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07.18 08:03
과연 나는 깨어 있는 신앙인인가?
(마태복음 24장 37-43절)
“노아의 때와 같이 인자의 임함도 그러하리라 홍수 전에 노아가 방주에 들어가던 날까지 사람들이 먹고 마시고 장가들고 시집가고 있으면서 홍수가 나서 저희를 다 멸하기까지 깨닫지 못하였으니 인자의 임함도 이와 같으리라 그때에 두 사람이 밭에 있으매 하나는 데려감을 당하고 하나는 버려둠을 당할 것이요 두 여자가 매를 갈고 있으매 하나는 데려감을 당하고 하나는 버려둠을 당할 것이니라 그러므로 깨어 있으라 어느 날에 너희 주가 임할는지 너희가 알지 못함이니라 너희도 아는 바니 만일 집 주인이 도적이 어느 경점에 올 줄을 알았더면 깨어 있어 그 집을 뚫지 못하게 하였으리라”
오늘 본문 말씀에 나오는 ‘깨어 있으라’는 단어가 신약 성경에 스물여섯 번이나 들어 있습니다. 지난주에는 저희 집에 천사가 한 분 왔다가 갔습니다. 이 소리에 여러분의 눈이 동그래지네요? 그 천사는 하늘의 천사가 아니라 사람 천사가 왔다 갔다는 소리입니다. 저에게 뭔가 전달하러 어느분이 왔었다는 겁니다.
여러분, 제가 오늘 본문 설교를 하게 된 동기를 말하겠습니다. 저를 찾아오신 그분은 미국의 맨해튼에 계시는 박사 분이신데 저에게 와서 이런저런 얘기를 하다가 딱 그분이 하는 얘기가 “목사님, 내년에 세계적인 공황이 올 것 같습니다”라면서 자기는 불안해서 한국 나왔다는 겁니다. 그래서 제가 놀라서면 “집사님, 자세하게 설명을 좀 듣고 싶습니다”라고 그랬더니 미국 경제가 싹 바닥이 나버렸답니다. 미국 경제가 바닥이 나버렸기 때문에 모든 미국 사람의 돈을 다 추적하여 거둬 들이려 한답니다. 그래서 자기도 걸렸다는 거예요. 지금 맨해튼이라면 뉴욕에서 최고의 금융가입니다. 그분은 돈이 얼마나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목사님, 만약에 미국이 내년을 못 버티면 나라가 쓰러집니다. 대공황이 옵니다”라고 하더라고요.
여러분, 미국에 대공황이 오면 유럽은 바로 넘어갑니다. 아시아는 말할 것도 없습니다. 한국 역시 풍전등화와 같습니다. 그런데 지금 미국이 모든 재산을 신고하게끔 되어 있답니다. 그리고 한 가지 놀라운 것은 “미국과 한국이 조인이 되어서 만약에 미국 사람이 한국에 투자된 것이나 세계에 투자된 것도 아주 세밀하게 찾아내는데 지금 너무너무 위급한 상황에 와 있습니다”라고 해요. 그래서 제가 “어이쿠, 내가 생각했던 것보다 시대가 더욱 성큼 다가오는구나”라고 생각하면서 “집사님, 요한계시록 6장에 보면 반드시 주님 오시기 전에 엄청난 경제공황이 온다고 했습니다. 그리고 다니엘서 보면 미국이라는 나라가 날개가 빠지는 날이 옵니다”라고 했더니, “목사님, 그런 것이 성경에 있습니까?”라면서 대화를 했습니다.
그리고 저에게 책자 하나가 왔는데 안식교회의 글인데 교수가 쓴 겁니다. 그런 것들을 보면서 ‘주님 오실 때가 인간이 생각했던 것보다 성큼 다가와 있구나’라고 생각을 하게 되었는데, 그래서 오늘 설교 제목이 ‘과연 나는 깨어 있는 신앙인인가?’입니다. 그래서 제가 ‘과연 나는’이라고 했는데 여러분도 ‘과연 나’라는 제목 안에 여러분의 이름을 넣어봐 보십시오. 그 ‘나’라고 하는 그 속의 이름이 망약 저에게 해당된다면 ‘과연 박성목은 깨어 있는 신앙인인가?’인데 여러분도 ‘나’라는 곳에 여러분의 이름에 한번 넣어보십시오. 그래서 ‘나는 목사라고 하면서 과연 깨어 있는 신앙 상태인가?’, 과연 정말로 ‘우리 동인교회가 깨어 있는 교회가 되었는가?’라는 생각을 해 볼 수가 있어야 되겠습니다.
그분을 몇 년 전에 만났을 때에는 “때가 차매” 책 한글판을 드렸드니 “잘 읽어보겠습니다”라고 했는데, 이번에 와서는 “나는 한국 언어가 조금 어눌해서 이해하기가 조금 어려운 데가 있습니다”라고 해서, “아, 그래요? 이번엔 영어로 번역한 것이 있습니다”라고 하면서 ‘때가차매’ 영문판을 딱 주었더니 “목사님, 제목이 너무 좋습니다. 우리 한국말 때가 차매보다 영어 제목이 훨씬 가슴에 와 닿습니다”라고 하더라고요. 그러면서 “이걸 어떻게 영어로 번역이 됐습니까? 외국서 번역이 되어서 한국에 오는 책은 많은데 한국서 영어로 번역해서 외국에 가는 것은 아주 드문 일입니다. 진짜 마음먹고 읽어보겠습니다” 라고 하더라고요.
오늘 이 자리에 계신 여러분이나 오늘 이 방송을 듣고 계시는 여러분, 지금 미국이 까딱 잘못하여 세계공황이 온다고 하면서 그런 불안감 때문에 그분이 한국에 왔다고 하는 소리를 들으니까 제가 현기증이 날 것 같드라고요. 그래서 유월절 연대를 한번 다시 짚어보면서 “때가 이렇게 성큼 다가온 줄 나는 미처 생각지 못했다”는 고백을 하면서, 제가 그분을 보내고 나서 책상머리에 앉아 마태복음 24장에 주님 오실 때에 대한 내용을 한번 되짚어보았습니다.
그래서 오늘 본문에 나오는 ‘깨라’고 하는 말씀이 신약 성경에 스물여섯 번이나 들어 있는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러면 왜 이렇게 “깨어라”는 소리를 많이 했을까? 여러분, 죽어서 천당 가는 데는 “깨어 있으라”는 소리를 한 번도 안 했습니다. 오늘 이 자리에 계신 여러분, 정말로 정말로 좀 진지하게 이 말씀을 들어주시기를 바랍니다.
오늘 본문을 보면 “노아 때와 같이 인자의 임함도 그러리라”고 했는데 제가 쓴 책중에 “노아의 때와 롯의 때, 그리고 인자의 때”라는 책이 나왔습니다마는 그 “노아 때와 같다”라고 하는 것은 ‘노아의 날들과 같이 세상 끝 날에도 그렇게 될 것이다’라는 것입니다. 그러면 노아의 날들이 어떻게 되어 있느냐면 사람들이 심판 직전까지도 평화로운 삶을 살았고, 장가가고 시집가고 다 했습니다. 집안일도 다 했습니다. 그러나 갑자기 환난이 터져버렸단 말입니다. 마지막에도 그렇게 될 것이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오늘 본문에 “노아 때와 같다”고 했는데 원어는 “노아의 헤메라이스”로 “노아의 날들”인데, 즉 노아의 그 날들과 같이 마지막 우리의 날들도 또 그렇게 될 것이라는 것입니다.
이것은 창세기 6장과 7장의 내용을 뽑아서 말씀하시는 겁니다. 자, 그럼 하나님께서 옛날에 심판은 물로 심판했지만 마지막 때 심판은 불로 심판한다고 하셨는데, 심판 방법만 다르지 내용은 같습니다. 그래서 “말씀으로 불사르기 위해서 간수한바 되었다”고 했는데 말씀대로 홍수로 심판 받았고, 마지막에도 말씀대로 불 심판을 할 것이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노아 때가 어떻게 됐느냐면 “온 땅이 하나님 앞에 폐괴했다” 그랬습니다. 폐괴 했다는 말은 우리 한국 성경에는요 “황폐할 폐, 부패할 폐, 더럽게 될 폐”이고 ‘괴’ 자도 마찬가지로 ‘무너질 괴, 어그러질 괴’로 원어에는 ‘사하트’라는 단어를 썼는데, 그 뜻은 ‘황폐했다. 더럽게 됐다’는 이런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 땅이 폐괴하였다는 것은 ‘땅의 인간의 모든 행위가 폐괴함이었더라’라고 했는데 인간들이 다 그렇게 되었다는 겁니다.
그러면 왜 예수님께서 노아의 때를 거론하셨는가 이 말입니다. 이것은 어떤 선지자나, 어떤 사도가 한 말이 아니고 예수님이 직접 한 말입니다. 그러니 창조주 성자 하나님께서 직접 한 말을 우리가 등한히 듣고 있어야 되겠습니까. 오늘 여러분, 잘 우리 생각해 보십시다. 우리가 이 내용을 모르는 사람이 없습니다. 누가복음 17장 26절에서 27절에 보면 “노아가 방주에 들어가던 날까지 사람들이 먹고 마시고 장가들고 시집가더니 홍수가 나서 저희를 멸하였다” 그랬습니다. 자, 물 심판 당시 일상생활은 변함이 없습니다. 오늘 여러분, 일상생활이 변함이 없는데 갑자기 일어났다 이 말입니다. 오늘날도 역시 일상생활이 변함이 없습니다. 어제 제가 결혼식에 참여하고 식당에 갔더니, 요새 결혼식은 이제 갈비탕만 가지고는 안되겠드라고요. 식사를 하면서 생각해보니 우리 애들 시집보내고 장가보낼 때는 인삼갈비탕이 좋았는데 이제는 그런 것 가지고는 얼굴도 내밀지 못할 정도가 되었드라고요. 아무리 해도 그 식사가 7~8만원은 되는 것 같아요.
오늘 여러분 생각해 보십시오. 이제는 사람들이 최고도로 먹고, 마시고, 장가들고, 시집가고 하면서 일상생활이 똑같이 합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심판을 노아에게 알려줬습니다. 그러면 여러분, 보십시오. 왜 예수님께서 심판 날에 두 종류가 있다고 했을까요? 사도들이 그런 소리를 안했습니다. 왜 예수님만 노아 때를 놓고 두 종류의 사람을 말했을까요? 여러분 보세요. 노아 당시에도 양 잡아 제사 드리는 사람이 많았습니다. 그 때는 사람들이 700살, 800살이상 살았는데 므두셀라는 900살을 넘게 살았습니다. 그렇게 장수하는 사람들이 집안에 얼마나 많았겠습니까? 형제가 얼마나 많았겠습니까? 조카가 얼마나 많았겠습니까? 그런데 그렇게 양을 잡아 제사를 드렸지만 딱 한가지 방주를 지어서 그속에 들어가라고 했는데 방부에 들어가지 않았다는 딱 그 한가지 조건에 걸려서 안 들어간자는 다 몰살시켜 버렸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백성중에 두 종류입니다. 양잡아 제사 드려도 방주에 들어간 자와 못 들어간 자 두 종류란 말입니다. 이해되십니까? 왜 그러면 방주에 안 들어갑니까? 무슨 이유로 못 들어갑니까? 베드로후서 2장에 보면 노아 외에 일곱 식구가 막 소리를 질러도 아무도 귀담아 듣지 않았다고 했습니다. 왜 안 들었을까요? 오늘 여러분, 우리가 또한 지금 그 현실 앞에 서 있습니다. 제가 본문 말씀을 자세히 보니까 오늘 이 말씀은 사도들이 한 말도 아니고, 선지자가 한 말도 아닙니다. 예수님께서 창세기 6장과 7장의 말씀을 가져 와서 반드시 그이렇게 된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럼 왜 두 종류이냐 이 말입니다. 아무리 양을 잡아 제사를 드렸더라도 방주법 하나 때문에 다 몰살시켰다면 마지막 때도 그렇게 하겠다는 거 아닙니까? 그래서 본문을 자세히 보면 들일을 하는 자와 집안 일을 하는 자가 나옵니다. 얼마나 세밀하게 말씀하고 계신지 모릅니다. 여러분, 봐보십시오. 두 종류가 있다고 말할 때에 본문에 보면 “멸하기까지 못 깨달았다”고 했는데, 즉 죽기까지 그들이 못 깨달았기 때문에 이런 현상이 나오는데 “두 사람이 밭에 있으매”라고 했는데 여기 “사람”은 남성 명사입니다. 그러면 두 남자입니다. 그러면 바깥 일 하는 남자나 집안 일하는 여자나 그렇다는 겁니다. 이해됩니까? 그러니까 40절과 41절은 같은 내용입니다. 여기 두 남자라고 하는 것은 바깥 들에서 일하는 남자 중에 둘을 나눴는데 꼭 두 사람만 일합니까? 이는 두 종류라는 말입니다. 나눠지는 것을 말하니까 두남자라고 했습니다. 그리고 매를 가는 여자가 나오는데 이는 집안일이지요? 그 여자도 둘로 나눠진다는 말입니다. 그럼 오늘 여러분, 보십시오. 십자가의 피를 가지고 예배드리고 제사 드리는 사람도 예언의 말씀의 법, 즉 신원의 말씀을 듣지 않으면 두 가지로 나눠지는 겁니다.
오늘 제가 가방을 들고 저의 집 사람과 예배드리러 교회에 오는데 저희 집 윗 층 사람들은 두 내외가 애들을 데리고 벌써 교회에 갔다가 와요. 오늘 볼 일 좀 바쁜 모양이에요. 여러분, 그냥 교회만 갔다 오는 게 안식일을 지킨 게 아닙니다. 오늘 바쁘기 때문에 새벽같이 일찍이 교회에 갔다 와서 다른 볼일보러 간다면 주님이 보실 때 어떻게 평가를 하실까요? 오늘 이 자리에 계신 여러분, 분명 심판 날에 두 종류라고 주님이 직접 말했습니다. 그래서 천국에 관한 말씀을 예수님께서 하시면서 전부 다 두 종류를 다 말씀 하셨습니다. 충성하는 것도 충성하는 자와 충성 안하는 자로 두 종류를 말했고, 깨어 준비한 자와 준비 안하는 자도 나누고, 좋은 물고기와 나쁜 물고기도 나누고, 전부 다 주님이 말씀하시길 두 부류의 교인이 있다는 것을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니 우리가 그냥 넘길 수 있습니까? 그냥 이대로 신경도 쓰지 않고, 생각도 안 해보고 지나갈 수가 있겠습니까? 은혜시대 때는 이런 것이 필요 없습니다. 왜냐면 예수 십자가 피만 확실히 붙들면 됩니다.
그러나 마지막엔 확실히 두 종류가 있는데 하나는 데려간다고 하고 하나는 버려둔다고 그랬다면 데려가는 종류가 여러분이 되기를 바랍니다. 저와 여러분이 되어야 되요. 그러면 데려가는 자가 누구냐면 깨어있는 자라 그랬습니다. 여러분, 그저 교회 갔다 오는 것, 그냥 헌금 얼마 할까? 하는 생각 같은 것 하지 마십시오. 무엇보다 오늘 우리는 남는 자가 되느냐?는 것에 관심이 있어야 합니다. 주님이 오셔서 나를 데려갈 때까지 남아있다가 들림 받는 자가 되느냐? 그렇지 못하는 자가 되느냐?가 중요합니다. 분명히 40절과 41절은 같은 내용인데 심판날에 남는 자와 그렇지 못한 자로 두 종류로 나눠집니다. 40절은 우리 남자들이 생각할 구절로 둘로 나눠진다는 것이고, 41절은 여자들도 두 종류로 나눠진다고 했습니다. 여러분, 어떻겠습니까? 내가 이 속에 있다? 없다? 반드시 들어 있습니다. 내가 오늘 교회 갔다 온 것이 문제가 아니라, 헌금한 것이 문제가 아니라, 내가 오늘 여기 두 종류 중에 하나라면 희비가 여기서 벌어집니다.
왜 “깨어 있으라”고 했을까? 제가 조금 전에도 말씀드렸습니다만 영혼 구원은 깨어있으라는 말이 필요가 없습니다. 그런 구절이 한 구절도 없습니다. 자, 보십시오. “주 예수를 믿으라. 그리하면 너와 네 집이 구원을 얻으리라”에는 “깨어있으라”는 말 없다니까요. 한 편 강도가 십자가상에 못 박혔을 때 “당신의 나라 임할 때 나를 기억해 달라” 했을 때도 “깨어있으라” 그 말 안했습니다. “오늘 너와 내가 낙원에 있으리라”고 했습니다. 로마서 10장 9절에 보면 “마음으로 믿어 의에 이르고 입으로 시인하여 구원을 얻으리라”고 했고, 13절에 “누구든지 주의 이름을 부르는 자는 구원을 얻으리라”고 하고 끝납니다. “깨어있으라”는 말이 없다니까요. “준비하라”는 말도 없습니다.
창세기 6장 9절에 보면 “노아는 의인이요, 당세에 완전한 사람이라. 하나님과 동행한 사람이라”고 했습니다. 하나님은 주무시는 분이 아닙니다. 노아는 깨어 있는 사람이에요. 깨어 있는 사람에게 하나님께서 비밀을 알려줬습니다. 무슨 비밀입니까? 심판의 비밀이 아니라 구원의 비밀입니다. 심판하겠다는 말씀은 노아에게는 해당이 안 되었습니다. 그래서 “너는 방주를 이렇게 지으라”고 지시 했습니다. 그래서 베드로전서 3장 20절에 보면 “노아가 방주를 예비하는 날 동안 오래참고 계셨다”고 했습니다. 뭐 하는 날 동안이이라고 했냐면 방주 예비할 동안입니다. 즉 노아가 방주를 예비하는 동안에 참고 있었단 말입니다.
오늘날 우리가 정말로 환란 날, 불 심판 날에 그 생명을 구원할 수 있는 방주를 말씀으로 예비하는 동안에 하나님이 참고 계시겠다는 겁니다. 방주를 다 짓기까지 오랫동안 하나님이 참고 있었다고 했습니다. 그래서 순종치 아니한 자들은 다 멸했다고 하시고 거기에서 구원받은 자를 말하면서 “겨우”라는 단어를 넣어서 “구원 얻은 자가 몇 명뿐이니 겨우 여덟명이라”고 했습니다. 인류의 멸망중에 겨우 여덟 명이라 그랬습니다. 그건 왜 여덟 명이냐? 방주에 대해서 일한 자, 방주에 관심을 가지고 거기에 대하여 수고한 여덟 식구 외에 다 멸망을 받았다는 겁니다. 그리고 또 한 가지는 심판이 온다고 했습니다.
여러분, 보십시오. 베드로후서 2장을 보면 이들이 나가서 의를 외쳤다고 했는데 그 말씀의 의미는 첫째로 “방주를 준비해야 된다”는 것이고, 둘째는 “입으로 외친 자가 살아 남았다”는 겁니다. 여러분, 이렇습니다. 만약에 내 시대에, 내가 살고 있는 시대에 심판 날이 오지 아니하면 관계없습니다. 왜냐면 천지창조 이후에 노아 때에 엄청난 심판이 있었고 그동안에는 없었습니다. 그동안은 심판과 관계없었습니다. 내 종말에 내가 구원받는 것으로 끝나지 인류가 심판받는 역사는 없었습니다. 그런데 이제는 전체에게 그 심판이 들어온다는 말입니다. 여러분, 우리가 사는 이 시대에 우리는 누구 때와 같이 되느냐? “노아 때와 같이 된다. 깨어있으라”라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깨어 있는 자가 되기를 바랍니다.
저는 지난 주간을 보내면서 어찌나 이 구절이 내게 강하게 부딛혔는지 모릅니다. 그래서 내가 혹시 등한히 할까봐 천사가 나를 찾아오지 않았나 하는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여러분, 제가 천사라고 했다고 하늘의 천사라고 하지 마십시오. 말씀을 전달자가 와도 천사입니다. 누가복음에 보면 세례요한의 제자가 예수님에게 왔다고 할 때에 그 세례요한의 사람을 원어에는 세례요한의 천사가 예수께 왔다고 그랬습니다. 그건 사람이지 천사가 아니지요? 그런데 성경에는 천사라는 ‘엥겔로스’라는 단어가 나오는데 ‘전달자’입니다. 우리는 천사라고 말하면 하늘의 천사만 알고 있지 사람 천사는 모르고 있습니다. 그래서 “천사가 범죄 했다”고 그러니까 하늘의 천사가 범죄한 줄 알지, 사람 천사가 범죄한 줄 모르고 있다 이 말이에요. 하늘의 몸이 없는 천사는 범죄 할 수가 없습니다.
제가 그래서 지난주에 그 박사분에게서 미국이 되어지는 소리를 듣고는 “아, 내가 빨리 쓰고 있는 책을 써야 되겠고, 어서 우리 교인들을 중심해서라도 정신을 좀 차리도록 집회를 해야 되겠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제가 오늘 오후 예배 때는 성경을 잘못 해석하면 안 된다는 걸 말씀드릴까 하는데 그런 모르겠습니다. 여러분, 오전 예배드리고 덜렁덜렁 가지 마십시오. 이 오후예배가 왜 나에게 중요한가, 예배시간에 왜 내가 정신을 차리고 들어야 하는가? 생각하면서 이제는 달라야 됩니다.
오늘 여러분, 히브리서 11장 7절에 보면 “노아는 믿음으로 보지 못하는 일에 경고하심을 받아 경외함으로 방주를 예비하여 그 집을 구했다”고 했습니다. 여러분, 내 집에 이런 자 하나가 있어야 되요. 내 집을 구원할 자가 돼야 되요. 그래서 노아가 자기 집을 구원했다 그랬습니다. 그런데 여러분, 봐보십시오. 노아가 자기 집을 구원하고 하나님 앞에 인정받습니다. 하나님 앞에 인정을 받고, 의의 후사가 되었다는 단어가 거기에 들었습니다. 의의 후사가 뭡니까? 진리의 상속자가 되었다는 겁니다. 그래서 제2의 조상이 된 겁니다. 노아가 왜 제2의 조상입니까? 제1의 조상은 아담이라면 아담의 후손들이 다 죽어버리고, 씨 하나를 남겼는데 무슨 씨를 남겼습니까? 노아라는 씨를 남겼습니다. 그 노아라고 하는 씨가 의의 후사가 됐다는 말입니다. 그러면 마지막때도 노아 때와 같다고 하면 모든 인류가 싹 다 점멸했을 때 역시 우리는 다 아담의 후손이요 노아의 후손이지만, 우리가 보지 못하고 우리가 느끼지 못한 일에 말씀을 가지고 준비했기 때문에 여러분도 제3의 의의 후사가 된다는 것입니다. 이게 성경이에요. 왜 그렇습니까? 노아가 의의 후사가 된 것은 인류가 모두 죽어버렸으니까 된 것입니다. 마지막 때도 마찬가지로 준비하고 깨어있지 아니하면 다 죽는 날이 오는데, 그때에 살아남은 자는 의의 후사가 됩니다.
여러분, “깨어있으라”는 말과 본장 44절에 “준비하고 있으라”는 말과 같은 뜻입니다. 단어는 달라도 같은 말입니다. 그냥 깨어있으라는 그 자체가 준비하라고 하는 단어와 일맥상통합니다. 즉 단어는 달라도 내용이, 뜻이 일맥상통 한다는 말입니다. 이해가 되십니까? 그래서 “날 사랑하는 주인이 언제 올지 모르니깐 깨어서 준비하라” 그랬습니다. 얼마나 주님이 자상하게 부탁했습니까? 이것은 두려운 말씀이 아니라 나를 사랑했기 때문에 이 말씀을 해 주신거에요. 왜? 그래서 비유를 말했습니다. 주님이 도둑같이 온다는 말은 시간적 개념에서 비유지, 주님이 도둑질하러 오는 것이 아니란 말이에요. 그래서 도둑같이 오시겠다는 말을 성경 여러 군데서 얘기했습니다. 깨있어야 도둑이 언제 오는지 알지 깨어있지 않으면 모른다는 거예요. 그런데 데살로니가전서 5장 2절에 보면은 주의 날이 밤에 도적 같이 이를 줄을 너희 자신이 자세히 앎이라 그랬습니다.
성경에 그날이 도적같이 온다고 한 단어가 많이 있는데 오직 데살로니가전서 5장 4절엔 “그러나 너희는 그 날에 도적같이 오지 아니하니라”고 하면서 딱 한군데 못을 박아놨습니다. 그럼 이것이 누구에게 해당되는 말씀입니까? 전부다 도적같이 온다고 했는데, 거기 한 구절만은 도적같이 오지 아니하리라 그랬단 말입니다. 이해되십니까? 베드로후서 3장 10절에도 “주님이 도적같이 오리니”라고 했고, 계시록 3장 3절에 사데교회 교인들에게 “자, 내가 도적같이 오리니”라고 하면서 전부 다 도적 같이입니다. 그뿐입니까? 계시록 16장에도 “보라 내가 도적같이 오리니 깨어 자기 옷을 지켜 벌거벗고 다니지 아니하고 부끄러움을 보지 아니하는 자는 복이 있다”고 했습니다. 옷 도둑놈이 온단 말입니까? 옷은 사명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이 세마포 예복 옷을 입지 아니하고 벌거벗고 다니면 부끄러워서 주님 앞에 설수가 없다는 겁니다.
그래서 전부다 성경은 “주님이 도적같이 온다”고 했는데 딱 한군데 데살로니가 전서 5장 4절만이 “내가 도적같이 아니 오리라”고 했습니다. 정말로 주님이 도적같이 오면, 주님을 못 맞이한다는 소리입니다. 어떻게 도적같이 오는 주님을 맞이할 수 있습니까? 그런데 딱 한 구절 “너희는 빛의 자녀이므로 그날이 도적같이 이르지 아니하겠다”고 말씀해 준 것이 얼마나, 얼마나 소망입니까?
오늘 여러분, 저는 정말로 그렇습니다 . 지난주에 절 찾아오신 그 박사분께서 고민 중에 저와 말씀을 나누고 갔지만 저는 한편으로 웃었습니다. 그분은 경제 공황이 올 때 돈을 어떻게 잘해야 될런지, 미국에선 추적하고 있는데 참 고민이라고 하고 왔었는데, 저는 “주여, 고민이 없게 해주신 것 감사합니다”라고 했다니까요. 그러나 경제공황이 들어온다면 이거는 큰 세계적인 문제이기 때문에 우리가 이제 시대를 살피지 않으면 안 됩니다. 그래서 제가 “집사님, 감람유와 포도주는 해치말라”는 약속이 있다고 말씀을 드렸지만 그분은 잘 이해가 안 된 것 같아요. 말씀은 계속 들어야 이해 되죠. 감람유는 뭐냐? 하나님의 집에 불 밝히는 기름인데, 옛날에 감람유로 교회에 불 밝혔으니까 진리의 불을 밝히는 교회나 그 진리의 불을 밝히는 종은 절대 검정말 피해를 입지 않게 한다고 약속했습니다. 또 포도주는 뭡니까? 포도주는 진리의 말씀으로 그 진리의 말씀이 있는 교회는 하나님께서 아무리 경제공황이 와도 지켜주시겠다는 약속이 계시록 6장에 나옵니다. 오늘 이 말씀은 나와의 약속된 말씀인줄로 믿기를 바랍니다.
그러니까 계시록3장3절 후반부엔 깨어있지 않으면 “도둑이 어느 시에 올른지 네가 알지 못라리라”고 했는데, 데살로니가전서 5장 4절엔 빛의 자녀에게는 도적같이 안온다고 했다 이 말이죠. 그런데 4복음서에 보면 주님이 도적같이 온다는 말씀 뒤에는 이미 그 시점을 암시 해준 곳이 많이 있습니다. 예를 들어 보십시오. 초저녁이 아니라고 그랬고, 밤중도 아니라고 그랬습니다. 그러면 그분과의 접촉을 한 자는 압니다. 그 날과 그 시를 안다는 것이 아니고 대충은 암시해주셨기에 알수 있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사람과 사람이 계속 접촉하면 약속을 하면 대충은 압니다. 주로 저분은 공원에서 잘 만나게 되더라고 그러면 내일 만나자면 어디로 가야합니까? 공원입니다. 공원이 꽉 찼는데 공원 어디예요? 그분을 만나본 사람만 안다니까요. 그리고 ‘식당에서 만나자’ 그러면 그분과 자주 갔던 식당을 가면되죠. 그렇기 때문에 이 말씀을 깊이 내 속에서 음미해 보면요 1경인지, 2경인지, 3경인지, 4경인지를 압니다. 이스라엘은 밤을 3경으로 말했고, 그리스나 로마는 4경으로 말했으니까 몇 경쯤 될것을 압니다. 그리고 “초저녁일런지 밤중일런지, 닭 울땔런지, 새벽일런지”라고 했기에 거기에서 그날과 그시는 몰라도 대충대충 감을 잡는 자가 있을 줄 압니다
.
그래서 과연 나는 깨어있는 신앙인인가? 한번 생각해 보는 시간이 되기 바랍니다. 오늘 이시간 우리가 함께 기도하면서 “주님, 박성목은 과연 깨어있는 신앙인인가?, 오늘 나는 과연 깨어있는 신앙인인가?”다시 한번 생각하면서 기도하시기 바랍니다. 세계가 지금 위험수위에 올라와 있다고 아우성치고 있는 이때에 경제 공항이 정말로 홍수 같이 엄몰해올 때에 우리는 과연 잠잠할 그런 시대가 되어있는가? 깨어 있어야 하는가? 다시 한번 생각하면서 입을 열어 기도하시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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