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07.20 07:09
예수께서 부르신 제자와 스스로 따라온 제자
(요한복음 6장 65-71절)
“또 가라사대 이러하므로 전에 너희에게 말하기를 내 아버지께서 오게 하여 주지 아니하시면 누구든지 내게 올 수 없다 하였노라 하시니라 이러므로 제자 중에 많이 물러가고 다시 그와 함께 다니지 아니하더라 예수께서 열 두 제자에게 이르시되 너희도 가려느냐 시몬 베드로가 대답하되 주여 영생의 말씀이 계시매 우리가 뉘게로 가오리이까 우리가 주는 하나님의 거룩하신 자신줄 믿고 알았삽나이다 예수께서 대답하시되 내가 너희 열 둘을 택하지 아니하였느냐 그러나 너희 중에 한 사람은 마귀니라 하시니 이 말씀은 가룟 시몬의 아들 유다를 가리키심이라 저는 열 둘 중의 하나로 예수를 팔 자러라”
요한복음 5장은 예루살렘에서 일어난 사건이라면 오늘 본문인 요한복음 6장은 갈릴리 북쪽 지역에서 일어난 사건입니다. 요한복음 5장 1절에서 9절 보면 예루살렘의 베데스다 연못이라는 곳에서 안식일에 삼십팔년 된 병자를 고친 것 때문에 율법 교회 지도자들이 시기를 합니다. 그리고 핍박을 합니다. 점점 시기하고 핍박하다가 강도를 높여서 예수를 죽이려고까지 합니다. 그때 예수님은 그 성지 예루살렘을 떠나서 저 갈릴리 북쪽 지역으로 올라가서 복음을 전합니다. 그것이 본문 6장 내용입니다. 여러분, 6장에서 가장 중요한 두 가지를 말씀하시는데 먼저 육의 먹는 빵 문제를 주님이 먼저 거론합니다. 그
래서 배가 고픈 오천 명에게 빵을 먹입니다. 그 오천 명을 먹일 때에 육신의 빵이 얼마나 중요하다는 것을 보여주면서 이제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은 영생할 수 있는 생명의 떡이라는 것을 거론합니다. 그래서 이 떡을 먹어야 영생한다고 하는데, 많은 사람들이 육의 문제를 가지고는 예수님께 왔는데 영적인 문제를 말할 때는 많은 사람들이 돌아갑니다. 그러면 영생을 보장해주는 떡보다도 육의 빵 문제를 중요시하는 시대다라는 말입니다. 오늘날도 어떻습니까? 오늘날에도 육의 빵 문제를 중요시하지 영생의 빵 문제는 그렇게 중요시하지 아니하는 성도들이 많이 있는 줄 압니다.
그런데 여러분, 오늘 여기 본문에 보면 가버나움 회당에서 말씀을 하실 때에 모인 제장중에는 예수께서 직접 뽑은 제자가 있는가 하면 그냥 자기 발로 걸어온 일반 제자가 있습니다. 일반 제자는 예수님께 왔다가 그냥 떠나갑니다. 왜 떠나갑니까? 병 고쳐주고 먹을 빵을 줄 때는 많은 무리들이 예수님을 찾아다닙니다. 그리고 예수님을 옹위하고 있습니다. 그때 예수님은 그들을 피해서 한적한 곳으로 가십니다. 그들이 예수를 붙들고 왕을 삼으려고 하고, 인산인해의 많은 무리들이 모여서 주님을 따라가려고 할 때에 주님은 그들을 피해서 따로 갔습니다.
그러나 오늘은 정반대입니다. 그들에게 복음을 전하고 말씀을 전해주려고 하니까 이제 그들이 따로 예수님을 피해 갑니다. 이건 무엇입니까? 그들은 함께 있을 자가 아니라는 겁니다. 여러분, 영생의 떡, 생명의 떡을 소개할 때에 왜 그들이 떠났을까요? 첫째는 귀가 열리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눈이 열리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의 말씀이 생명의 떡인 줄 그들이 모르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그런데 66절에 보면 예수님 곁을 떠나간 제자들은 다시 그와 함께 다니지 아니하더라고 했습니다.
여러분, 하나님이 그들을 붙들어주지 아니하니까 그들은 생명의 떡도 모르고 영생의 떡을 가지고 계시는 분이 누구인 줄도 모릅니다. 정말로 주님이 메시아라면, 정말로 주님의 말씀이 생명의 떡이라면 갈 수가 없지요? 안 갑니다. 제가 이렇게 생각했습니다. 예수님이 영생 학교를 개설하셨고, 영생 학교의 학생들이 거기에 왔습니다. 예수 선생님에게 영생의 떡을 배우고, 예수 선생님에게 영생을 얻어야 되는데 자퇴하고 맙니다. 이 영생을 배우는 학교를 포기하고 예수 선생님을 떠나간다고 하는 것은 진리를 포기하는 것입니다. 진리 포기는 곧 생명을 잃는 겁니다.
오늘 이 자리에 계신 여러분, 여기도 영생을 가르치는 학교인 줄로 믿습니다. 영생을 배워야 됩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의 교장 선생님입니다. 그가 주시는 말씀이 우리를 영생하도록 가르칩니다. 여러분은 자퇴하지 말기를 바랍니다. 이 학교를 포기하지 말기를 바랍니다. 생명의 떡을 배우고 생명의 떡을 먹는 실습장이 여기인 줄 압니다. 영생을 포기하는 자들은 영생이 귀한 줄 모릅니다. 하나님 앞에 그것이 정말로 귀한 줄 몰라요. 그래서 주님이 제자들을 향하여 “너희도 갈 거냐?”고 묻습니다. 여러분, 오늘날 세상 사람들이 얼마나 먹고사는 것을 중요시하는지 그것에 명예도 생명도 갖다 걸어버립니다. 제가 지금 갑자기 생각이 나는데 제가 태국에 갔을때 들은 얘기입니다.
우리나라 저 충청북도 음성이라는 데가 있죠? 음성이란 데서 일어난 사건을 저에게 얘기해 주시는 분이 한 분 계셨어요. 천주교 신자인데 담배농사를 얼마나 많이 짓는지 그 농장이 끝이 안보일 정도로 넓은 농장에서 담배농사를 하고 있어요. 담배농사를 하고 있으면서 어느 날 갑자기 그 천주교 신자의 마음이 돌변해서 그만 가까운 교회를 찾아왔습니다. 왜 가까운 교회를 찾아왔느냐면 천주교는 좀 딱딱한데 그 가까운 교회는 서로가 정답게 인사하고, 서로가 교제하는 것이 너무나 좋아 보인다는 거예요. 그래서 딱 교회에 옮겨왔는데 이 사람이 십일조를 어떻게 내는 줄도 모르고 감사를 어떻게 할 줄도 모릅니다. 그런데 십일조를 하고, 감사를 하는데 삼년 만에 거지가 되어버렸어요. 우박이 와서 다 두드려 가지고 담배 농사가 다 망해버렸습니다.
그러니까 목사님하고 사모님하고 거기 장로님하고 민망해서 민망해서 못 사는 거예요. 많은 사람들이 “저거 종교 바꿔서 저렇게 됐다고도 하고, 이제 망했다고 하고, 그가 아들이 없으니까 이제 별 짓을 다 한다”고 하면서 주변의 빗발이 엄청 쏟아지고, 핍박이 오는데 오히려 그 분이 목사님에게 위로를 하는 거예요. “목사님 나 아무렇지도 않습니다. 동네가 막 시끌벅적 하는데 나 아무렇지도 않습니다”라고 하는 겁니다. 그러면서 사람들이 예수 믿다가 망했다고 아무리 흉을 보고 아무리 욕을 하고 핍박을 하기를 3년이나 내리 그러는데도 십일조는 꼬박꼬박 내는 거예요. 그러니까 목사님이 “십일조를 어떻게 낼 수 있습니까?”라고 하면 “하, 목사님 내 걱정하지 마십시오. 내가 망하려고 그러면 이 교회 안와도 망했고, 흥할려고 그러면 여기 아니라도 흥합니다”라면서 목사님이 오히려 그 분 때문에 위로를 받는 거예요.
그래서 목사님은 “아이고, 오늘 주일 그 분이 안 나오면 어떡하나?”라고 하고 있는데 맨 먼저 교회 와서 앉아 있다는 겁니다. 제가 가만히 들어볼 때에 우리 교인중에 그런 분이 있다면 저도 안절 부절 할것 같아요. 그런데 딱 망하고 있는데도 변함없이 교회에 나왔다고 합니다. 그런데 몇 년 전입니까? 대한민국에서 고추농사가 싹 망한 적이 있습니다. 그런데 그분에게 정부에서 그 밭에 고추를 좀 심어 달라 그래가지고 고추 기르는 기술이 없지만, 정부에서 도와주고 하니까 고추를 심었습니다. 그런데 그 해에 대한민국 전체 탄저병이 와가지고 싹 다 죽었는데, 그 밭은 깨끗해요. 그래서 당년에 몽땅 다 뽑아서 정부에서 그것을 다 수매해줘서 얼마나 복을 받았는지 모릅니다.
그래서 사람들이 이제 하는 소리가 “예수에 미쳤더니 복을 그리 받았다”고 했답니다. 그분은 십일조도 몰랐고, 하나님 앞에 감사도 몰랐을 때에 천주교에서 옮기고 나니까 교회가 좋더라는 거예요. 하나님께서 인도해 주신 줄로 믿습니다. 그런데 왜 그렇게 망합니까? 삼년을 내리 망하니까 처음엔 심방 온 목사님이 울었다고 해요. “오자마자 이게 웬일입니까?”라면서 탄식을 하는데 오히려 그 분은 “아이고, 목사님 괜찮습니다. 뭐 이럴 때도 있고, 저럴 때도 있지요, 뭐 괜찮습니다”라고 하는 겁니다. 그런데 자기가 하나님 앞에 십일조는 안하니까 걷어가더라. 어떤 놈이 먹어도 먹어치우는데, 내가 이 십일조만은 철두철미하게 할 거라고 하면서 했다는 겁니다. 그런데 고추를 심은 당년 첫 해에 농사지은 것을 한꺼번에 정부에서 다 수매해 버렸다는 거예요.
그러고 나니까 사람들이 “저 예수에 미쳤다가 그리 됐다”는 거예요. 그 소리를 가만히 들어보니까 참 신앙은 내리막길에도 흔들리지 말아야 되고요, 올라갈 때도 흔들리지 말아야 된다고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 분이 하는 말이 십일조를 정확하게 안 냈더니 먹을 놈이 따로 있더라는 거예요. 그런데 그 분이 어디서 사는지 물었더니 여기 가까운 성남에 와서 산다고 해요. 주소를 아냐고 물으니까 주소는 모른대요. 왜냐면 그분이 어떻게 천주교에서 그리 옮겼으며, 어떤 신앙으로 그렇게 살아왔느냐고 묻고 싶어 했는데 주소는 모른다 그래요. 실제 일어난 사람에 대한 얘기입니다. 오늘 이 자리에 계신 여러분, 어려움이 있다고 해서 낙심하지 말기 바랍니다. 아마 그 분이 어려움이 있다고 주님 곁을 떠났다면 넓은 길로 갈 거예요. 만약에 시험이 왔다고 못 이겨서 몸부림 쳤다면 문제가 컸을 거에요. 그런데 오히려 하나님이 마음에 평안을 주고, 많은 사람이 막 귀가 따갑도록 그래도 아무렇지도 않은 마음을 하나님이 주셨다는 생각이 됩니다.
오늘 본문을 보십시오. 예수님이 그들에게 안하시던 말씀을 했습니다. “나는 하늘에서 내려온 떡이다. 나를 먹는 자는 죽지 않고 영생한다”는 말이에요. 그런데 육의 빵을 줄 때는 인산인해를 이루었더니 예수님께서 영생의 떡을 말하니까 싹 흩어져 갑니다. 뿔뿔이 갑니다. 그래서 이제 제자가 두 가지 아닙니까? 물러간 제자와 예수님 곁에 있는 제자입니다. 예수님 곁에 있는 자는 주님이 부르신 제자입니다. 그런데 많은 사람이 예수 곁을 떠나갑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너희도 갈 거냐?”라고 묻습니다. 자, 오늘 여기서 한 가지 생각할 것은 예수님께서 “너희는 가지 않겠지?” 라고 하는 뉘앙스가 이 말씀속에 들어있습니다. “너희도 갈 거냐?”라는 말씀속에는 다 가는데 주님이 부른 제자들은 가지 않을 것이라는 뜻이 그 속에 들어있습니다. 다시 말해서 제자들도 원하면 갈수 있지만 가지 않을 것이라는 확신이 있기에 “너희도 갈 거냐?”라고 하니까 딱 베드로가 거기서 말합니다.
여러분, 베드로는 반장이에요. 마태복음 16장 16절에 보면 나이가 많은 영감이 장가도 안 간 총각보고 “당신은 그리스도시요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이다”라고 합니다. 여러분, 누구나 그렇게 쉽게 못합니다. 자존심이 상해서라도 총각보고 “당신이 정말로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못합니다. 그런데 오늘 여기에도 또 뭐라고 그럽니까? 베드로가 “영생의 말씀이 계시매 우리가 누구한테로 가란 말입니까?”라고 합니다. 여기 “영생의 말씀이 계시매” 그랬죠? “계시매” 라고 하는 단어가 “에코”로 “당신이 영생의 말씀을 가지고 있으매”라는 말입니다. 즉, “영생의 말씀은 당신 밖에 가지고 있지 않은데 당신보다 더 훌륭한 곳이 어디 있습니까? 당신보다 더 귀한 곳이 어디 있습니까? 우리는 생명의 떡을 발견했습니다”는 말입니다. 그래서 ‘다른 사람들은 다 이걸 모르고 갔습니다, 다른 사람은 당신이 생명의 떡을 가지고 있는 걸 모르고 갔습니다. 다른 곳에는 더 좋은 진리가 없습니다’라고 고백한 것입니다. 베드로는 어느 누구에게도 갈 수가 없다고 말합니다. 왜? 주님이 영생의 말씀을 가지고 계시기 때문에 떠날 수가 없다는 겁니다.
오늘 여러분, 베드로는 이 소리는 심중에서 우러나는 고백입니다. “절대 나는 못갑니다. 당신이 영생의 말씀을 가지고 있지 않습니까? 영생의 말씀을 가지고 있는데 우리가 어디로 가란 말입니까? 우리가 누구한테 가란 말입니까? 못갑니다”면서 안가겠다는 거예요. 주님이 가라고 해도 못 간다는 겁니다. 여기 “주여”라는 단어가 두 번 나오는데 앞의 “주”는 “나의 주인”이고 뒤의 주는 “당신” 그랬습니다. 그래서 “나의 주인이여 영생할 수 있는 말씀을 당신이 가지고 있지 않습니까? 그 당신이 가지고 있는 영생의 떡을, 영생의 말씀을 나는 받아야 됩니다. 나는 그것을 가져야 됩니다”라고 하는 것이 베드로의 고백입니다. 대단하지요? 오늘 이 베드로의 고백이 나의 고백이 되어야 하고, 베드로의 확신이 나의 확신이 되고, 베드로의 이 고백이 내 입에서 나와야 됩니다. “당신 가지고 계신 거 내가 알았습니다. 내가 보았다” 이 말입니다. 주님이 “저 사람들도 다 가지 않느냐? 그러니 너희도 포기하고 떠날래?” 라고 하니까 “안 간다”는 겁니다.
왜 베드로가 이 고백을 했을까요? 마태복음 16장 16절은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이라” 그랬는데 여기는 “거룩하신 하나님이라” 그랬습니다. 오늘 여기 68절에 뭐라 그랬습니까? 시몬 베드로가 대답하되 “주여, 영생의 말씀을 ‘에코’하고 있는데 누구한테로 가란 말입니까?”라는 거죠. 주님이 영생의 말씀을 가지고 계시지 다른 데는 없다는 말입니다. 그리고 69절의 ‘주’는 ‘당신’으로 “당신은 하나님의 거룩하신 자이신 줄 믿고 알았습니다. 내가 어디를 가겠습니까?”라는 것입니다. “당신은 하나님이시고 당신은 거룩하신 분인데 우리를 어디로 가라고 하는 거냐”라고 말합니다. 영의 눈이 열리지 아니하고, 영의 귀가 뚫어지지 아니하고, 마음이 열리지 아니한 자들은 빵 문제만 찾아왔다가 돌아갔지만 제자들은 그럴 수 없다는 것이죠. 이는 “내가 만약에 당신을 떠나간다면 세상으로 갈 수 밖에 없습니다. 내가 세상으로 간다면 세상이 나를 속이기 때문에 나는 소망이 없습니다. 만약에 내가 여기서 떠나간다면 나는 넓은 길로 갈 수밖에 없습니다. 넓은 길로 간다면 나는 영생을 놓치고 말 것입니다”라는 것인데 이는 맹목적인 베드로의 고백이 아니라고 봅니다. 이 말은 아마 “당신은 영생의 길로 우리를 지시해주지 않습니까? 당신은 영생의 떡을 주시지 않습니까? 나는 이 학교에서 졸업할 겁니다. 교장선생님의 말을 들을 겁니다”라는 고백인 줄 압니다. 이런 고백을 베드로가 했습니다.
그런데 여기 예수님께서 하신 말씀중에 37절, 44절, 65절을 보면 전부 다 ‘내 아버지’란 말 넣습니다. 37절에 “아버지께서 내게 주시는 자는 자기에게 주시는 자는 다 내게로 올 것이다. 내게 오는 자는 결코 내어 쫓지 않겠다”고 했습니다. 오늘 이 자리에 계신 여러분, 우리 동인교회 성도 여러분, 이 방송을 듣고 계시는 여러분, 아버지께서 여러분을 주님께 주신 줄 압니다. 이게 37절입니다. 44절엔 “나를 보내신 아버지께서 이끌지 아니하면 아무도 내게로 올 수가 없다”고 했습니다. 오늘 이 자리에 오신 여러분, 내가 고난이든, 역경이든, 편안하던 어떤 일이 있었던지, 어떤 경우가 있었던지간에 오늘 이 자리까지 우리를 오게 하셨는데 이는 주님이 이끌어 주신 줄로 믿습니다. 주님이 보내신 줄로 믿습니다. 여러분, 제가 항상 얘기합니다. 우리 교회 오셔서는 절대 부정적인 소린 하지 마세요. 왜? 마귀가 바로 틈탑니다. 내가 은혜로운 소리를 남에게 전해야 되지, 내가 은혜롭지 못한 소리를 남에게 전하면 그것은 은혜가 없어지게 됩니다. 그래서 “내 아버지께서 이끌지 아니하면, 내 아버지께서 보내지 아니하면, 내 아버지께서 오게 하지 아니하면”이란 말은 다 같은 말입니다.
오늘 이 자리에 계신 여러분, 여러분은 주님이 이끌어 주셔서 이 자리에 오게 하셨고, 이 말씀을 듣게 하신 주신 줄로 믿습니다. 주님이 나를 도와주시고, 주님이 나를 이끌어 주셨기에 가능한 것입니다. 그래서 여기 보니까 “너희들은 내가 택했다”고 했고, “저 제자들은 내가 택하지 아니했다”는 겁니다. 오늘 여러분, 주님이 여러분을 한 사람 한사람씩 불러서 택하여 주신 줄로 믿습니다. 그러니까 이 진리의 말씀이 내 것이 돼야 됩니다. 여러분, 말씀이 있다고 하는 이 말씀은 영생의 말씀이요, 영생의 말씀이라고 하는 것은 이 영이 먹어야 될 떡이라 이 말이죠. 육은 육체를 건강하게 할 수 있는 육의 떡이 있는가 하면, 내 영혼을 건강하게 할 수 있는 생명의 말씀의 떡이 있습니다.
그런데 저 사람들은 그렇게도 예수님을 따라 다니더니 영생의 말씀을 전하려고 하니까 그만 그들은 돌아갑니다. 그들은 그냥 가고 맙니다. 직장으로 가고 일터로 갑니다. 가정으로 갑니다. 포기하고 갑니다. 그들이 어떻게 됩니까? 결국은 죽음입니다. 영생을 놓치게 되는 거지요. 부자청년도 영생 가까이 왔고, 예수그리스도가 가지고 계시는 영생을 직접 보지 못하고 물러갑니다. 그러나 오늘 여러분께서 이 고백처럼 “주여, 그렇습니다. 오늘 이 말이 내 고백입니다. 오늘 이 말이 나의 말씀입니다. 베드로가 내가 할 말을 대신해줬기 때문에 내가 이 말씀을 내 말씀으로 말하겠습니다” 라고 하기 바랍니다.
여러분 보십시오. 자, 두 제자가 있지요? 주님이 택한 제자가 있고, 택하지 아니한 제자가 있고, 택하지 아니한 제자는 귀가 열리지 아니하였고, 눈이 열리지 아니하였고, 육의 것만 위해서 왔다가 돌아갔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이 택한 제자가 있습니다. 그 중에 놀라운 사건은 가룟 유다가 가지 않고 있습니다. 왜 가룟 유다는 이 자리에 끝까지 남아 있는가? 자기의 사명이 아직도 남아 있기 때문입니다. 두려운 사건입니다. 여기 보면 사명이 없는 자가 세 종류가 여기 있습니다. 하나는 생명의 떡을 바라보고 안 가겠다고 버티는 부류가 있고, 또 한종류는 ‘와서 보니까 별 볼일 없다’고 떠나가는 부류가 있고, 그리고 ‘저 스승을 제거 시켜야 되겠다’고 하는 부류가 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얼마나 마음이 넓고 참 한량없는 분인지 알고도 가만히 둡니다.
여러분, 그런 정도의 넓은 마음을 갖기를 바랍니다. 여기 70절에 보십시오. 이제 베드로가 안가겠다고 했는데 베드로가 안 가겠다고 하는 것은 열 두제자도 안 가겠다고 하는 것이죠. 그런데 “내가 너희 열 둘을 택하지 아니하였느냐?”고 합니다. 열둘은 주님이 택한 제자인데 “그러나 너희 중에 한 사람은 마귀니라”고 합니다. 자, 이 말을 할 때에 여러분, 봐보십시오. “너희 중에 한 사람은 마귀니라”고 하지만 열두제자가 압니까? 모릅니까? 모르고 있습니다. 얼마나 충격적입니까? 제가 여러분 성가대를 향하고 ‘여기 성가대의 한 사람은 마귀니라’고 했다면 도대체 그 해당자가 누구겠냐? 이 말이에요. 그런데 여러분 봐보십쇼. 열두 제자중에 가롯유다가 회계장부를 가지고 있다면은 그래도 예수님이 신임을 한 사람입니다. 회계 장부는 아무나 주지 않습니다. 전에 고광필집사가 재정을 맡아보는 사람은 계산 잘 하는 사람이 아니라 교회 일을 잘 살피는 사람이어야 된다고 했었죠. 그분이 세무사였는데 그분이 그 말 한마디 딱 던져줄 때에 자기 직업이 말에서 나오잖아요. 그러니깐 여러분요 뭐든지 입에서 들어보면요. 직업을 금방 알 수 있습니다.
그래서 옛날의 상것이 돈을 많이 벌어서 이제 양반 족보를 하나 구해가지고 양반행사를 하는 거에요. 그가 천안삼거리를 가면서 능수버들을 보고 ‘저놈을 꺾어서 오늘 소쿠리하면 참 좋겠다’고 하니까 상것이 가마를 끌다가 툭 놔 버리면서 ‘니놈이나 내놈이나 같다’면서 마차를 버리고 갔다고 하죠. 여러분들은 영생의 떡을 가진 자의 입술이기에 영생의 소리가 나오기를 바랍니다. 그러니깐 가야바의 뜰에서 베드로에게 계집종이 “니 말을 보니 너도 예수님의 한 당원이다”라고 하니까 부인하고 저주하지 않습니까? 그 말하는 언어가 예루살렘 말이 아니라는 것을 증명한다는 거죠. 갈릴리 말은 언어가 예루살렘 언어하고 다른 것 같아요. 이북에서 남쪽으로 넘어온 사람들 말을 들어봐요. 서울말을 배웠다 해도 다르죠. 경상도 사람이 여기 와가지고 서울말 배웠다고 해도 다르죠. 그러니까 말이 그를 증명을 하고 있는겁니다.
오늘 여기에 보니깐 가롯 유다가 가지 않고 예수님의 열두 제자속에 딱 있는 것을 보게 되는데 왜냐면 예수님과 삼년동안 있으면서 일거수 일투족을 다 잘 압니다. 결정적인 금요일 날 예수를 팔아먹어서 바로 죽이는데 결정적인 일을 하려는 그 사명 하나 때문에 안가고 있는 겁니다. 영생의 떡 때문에 안 간 것이 아닙니다. 그도 하나님께서 마지막에 아버지의 뜻을 이루기 위해서 이끌어 가고 있는데, 생명의 떡 때문에 안 간 것이 아니고 사탄의 앞잡이가 되기 위해서 안가고 있다는 것이니 얼마나 불행입니까?
그러나 오늘 여러분은 우리를 보내신 아버지께서 생명의 말씀 때문에 여기까지 이끌어준 줄로 믿기를 바랍니다. 오늘 우리가 하나님 아버지의 선한 뜻을 이루기 위해서 불러 주실 때에 귀가 열린 자가 되고, 눈이 열린 자가 되고, 마음이 열린 자가 되어서 ‘주여, 정말로 생명의 말씀이 여기에 있습니다, 내가 본 것이 있습니다, 확실합니다, 그래서 못 갑니다’라고 고백할 수 있는 귀한 종들이 다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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