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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께서 12제자를 불러 세우신 목적

(마가복음 3장 13-19절)

 

“또 산에 오르사 자기의 원하는 자들을 부르시니 나아온지라 이에 열 둘을 세우셨으니 이는 자기와 함께 있게 하시고 또 보내사 전도도 하며 귀신을 내어 쫓는 권세도 있게 하려 하심이러라 이 열 둘을 세우셨으니 시몬에게는 베드로란 이름을 더하셨고 또 세베대의 아들 야고보와 야고보의 형제 요한이니 이 둘에게는 보아너게 곧 우뢰의 아들이란 이름을 더하셨으며 또 안드레와 빌립과 바돌로매와 마태와 도마와 알패오의 아들 야고보와 및 다대오와 가나안인 시몬이며 또 가룟 유다니 이는 예수를 판 자러라”

 

예수님께서는 자기가 꼭 원하는 제자를 택할 때에 얼마나 신중을 기했는지를 알 수가 있습니다. 누가복음 6장 12절에서 16절을 보면 예수님께서 갈릴리의 어느 산인지는 몰라도 그 산에 올라가셔서 밤이 맞도록 기도하신 후에 열두 제자를 불러 세웠다고 기록이 되어 있습니다. 자기가 원하는 제자를 세울 때에 밤이 맞도록 기도했다고 했습니다. 그런데 밤이 맞도록 기도를 하고 원하는 제자를 세울 때에 그 속에 가룟 유다도 들어 있습니다. 가룟 유다를 생각하면서 “이 제자를 분명히 열둘에 넣어야 되는데”라고 하면서 주님이 얼마나 신중을 기했을까요? 얼마나 고심이 있었을까요? 제가 바꾸어서 생각을 해봤습니다. 저 같으면 저 사람은 아닌데 라고 하면서 택한다고 하는 것은 대단히 힘든 일이었을 것입니다. 그래서 누가복음 6장에 보면 산에 가셔서 밤이 맞도록 기도하신 후에 열두 제자를 불러 세웠다고 했습니다.

 

오늘 본문에도 예수께서 산에 오르신 후에 자기가 원하는 제자를 불렀다고 그랬습니다. 오늘 여러분, 이것이 구약을 완성하는 역사에 들어와서 주님이 자기가 원하는 제자를 불러 세우시는데 이는 뿌리는 종을 세우는 중입니다. 그러나 오늘 여러분들은 정말로 거두어들이는 시대에 꼭 주님이 원하는 종이 되기를 축원합니다. 여기에 ‘불렀다’라고 하는 단어가 나오는데 이는 그 부른 자의 목적을 이루기 위해서 초대했다는 겁니다. ‘무엇 때문에 저 사람을 불렀는지? 꼭 그가 할 일이 무엇인가?’ 이 모든 것을 주님은 너무나 잘 알기 때문에 부른 것입니다. 제가 늘 얘기하지요? 만약에 예수님이 예루살렘 공회원들 중에서나 어떤 문벌가나 재벌가나 유명한 정치인들을 불러서 제자로 삼았더라면 예수님을 대접하는 수준이 달랐을 겁니다. 벌써 그 레벨이 다릅니다. 그런데 예수님이 부르실 때에 재벌가도 부르지 않고 부유층도 부르지 않고 유명한 정치인도 부르지 않고 유명한 종교인도 부르지 않습니다. 그런 사람은 한 사람도 없습니다.

 

모두 평범한 서민이며 생활전선에서 일하는 사람들중에 주님이 불러서 제자로 삼았습니다. 그중에서 제일 주님이 거론을 많이 한 제자가 누구냐 하면 갈릴리 어부들입니다. 갈릴리 어부들은 첫째로 베드로와 그 형제 안드레와 요한과 그의 형제 야고보가 갈릴리 어부출신입니다. 그다음에 유대계에서 제일 욕하고 세금쟁이로 아주 손가락질 받는 세리 마태를 주님은 제자로 불렀습니다. 그리고 독립운동가 열심당원 가나안 사람 시몬도 불렀습니다. 나머지 다섯 사람은 잘 알려지지는 않고, 부르기는 했습니다마는 갈릴리 지역 주민인 것은 틀림이 없습니다. 그중에 남쪽 사람이 한 사람이 있는데 가룟 유다입니다. 다 그 지역 주변에 사는 사람들을 제자로 불렀는데 남쪽 지역에서 제자 삼아 불러올린 사람은 가룟 유다 한 사람입니다. 그러니 얼마나 마음에 고심이 되었을까요? 그가 원하는 자 중에 가룟 유다를 넣었기 때문에 제가 이런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럼 주님은 원하는 자를 왜 열둘을 부른 것일까요? 그 이유는 구약의 역사는 신약의 모형입니다.

 

야곱의 열두 아들의 그 후손들이 애굽에서 약속의 땅인 가나안을 찾아갈 때에 광야라는 거친 들을 거쳐야 됩니다. 광야라고 하는 그 모래언덕을 넘어야 됩니다. 거기는 아름다운 도로도 없고 나무 그늘도 없고 쉬어갈 만한 장소도 없기에 하나님이 그들에게 구름을 덮지 않으면 그늘이 없고, 하나님이 그들에게 밤에 불을 비춰주지 아니하면 방향을 잃을 정도로 험난한 길을 거쳐서 약속의 땅을 밟게 됩니다. 그래서 야곱의 12아들에서 12지파가 나옵니다. 구약은 모형이기에 야곱의 열두 아들의 이스라엘은 모형적인 이스라엘입니다. 그러나 신약에 예수 그리스도의 열두 제자를 통하여 주님의 피를 가진 백성이 현대판 광야 길인 이 세상을 통과할 때 주님이 이모로 저모로 도와주시고 그 약속의 천국을 가도록 역사해 주시는데 이것이 오늘날 영적 이스라엘의 성취가 되는 것입니다.

 

그럼 오늘날에도 주님이 원하는 자를 선택하여 사용하시게 되는데 여러분이 분명히 주님이 원하는 종이 되기를 바랍니다. 왜 주님이 이렇게 원하는 종을 선택할까요? 여러분, 여기 보면 ‘자기가 원한다’고 되어 있어요. 주님이 원하는 자를 불렀다는 겁니다. 그런데 왜 하필이면 열둘이냐 라고 하는 것은 구약에 12지파가 고향을 가기 때문이라고 했습니다. 그러니까 구약 야곱의 열둘은 모형이고 신약의 열둘은 성취인 것입니다. 그리고 야곱의 열둘이 가는 가나안도 모형이고 신약의 12사도가 중심하여 가는 천국은 성취인 것입니다. 그래서 모형과 성취를 여러분이 잘 아셔야 됩니다.

 

제가 금요일 안동에서 모임이 있어서 갔다가 왔는데 제가 너무 피곤하고 힘들다고 했더니 “목사님은 운전하라고 안 합니다. 차가 앞에 갖다 댈 테니까 앉아서 갔다 오기만 하면 된다”고 해서 제가 이제 어른이 되고, 또 증경 노회장이 되다 보니까 안 갈 수가 없어서 갔다왔는데 가서 보니까 참 잘 왔다 싶어요. 그래서 이런저런 이야기중에요, 여러분, 예수님께서 제자를 뽑을 때에 지식층도 재벌가도 귀족도 안 뽑고, 아주 말도 잘 못하는 사람들, 그저 먹고살기에 급급한 사람들을 불러 모아서 제자로 뽑아서 같이 있고 싶어 했다고 하면서 이야기를 했습니다만 왜 주님이 그들과 같이 있어야 되느냐면 훈련 때문입니다. 제가 이번에 목사님들하고 이런저런 대화를 하고 있는데요 엊그제 페루에서 우리 한국에 유명한 사람들이 그곳서 헬기 타고 시찰하다가 산에서 충돌해서 죽은 사람들이 있지요? 한국에 최고의 엘리트인데 그중의 한 사람이 영동교회 교인이에요. 그래서 그 담임 목사가 “하, 목사님 나이 마흔아홉 살에 인천공항 화물터미널로 시신이 오는데 너무 안타까워 못 보겠더라”고 해요. 여러분, 마흔아홉살의 성도인데 대한민국에 최고의 엘리트인 그 시신이 비행기에서 화물터미널로 하얀 보자기에 뒤집어 씌워져서 내리는데 그 가족이 어떻겠으며 목사가 어떠했겠느냐고 하는데 제가 그 소리를 딱 들을 때, “주님, 우리 교회에 그런 유명한 인물 없어서 좋습니다”라고 마음속으로 그랬습니다. 기절할 것 같더라고 해요.

 

오늘 이 자리에 계신 여러분, 그래서 저희가 이런저런 얘기 하다가 ‘왜 주님이 좀 골치 아픈 것들 잡아가지 꼭 이 땅에 필요한 사람 잡아가느냐?’고 막 그러니까 골치 아픈 사람 잡아가면 거기도 골치 아프니까 아예 쓸 만한 사람 골라가서 그렇다고들 하면서 한 바탕 분위기를 바꿔보기도 했었습니다. 여러분, 그런 말을 들을 때는 가슴이 찢어지는 것 같더라고요. 내가 그랬다면 어떻게 되며 여러분의 식구가 그렇다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살아도 그만, 죽어도 그만, 있어도 그만, 없어도 그만인 사람이 아니라 외국까지 가서 그 아까운 일을 하고 있는 사람이 그랬으니 얼마나 기가 막힌 일입니까? 그만 생명이 끊어지는 것은 간단해요. 그런데 교회가 초상이 나고, 나라가 초상이 나고, 가정은 말할 것도 없고, 애가 둘이라는데 참으로 가슴 아프더라구요. 그러다가 어느 목사님이 “우리 교회의 장로님이 방송국을 하고 있는데”라고 하는 그 소리를 들을 때에 제 눈이 번쩍했습니다. 방송을 하루 하는데 1억씩 준답니다. 그런데 방송국에서 하는 얘기가 방송국을 운영하기 위해서 1억씩 받고 그 사람을 설교를 시키는데, 과연 한국 기독교인들이나 예수 안 믿는 사람이 저 소리를 듣고 감동 받아서 예수를 믿겠느냐면서 전혀 저것은 아니라고 하고 싶어도 그 돈 때문에 아주 골드 아워에 그 사람 설교를 내보낸다면서, 가슴이 미어진다 그래요. 지금 기독교 방송을 듣는 한국 교회가 얼마나 많은데 저렇게 알맹이 없는 설교를 저렇게 해 가지고 듣는 사람이 마음에 감화 감동을 받고 뒤집어지겠느냐는 겁니다. 그런데 그 가슴을 치면서 그 분 설교를 내보낸다는 거예요. 진짜 들어야 할 설교들이 있을 텐데 그걸 못하고 있다고 합니다.

 

여러분, 이젠 부흥 강사 시대도 지나갔고, 모여서 영적 훈련 한다고 막 혈안 칠 때도 지나갔고, 그룹 집회도 지나갔고, 다 지나가는데, 이제 어떻게 해야 될지 모르겠다고 할 때에 저는 “맞아! 그렇지”라고 하면서 가만히 눈을 감고 있었습니다. 이제는 기독교가 속수무책이다라고 하는데, 그 말을 하는 분이 학자요, 교수입니다. 제가 가만히 그 소리를 듣고는 거기에서는 제 얼굴 색깔이 제 색깔로 돌아왔어요. 이제 그 이유가 뭔지 알겁니다. 아까는 49살짜리가 정말로 우리나라 엘리트가 죽었다고 할 때에 나도 가슴 아픈데 당사자들은 얼마나 하겠는가?라는 생각을 하니 얼마나 가슴이 아픕니까? 그 담임 목사님이 말하는데 비행기가 12시 반인가 오더랍니다. 페루에서 오는데 조용히 비행기가 내리니까 하얀 것에 우리 한국 사람들 시신이 씌워져서 내리는데, 그 목사님은 자기 교회 시신이 오니까요 가슴이 철렁하더라면서 그런 소리를 들을 때는 숙연할 수밖에 없지 않습니까? 그러나 저는 우리 교회를 생각해 봤습니다. 그 목사님은 자기 교회에 변호사가 스물 몇 명이 있고, 판사가 몇 명이 있다고 하는데 저희 교회는 변호사 변자도 없고, 판사 판자도 없고, 정말로 나는 자랑할 거리가 없지만 말씀 만큼은 확신을 갖고 있지 않습니까?

 

지금 기독교 방송국에서 탄식을 하고 있고, 학자들이 탄식을 하면서, 이제 기독교에 뭐가 나와야 되는데 안 나온다는 거예요. 나올 수가 없다는 거예요. 그러나 저는 속으로 그랬습니다. “조금만 기다리면, 동쪽에서 빛이 올 것이다” 이것이 뭐냐면 어두워 질 때 반드시 말씀의 빛이 뜨거든요. 창세기를 보면 “태초에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시니라, 땅이 공허하며 흑암이 깊음 위에 있고”라고 하다가 빛이 나오더라구요. 창세기에 분명히 그랬습니다. 그래서 점점점 교계가 어두워지고, 흑암이 깊음 위에 있다고 했듯이, “세상이 혼돈 할 때에 정말로 영생의 빛이 나오겠구나!”라는 확신을 더욱 갖게 되었습니다. 이제 방송국 사장이 탄식을 한다는 소리를 들으니까요 ‘하! 그렇구나’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는데, 이젠 신학교 교수나 박사라고 해도 도저히 성도들에게 먹혀 들어가지 않고, 이걸 해봐도 안 되고, 저걸 해봐도 안 된다는 겁니다. 이제는 이런 시대도 지나가고, 저런 시대도 지나가고, 이제는 기독교에 어떤 이변이 일어나야 되는데, 칼빈도 25살 때에 혁명이 일어나서 종교 개혁이 일어났다면, 오늘날도 그런 사람이 하나 나와야 되는데, “이제 암담하다”는 소리를 들을 때에 저는 가만히 눈을 감고 있으면서 생각해 보니 우리 동인교회 성도들 중에 재벌가도 없고 유명한 정치인도 없고, 그저 평범한 서민들로 어렵고 힘들게 생활하는 사람들이 우리 동인교회에 와 있는 줄 알지만 말씀만은 소망이 넘치지 않습니까?

 

오늘 본문에 왜 주님이 원하는 자를 이렇게 열둘을 불렀느냐면 구약의 열둘이 신약에도 열둘이 나왔습니다만 오늘 여기에 보면 예수님이 원하는 자로 가룟유다까지 들어왔는데, 밤새도록 기도하는 중에 이 자를 안 택할 수는 없었던 것은 그가 예수를 파는데 결정적으로 한 번 써야 되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주님은 전혀 얼굴색 붉히지 아니하고, 그 원하는 자 중에 넣어서 3년 동안 훈련을 시켰습니다. 가룟유다도 전도에 나갔을까요 안 나갔을까요? 마태복음 10장 보면, 둘씩, 둘씩 보낼 때에 가룟 유다도 전도에 나간 것입니다. 이는 가룟유다의 종말까지는 전도에도 나갔다고 보게 되는데, 주님은 그 모든 것을 아시면서 딱 덮어 버리고 원하는 자 중에 넣어서 부르셨는데, 밤이 맞도록 기도할 때에 그 기도가 어떻겠는가 생각해 보십시오. 우리는 싫으면 싫은 것이 얼굴에 나타나고 좋으면 좋은 것이 얼굴에 금방 나타나지요? 그런데 주님은 그걸 다 덮어 가면서 열 두 제자를 뽑을 때에 여기에 넣어서 불렀습니다. 왜 이렇게 뽑아서 불렀냐면 영적 이스라엘을 세우기 위해섭니다. 구약 야곱의 열 두 지파는 육적 이스라엘입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 영적 이스라엘을 세워 현대판 광야 길을 걷게 하기 위해서 구약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유월절 피를 뿌려서 고향가게 했듯이, 주님 자신의 피를 가진 백성들을 현대판 광야 길을 거쳐 천국으로 인도하기 위하여, 그 성취하는 선구자 열둘을 뽑았던 것입니다.

 

이것이 뿌리는 역사입니다. 큰일을 앞에 놓고 스승과 제자가 3년 동안 이렇게 같은 솥에서 밥을 먹고 같이 움직이면서 왜 이렇게 합니까? 왜 이렇게 해야 됩니까? 이 분들은 성경 지식이 없습니다. 이 분들은 한 번도 설교해본 자도 아닙니다. 그러기 때문에 일정한 훈련과 일정한 교육을 시켜야하기에 미리 뽑아서 훈련을 시겼던 것입니다. 여러분, 봐보십시오. 무조건 성경을 바로 들어간다고 역사하는 것이 아니라 일정한 교육을 시키고 일정한 훈련을 시켜서 그 훈련 받고 교육 받은 몸에 성령이 들어가니 정말로 유명한 설교가 그 입에서 나오지 않았습니까? 그래서 성경 지식이 있는 바리새인 교인이나 율법 학자를 부르지 아니하고 성경 지식이 없는, 생활전선에서 밥 먹고 살기 어려워하며 그저 날마다 날마다 생활하는 그 사람들을 불러서 교육시키고 훈련시키고 했습니다. 그래서 이 분들은 재능도 없습니다. 말 잘하는 재주도 없습니다. 그러니까 훈련을 시킬 수밖에 없지요? 그래야 또 사상 교육이 됩니다. 절대 이 역사는 사상 교육이 안 들어가면 안 됩니다.

 

알아도 성경 안다고 되는 게 아닙니다. 만약에 성경 안다고 불렀다면 율법 학자가 부름을 입어야 되겠지요? 하나님 앞에 진실하고, 순종하기를 좋아하고, 아무리 서민이지만, 아무리 나타낼 것이 없지만 주님 앞에 부름을 입은 자가 복을 받고 선구자가 된다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오늘 이 자리에 계신 여러분도 내 자신을 살펴보십시오. “아, 나 같은 게, 나 같은 가정주부가, 나 같은 직장 직원이?”라고 생각하지 마시고 하나님이 쓰시기로 하셨다면 훈련 시켜서 그 그릇을 분명히 쓰신다는 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제가 늘 얘기하지요? 모세가 바로 왕궁에서 교육받고 40살이 되어서 힘이 넘치고 지식이 충만했을 때 모세를 썼다면 하나님의 영광이 가려집니다. 젊었기 때문에, 배웠기 때문에, 힘이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 모세를 미디안 광야에 보내서 40년 동안 늙혀 버렸습니다. 거기서 찌들었습니다. 거기서 울었습니다. 거기서 약한 자가 강하게 만들어졌습니다. 그 때 하나님이 모세를 불러 쓴 거와 같이 오늘 이 자리에 계신 여러분, 성경의 전문 지식과 상식이 없더라도 하나님께서 동인교회에 오게 하시고, 또 이 방송을 듣게 하고, 하나님이 훈련을 시키시는 줄 믿기를 바랍니다. 그러면 하나님께서 여러분의 몸을 빌려서, 여러분의 입을 빌려서 쓰실 때 하나님의 놀라운 역사가 날 줄로 믿습니다. 예수님은 그 모든 것을 다 압니다. 내가 이 세상 떠나고 나면 나의 모든 직책을 이들에게 맡겨야 하기에 3년 동안 훈련 시켰지요? 이는 같이 있게 하기 위해서입니다. 오늘 여러분, 마지막 추수 때의 신원의 종들도 주님이 같이 있게 하기 위해서 부른다면 영원히 같이 있게 됩니다. 이 분들은 헤어지지 않습니다. 우리는 이제 역사함으로 주님을 맞으면 영원히 주님과 같이 있어야 됩니다.

 

그리고 또 여기에 예수님이 두 번 째에 무슨 말씀을 하셨냐면 14절 하반 절에 보면 “보내어 전도를 하기 위함이다”라고 했습니다. 여기에 ‘보내어 전도’라고 하는 것은 알리는 거죠? 전하는 거지요? 그런데 이는 뿌리는 역사 아닙니까? 제가 이제 앞으로 세상 얼마 남지 않은 거 같아서 지난번에 한 설교라도 또 읽어가면서 중요한 부분은 재정립해서 알려드릴 거 같습니다. 오늘 여러분, 내일이 6.25가 난지 62주년이 되는 날입니다. 제가 오늘 6.25 설교를 딱 잡아 얹었다가 오후 예배 때에 하기로 하고 오전엔 “주님 앞에 부르심을 입은 자”에 대한 설교를 하게 되었습니다. 예수그리스도께서 왜 12제자를 부르신 목적이 뭔지, 열 셋도 되야 되고, 열 하나도 될수 있는데 왜 열둘일까? 구약은 모형이요, 신약은 성취이기 때문입니다. 모형이 가나안 간 것과 같이 실제 그대로 현실로 성취가 되는 천국 가는 길이 오늘 우리들의 길이라고 하는 성경의 핵심을 이제는 가르쳐 줘야 되겠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여러분, 이제 우리 동인교회의 목사가 됐다거나 장로가 됐다고, 권사가 됐다고만 하지 말고 동인교회 교인이라면 공 예배에 신경 쓰세요. 반드시 하나님이 부릅니다. 이제 가급적이면 공 예배 신경을 써야 되요.

 

우리가 여기에서 “주님, 저를 쓰렵니까? 저를 신원의 날에 쓰시렵니까?”라고 하면서, 우리가 훈련 받고, 하나님의 뜻을 따라 살아가려고 하면 주님이 왜 그들을 쓰시게 되었는지도 알아야 됩니다. 사도로 부르신 둘째 목적은 일정한 교육을 받은 다음에 그들을 전도자로 파송하기 위해서입니다. 왜냐면 주님이 없을 때에 당신의 일을 맡겨줘야 되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이것이 뭐냐면 알파 때의 역사인데, 예수그리스도를 모시고 훈련받은 그들이 주님이 십자가에서 죽으시고 부활하시고 승천하시어 이제 주님의 일을 대행해야 되기 때문에 훈련시키고 전도 파송을 합니다. 여기 예수께서 “보내사”라고 그랬습니다. ‘보낸다’는 것은 파송이거든요. 십자가 복음을 마음 밭에 뿌리기 위하여 보낸 겁니다. 사도행전 1장 8절 보면 “너희는 예루살렘 떠나지 말라.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유다와 사마리아 땅 끝까지 내 증인이 좀 되어 달라”는 부탁을 하시고 승천하시면서 “너희들이 본 그대로 다시 오겠다”고 하셨는데 이제 올 때가 꽉 찼습니다.

 

그래서 여기에서 먼저는 파송하기 위해서라고 했는데 뿌리기 위해서라는 겁니다. 이제는 우리가 거두기 위해서 나가야 됩니다. 오늘 이 자리에 계신 여러분, 현실의 환경이 여러분을 괴롭힌다고 해서 거기에 주눅 들지 마세요. 하나님께서 훈련시키는 과정은 절대 냉정합니다. 하나님이 훈련시킬 때 얼마나 냉정한가를 보십시오. 그저 정답게 찾아와서 순간 순간을 늘 위로하면 좋겠건만 훈련받을 때는 버린 것 같이 해버립니다. 그러나 하나님이 쓰실 때는 그 훈련받은 몸, 연단 받은 몸, 그저 쓰라림을 겪은 몸, 그 몸을 빌려 쓰시는 겁니다. 그래서 마태복음 10장 1절에서 12절 내용도 그렇지 않습니까? 예수님께서 열둘을 불러 더러운 귀신을 쫓아내게 하신다고 했습니다. 여러분, 더러운 신에 감동된 자가 많이 있습니다. 제가 어제 저녁에 한강변에 운동을 좀 하려고 나가보니까 아따 참 자전거 붐이더라고요.

 

그래서 제가 저희 집사람 보고 ‘우리도 자전거 있으면 좀 설치면 좋겠다’라고 얘기하면서 가는데 어떤 정다운 부부가 유모차에 아기를 가운데 앉히고 둘이서 끌고 가면서 인도로 못 가고 자전거 도로 가는데 한 20대 후반쯤의 애가 가면서 하는 소리는 차마 제가 강대상에서 못할 소리입니다. 우리 집사람 들었는지? 안 들었는지 모르지만 어찌나 더러운 욕을 해버리는지 그 부부가 어이가 없어하면서 “설마 우리가 그런 욕 당할 사람이 아니겠지?”하면서 뒤를 돌아보니까 아무도 없고 우리가 있거든요. 그러나 우리는 그 자전거 도로에 안 갔어요. 그런데 앞에 싹 가더니 또 돌아보고 욕을 바가지로 퍼 붓고 가요. 그러니까 이 사람들이 아무 소리도 못하고 너무나 어이가 없어 하더라고요. 나 같으면 한 소리 했을 겁니다. 그런 소리를 듣고 가만히 있다니 그들은 아마 예수님 다음 가는 분들 같아요. 젊은 사람이 그렇게 몹쓸 더러운 욕을 하는데 그 소리를 듣더니 그냥 그 위 인도로 아주 길이 나빠도 올라가더라고요. 참으로 험상 궂은소리를 하고 가더라고요. 그 똑같은 소리를 두번하며 가는데 분명히 나이를 보니까 젊은 자예요

 

여러분, 어제부로 우리나라 국민이 5천만을 돌파했지요? 아따, 참으로 딸은 잘 낳아야겠더라고요. 뉴스 보니까 5천 번째 낳은 자식이 딸이더라고요. 여러분 봤지요? 그런데 그 딸이 행운이라고 하지만은 살아가면서 이 축복을 받아야 행운이지요. 5천번째라는 것을 찍어가지고 간호사가 딱 매주더라고요. 그 5천 번째도 그 숫자에 안 들어간 5천 번도 또 있을 겁니다. 그게 다 광고가 붙어서 5천 번이지 광고 안 붙은 5천명도 많이 있어요. 이제 갓 태어난 애들까지 5천만의 대한민국 국민이 하나님의 신이 건드리지 아니하면 마귀의 악령의 신이 건드립니다. 그러기 때문에 항상 제가 얘기하지요? 사자나 짐승들은 천년 전이나 이천년 전이나 오천년 전의 똑같은데 사람은 더욱 악해지는 것이 뭐냐면, 주님 오실 때는 악해지고 사나워진다고 했습니다. 주님이 오실 때는 사람을 믿을 수 없다는 것이 성경에 기록되어 있지 않습니까? 자기가 자기 단속을 하지 않으면 안 될 그런 시대가 와 있습니다.

 

그래서 첫째로 예수님 때처럼 마지막 때도 귀신 쫓아내는 일이 있는데 귀신 들려도 표가 나는 사람도 있지만 멀쩡한 사람도 귀신 들린 사람 많습니다. 주님이 그 귀신 병균을 뽑아내도록 제자들에게 파송하면서 모든 병을 고치도록 합니다. 이는 어떤 영적인 병이든 육적인 병이든 모든 병을 치료해주신다는 것이고, 그리고 모든 약한 것도 고친다고 했습니다. 그러면 사도들이 가면서 모든 병든 것도 고치고, 모든 약한 것도 고친다고 했는데 이 ‘약한 것’이 뭔가 싶어서 찾아봤더니 ‘마음이 연약하고, 우유부단한 사람, 여자같이 약한 자’인데 그런 성격도 바꿔놓겠다는 겁니다. 그러면서 “천국 복음을 전파하라”고 그랬습니다. 마태복은 24장 보면 뭐라 그랬습니까? “이 천국복음이 온 세상에 전파되리니 그제야 끝이 오리라”고 했습니다. 그리고 마태복음 10장에 마지막에는 “너희는 이방인의 길로도 가지 말고 사마리아인에게도 가지 말고 차라리 이스라엘의 잃어버린 양에게로 가라”고 했습니다. 그러니까 여러분, 마태복음 10장은 은혜시대 역사가 아닙니다.

 

사도행전 1장은 은혜시대 역사라면 마태보음 10장은 은혜시대가 아니요. 왜? 이방의 길로 가지 말고, 사마리아의 길로도 가지 말고, 차라리 이스라엘 백성의 잃어버린 양을 찾아가라고 했을까요? 그래서 유명한 학자의 주석을 찾아봤습니다. 도대체 이 분들은 뭐라고 말했는가하고 봤더니 그것은 복음 역사를 하기 위해 연습하는 과정이라고 해놨더라고요. 그래서 제가 “주여, 무슨 연습을 그리 합니까?”라고 했어요. 오늘 여러분, 저는 그 방송국 이름은 여러분에게 말 안하겠습니다. 그 방송국 사장이 하는 말이 “한국교회에서 내 놓으라 하는 사람의 설교 한 번 들어보세요. 알맹이가 없어요. 우리 방송국에서 돈 1억을 받기 때문에 설교를 시키는데 알맹이가 없다”고 하면서 “이래가지고 우리가 하나님 앞에 탄식하는 소리를 들을 수밖에 없다”고 하는 소리를 듣고, 제가 속으로 그 방송 사장님이 조금만 기다려 보시면 “당신네 방송을 내가 빌려 쓰던가, 안 빌려 쓰면 동인 방송이 나올 때까지 기다려 보십시오. 알맹이가 이제 나갈 겁니다”라고 제가 마음속으로 그랬다니까요.

 

오늘 여러분, “천국 복음을 전파하면서 천국이 가까이 왔다”고 하라고 했는데, 이미 예수님 오실 때부터 천국이 가까이 왔다고 하는 전파의 역사가 지금 이어져가고 있지 않습니까? 그리고 여러분, 뭐라고 그랬습니까? “사마리아나 이방의 길도 가지 말고 차라리 잃어버린 양을 찾아가라”고 하면서 “전대 주머니에 동이나 은이나 금이나 아무 돈도 가지지 말고, 두벌 옷도 가지지 말고 가라”고 했습니다. 제가 이번에 태국의 산족들에게 갔다 왔지만 아무리 산족들이라도 어린애들에게 돈 줘 봐요. 그 아무것도 모르는 그들도 사탕하고 돈 주면 돈만 뺐지 사탕 안 받아요. 세상이 그리 되어버렸습니다. 이번에 제가 목요일 날 태국서 온 한 목사님과 일행을 만났는데 그들이 한국 음식을 잘 못 먹을 줄 알았어요. 그런데 참 잘 잡수어요. 점심엔 식당에 가서 많은 음식을 먹었는데 또 교회에 와서 우리 교회 이해선 권사보고 또 해봐라 그랬더니 이걸 다 잘 먹어요.

 

오늘 이 자리에 계신 여러분, 전도하러 갈 때 왜 돈 한 푼, 금이나 은이나 동이나 두 벌 옷도 가지지 말고 가라고 합니까? 전도 한 번 가보십시오. 외국 가보십시오. 참으로 못사는 나라 가면 주고 싶은 마음이 절로 생기지요? 그런데 주님은 가져가지 말라고 하거든요. 이거는 뭐냐면 마지막 신원의 날에, 천국복음을 전하러 갈 때는 이젠 오지에 가는 게 아니라 이미 예수 믿는 사람을 찾아서 천국을 소개시키러 가야 된다는 것이고, 가서 천국 복음을 전하면 반드시 너를 섬길 자가 있을 것이다라는 겁니다. 그리고 “만약에 받아들이지 않으면 먼지까지 털어버려라”고 했습니다. 여러분, 이 말은 은혜 시대 말로는 맞지 않습니다. 그런데 그게 무슨 마지막 주님 복음 전파하기 위해서 미리 연습을 시키는 과정이라고 주석을 해 놨으니 말도 안되는 소리입니다.

 

그래서 여기 “보낸다”다고 했는데 원래 “사도”라는 말은 “보냄을 받는다”는 단어로 “아포스토로스”라는 말입니다. 그래서 십자가 복음을 전하러 보내는 겁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 16절에 보면 “내가 너희를 보내는 것이 양을 이리 가운데 보냄과 같다”고 하지 않았습니까? 이는 얼마나 주님 오실 때가 악한 세상인지 양을 이리 가운데에 보낸것 같다고 했는데 이리의 밥이 양이라는 말입니다. 양은 보호 색깔도 없고, 양은 싸울 무기도 없습니다. 그 양은 반드시 목자가 없으면 죽습니다. 그런데 양을 이리 가운데 보낸다는 말은 죽을 확률이 낮다? 높다? 높다는 말 아닙니까? 그래서 “너희는 뱀같이 지혜롭고 비둘기 같이 순결하라”고 했는데, 뱀은 사계절을 압니다. 아무리 추워도 봄이 되면 나오고 아무리 따뜻해도 가을되면 들어갑니다. 계절을 압니다. 그리고 뱀은 첫째 사계절을 알고 둘째, 하루의 천기를 압니다. 해가 쨍쨍 떠도 비 올것 같으면 구멍에서 안 나와요. 그럼 이것이 뭐냐면 우리는 주님 오실 때를 알라, 계절을 알라는 말입니다.

 

하루의 천기를 보듯이 오늘 시대의 흐름을 잘 보라는 겁니다. 그리고 뱀은 귀가 없습니다. 귀가 없는데도 잘 듣습니다. 그 이유는 어디에 있냐면 귀가 없어서 들을 수가 없지만은 혀 바닥이 음향을 탐지합니다. 그래서 낼름 낼름 하고 혀를 내미는 것은 음향을 탐지해서 소리를 듣는 겁니다. 혀가 음향에 민감해서 계속해서 혀를 내미는데 뱀은 혓바닥으로 소리를 듣는다는 겁니다. 이해가 됩니까? 그리고 뱀은 절대로 창자가 곧습니다. 그래서 절대로 뱀은 뒤로 못 나갑니다. 이것은 “너희가 진리를 위해서 살되 절대 죽어도 진리의 길에서 뒤로 물러 가지 말라”는 말이거든요. 뱀의 창자가 곧습니다. 이 뱀이 지구상에 2700종이 있습니다. 그리고 북극과 남극에만 살지 않고, 어디든지 서식하고 있는 것이 뱀입니다. 그리고 뱀은 음식을 탐하지 않습니다. 주 1회만 먹어도 뱀은 충분히 살고요 때에 따라서는 월 1회를 먹어도 살 수 있습니다.

 

그러면 이것은 “너희도 어디 가서 과식하지 말고 뱀같이 지혜로우라”는 말인데 우리 사람이 장수하는 데는 과식을 안해야 된다고 하죠. 우리는 배의 70%만 담으면 되는데 120%를 담는답니다. 그러면 120%를 담아 축 처져서 음식을 소화시키는데, ‘헤헤헥’ 그러는데 이게 위에 부담을 준다고 합니다. 그래서 뱀은 주 1회 먹어도 살고 월1회를 먹어도 산답니다. 그래서 ‘뱀 같이 지혜로워라’고 했고 그 다음에 비둘기같이 순결하라고 했는데 비둘기는 온유합니다. 그래서 “너희가 아무리 거친 소리를 들어도 온유하게, 사랑스럽게 평화롭게 대해 주도록하라”는 겁니다. 그것이 마태복음 10장 아닙니까? 오늘 이 자리에 계신 여러분 정말로 우리는 예수님 앞에 이제 다가오는 신원의 날, 즉 추수하는 날에 주님의 마음에 드는 자를 뽑을 때에 여러분과 제가 뽑히시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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