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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께서 부정한 입술과 죄인의 몸을 만져 주신다면”

(다니엘 10장 14~19절)

 

“이제 내가 말일에 네 백성의 당할 일을 네게 깨닫게 하러 왔노라 대저 이 이상은 오래 후의 일이니라 그가 이런 말로 내게 이를 때에 내가 곧 얼굴을 땅에 향하고 벙벙하였더니 인자와 같은 이가 있어 내 입술을 만진지라 내가 곧 입을 열어 내 앞에 섰는 자에게 말하여 가로되 내 주여 이 이상을 인하여 근심이 내게 더하므로 내가 힘이 없어졌나이다 내 몸에 힘이 없어졌고 호흡이 남지 아니하였사오니 내 주의 이 종이 어찌 능히 내 주로 더불어 말씀할 수 있으리이까 또 사람의 모양 같은 것 하나가 나를 만지며 나로 강건케 하여 가로되 은총을 크게 받은 사람이여 두려워하지 말라 평안하라 강건하라 강건하라 그가 이같이 내게 말하매 내가 곧 힘이 나서 가로되 내 주께서 나로 힘이 나게 하셨사오니 말씀하옵소서”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오늘 말씀을 특별히 잘 들으시기 바랍니다. 귀를 쫑긋이 세우고 정신을 바짝 차려서 본문 말씀을 잘 들으시길 바랍니다. 요즘도 그런지 모르겠지만 전에 인도인들이 사람들을 만날 때마다 “나마스테”라면서 인사를 한다고 합니다. 왜냐면 그들은 오래전부터 모든 사람들속에는 신이 있다는 것을 믿기 때문에 “당신 속에 있는 신께 문안을 드립니다”라는 뜻으로 그런 인사를 한다고 합니다. 그러니까 단순히 사람에게만 인사하는 것이 아니라 그 사람 속에 있는 신께 문안 인사를 드린다는 뜻에서 그렇게 인사를 한다고 합니다. 실제로 동물은 그렇지 않습니다만 사람만은 악신이 들어가 있든가 아니면 거룩한 신이 들어가 있든가 둘 중에 하나는 들어가 있습니다. 악신이 들어가 있으면 악신의 도구가 되고, 거룩한 신이 들어가 있으면 거룩한 신의 도구가 됩니다.

 

오늘 본문에 다니엘은 어린 소년 시절 때부터 바벨론 나라에 포로 되어 갔는데 고령이 되어 나이가 많을 때까지 그 땅의 식물을 먹고 그 땅에 발을 딛고 살았지만 그 땅의 사상과 마음을 전혀 섞지 않고 살았습니다. 왜냐면 다니엘 속에는 하나님의 신이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바벨론 나라에 많은 사람들이 포로 되어 갔지만 그중에 젊은 다니엘과 사드락과 메삭과 아벳느고 이 세 친구들은 신앙의 지조를 버리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특히 이 다니엘은 항상 포로 생활을 하면서도 옛날 온 가족과 함께 하나님께 제사 드리며 행복하게 살던 때를 그리워하면서 고향 하늘 쪽을 바라보며 하루에 세 번씩 “이 나라 이 민족을 해방시켜 달라”며 하나님 앞에 간절히 매달려 기도하였습니다. 그런데 많은 사람이 그 땅에서 태어나고 많은 사람이 그 땅에서 죽고 하는 와중에 다니엘은 언젠가 예레미아 성경을 읽다가 ‘이 백성이 70년만에 해방될 것이라’는 비밀을 깨닫고 깜짝 놀랍니다. 그래서 하나님 앞에 금식을 하며 자기 민족의 죄를 회개하는 중보 기도를 하는 도중에 다시 70이레의 완전한 해방의 비밀을 알게 됩니다. 그것이 다니엘서에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오늘 제가 여러분에게 가장 중요한 말씀 중의 하나를 들려 드리려고 하는데 여러분이 잘 들어야 됩니다. 지금 이 설교 방송을 외국에서도 직접 생방송으로 듣고 있고, 오늘 예배에 참여하고 계신 분들도 있습니다만 언제나 말씀을 잘 못 들으면 안 됩니다. 이 말씀을 바로 육성으로 듣는 분들과 기계를 통하여서 듣는 분들이 그 듣는 감이 많이 차이가 날 겁니다. 그래서 잘 들어야 되고 말씀에 집중을 해야 됩니다.

 

오늘 본문에 보면 다니엘이 많은 사람을 만나기도 하고, 모든 것들을 대하기도 하지만, 특별히 다니엘을 찾아오신 분이 계십니다. 오늘 특별히 다니엘을 만나는 분이 누구인가를 잘 좀 보시기 바랍니다. 아마 이것을 모른다면 동인교회 교인이 아닙니다. 우리 동인교인들은 이 정도는 알아야 됩니다. 다니엘 7장 13절에 하늘 구름을 타고 오시는 분이 다니엘을 만났습니다. 그럼 그 분이 누군지 아시겠죠? 그리고 9장 25절에는 그가 기름 부음을 받은 왕이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벌써 우리 교인이라면 벌써 누군지 감을 잡고 알고 있을 겁니다. 오늘 본문에는 그분이 세마포 예복을 입고 다니엘을 만나러 왔습니다. 5절에는 다니엘을 만나러 온 분이 세마포 옷을 입었고 허리에는 우바스 정금 띠를 띠었다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리고 그 몸은 황옥같고 얼굴은 번개 빛 같고 그 눈은 횃불 같은 이런 분이 찾아왔습니다. 그리고 그 팔과 발은 빛난 놋과 같고 그 말소리는 많은 무리의 개선가를 외치는 소리와 같은 분이 다니엘을 만납니다.

 

오늘 여러분, 이분이 누구신지 아시죠? 또 물어봅니다. 이것은 더 잘 아실 겁니다. 계시록 1장 13절에서 15절로 보면, 금 촛대 사이에 인자 같은 이가 발에 끌리는 옷을 입고 나타나셨는데 오늘 다니엘서는 세마포 예복을 입었다고 했는데 역시 같은 분이죠? 그럼 이 분이 누군지를 잘 알겁니다. 그러고 요한계시록 1장 13절에는 가슴에 금띠를 띠었다고 그랬는데, 오늘 다니엘을 만나러 온 분도 역시 가슴에 우바스 정금 띠를 띠었습니다. 그럼 역시 다른 분이 아니고 같은 분입니다. 그리고 그 머리털 희기가 양털 같고 눈과 같다고 했고, 그의 눈은 불꽃 같다고 그랬습니다. 다니엘서에 나타난 그분의 얼굴은 불꽃같고 횃불 같다고 그랬습니다. 역시 같은 분입니다. 또한 계시록에는 “그 발은 풀무에 단련한 주석 같은 분”이라고 했는데 다니엘서는 그 팔과 발은 “빛나는 놋과 같다”고 했습니다. 같은 분입니까? 다른 분입니까? 역시 같은 분입니다. 그리고 그 말소리는 많은 무리의 소리 같다고 했는데 계시록에는 “많은 물소리와 폭포수와 우렁찬 소리가 나더라”고 했습니다. 그럼 확실히 같은 분입니다.

 

그럼 그분이 어디에서 누구를 만나느냐면 본문에 보면 힛데겔 강가에서 다니엘을 만납니다. 여러분, 이제 우리 시대가 오기 때문에, 말씀 시대가 오기 때문에 오늘 말씀을 잘 들어야 됩니다. 창세기 2장 14절에 보면 에덴동산의 강 이름 중에 힛데겔 강이 나옵니다. 에덴동산에 네 강이 나오는데 비손 강, 하윌라 강, 그다음에 힛데겔 강, 유브라데 강이 나오는데 본문에 나오는 힛데겔 강은 오늘날 티그리스 강이라고 합니다. 그러면 여러분, 좀 보십시요. 역사적으로 메대 바사가 이스라엘 백성을 치러 들어와서 어려움을 당할 때마다 항상 나와서 우는 강이 있는데 을래 강가에 가서 그 고향을 그리워하며 목놓아 그 백성들이 울었다고 했는데 그 강도 역시 또 여기 힛데겔 강이 아니었나 싶습니다.

 

그러면 왜 이런 옷을 입은 우람하신 분이 다니엘을 찾아왔을까요? 여러분, 꼭 우리도 이분이 나를 찾아와야 됩니다. 오늘날 예수 믿고 신앙생활 하는 여러분, 주님의 나라를 바라보는 여러분, 이분이 날 찾아와야 됩니다. 여러분, 다니엘이 이분을 찾으려면 못 만납니다. 안 됩니다. 그런데 다니엘이 있는 힛데겔 강가에 그분이 찾아와서 만나주시니 그분과 대화를 합니다. 그런데 다니엘이 이렇게 귀한 분을 만났다는 말입니다. 오늘 여러분, 우리도 그분을 만나야 됩니다. 우리나라도 내일이 되면 아마 대단할 겁니다. 우리나라 대통령이 취임하는데, 1115년 만에 여왕이 처음 나오기 때문에 내일이 더욱 의미가 있을 겁니다. 제가 이번주 집회만 없었으면 저도 초청장이 와 있기 때문에 갔을 겁니다. 그런데 그보다 더 큰 말씀 잔치가 지방에서 있기 때문에 제가 못 간다고 통보를 했습니다.

 

오늘 이 자리에 계신 여러분, 우리에게는 하나님의 신이 들어있는 ‘나마스테’지요? 우리 속에는 하나님의 신이 있습니다. 그런데 그 신이 있는 자에게 그 신이 찾아옵니다. 그래서 성령 받은 자에게 성령의 역사가 나타나고, 말씀을 가진 자에게 말씀의 역사가 나타나는 겁니다. 그러면 다니엘서 10장에 힛데겔 강가에 다니엘을 찾아오신 분이 과연 누구인지 여러분은 아셨죠? 그런데 다니엘을 만났던 이 분이 500년 후에 밧모섬에서 사도 요한을 만나러 왔습니다. 맞습니까? 그런데 하나님은 같은 시대에 얹어놓았습니다. 왜 그러십니까? 인간은 과거와 현재와 미래를 가지고 있지마는 몸이 없는 신은 항상 현재입니다. 항상 그 역사가 동일합니다. 여러분, 잘 들으십시요. 저는 우리 동인교회에 놀라운 역사가 일어나리라고 믿습니다. 그러면 인자 같은 그분이 그렇게 우람하고 놀라운 모습으로 나타나시는데 때론 왕의 모습으로, 제사장의 모습으로, 어떤 때는 심판주의 모습으로 나타나시는데 오늘은 옛 에덴동산이 있던 힛데겔 강가에 다니엘을 만나러 오셨는데 이는 급한 일이 있어서 그런 줄 압니다. 가장 중요한 일이기 때문에 그 힛데겔 강가에 다니엘을 만나러 오신 줄 압니다.

 

그런데 여기 14절과 15절에 보면 다니엘이 이분을 만났을 때 어떻게 됐는지를 보십시오. 그분이 너무나 큰 일을 가지고 오셨고 놀라운 일을 행하실 그분을 딱 만났더니 그의 입이 막혀버렸습니다. 그리고 14절에는 ‘내가 말일에 네 백성의 당할 일을 네게 깨닫게 하러 왔노라’고 했습니다. 여기 ‘말일’은 ‘끝날’입니다. 여러분, 만약에 다니엘 시대가 말일이라면 이 말씀이 누구에게 해당되냐면 다니엘에게 해당이 됩니다. 그러나 다니엘은 기록하기 위해서 찾아온 사람이지 역사에 해당되는 사람은 아니며, 바로 말일을 살아가고 있는 저와 여러분에게 해당되는 말씀이라는 겁니다. “아멘” 하십시요. 이것은 틀림없습니다.

 

그런데 여러분, 보십시오. 인자 같은 이가 왜 입술을 만집니까? 왜 입을 만져야 됩니까? 여기 10절에 보면 이분이 처음 다니엘의 몸을 만져준 분입니다. 그런데 여기 보면 그분이 꼭 두 번 만져줍니다. 그러니까 본장 10절에 보면 다니엘을 처음 만져주셨다고 나오는데 이 ‘만졌다’라고 하는 단어가 그냥 이렇게 더듬으며 만지는 것이 아니라 ‘치료하다’는 말입니다. 그래서 안수할 때에 그 능력이 나가면 바로 낫게 되는 겁니다. 그 ‘만지다’라는 단어가 원어로 ‘나가’라는 단어인데 우리말로 이해를 하면 아주 쉽습니다. ‘나가’ 그러면 병마가 나가고 귀신도 나가라는 겁니다. 그러니까 “나가” 그러면 “아, 이건 만져주는구나”라고 이해하면 됩니다. 여러분, 만져주기를 원합니까? 그분이 나를 만져주셔야 됩니다. 내가 그분에게 만져진 바가 되어야 되는데 그분이 먼저 우리의 입술을 만져 주셔야 합니다. 왜냐면 벙어리 입 가지고는 우리가 주의 일을 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이제 에덴동산 회복하는 역사 앞에는 그 입을 써야 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주님! 내 입은 둔하고 뻣뻣합니다. 내 입은 혈기가 있는 입술입니다. 내 입은 세상 소리를 잘하는 입입니다. 내 입은 거짓말을 잘하는 입입니다. 내 입을 만져주시옵소서”라고 하면서 그분이 만져주길 바래야 합니다. 그 입술로는 쉽게 엎어지게 되기 때문에 그 입을 치료해야 하는 겁니다. 그래서 주님이 그 입을 만져줍니다.

 

그런데 그분이 와서 내게 말하는데 “얼굴을 땅에 향하고 벙벙하였더니”라고 했습니다. 여기 ‘벙벙하였다’는 말은 말문이 막혀버려서 벙어리 같이 되었다는 말입니다. 그러면 그 입을 쓸 수 있습니까? 못 씁니다. 그래서 16절에 “인자와 같은 이가 있어 내 입술을 만지니라”라고 했습니다. 몸만 만져줘도 충분할 줄 알았는데, 왜 입술을 만져야 되느냐면 마지막 때에 에덴동산 회복하려고 하면 그 입을 써야 되기 때문입니다. 오늘 우리는 정말로 둔하고 뻣뻣한 입입니다. 오늘 우리가 정말로 성질을 잘 내는데 입이기에 실수를 잘 하게 됩니다. 세상 것에 대해서는 잘 지꺼리는 입입니다. 수틀리면 ‘내가 안했다’고 고집을 막 부리는 입입니다. 그래서 이 입 가지고는 생명을 살리지를 못하기 때문에, “주여, 오늘 내 입을 만져서 학자같이 말하게 하옵소서. 하나님이여 이제는 세계를 살리는 입술이 될 수 있도록 내 입을 만져 주시옵소서”라고 기도해야 하는 겁니다. 그래서 이사야 6장 5~7절 보면 하늘 보좌를 바라보고 “화로다, 화로다 내가 죽게 되었도다”라고 할 때에 천사중의 스랍 하나가 제단의 숯불을 가져와서 이사야의 입술을 쫙 불로 태워주시고 “이제 네 악이 사하였고, 네 죄가 사하여졌느니라”라고 합니다. 그래서 이사야 5장과 같이 개포도가 된 이 죄악 세상에 “누가 갈꼬?”라고 할 때에 “내가 여기 있나이다. 나를 보내소서”라고 하게 되는 겁니다.

 

여러분, 마지막 때는 제일 중요한 게 뭐냐면 입입니다. 죽이고 살리고 하는 것도 이 입이 합니다. 그래서 이사야 50장 4절에 보면 “주 여호와께서 학자의 혀를 내게 주사 나로 곤핍한 자로 어떻게 도와 줄 줄도 알게 하시고, 아침마다 나를 깨우치사 내가 하나님의 말씀을 깨달아 알게 하시고”라고 했습니다. 학자의 혀를 받아야 학자와 같이 말을 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퉁명스럽게 말하면서 실수를 많이 합니다. 남이야 상처가 되든지, 시험이 되든지 상관없이 내가 원하는대로 탁 내뱉어 버릴 때가 많습니다. 그런데 그런 입 가지고는 사람을 못 살립니다. 그 입 가지고는 세계에 못 갑니다. 그래서 이사야 입에 숯불을 태워주시듯이 오늘 힛데겔 강가에 다니엘을 찾아오셨던 그 분이 그 입에 안수를 하셔서 그 입을 고쳐주시면 우리 또한 마지막 역사를 할 수 있게 되는 겁니다.

 

출애굽기 4장 15~16절에 보면 모세에게 “너는 그에게 말해라 그 입에 말을 주라. 내가 네 입과 그의 입에 함께 하리라. 너는 그에게 하나님같이 되겠다”라고 했는데 그것이 뭐 때문에 그렇게 되냐면 그 말 때문에 그렇게 된다는 것입니다. 모세가 바로 왕과 대결하려면 말의 능력이 와야 됩니다. 그래서 출애굽기 7장1절에 보면 모세는 바로 왕 앞에 하나님 같이 되게 하였다고 그랬습니다. 오늘 여러분, 하나님의 능력의 역사가 여러분의 입술에 임하기를 축원합니다. 주님이 우리의 입을 만져줘야 됩니다. 고약한 입술을 안 고치면 안 됩니다. 내가 나 혼자 구원 받는다면 상관이 없습니다. 나 혼자 주님 나라에 간다면 상관이 없습니다. 그러나 오늘 여러분은 사명자입니다. 여러분은 생명을 살릴 사람들입니다. 그래서 내 입에서 살리는 소리가 나가야지 죽이는 소리가 나가면 안 됩니다.

 

여러분의 입에서는 살리는 소리가 나가고 영생의 말씀이 나가길 바랍니다. 대만 가서 집회했을 때, 어떤 분이 그러더라고요. ‘박목사님 입에서는 꿀이 확 쏟아져 나오기 때문에 많은 사람이 그 꿀을 빨아 먹으러 달려드니까 조심해야 된다’고 그래요. 좋은 사람도 꿀 빨러 오겠고, 나쁜 사람도 올 테니까 조심해야 된다고 저희 집사람에게 말했다고 해요. 아마 예언가와 같이 말을 한 것 같은데 제가 ‘별 소리를 다 한다’라고 했습니다만 아마 하나님의 말씀을 가지고 그렇게 말한 것 같아요. 그래서 우리가 달고 오묘한 여호와의 말씀은 꿀 송이 같다고 그러지요? 오늘 여기 보십시오. 그 분이 입을 만져주고, 입을 만져주었더니 다니엘이 정식으로 신과 대화가 됩니다. 이것이 1차 역사입니다.

 

그런데 여러분 아무리 입의 능력이 와 있고, 아무리 입의 권세가 와 있어도 몸이 말 안 들으면 안 됩니다. 그래서 몸을 만져줘야 됩니다. 이것이 오늘 우리에게 일어날 역사입니다, 이것이 우리에게 두 번째에 나타날 말씀입니다. 먼저 역사할 종은 그 신을 만나야 되고 그 다음에 그 분이 내 입을 만져줘야 됩니다. 그리고 이제 역사할 종은 그 분이 내 몸을 만져줘야 됩니다. 그 입을 만져줘야 말씀 권세가 나갑니다. 말씀의 능력이 나가고 살리는 말이 나갑니다. 그래서 “내 입술을 만져주시옵소서”라고 하는 겁니다. 여러분, 제가 이 말씀을 보면서 전에는 이렇게 깨닫지를 못했는데 이 말씀을 깨닫고 나니 얼마나 좋은지 ‘주일만 어서 와라 그러면 우리 사랑하는 성도들에게 막 줘야지’라고 생각하니까 주일이 너무 기다려지더라고요.

 

이 말씀을 듣고 계신 여러분, 성경 말씀은 나를 위해서 기록된 말씀입니다. 나에게 절대적으로 없어서는 안 될 말씀입니다. 그래서 이 시대에 필요한 종이 있고, 이 시대에 필요한 말씀이 있는데, 이 시대에 필요한 말씀을 들어야 될 종이 있고, 순종해야 될 종들이 나오게 되어 있습니다. “만났다, 입을 만졌다, 몸을 만졌다” 이 세 가지면 끝납니다. 오늘 다니엘서 10장의 내용이 그겁니다.

 

그런데 여기 1절 이하에 보면 큰 전쟁에 관한 일이 있을 때에 다니엘에게 찾아온 이 분이 이런 말을 하고 있습니다. 이 큰 전쟁은 언제냐면 14절에 “말일에 당할 일이라”고 했으니 다니엘 시대에 해당이 되는 것이 아니고 오늘 우리에게 해당되는 말씀입니다. 이것은 피할 길이 없습니다. 그런데 여러분, 내가 신앙생활을 그렇게 들락날락하고, 열심내지 않고 하면 되겠습니까? 한 번 생각해보십시오. 세상이 여기까지 와 있습니다.

 

여러분, 봐 보십시오. 입술의 능력이 있고, 학자의 혀를 주시고, 천하를 움직일 만한 그 권세가 내 입에 와 있어도 이 몸이 말을 안 들으면 소용이 없습니다. 이 몸이 역사하지 아니해주면 소용이 없습니다. 이해됩니까? 학자같이 말할 수 있어도, 입의 능력이 있어도, 몸이 쇠약하면 그 입을 쓰려고 할 때에 문제가 생깁니다. 그 입을 쓰려고 할 때에 몸이 쇠약하면 안 됩니다. 그래서 오늘 이 자리에 계신 여러분, 입술을 만져주셨던 그 분이 내 몸을 또 만져줘야 합니다. 왜냐면 그 몸에 새 힘이 와야 되기 때문입니다. 이해됩니까? 자, 그러기 때문에 입술에서 나오는 권세능력의 말씀에 뭐가 따라 줘야 되냐면 건강한 몸이 따라줘야 됩니다. 여러분, 이것이 다급합니다. 나에게 절대로 필요합니다. 나에게 빨려 와야 됩니다. 그렇지 않습니까? 그래서 오늘 다니엘서 말씀을 여러분과 저에게 주신 것입니다.

 

이것을 하늘에서 내게 준 긴급 편지로 받아들이십시오. 가장 급합니다. “주여! 지금 살릴 사람은 많은데 내 입술이 아직도 뻣뻣합니다. 만져주십시요”라고 기도해야 합니다. 내가 힘을 받아서 역사할테지만 몸이 따라주지 아니하면 병상에 누워서 입에 권세가 오면 뭐합니까? 그래서 몸을 만져줘야 하는 겁니다. 이것을 깨닫고 나니 어떻게 좋은지 정말로 “주여, 그렇군요”라면서 감사 기도를 하게 되었습니다. 여러분, 지금 시대가 급하지 않습니까? 세상의 지식과 과학은 고도로 발달하고 있는데 교계는 왜 이렇게 침체되어 가고 있습니까? 오늘 이 말씀은 살아서 나를 이끌어가고 있는데 오늘 우리 교인들은 왜 확 불이 붙지 못합니까? 라고 생각하니 그것이 “제 탓입니다”라는 고백을 하게 되더라고요. 오늘 여러분에게 이런 능력이 임하기를 바랍니다.

 

그래서 17절에 “내 몸에 힘이 없어졌고 호흡이 남지 아니하였사오니 내 주의 이 종이 어찌 능히 내 주로 더불어 말씀할 수 있으리이까”라고 했는데, 이는 하나님께서 입술을 만져줬지만 몸이 말을 안 듣는다고 하면서 다니엘이 지금 우리를 대신해서 말을 하고 있는 겁니다. 16절 하반절에 보면 “이상을 인하여 근심이 내게 더하므로 내가 힘이 없어졌나이다”라고 했는데 여기 ‘ 힘이 없다’ 라고 하는 말은 ‘기력이 전혀 없다’는 말입니다. 입은 똑똑이 처럼 됐는데 몸은 그렇게 못 됐다는 겁니다. 입술을 만져주셔서 입에는 힘을 주셨으나 내 몸엔 힘이 없어졌고, 호흡이 남지 아니하여 내가 죽을 지경까지 와있다는 겁니다. 여러분, 현재 우리가 지금 이대로 조금만 더 가면 퍽퍽 쓰러질 사람들 아닙니까? 그래서 이 구절이 오늘 내 구절이 되어야 한다는 겁니다. 우리가 말씀을 배우고, 듣고, 은혜를 받고 하지만 아직도 이 몸이 그 말씀대로 따라주지 못하고 있다는 겁니다. 그러니까 힘이 없이 약하면 안 되기 때문에 이제 내 몸을 만져주셔야 한다는 겁니다. 여기 “만져주다” 라는 말이 뭐냐면 “치료하다”라는 말로 원어로 “나가”라는 단어라고 했죠. 그런데 재미있게 우리 말로 원어와 연결해서 말하면 ‘치료해줄 테니까 일하러 나가’라고 하면 딱 맞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이렇게 해 주실줄로 믿습니다.

 

그러니까 오늘 입만 만지지 않고, 몸을 만지고 하면 그 다음에 새 힘 오게 되고, 그다음에 역사를 하게 된다는 것인데 이것이 다니엘 10장의 역사입니다. 몸이 따라줘야지 몸이 허약하면 안 되기 때문에 그 분이 몸을 만져서 새 힘이 오도록 하니 종일종야에 우리가 외칠 수가 있다는 말입니다. 그러니 이 말씀은 꼭 우리에게 필요하죠? 약한 자에게는 치료약이 필요하듯이 오늘 우리에게는 이 말씀이 필요합니다. 그래서 몸이 쇠하지 않고 건강해야 됩니다. 이 몸에 역사가 와야 이 몸에 붙어있는 입이 크게 제 기능을 발휘할 수 있다는 말입니다. 그러면 이 “만진다”라고 하는 이 자체가 역사가 오도록 한다는 말입니다. 열왕기상 19장 5절로 7절에 보면 엘리야가 갈멜산에서 바알의 선지자 450명을 단칼에 날려버리죠? 그러고 나니까 아합 왕과 이세벨이 엘리야를 죽이려 합니다. 그래서 도망을 갑니다. 여러분, 그냥 가는 것과 도망가는 것은 그 발걸음이 달라요. 그가 가다가 로뎀나무에 아래 쓰러져 버렸습니다. 그러면서 “내가 이제 오히려 죽는 것이 편하겠다”고 하는데 그것이 몸이 기진맥진 해 있다는 겁니다. 그 때 천사가 나타나서 떡과 물을 먹여줍니다. 그 때 어떻게 한 줄 아십니까? 어루만져 줍니다. 그런데 그 ‘만져준다’는 단어가 오늘 이 단어와 똑같습니다. 오늘 여러분은 엘리야처럼 구름 탈 사람들이 확실합니까? 주님이 우릴 만져주면 엘리야와 같이 구름 탄다니까요.

 

그래서 여기 열왕기상 19장에 엘리야를 만져줬듯이 오늘 다니엘의 입을 만져줬고 다니엘의 몸을 만져줬습니다. 그런데 그 천사가 엘리야를 어루만져 주면서 ‘떡과 물을 마시라’고 할 때 엘리야가 그걸 먹고 그냥 쓰러져서 또 못 일어납니다. 그래서 또 두 번째 와서 만져줍니다. 그러니 몇번 만졌습니까? 여기도 두 번째 입니다. 두 번째 만져주고 나니 그가 떡을 먹고 일어나서 저 호렙산 모세가 있던 그 산으로 거뜬히 40일 만에 올라가 버렸습니다. 하여튼 그 분이 날 만져줘야 될 것 같습니다. 그러나 아무나 날 만지면 안 되고 나를 만져줄 분은 그 분 밖에 없지요. 그래서 엘리야를 두 번째 만졌더니 그가 일어나서 시내산까지 가버렸는데 오늘 그 만짐이 엘리야를 먼저 만졌습니까? 다니엘을 먼저 만졌습니까? 엘리야입니다. 훨씬 먼저입니다. 그런데 엘리야를 들림 받게 하셨던 그 손이 다니엘을 만집니다. 그렇다면 예언적인 다니엘은 여러분이 되어야 됩니다. 제가 오늘 본문에 ‘만졌다’는 단어와 엘리야를 만진 단어를 맞춰보니까 같은 단어더라고요. 그것을 깨달으니 얼마나 좋고 얼마나 기쁜지 춤을 추며 막 돌아다니고 싶더라고요.

 

그래서 “은혜시대 때 와서 나를 만져주셨던 주님, 신원의 날에도 나를 만져주시옵소서. 다니엘을 두 번 만져주시고 엘리야를 두 번 만져주시던 주님, 나도 두 번 만져주면 내가 변론의 권세로 세계 사람을 살릴 수가 있습니다. 이 구절이 바로 내 구절입니다”라는 고백이 나오더라고요.

오늘 이 말씀에 은혜를 받지 못하면 13대로 내려가야 됩니다. 왜냐면 이것은 현재 다급한 문제요, 당면한 문제이며 나에게 관한 문제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신원의 날 종들에게 1차에 입술을 만져주셔서 말씀 역사하도록 하시고, 2차에 몸을 만져서 새 힘이 와야 됩니다. 그래서 이사야 40장 29절이 여기에 해당이 되는 것입니다. “피곤한 자에게는 능력을 주시며, 무능한 자에게는 힘을 더하시나니 소년이라도 자빠지고 장정이라도 넘어지되 오직 여호와를 앙망하는 자는 새 힘을 얻으리니 독수리의 날개치며 올라감 같을 것이며 달음질해도 피곤치 않고 걸어가도 곤비치 아니하리라”는 말씀의 역사가 되는 겁니다. 이것이 지금 다니엘에게 됐지요? 여기까지는 다니엘입니다. 쓰러졌던 다니엘에게 주님이 이렇게 만져줬더니 몸에 새 힘이 왔어요.

 

자, 여러분, 이 말씀을 들을 때에 여러분에게도 간절한 마음이 오지요? 그래서 “주여, 나를 만져주세요. 내 뻣뻣한 입을 만져주시면 지금도 살릴 수가 있습니다. 내 몸을 만져주시면 나는 피곤치 않겠습니다”라고 간구해야 합니다. 제가 이런 말을 한 적이 있습니다. 우리가 보통은 의사들이 말하는대로 잠을 6시간이나 7시간 이상은 자야 된다고 하지만 마지막 종은 수직 잠을 자야 한다고 했죠. 수직 잠은 서서 자는 잠이 아니라 단축시켜서 1시간을 자도 7시간 잔 것과 같이 되는 겁니다. 그 분이 만져주면 되는 겁니다. 6시간이나 7시간을 자야하는 잠을 압축을 하고 축소시켜서 한 두 시간만 자도 힘이 있는 그런 역사를 해 주셔야지 시간이 아깝지 않습니까? 제가 글을 써보니까 너무나 시간이 빨리 지나더라고요.

 

이제 오늘 18절과 19절은 강한 역사입니다. 이제 몸에 새 힘 받은 종이 일어납니다. 자 보세요. 너무 좋은 말씀 아닙니까? 사람의 모양 같은 그분이 나를 만져주니 강건케 하여 새 힘이 옵니다. 19절에 “은총을 크게 입은 사람이여 두려워하지 말라 평안하라 강건하라”고 했습니다. 여러분, 다니엘이 은총을 크게 입은 자입니다. 그런데 그가 죽었습니다. 우리는 정말로 은총을 크게 입어야 됩니다. 여기에 은총을 크게 입은 자가 무슨 말이냐면 “보배롭고 존귀한 자”라는 말입니다. 그 말씀이 이사야 43장에 나옵니다. “보배롭고 존귀한자여 이제 강건해져라”고 했습니다. 새 힘이 오라고 했는데 얼마나 좋습니까? 여기 ‘은총을 크게 입은 자’가 여러 가지 뜻이 있습니다. 여러분, 내가 가장 사랑하는 자는 남들이 미워하든지, 어떻게 하든지 나는 늘 그가 예쁘죠? 왜냐면 사랑하기 때문입니다. 사랑하는 자는 아름다워 보입니다.

 

여러분, 사랑하는 자가 꼴 보기 싫다고 하지 않습니다. 모든 것이 다 아름다워 보입니다. 그래서 “은총을 크게 입은 자여”라는 말은 “최고로 아름다운 자여, 보배롭고 존귀한 자여”라는 말인데 이제는 새 힘을 받아서 역사를 하시고 평안 하라는 겁니다. 여기 “너희에게 평안을 주겠다”고 했는데 이 날까지는 어려움이 왔고 괴로움이 왔지만 이제는 “평안 하라, 강건케 하라”는 겁니다. 새 힘이 왔다는 겁니다. 그래서 “소년이라도 자빠지고 장정이라도 넘어지되 이제는 여호와를 앙망하는 자는 새 힘을 얻으리니”라고 했습니다. 여기에 크게 은총을 입은 자에게 강건하라고 한 대로 그에게 새 힘이 왔습니다. 이것은 이사야40장 29절과 31절의 내용입니다.

 

그래서 여러분 보십시오. 여호수아는 이런 새 힘이 안 왔습니다. 그런데도 중천에 태양이 머무르게 하고 원수를 쳤습니다. 여호수아 1장5절에 보면은 “너의 평생에 너를 당할 자가 없이 해주겠다”고 했는데 그러면 여호수아가 강하다는 말입니까? 약하다는 말입니까? 약하기 때문에 강하게 해주겠다는 겁니다. ‘모세와 함께하셨던 거와 같이 너와 함께 있을 것이다. 내가 너를 떠나지 않으며, 내가 너를 절대 안 버리겠다’고 했습니다. 10장 8절에도 그렇습니다. 오늘 여러분, 하나님의 말씀 속에서 이런 말씀을 가지고 저와 여러분이 은혜 받으면서 내 마음이 뜨거워 지지 아니한다면 이것은 영적 치료가 있어야 됩니다. 이 말씀이 내 마음에 들어올 때 내 마음이 즐거워지지 않는다면 이것은 문제가 있기 때문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오늘 이 하나님의 말씀에서 우리에게 주시는 세 가지가 뭡니까? 이제 먼저 나를 만나러 찾아 와 주시고, 다음에 내 입을 만져주시고, 그 다음에 내 몸을 만져주셔서 새 힘을 받을 때 역사를 할 수 있다는 겁니다. 오늘 이 세단계의 역사가 여러분에게 임하기를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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