원묘지에 가든지 상관없습니다. 그러나 내가 그렇지 않고 그 날까지 버텨서 살겠다고 한다면 이 말씀은 우리에겐 경고의 말씀입니다. 들어야하는 말씀입니다. 그런데 우리가 말씀에 면역성이 생기면 안 됩니다. “정말로 오늘 에스겔서 14장 말씀이 계시록 6장하고 맞아 떨어지는구나, 예레미야 15장 1절과도 맞아 떨어지는구나!”라고 한다면 준비해야 합니다. 그런데 “왜 이 때에 기도의 응답이 이루어지지 않는가?”라고 하는 것은 이미 기회를 놓쳤다는 겁니다. 그런데 본장 22절에 보면 거기에서도 살아남는 백성들이 간혹 나온다고 했는데, 거기 보면 어린 자식들이 간혹 나온다고 했습니다. 그런데 그 어린자식이 나이가 어린자식들이 아니라 신앙이 어린 자녀들 중에 간신히 살아나올 자식들이 있다고 말했습니다.
오늘 여러분, 우리는 이 땅에 그저 왔다가 가는 그런 성도가 아닙니다. 그 나라에 목적을 두고 왔습니다. 그 나라를 기업으로 상속받기 위해서 온 것입니다. 그럼 오늘 이 구절을 생각하면서 “나는 기회를 놓치지 말아야겠다, 내게 주님께서 기회를 놓치지 말라고 주는 경고의 말씀이다”라고 생각해야겠습니다. 오늘이 명절날이라고 세상 사람들은 고향을 찾고 명절을 찾지만은 우리는 우리의 명절을 바라보면서 이 성전에 와서 예배를 드린다고 한다면, 오늘 본문의 말씀을 한번 깊이 생각해봐야 될 줄로 압니다. 기회를 놓치지 맙시다. 때를 빼앗기지 맙시다. 마귀는 ‘차차’ 하라고 하지만 성령님은 ‘속히 속히’입니다. 주님은 급히 서두르라고 하지만 사탄은 자꾸 미룹니다.
오늘 여러분, 다음 주에라도, 다음 달이라도, 다음 해가 되기 전이라도 우리는 비상한 결단이 있어야 하겠습니다. 이제는 해산의 수고를 해야 할 줄로 압니다. 그래서 우리는 “주님, 기회를 놓치지 않게 해주시옵소서”라고 간구해야 합니다. 기회를 놓치면 오늘 이 재앙의 구절이 내 구절이 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주님! 오늘 이 말씀이 내 말씀이 되지 않게 해 주시옵소서”라고 간구 해야 합니다. 내 구절이 되지 않으려면 노아의 가정이 돼야 됩니다. 여러분, 오늘 이 말씀을 깊이 헤아려 보시기를 바랍니다. 오늘 본장의 13절, 15절, 17절, 19절의 재앙을 내리겠다고 했는데, 거기에 14절, 16절, 18절, 20절에 이런 노아와 다니엘, 욥이 있다고 하여도 그 가정도, 자식도 구원 못하고 달랑 자기 혼자만 구원 얻는다고 하는 이 말씀을 꼭 명심하기 바랍니다. 노아보다도 못하고, 다니엘보다도 못하고, 욥보다도 못한 내가 가정 구원을 못 시킨다면 이 엄청난 책임을 누구에게 돌리겠습니까? 그것은 바로 내 자신이라는 것을 생각하시고, 오늘 본문 에스겔 14장과 예레미야 15장과 계시록 6장을 한데 묶어서 생각해 보면서 우리 앞에 남아있는 재앙이 너무나 크다는 것을 생각하고, 이런 재앙이 내게는 비켜가고 오직 신앙으로 하나 되어 환난 날에 남을 수 있는 제2의 노아 가정이 되게 해 달라고 통성 기도를 해야 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