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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난의 풀무에서 부름을 입은 종

(이사야 48장 9-11절)

 

“내 이름을 위하여 내가 노하기를 더디 할 것이며 내 영예를 위하여 내가 참고 너를 멸절하지 아니하리라 보라 내가 너를 연단하였으나 은처럼 하지 아니하고 너를 고난의 풀무에서 택하였노라 내가 나를 위하며 내가 나를 위하여 이를 이룰 것이라 어찌 내 이름을 욕되게 하리요 내 영광을 다른 자에게 주지 아니하리라”

 

선민이라고 하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우리보다 나은 것이 하나도 없습니다. 맨 먼저 아브라함을 부를 때에도 우상 섬기는 집에서 불렀습니다. 그리고 그 아들 이삭과 야곱을 통해서 열두 아들을 얻었는데 이 백성을 하나님께서 선민이라고 하지마는 다른 이방 나라 백성들보다 나은 것이 하나도 없습니다. 본 장 4절에 보면, “너의 목의 힘줄은 무쇠요 네 마음은 놋이라”고 했습니다. 목의 힘줄이 무쇠고 마음은 놋이라고 했다면 매우 완악하다는 것입니다. 이런 고집통을 선민으로 삼고 애굽이라고 하는 시련장에 보내서 사백 년 동안 고난을 받게 하고, 모세라고 하는 인도자를 통해 애굽에서 이끌어내어 사십 년간 광야에서 훈련을 받게 합니다. 그리고 그들을 가나안 땅에 들어가게 했는데도 이들이 거기서 불순종하였습니다.

 

오늘 이 말씀을 여러분 들으실 때에 과연 이 말씀이 이스라엘 백성에게 하신 말씀인가를 생각해 보십시오. 이 말씀은 예언입니다. 그러니까 곧 오늘 우리 자신을 놓고 한 말씀이라고 봐야 되겠지요? 오늘 우리 또한 예수를 믿고 하나님의 백성이 되었으나 얼마나 내가 고집통인지 모르며, 얼마나 미련퉁이고 하나님의 뜻을 저버리는 자인지 모릅니다. 그래서 오늘 우리는 말씀을 통해 내 자신을 살피면서 하나님의 종의 바른 길을 갈수 있어야 하겠습니다. 이곳은 현대판 광야이기 때문에 이 광야 길에서 흠집을 내지 마시고 순종이라고 하는 명찰을 달고 그 땅에 잘 들어가기를 바랍니다.

 

오늘 본문에 보면 이스라엘 백성을 어머니 뱃속에서 태어날 때부터 패역한 자식이라 그랬습니다. 여러분, 태어날 때부터 부모의 죄의 유전인자를 이어 받아 태어났고 사망의 유전인자를 가지고 태어나기 때문에 태어나도 이미 죄인이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 태어날 때부터 패역된 백성이지마는 하나님이 선택한 백성은 당신의 영예를 위해서라도 참으시겠다고 하십니다. 그렇다면 선택하시고 실망하시는 하나님이 아니라 이미 아시고 우리를 택했다는 겁니다. 오늘 이 말씀을 듣는 여러분, “내가 오늘 이 자리에 앉아서 말씀을 들었구나”라고 하기보다 하나님이 말씀을 들을 수 있도록 나를 이 자리에 이끌어주었다는 것을 믿기 바랍니다. 나 하나가 무엇을 하겠다고 계획하는 그 이면에는 반드시 하나님의 역사가 있을 줄 압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뜻이 분명히 나타날 줄 압니다. 여기 ‘영예’라고 했는데 이 하나님의 영예가 뭡니까? 하나님의 찬양, 하나님의 찬미입니다. 다시 말해서 하나님의 빛나는 자랑을 위해서 참으신다고 하신 것입니다. 즉 이 말은 죽이지 않고 멸하지 않겠다는 약속을 한 것입니다.

 

여러분, 우리는 만 번 죽어도 아무 가치도 없는 존재입니다. 우리나라 옛날 시조에 보면 나라가 어지러울 때에 충신을 찾기가 어렵고 가정에 문제가 복잡할 때 효자를 찾기가 어렵다는 말이 있습니다. 그러니까 제가 늘 얘기하지요? 이성계가 나라를 찬탈을 하고 이제 그 다섯째 아들 방원이가 학자 정몽주를 불러놓고 ‘이제 다 지난 날은 잊어버리고 이 왕을 모시고 나라를 잘 다스리자’고 하면서 ‘이런들 어떠하리 저런들 어떠하리 만수산 칡넝쿨이 얽혀진들 어떠하리 나도 이같이 하여 만세수를 누리리라’고 할 때 정몽주가 하는 말이 ‘이 몸이 죽고 또 죽어 백골이 진토되어 넋이라도 있고 없고, 님 향한 일편 단심 변할 수가 있으라’고 하죠. 여기 넋은 영혼입니다.

 

그분이 예수를 믿지 않았기 때문에 넋이라 그랬지요? 넋이야 있건 없건 간에, 죽어 내세가 있건 없건 간에, 즉 내 영이 어떻게 되든 간에 내가 한 번 님을 향하여 바친 이 몸은 절대 변할 수가 없다는 그 말 한마디 남기고 목이 달아납니다. 오늘 이 자리에 계신 여러분, 일개 나라의 충신도 그랬는데 우리는 만왕의 왕 되신 예수 그리스도를 우리의 왕으로 모시고, 그분이 나의 구주요 인도자와 명령자요, 영생을 주시는 분으로 우리가 받아들이고 섬기는데 그만 못해서 되겠느냐는 말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오늘 이스라엘 백성을 놓고 한 말만 같지만 이것은 예언이기 때문에 오늘 못나터진 우리를 향하여 하신 말씀인 줄 알아야 됩니다. 여기에 보니까 이 말씀은 하나님 당신의 영예를 위해서, 당신이 찬양을 받기 위해서, 당신이 이렇게 영광을 얻기 위해서 잘라내지 않겠다는 말입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10절 상반절을 보면 하나님이 쓰시는 종은 편안히 두지를 않는 것을 보게 됩니다. 반드시 연단해서 쓰겠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이걸 꼭 아셔야 됩니다. 한 시대가 가고 또 한 시대가 오고, 시대가 바뀔 때에 그 한 시대를 맞길 선구자는 반드시 순탄치 않도록 어려움과 고난의 골짜기에 몰아붙입니다. 거기에서 깎이고, 다듬고, 훌치고, 시달리고 해서 끈질긴 육체를 만들어 하나님의 영광을 나타낸다는 것입니다. 어느 시대나 다 그랬습니다. 그냥 축복을 설렁설렁 주지 않습니다. 그 축복이 얼마나 귀하다는 것을 깨닫게 하고 줍니다. 그 축복이 얼마나 중요하다는 것을 본인이 느끼게 하고 줍니다. 그래서 하나님이 쓸 종은 반드시 연단해서 쓰겠다는 겁니다. 여기 ‘연단한다’는 말은 쇠붙이를 달구어서 두드리고 녹인다는 뜻이 있습니다.

 

자 그러면, 왜 녹입니까? 다른 물건을 만들기 위해서이며 또 불순물을 제거하기 위해서입니다. 그러나 다른 물건을 만들기 위해서 연단은 하였으나 “은처럼 하지 않았다”고 했습니다. 용광로에 넣어서 쇠를 녹일 때에 인정사정없이 녹이는데 하나님께서는 그렇게까지는 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불순물을 제거하도록 깨끗하게 하지만은 은처럼 하지 않는다고 했습니다. 하나님이 귀하게 쓰기 위해서 만들겠다는 겁니다. 은은 960도에 녹는다 그래요. 금은 더 도수를 가해야 녹일 수 있다고 하죠. 그래서 비행기 부속중에도 열이 아주 강하게 받는 데는 금이 들어간다고 합니다. 이렇게 금이나 구리나 철은 전부다 몇 천도나 몇 백도의 열을 가해야 녹는다고 합니다. 제가 광양 제철소 있는 곳에 집회를 갔다가 거기 목사님의 안내로 그 제철소에 좀 견학을 갔었는데 높은 직원의 안내를 받아서 가니까 차가 딱 준비되어 있어서 그 안에 차 타고 들어가니까 그 뜨거운 쇠 물이 어마어마한데 그것은 쇳물이지만 불물이에요. 그것을 부으니까 철판이 드르르륵 하고 나오는데 아주 두꺼운 철판이 끝에 나가니까 양철같이 얇아져요.

 

그리고 자동으로 둘둘 말리니까 철판이 둥그르게 돼서 나가는데, 쓰이는 철판에 따라 얇게도 나오고 두껍게도 나오게 하는데 자동차 철판은 조금 더 얇게 만드는데 전부 다 몇미리씩 잰대로 정확하게 나온다고 해요. 그런데 아주 눈 깜박할 사이에 얇게 만들어져 나가더라고요. 그 쇠를 녹이는 것을 보면 아주 인정사정 볼 것 없어요.

 

그런데 오늘 본문 말씀은 그렇게까지는 하지 않았다는 겁니다. 만약에 하나님께서 저와 여러분을 그렇게 한다면 우리는 살지 못합니다. 견뎌 내지를 못합니다. 그래서 은을 불속에서 녹이는 것처럼 너를 그렇게 잔인하게 하지는 않았다는 말입니다. 인정사정없이 막 녹이는 일 같이 그렇게 하지는 않는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쓰실 종을 연단시킬 때에 적당하게 적당하게 필요한 만큼 연단을 시켜 쓰신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사야 27장 8절에 보면, “주께서 백성을 적당하게 견책하사 쫓아내실 때에 동풍 부는 날에 폭풍으로 그들을 옮기셨다”고 했습니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을 바벨론으로 옮길 때도 적당하게 깨달아 알 수 있을 만큼 매를 들어서 했지 무작정 무자비하게는 않았다는 겁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오늘 우리도 역시 이렇게 하시겠다는 겁니다.

 

오늘 여러분, 말씀 듣는 귀가 반드시 열리기를 바랍니다. 제가 어제 한통의 전화를 받았는데 지난번 태국 치앙마이에서서 봤던 지도자들 8명이 한국에 왔는데 “목사님을 뵙고 싶다”고 한다고 그래요. 그래 제가 참 고맙다고 하면서 만나자고 했습니다. 여러분요, 어쨌든지 은혜를 받아야 되요. 은혜 받은 분들이 그들의 비행기 삯을 보내서 오게 되었다는 것인데 절대 그 돈을 보낸 사람들이 돈이 많은 사람들이 아니래요. 은혜를 받아 놓고 나니까 견딜 수가 없어서 여비를 보내서 복음을 전하는 나라에 가보라고 해서 오는데, 그 복음을 전한 나라가 미국이 아니라 한국이라는 말입니다.

 

그런데 그들에게 비행기 삯만 보낸 것 같아요. 저는 치앙마이 갈 때 직항로로 갔는데, 그 분들은 아마 돈 때문인지 치앙마이에서 방콕까지 여덟 시간 버스를 타고 가서 한국에 오는 싼 비행기를 타고 왔다고 해요. 여러분, 여덟명의 비행기 삯도 돈이 굉장히 많습니다. 한 사람이 부담하지는 않았겠죠. 은혜 받으니까 견딜 수 없으니까 돈을 보내서 한국에 초청해 복음을 전하는 한국을 둘러보라고 해서 여러 교회들을 둘러보는 것 같은데 거기 산족들이지만 지도자가 목사도 있습니다. 거기에 전도사들도 많이 왔는데 여자도 있고 남자도 있을 겁니다.

 

그 분들이 그 험난한 곳에서 복음을 전하는 자들이라고 하니까 마음이 뜨거워지지 않습니까? 그들에게 돈을 보내준 사람도 고맙지만은 그들이 한국에 오는 것이 소원이었는데 오게 되었다니 감사하죠. 그걸 누가 보냈는지는 모르겠어요. 여튼 그들이 산족들로 조상들 대대로 살아 내려왔기 때문에 고생한 민족들인데 아마 이번에 지구가 이렇게 넓은 줄 몰랐다고 할 겁니다. 얼마나 화려하고 아름다운 곳을 그들이 보고 가면 아마 목회를 더 잘할 겁니다. 그 산족들의 목회는 이루 말할 수가 없는 조건에서 복음을 전하는데 역경 가운데 전 하더라고요.

 

그들이 전부다 고난의 풀무에서 지도자를 뽑아놓으니까 생사를 걸고 복음 역사를 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저도 한 번 만나자고 그랬습니다. 구경 다 하고 나서 나도 만나면 좋은 식당에 가서 식사를 대접해주고 싶다고 그랬더니 좋아해요. 인간이 제일 좋은 3대 즐거움이 뭐냐면 눈이 즐거워야 됩니다. 그리고 ‘금강산도 식후경’이라는 말이 있듯이 입이 즐거워야 되요. 눈이 즐겁고 입이 즐거우려면 반드시 거기에 귀가 즐거워야 되요. 이 세 가지를 합쳐서 즐거우면 마음이 즐거워집니다. 아마 모르긴 해도 지금 굉장히 입이 벌어져 있을겁니다.

 

오늘 여기 고난의 풀무는 괴로움의 용광로입니다. 오늘 여러분, 하나님은 마지막에 고난의 시련의 용광로에 넣었다가 쓰시겠다는 거예요. 절대로 하나님이 나를 편안하게 두셨다가, 안일하게 두었다가 쓰시지 않는다는 겁니다. 이 괴로운 용광로에, 시련의 고난의 용광로에 들어갔을 때에 살고 싶은 마음이 없을 정도로 들어갑니다. 오늘 여러분, 고난의 용광로에 들어가 봤을 때는 정말로 ‘내가 오늘 자다가 주님 내 영혼 불러갔으면 좋겠다’는 소리가 나올겁니다. 이 소리도 듣지 않고, 저것도 보지 않고 주님의 괴로운 그 눈물의 용광로에, 고난의 용광로에, 시련의 용광로에 들어갈 때 얼마나 괴로운지 모릅니다.

 

아마 여러분중에도 한 두 번은 들어가 본 분들이 있을 겁니다. 왜 그러느냐? 좋은 물건을 만들기 위해서이기 때문입니다. 저는 시골에서 자라났기 때문에 5일장에 가면 낫이나 호미나 괭이를 만들기 위해 그 풀무로 벌겋게 달여서 막 두들기는 것을 봤습니다. 그래서 몽당 호미도 새 호미같이 만들어지고, 낫도 아주 잘 들도록 만들어지고, 도끼도 아주 잘 들게 만들어 집니다. 그것이 쇠가 달라지는 게 아니라 그 쇠를 막 두들깁니다. 막 두들겨서 좋은 물건이 나오도록 하는데 이렇게 풀무에 집어넣다가 또 두들깁니다. 그래서 그 연장이 좋은 연장이 됩니다. 뜨겁게 했다가 또 불에 집어넣다가 또 물에 집어넣다가 해서 하는데 그 기술이 참 좋은 기술인데 아직도 세계에서 독일을 못 따라간다고 그래요.

 

그래서 아마 우리 민집사님 아시겠습니다만 가위도 독일 가위가 최고고, 이발 도구들이 독일 것이 최고로 칩니다. 칼도 독일 것이 최고인데 제가 독일 갔을 때 가위를 하나 사왔습니다. 얼마나 좋은지 몰라요. 모든 쇠로 만든 것들은 독일제를 못 따라 갑니다. 일제를 또 못 따라간다고 그러죠? 그런데 일제보다 독일제가 더 좋다고 그래요. 모든 쇠가 그렇습니다. 뜨거운데 넣었다가 달궜다가 다시 물에 넣다가 달궜다가 해서 만드는데 그 기술이 세계적으로 독일이 유명하다고 그럽니다.

 

이와같이 오늘날 마지막 종에게도 뜨겁게 했다가 식혔다가 두들겼다가 해서 귀한 도구로 만들어 쓰시겠다는 겁니다. 오늘 여러분, 그래서 우리가 눈물이 날 때도 있고, 괴로움이 있을 때도 있는데 그 때에 하나님께서 그냥 쓰지 않고 그렇게 해서 쓰게 된다면 오늘 여러분, 고난의 풀무에 들어간 자가 있습니까? 괴로움을 당하는 자가 있습니까? 또 찬 물에 넣은 자가 있습니까? 이것은 하나님이 나를 쓰시려고 하시는 줄로 믿으시기를 바랍니다. 절대 그냥은 쓰지 않습니다. 반드시 그런 과정을 통과합니다.

 

여러분, 요셉은 정말로 아버지의 사랑을 받고 사는데, 어머니를 어릴 때 잃은 요셉은 형들에게 미움을 받고 저 인신매매 노예 시장에 가서 보디발 집에까지 팔려갔는데 그 보디발의 아내가 요셉을 고난의 풀무에 집어넣은 것입니다. 보디발의 아내가 요셉을 고난의 풀무에 집어 넣을 때 여러분, 우리는 모르긴해도 요셉을 그 때 만났으면 죽고 싶다는 소리를 날마다 했을 거예요. 내가 부모를 보지 못하고, 형제를 보지 못하고 애굽에 종노릇 하다가 이렇게 됐는데 이제 벗어날 수가 없어요. 보디발의 아내가 요셉을 잡아서 누명을 쓰는데 요사이 같이 트라이 내의나 백양 메리야스가 있었습니까? 그 때는 내의가 없어서 걸치면 겉옷이고 깔면 이불이 되고 하는 것이 옷입니다.

 

그런데 보디발 아내가 요셉의 옷을 잡으니 확 벗겨지니까 자기 남편 왔을 때에 그것 가지고 엉뚱한 누명을 씌우니 변명할 수 조차도 없이 애굽에서 제일 지독한 사형수들이 가는 지하 감옥에 딱 들어갔어요. 거기서 정말로 그 기간이 깁니다. 아마 요셉은 아마 여러분이 계셨다면 면회 갈 수 있었을까요? 정말로 우리 권사님들이나 집사님들은 면회 갔을 겁니다. 그리고 “천지가 다 요셉을 뒤집어 씌워도 나는 믿습니다. 나는 믿습니다”라고도 했을텐데 요셉에게는 면회 온 자도 하나도 없었습니다. 그리고 요셉은 변명할 여지가 없습니다. 그런데 거기에서 하나님이 총리대신을 만들었습니다. 그렇다면 요셉의 그 축복의 길은 누가 만들었느냐? 배후에서 하나님이 만들었지만 보디발의 아내를 통해서 고난의 풀무에 집어 넣어버렸기에 가능한 겁니다.

 

만약에 보디발의 아내가 그런 일을 저지르지 않았다면 요셉은 영원히 노예로써 한평생 끝났을 겁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정말로 죽고 싶을 때까지 들어가게 합니다. 기가 막힐 때까지 넣습니다. 이거는 누구에게 말도 할 수 없습니다. 이거는 말을 하면 더 창피합니다. 더 부끄럽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거기에 넣지 않았더라면, 거기에 들어가지 않았더라면, 요셉이 한탄하지 않았더라면, 요셉이 울부짖지 않았더라면 이후에 그런 영광의 자리가 없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로 말미암아 자기 민족과 자기 부모형제를 다 살리고 애굽 민족을 살리는 유명한 지도자가 되었는데 그것이 하루아침에 된 것이 아니라 고난의 풀무 속에서 일으켜 주셨다는 겁니다. 그거뿐입니까? 여러분, 이스라엘 민족의 영도자이신 모세를 생각해보십시오.

 

모세를 바로 왕궁의 왕자라는 명예를 떼어내 버리게 하고 작은 미디안 광야 호렙산 중턱에 넘나들며 왕자의 옷을 벗어버리고 사십년간 그 미디안 호렙산 등성이를 넘나들 때 모세의 눈물은 하나님만이 아시지 모를 겁니다. 여러분, 가난하다가 잘 살수는 있지만 잘 살다가 하루아침에 곤두박질하면 정말로 헤어나기 어렵습니다. 어제 왕자의 몸으로 그것도 하나님의 뜻을 이루려고 하면 그래도 좀 영광스럽게, 멋있게, 기분 나게 지도자의 길을 걸어가게 하는 것이 아니라 사람을 죽인 살인자의 죄명을 덮어쓰고 다리야 날 살리라고 부모 형제에게 의논할 시간도 없이 미디안 광야로 갔다가 거기에서 왕자의 옷을 다 벗어버리고, 왕자의 모든 직책을 다 벗어버리고, 야인생활, 목동생활을 할 때에 사십년은 아마 성경에 기록이 없어도 그 사십년은 눈물이요, 그 산 중턱에 안 흘린 곳이 없을 것이고, 한숨 쉬는 소리가 그 바위들은 다 보고 들었을 줄 압니다.

 

그런데 거기에 사십년 동안 하나님이 나몰라하고 버려뒀다가 모세나이 팔십이 되어 흰머리가 성성할 때, 그 용맹스런 용기도 잃어버리고 평생토록 이드로의 집에서 양치는 머슴노릇을 했기에 재산도 만들어 놓지도 못하고, ‘이 여생을 여기서 보내다가 내 인생을 마치는구나’라고 생각했을 겁니다. 그러나 어느 날 갑자기 하나님이 모세를 찾아와서 이스라엘 민족의 아버지로써, 출애굽의 기수로써 그 놀라운 역사를 일으키는데 이는 용광로라고 하는 그 곳에서 하나님의 사람을 다듬고 만들어 주신 줄로 압니다.

 

오늘 이 자리에 계신 여러분, 미디안 골짜기와 같은 곳에 처한 자가 있습니까? 아니 호렙산같은 곳을 넘나들면서 한숨을 쉬면서 날마다 괴로워 하는 자가 있습니까? 오늘 여러분은 그 괴로운 풀무에서, 고난의 풀무에서, 시련의 풀무에서, 눈물의 풀무에서 하나님이 건져주시는 날 영광의 서광이 비칠 줄로 믿습니다. 이사야 45장 7절에 보면 “하나님께서 나는 빛도 짓고, 어둠도 창조하는 평안도 짓고, 환란도 창조한다”고 그러면서 “나는 여호와로다. 이 모든 일을 행하시는 이라”고 했습니다. 환란을 당하시는 분, 괴로움을 당하시는 분, 하나님이 계시지 않습니까? 내 기도를 들어주지 않습니까? ‘하나님이 내가 울부짖어도 하나님이 왜 이렇습니까?’라고 하시는 분은 없습니까? 이 말씀을 보면 “내가 이렇게 환하게 빛도 내가 지었고, 캄캄한 어둠도 내가 지었다”고 했습니다.

 

영적으로 말하면 진리의 말씀도 내가 보내 주었고, 흑암도 내가 보내준 것이라는 겁니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시는 평안도 주님이 주신 것이고 하나님이 나에게 평안대신에 환란도 부딪친다면 이것도 하나님이 해주신 것이라는 겁니다. 이는 그 하나님께서 나를 통하여 영광 거두시겠다는 겁니다. ‘내가 고난의 풀무에서, 시련의 풀무에서 정말로 하나님이 나에게 평안을 주시고, 빛을 주셔서 평안하게도 하실 수 있는 분이 왜 내게 둠을 주셔서 환란을 주십니까?’라고 말할 수도 있지만 모든 것에 하나님께서 배후에 역사하고 계시다는 것을 믿기를 바랍니다.

 

이 자리에 계신 여러분, 성경은 윤리와 도덕책이 아닙니다. 하나님과 나와 관계를 맺고 있는 법전입니다. 나에게 행하시겠다고 하는 약속의 말씀입니다. 오늘 이 자리에 계신 여러분, 우리 성도 여러분, 방송을 듣는 여러분, 이 말씀이 내 말씀이요, 이 구절이 내 구절이 되면, 내가 눈물없이 주님을 맞이할 줄 알았는데 짓이겨 놓고, 짓밟아놓고 얼굴을 들 수가 없게 하고 맞이하게 하신다는 겁니다. 여러분, 사람이 돈을 가진 사람은 어깨가 상당히 힘이 있어요. 저는 신학교 다닐 때 점심값이 주머니에 두둑히 들어있는 신학생들은 얼굴만 보면 알아요. 눈이 반짝반짝 합니다.

 

그러나 점심시간에 술술술 빠져나가는 건 돈 없는 사람이에요. 오늘 말씀을 보면 시련과 고난의 골짜기에서 하나님이 나를 버려두시지 않겠다고 했습니다. 이는 분명히 11절에 보면 “하나님께서 자신의 영광을 위하여 하시겠다”고 했습니다. 여기 “고난의 풀무에서 우리를 택했다”고 그랬는데 이는 불러냈다는 겁니다. 여기서 시험을 했다는 이 말이며, 여기서 공부를 시켰다는 말입니다. 여러분, 고난의 공부를 좀 잘하시고, 시련의 공부를 잘 하시기 바랍니다.

 

오늘날 세상을 보면 얼마나 살벌하고 칼바람이 몰아치고 있으며, 무서운 유행 질병이 범람하고 악한자의 흉포가 횡행하는 때가 아닙니까? 그러나 오늘 여러분은 “정말로 하나님! 나를 이 시대에 써 주시옵소서”라고 간구하시기 바랍니다. 오늘 여러분, 아내를 통하여 나에게 오는 시련이 있습니까? 남편을 통하여 나에게 오는 시련이 있습니까? 자식을 통하여 오는 시련이 있습니까? 물질을 통하여 오는 시련이 있습니까? 건강을 통하여 오는 시련이 있습니까? 사명자가 확실하면 그것 때문에 영광이옵니다. 아파보지 아니하고는요, 그 아픈 자의 심령을 모릅니다. 배가 고파보지 않고는 가난한 자의 마음을 모릅니다.

 

그래서 주님은 이 땅에 오셔서 가장 가난한 자리에도 가 보신분입니다. 그분이 왕자의 몸으로 올수도 있습니다, 그가 장군의 아들로 낳을 수도 있습니다. 그런데 가장 비천한 목수의 아들로 왔습니다. 사람은 누구와 친하느냐에 따라서 그 대접이 다릅니다. 제가 늘 얘기하죠. 만약에 예수님께서 율법사들과 대제사장들, 서기관들 이런 사람들과 놀아났다면 주님의 대접이 달라집니다. 또 그런 사람을 제자로 뽑았다면은 주님의 환영이 달라집니다. 그런데 그저 바다에서 잔뼈가 굵은 자들을 찾았습니다. 여러분요 바다 사람들은 억셉니다. 다른 사람들과 또 다릅니다. 바닷가 사람이 왜 억세냐? 그 세파와 싸우면서 훈련이 된 사람들입니다.

 

이미 바다라는 곳은 죽음을 걸고 나가는 곳이기 때문에 보통생각과 보통마음을 가지지 않으면 바다에 삼킴을 당합니다. 파도와 싸워야 되죠, 생업과 싸워야 되죠. 그러기 때문에 바다라는 것은 안정처가 아니기 때문에 성경엔 세상을 고난의 바다에 비유하지 않습니까? 그 바다에서 잔뼈가 굵어진 베드로를 붙들어서 제자를 삼으니, 제자들이 전부다 잘난 자들이 어디에 있습니까? 가진 것이 어디에 있습니까? 주님 따라 다니면서 주님과 함께 배고파하고 주님과 함께 어려움도 겪습니다. 그래서 주님도 간고와 질고를 겪으시고 주님이 이 땅위에 가장 낮은 곳에서 많은 사람들이 겪을 것을 다 겪었습니다. 육을 가지고 오신 분이기에 모든 고난을 다 겪으신 분입니다.

 

여러분, 그는 하나님의 아들이기 때문에 그렇지 않다고요? 천만의 말씀입니다. 완전한 사람이기 때문에 배고픔도 알고 아픔도 알고 설움도 알고 자존심 상하는 것도 알고 너무나 원통한 것도 알고 주님은 다 체험하면서 “너희가 억울하고 원통하고 괴로움을 당하거든 나도 참았다. 너도 좀 참아라. 내가 이겼다. 너도 좀 이겨라”고 하면서 주님이 그 짧은 생애를 보내시며 그 훈련을 시키는 사도들에게 모든 사명을 맡기고 그가 승천할 때 그 대신 사명을 맡아서 유다와 사마리아 땅 끝까지 복음의 기수들이 되었는데 그들이 어부들이었습니다. 이제 우리는 그 형님들의 뒤를 받들어서 거두어 드리는 일을 하므로 완성을 해야 됩니다. 그래서 무소불능하신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그 종들을 포기하지 않겠다는 겁니다. 하나님의 뜻을 이루겠다는 거예요.

그래서 여기에 보니깐 “내가 나를 위하여 내가 나를 위하여 이를 이룰 것이라”고 했습니다. 반드시 하나님이 당신의 뜻을 이룰 때 시련 받고 연단 받은 종을 통하여 이룰 것이라는 겁니다. 여러분, 예수님을 대적하던 바울도, 우상 숭배하던 아브라함도 고난과 연단을 거쳐서 하나님의 일꾼으로 썼습니다. 저 들판의 밤잠을 자지 못하는 다윗도 이스라엘의 최고의 왕을 세울 때에 육신의 연단과 고난의 골짜기에 집어넣었다가 쓰셨습니다.

 

여러분, 먹고 사는데 걱정이 없는 아브라함을 불러다가 얼마나 시련을 겪게 합니까? 정말로 아브라함이 먹을 것이 없어 못 살게 되어 유리 방황하다가 애굽까지 내려가서 마누라까지 뺏겨버리지 않습니까? 이건 아브라함이 잊을 수 없는 일입니다. 그런데 그곳에서 아브라함에게 하나님이 나타나셔서 그 아내를 찾아주고 축복을 주지 않았습니까? 이러니 하나님의 뜻을 이룬 자 중에는 순탄한 길을 걸어간 사람이 아무도 없습니다.

 

오늘 이 자리에 계신 여러분, 오히려 너무 평안한 것도 부끄러울 때가 있습니다. 하나님이 나를 누구를 통해서든 잘 쑤셔놓고 짓밟고 하지만 배후에 계신 하나님의 역사가 있음을 믿기 바랍니다. 나무마다 성격이 다르듯이 사람들도 다 성격이 다르고요 자라나는 환경이 다르고 쓰일 목적이 다 다릅니다. 제가 이번에 치앙마이에 갔더니 그 목사님들이 ‘목사님, 저 나무 참 좋죠? 저게 티크목입니다’라고 해요. 그냥 나는 우리가 ‘티커장 티거장’ 하니깐, 그냥 이름이 티크장인가 했는데 티크목을 가지고 장을 만든게 티커장이에요. 저 나무는 절대 틀어지지 않는 것이 특색이고요 나무무늬가 좋습니다라고 해요. 그래서 나는 한국 가서 티거장을 좀 봐야 되겠다고 했는데 어쨌든 간에요 그 나무 처럼 틀어지는 나무가 아니고 곧은 나무, 단단한 나무, 썩지 않은 나무, 무늬가 좋은 나무는 일등 나무라고 하더라고요.

 

오늘 여러분, 어쨌든 간에 하나님 앞에 쓰임 받을 때 일등 종이 되기를 바랍니다. 일등종이되고 이름난 종이 되고 유명세를 탄 종은 그냥 순수하질 않습니다. 그냥 지나가질 않습니다. 그러나 그럴때마다 하나님이 이길 수 있도록 주가 붙들어 주실 것입니다. 여러분, 만약에 고난의 풀무는 나에게 없다고 한다면 ‘아, 나에게는 큰 역사가 없겠구나’라고 생각하면 되요. 그래서 하나님은 우리가 원하든 원치 않든, 싫어하든 좋아하든 이 길을 통과할 자에게는 통과하게하고 이 길을 통과하고 승리하게 할 자는 승리하게 합니다.

 

오늘 여러분, 분명히 여러분이 아무리 눈물을 빼고 괴롭고 가슴을 친다 할지라도 은처럼 하지 않겠다고 약속했으니 신실한 그 약속 붙들고 다시오마 약속하신 그분을 기다리며 사시기를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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