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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른편 양과 왼편 염소

(마태복음 25장 31-36절)

 

“인자가 자기 영광으로 모든 천사와 함께 올 때에 자기 영광의 보좌에 앉으리니 모든 민족을 그 앞에 모으고 각각 분별하기를 목자가 양과 염소를 분별하는 것 같이 하여 양은 그 오른편에, 염소는 왼편에 두리라 그 때에 임금이 그 오른편에 있는 자들에게 이르시되 내 아버지께 복 받을 자들이여 나아와 창세로부터 너희를 위하여 예비된 나라를 상속하라 내가 주릴 때에 너희가 먹을 것을 주었고 목마를 때에 마시게 하였고 나그네 되었을 때에 영접하였고 벗었을 때에 옷을 입혔고 병들었을 때에 돌아보았고 옥에 갇혔을 때에 와서 보았느니라”

 

오늘 제가 설교를 앞두고 기도하기를“주님, 오늘 설교가 좀 길 것 같은데 시험 되는 분이 좀 없게 해주시옵소서”라고 했는데 원래 건강한 사람은 밥그릇이 큰 걸 보고 좋아하지마는 병든 자는 밥그릇이 크면 놀라 기절합니다. 그런데 우리 교회는 건강한 자가 되어서 오늘 설교가 길어도 눈 깜짝할 사이에 끝나는 것 같이 느끼게 해 달라는 기도를 했다니까요, 제가 목회하면서 설교가 너무 길어서 오후 예배를 중단한 적이 딱 한 번 있습니다.

 

오늘 잘 들어주십시오. 예수님께서 마태복음 24장에 세상 끝 날에 되어질 일과 제사들이 어떻게 해야 될 것을 자세하게 말씀을 하시고 25장에 와서 모든 비유의 종결을 짓습니다. 25장에 와서는 신랑 맞이할 처녀가 어떻게 해서 맞이하게 되는 지와 또한 준비를 못해서 못 맞이하는 두 종류를 말씀하십니다. 1절서부터 13절까지의 열 처녀의 비유를 보면 신랑을 기다리는 사람중에 두 부류가 나옵니다. 그리고 그 이후 14절부터는 주님 맞이할 자는 그냥 맞이하는 것이 아니라 충성하고 봉사하여야 된다라고 하면서 30절까지 달란트의 비유가 나옵니다. 그런데 달란트 비유를 말씀드릴 때에 다섯 달란트, 두 달란트, 한 달란트 받은 자에 대한 비유를 말씀하시고 마지막 마무리를 하시면서 주님의 재림을 말합니다, 그렇게 되면 모든 비유가 끝이 납니다.

 

이 비유가 계속 거슬러 올라가서 마태복음 3장까지 올라갈 겁니다, 그래서 오늘 여러분들이 31절서부터 46절까지의 말씀을 통하여 ‘과연 내가 복 있는 자인가? 양의 쪽에 속한 자인가? 염소 쪽에 속한 자인가를 스스로 분별하고 판단하기를 바랍니다. 마가복음 4장 33절 과 34절에 보면 예수님께서 “비유가 아니면 말씀하시지 아니하신다” 그랬습니다. 그런데 제가 어제 밤늦게까지 비유에 대한 것을 다 찾아보니까요 굉장히 많아요. 원하시는 분은 신청하면 드리려고 합니다.

 

그러나 오늘은 그 모든 비유를 배제하고, 내가 주님 앞에 설수 있느냐? 못 서느냐? 내가 양의 쪽인가 염소 쪽인가? 하는 이것만 가지고 말씀을 드리겠습니다. 주님은 비유가 아니면 말씀을 안 하신다고 하셨는데 복음서에 나오는 비유들을 보면 천국에 대한 비유뿐이지 다른 비유는 없습니다. 그럼 어째서 천국에 가는 것만을 비유로 말씀했을까요? 제가 지난주에 설교했지만 제자들에게 “천국의 비밀을 아는 것이 너희에게는 허락이 되었으나 저들에게는 허락이 안 됐다”고 했죠? 그러면 알 사람은 알고 모를 자에게는 감추기 위해서 비유로 말했다는 것입니다. 그 다음에 ‘있는 자는 빼앗아서 더 넉넉하게 되지마는 없는 자는 그 있는 것까지 빼앗길 것이다’라고 했습니다.

 

그러면 마태복음 25장에 한 달란트 받은 자가 빼앗기는 그 비유가 오늘 이 말씀에 와서 맞아떨어집니다. 잘 들어주십시오. 4복음서는 마태, 마가, 누가, 요한복음인데 이 네 복음이 특색도 있고, 서로 비슷 비슷합니다마는 다른 것도 있고 아주 서로 독특한데 그 내용은 천국에 가는 말씀을 주님이 일러준 겁니다. 그리고 그 천국에 관한 말씀의 결론이 요한계시록입니다. 그러면 신약의 다섯 권입니다. 그러면 묘하게도 이스라엘 백성이 창세기에서부터 신명기까지 모세 오경을 가지고 가나안 땅 가는 거나 오늘 우리가 4복음과 계시록 말씀을 가지고 천국 가는 거나 똑같습니다.

 

그러기 때문에 오늘 여러분은 이 땅에서 정붙이고 살려고 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우리는 천국에 가야 할 준비해야 된다는 말입니다. 제가 비유에 대한 말씀을 이제 정리해서 우리 성도들에게 가르칠 때가 왔다고 느껴졌기 때문에 정리를 한 겁니다. 주님은 생활에 관한 비유를 말씀하시면서 진리의 귀한 보물, 밭에 감춘 보화에 대한 비유를 했는데 이런 것은 천국이 얼마나 귀하다는 것을 말씀하신 것입니다. 또 깨어있어야 할 것을 말하셨고 부자와 나사로에 대한 비유를 말하는데 “내 영혼아, 잘 먹고 잘 살자”고 하는 어리석은 부자의 비유를 말했습니다.

 

그리고 ‘소금이 맛을 잃으면 안 된다’는 비유를 말하고, 탕자의 비유, 열 므나의 비유를 말하면서 ‘번개가 동편에서 서편까지 번뜩댄 것과 같이 인자의 임함도 그러하리라’고 합니다. 그리고 밤중에 찾아온 친구의 간청문제와 포도원 품꾼의 비유등 이런 것들을 정리해 보니까요 얼마나 많은지 제가 교회 올 때까지 정리를 다 못하고 왔습니다. 빨리 정리해서 우리 교인들에게 드리려고 정리를 하다보니 얼마나 비유가 다양하고 많은지, 저는 그렇게 많은 줄을 몰랐어요. 그러니까 기독교의 부흥을 말할 대 “천국은 마치 가루 서 말 속에 든 누룩과 같으니”라고 했고, 또 기독교 복음의 성장하는 것을 말하면서 겨자씨의 비유로 말했는데 하여간 주님이 비유가 아니면 말씀하지 않으셨다고 했습니다. 그런데 이 비유를 몽땅 우리가 다 알아야 된다는 말입니다. 왜냐면 “아는 것이 너희에게 허락되었다”고 했기 때문입니다. 여러분이 그 아는 자들이 되기 바랍니다.

 

그래서 오늘 여러분, 본문에 보면 양과 염소를 나누는데 모든 비유의 결론입니다. 32절에서 33절을 보면 양과 염소를 나누겠다고 했습니다. 언제냐면 예수 그리스도께서 자기 영광으로 모든 천사와 함께 올 때라고 했으니 재림 때입니다. 한번 보세요. 성경 본문에 ‘모든 민족을 그 앞에 모으고 각각 분별하기를 목자가 양과 염소를 분별하는 것 같이 하여 양은 오른편에 염소는 왼편에 두리라’고 했습니다 자, 그러면 여러분, 여기에서 우리가 잘못 생각하면 32절에 보면 모든 백성을 다 모은다고 그랬으니까 이 땅 위에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모든 인류를 다 주님 앞에 끌어 모으는 것 같이 생각되지만 아닙니다.

 

여기 구절은 모든 민족이라고 했기 때문에 오대양 육대주에 사는 모든 백성인 줄로 아는데 그 뒤에 보니까 안 믿는 이방인이 들어오지 않았어요. “내 이름으로 어려운 자를 돌아보고, 내 이름으로 먹을 것을 주고, 내 이름으로 마실 것을 주고‘라고 그랬죠? 안 믿는 사람은 그런 것 안하죠? 그들은 해당이 안 됩니다. 예수님께서 하시는 모든 비유의 전체가 기독교인에 대한 비유입니다. 여기에 모든 백성이란 어떤 백성이냐면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예수 이름을 가진 모든 백성입니다. 절간에 들어간 사람은 여기 해당이 안 된다 이 말이에요. 이슬람교도들이나 천주교도들도 여기에 해당이 안 된다 이 말이에요. 왜 해당이 안 됩니까? 4절서부터 5절을 쭉 보니까 이 오른편 양이 한 일이 있어요. 오른편 양이 배고플 때, 먹을 것을 주었고, 목마를 때 마실 것을 주었고, 나그네 됐을 때에 영접하였고, 벗었을 때에 옷을 주었다고 했는데 옷을 주었다는 말은 구원의 옷과 의의 겉옷을 말합니다.

 

그리고 목마를 때 마실 것을 주었다면 요한복음 7장의 진리의 생수를 줬단 말이거든요. 배고플 때 빵을 줬다는 말은 요한복음 6장에 생명의 떡을 줬다는 말이거든요. 그리고 또 마태복음 24장에 나오는 때를 따른 양식을 종들에게 나눠 주었다는 말입니다. 그런 사람에게 해당되지 여기에 안 믿는 불신자를 말하고 있지 않습니다. 그래서 여기에 ’모든 족속‘은 이 땅의 모든 백성이라고 하면 안 됩니다. 원어는 ’판타타 에드네‘라고 했는데, 여기 에드네라는 말은 모든 족속이에요. 모든 백성입니다. 그러나 이 내용만 가지고 보면 모든 족속이 아니라 뒷 구절을 보니까 이건 하나님의 백성 중에 모든 백성이라 이 말입니다. 자, 그러면, 35절에서 45절까지 이것이 이방인이 아니라는 것을 나타났죠? 이방인이 아닙니다. 믿는 자들 중에 나눠진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오늘 이 방송을 듣고 있는 여러분. 또 지방에 계시는 여러분, 외국에 계시는 여러분, 여러분도 둘 중의 하나라는 말이에요. 그 사이는 없습니다. 중간은 없어요. 내가 양의 쪽이 아니면 염소 쪽입니다.

 

오늘 여러분, 이 말씀이 내게 와 닿는 자가 되기를 바랍니다. 그렇기 때문에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 비유를 마지막으로 해서 마치시는데 이 말씀의 비유는 불신자에게는 해당이 안 되고 기독교인 중에서 주님을 맞이할 자는 양이고, 맞이하지 못할 자는 염소라는 말입니다. 그리고 여기에 “내 아버지께 복을 받을 자들이 창세로부터 너희를 위하여 예비한 나라를 상속받으리라”고 해 놨습니다. 여러분, 창세로부터 이 오른편 양을 위해서 예비한 나라가 따로 있다는 말이죠. 사망을 가져온 아담의 세상이 아닌, 예비한 나라가 또 있다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이 나라에 골똘하기를 바랍니다. 그래서 창세를 위하여 예비한 나라를 놓고 예수님께서 늘 비유로 가르칠 때에 “천국은 마치, 천국은 마치”라고 하면서 비유로 말씀하신 겁니다. 천국에 관하여 주님께서 비유로 계속 말씀했는데 여기 이 천국이 어떤 천국이냐면 “너희를 위해서 예비한 나라”라고 했습니다. 믿습니까? 그렇기 때문에 이사야 65장 66절에나 베드로후서 3장과 요한계시록 21장에 새하늘과 새땅이 나오는데 그것들이 전부다 천국을 말하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여러분, 지금 예수 믿고 죽어서 천국 갔다는 건 안 맞는 말이에요. 정말로 그 천국이 이렇게 좋으면 죽을 병이 걸렸을 때 병원에 가서 왜 수술하고 다합니까? 죽어서 가는 것이 천국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예수 믿고 죽은 영혼이 가는 곳은 낙원입니다. 정말로 천국은 주님 오실 때에 창세로부터 예비한 나라에 들어가는 겁니다. 이것이 우리의 소망이요, 이것이 우리의 바램이요, 이것이 우리가 이 땅위에 사는 목적입니다. 나는 우리 성가대들도 찬양을 잘하지만 이런 것이 확 마음에 닿아야 되요. 우리교회 특기가 이거에요. 우리 교회의 소망이 이겁니다.

 

제가 늘 그러지 않습니까, 눈과 입은 잘 때는 닫아도 귀는 열어 놓는데 이는 우리는 듣는데 전문가가 되라는 거예요. 늘 귀를 열어놓고 말씀을 들어놓으라 이 말이에요. 그래서 이 귀의 두 구멍을 열어 놓은 거예요. 다른 거는 밤에는 닫을 때가 있지만 이 귀는 밤낮으로 들으라구 열어놓은 겁니다.

 

그러니까 오늘 주님이 천국이라는 말씀을 계속하시다가 끝마침에 와 가지고 “창세로부터 너희를 위해 예비한 나라”가 있다고 했는데 이것이 천국이란 것입니다. 그리고 이 천국을 우리 주겠다는 거죠. 그리고 오른편의 염소는 뭐냐? 오른편의 염소는 이 나라에 들지 못할 자를 놓고 말힌 것입니다. 오른편의 양은 이 천국에 들어갈 자고, 왼편의 염소는 이 천국에 들어가지 못할 자라는 말입니다. 왜 이렇게 나누느냐면 이제는 주님의 천국에 관한 비유의 결론을 말하기 때문입니다. 이 나라는 오늘 이 방송을 듣는 여러분을 위하여 예비된 나라인 줄로 믿기를 바랍니다. 양과 염소는 겉모양은 비슷해도 서로 다른 특징들이 있습니다. 제가 지난번 금요일 날 말씀 드렸죠. 이 양과 염소라고 하는 것은 같은 과입니다. 서로가 비슷하지만 특징이 다릅니다. 성격이 큰 차이가 납니다.

 

저는 시골에 있어봤기 때문에 양도 좀 봤고, 염소도 좀 봤는데 양은 절대로 목자를 따르려고 하는 그런 성질을 가지고 있는게 양이에요. 그리고 양은 털을 꼭 깎아줘야 됩니다. 잘 먹고 잘 자면 털이 북실북실 합니다. 그런데 그 털을 싹 깎아줄 때 목자가 잘못 깎아서 살에 피가 나던지 해도 전혀 가만히 있습니다. 그러나 염소는 절대 그렇게 못합니다. 양은 성격이 온순해가지고 죽여도 그렇게 발버둥 치지 않고 순하게 죽습니다. 그래서 요한복음 1장 29절에 세례요한이 주님을 향해 “세상 죄를 지고 가는 하나님의 어린양을 보라”고 했습니다. 여기 세상 죄라고 그러면 그 단어가 ‘코스모스’로 우주인데 이 말은 우리 지구에 있는 인간들의 죄를 위하여 십자가를 짊어진 속죄의 양으로 오신 어린양 예수를 보라고 한 것입니다. 세례요한이 그 소리 할 때 많은 사람들이 미친 사람으로 보았습니다. 목수의 아들을 놓고 무슨 세상 죄를 지고 가는 어린양이라고 하냐며 말이 안 된다는 거죠.

 

그래서 염소라는 놈은 전혀 전혀 다릅니다. 염소는 어떻게 고집이 센지 모르며 또한 양을 잘 떠받습니다. 아주 성질이 고약합니다, 자기를 앞세워 놓으면 주인을 자기가 끌고 가려고 설칩니다. 그리고 아무데나 제 마음대로 튀려고 하는 것이 염소입니다. 그리고 절대 목자를 의식하지 않습니다. 그래서 염소는 불순종하는 자를 의미하고 그런 상징적인 동물을 말할 때 염소를 말했습니다.

 

자, 이제 제가 천국에 관한 비유를 여기서부터 거슬러서 마태복음 3장까지 올라갑니다. 그러면, 여러분은 오늘 이 시간은 설교 시간인 동시에 내 신앙을 점검하는 시간입니다. 제가 쭉 나가면 여러분은 속으로 구분하시기 바랍니다. 열 처녀 중에 지혜로운 다섯 처녀와 미련한 다섯 처녀하면 다섯 처녀는 양이고 미련한 자는 염소구나라고 속으로 나누기만 하면 됩니다. 속으로 딱 딱 결정을 지으십시오. 이해되지요? 이제 이 설교를 듣는 여러분들이 거슬러 올라가면서 비유를 잘 판별하시면 내가 어느 쪽에 속해있는지도 알고, 이게 무슨 비유인 줄도 알게 되어있습니다.

 

자, 그러면 이제 양과 염소의 비유 앞에 무슨 비유가 나오냐면 달란트 비유가 나오지요? 다섯 달란트, 두 달란트, 한 달란트등 재능 따라 줬습니다. 주인이 올 때 계산합니다. 먼저 다섯 달란트 받은 자는 열심히 장사해가지고 열 달란트가 되었습니다. 그래서 “주인이 올 때에 착하고 충성된 종아 네가 적은 일에 충성하였으니 많은 것을 차지하라 주인의 즐거운 잔치에 참여하리라”며 초대받습니다. 또, 두 달란트 받은 자도 마찬가지입니다. 칭찬받습니다. “적은 일에 충성하였으니 내가 많은 것을 네게 주리라”고 합니다. 여기 23절 24절 쭉 나옵니다. 그런데 한 달란트 받은 자에게는 엄청나게 책망합니다. 자, 그러면 다섯 달란트, 두 달란트와 한 달란트 중에 양과 염소가 나옵니다.

 

여러분 이제 마음의 결정 났지요? 아, 그것은 염소구나. 이건 양이로구나 하고 나누게 될 것입니다. 그런데 여기 29절에 보면 뭐라 그랬습니까? 잘 보세요. “무릇 있는 자는 받아 풍족하게 되고, 없는 자는 그 있는 것까지 빼앗기리라”고 합니다. 한 달란트 빼앗기지요? 이것이 어디에 나오냐면 마태복음 13장에 주님께서 “없는 자는 있는 것까지 빼앗긴다” 고 그랬는데 여기와 맞습니다. 그런데 30절에 보면 “이 무익한 종을 바깥 어두운대로 내어 쫓으라, 거기서 슬피 울며 이를 갊이 있으리라”고 했는데 이것이 한 달란트 받은 자에 대한 말입니다. 자, 그러면 두 달란트 받은 자도 칭찬했는데 양의 칭찬과 똑같고, 염소는 한 달란트가 책망 받는 것과 똑같습니다. 한 달란트 받은 자는 양과 염소중에서 염소에 속한 것이 가려졌죠? 누가 양이며 누가 염소인지 제가 가르쳐주기 전에 그만큼 가릴 줄 알지요?

 

자, 그 다음에 이제 또 한 계단 올라가면 마태복음 25장 1절로 13절까지 열 처녀 나옵니다. 다섯은 슬기롭고, 다섯은 미련합니다. 슬기로운 다섯은 신랑이 더디 올 걸 생각하고 예비한 기름을 가지고 신랑이 오도록 기다렸습니다. 신랑이 더디 온다는 것은 지금 은혜시대에는 주님이 안 오신다는 것이지요? 신원의 날에 주님 오십니다. 그러면 신원의 날에 불을 켤 것을 가지고 갔다는 말입니다. 그래서 “신랑이야!” 할 때 꺼져가는 등불에 기름을 부어서 신랑을 맞이했습니다. 또 미련한 다섯 처녀는 등불에 기름이 꺼져가니까 기름 나눠달라 했으나 꾸이지 못하여 꾸러 갔으나 못 구하고 왔습니다. 여러분, 기독교는 사랑의 종교라고 하는데 여기는 나누는 종교가 아닙니다. 이는 내 신앙, 내 믿음, 내 말씀, 내 충성을 가지고 내가 가는 길이라는 겁니다. 그러기 때문에 기름 구하러 갔다가 돌아와서 “열어주소서, 열어주소서”라고 하I지만 안 열어줍니다. 두 종류입니다. 어느 쪽이 양이며, 어느 쪽이 염소인 줄 이제 결정이 납니다. 마태복음 25장 32절에 양과 염소를 주님이 나눠 놓은 것은 이것이 마지막 결론이라는 것입니다. 이 말씀을 하시고 이제 주님이 십자가에 돌아가실 준비를 합니다. 비유는 여기서 결론으로 끝나게 되어 있습니다.

 

그래서 열 처녀 중에 슬기로운 다섯은 신랑을 맞이하고, 미련한 다섯은 신랑을 맞이하지 못했습니다. 어느 것이 염소요, 어느 것이 양이라는 걸 이제 여러분 찾았죠? 슬기로운 다섯 처녀는 신랑을 맞이하여 혼인 잔치에 들어갔지만 신랑을 맞이하지 못하는 미련한 다섯 처녀는 바깥의 어두움에 쫓겨났다는 말인데 이것이 염소 쪽입니다. 이해가 되지요? 자, 그 다음에 마태복음 24장에 종의 심판이 나옵니다. 24장 45절에 보면 “충성되고 지혜 있는 종이 되어 주인에게 그 집 사람을 맡아 때를 따라 양식을 나눠주는 자가 누구냐?”고 했기에 양식을 받아먹는 성도가 있지요? 분명이 있습니다. 양식을 나눠주는 자는 주인이 올 때에 그렇게 하는 것을 보면 그 종이 복이 있으리로다 라고 하면서 충성된 한 종류의 종이 나옵니다.

 

그 다음에 48절에 보면 악한 종이 나오는데 이 악하다고 하는 단어가 ‘칼로스’인데 ‘부패한 종, 썩은 종, 못된 종’인데 그 악한 종이 생각하기를 “주인이 더디 오리라고 하여 동무를 때리고 술친구로 더불어 먹고 마시게 되면 생각지 아니하는 날, 자 알지 못하는 시간에 종의 주임이 와서 저를 외식하는 율에 처하리니 거기서 또 슬피 울고 이를 갊이 있으리라”고 했습니다. 그러면 이 자는 몇 달란트 받은 자와 똑같습니까? 한 달란트 받은 자와 똑같지요? 자, 그러면 이게 양이냐? 염소냐? 그러니까 때를 따라 양식을 나눠주는 자가 양에 속하는지 염소에 속하는지 알 것이며, 또 주인이 더디 오리라고 생각하고 술친구로 더불어 먹고 마시며 친구를 때리고 먹고 마시다가 생각지 않은 날에 주인이 와가지고 엄히 벌을 내릴 때 이 사람은 밖의 어두운 데 쫓겨나서 슬피 울며 이를 갊이 있으리라고 했으니 양과 염소중 어느쪽인지 갈려지지요? 왜 25장의 양과 염소로 나누느냐면 이 비유가 결론이기 때문이라고 했습니다. 이 앞에 자꾸 거슬러 올라가보니까 그 말이 이해가 된다 이 말입니다.

 

그러면 이것은 기독교 안에서 일어나는 사건이에요. 그 외에는 없다는 말입니다. 이해됩니까? 자, 그러면 생각지 아니한 날에 주인이 온다는 말은 주의 재림이거든요. 그럼 또 조금 올라갑니다. 마태복음 24장 41절에 보면 “두 여인이 매를 갈고 있으매 하나는 데려감을 당하고 하나는 버려둠을 당할 것이다”라고 했습니다. 그러면 여러분, 마태복음 25장의 말씀과 맞춰보면 데려감을 당하는 그 사람은 창세로부터 예비한 나라를 상속받을 자지요? 맞습니까? 여러분, 오늘 이 말씀이 공부가 되고, 양식이 되고, 무기가 되어야 됩니다. 그리고 버려둠을 당하는 자는 어느 쪽에 속하는지 구분할 수 있죠? 두 여자가 밭에 있으매 하나는 데려감을 당하고 하나는 버려둠을 당한다고 그러면 데려감을 당하는 자는 양입니까? 염소입니까? 버리는 자가 양입니까? 염소입니까? 구분하실 수 있을 줄로 압니다.

 

마태복음 25장 32절과 33절을 중심하여 자꾸 올라가서 마태복음 22장 1절로 4절에 보면 혼인 잔치의 비유가 나오는데 먼저 유대인들을 불렀더니 “나는 밭을 샀다. 소를 샀다. 장가들었다”며 안 오니까 사거리에 나가서 만나는 자마다 데리고 오라고 하죠. 사거리는 동서사방을 말하는 것으로 은혜시대 역사입니다. 은혜시대에 모든 믿는 사람을 다 불러 모았다는 겁니다. 그런데 임금님이 손님을 보러 왔습니다. 뭐 때문에? 예복 안 입은 자가 나옵니다. 반드시 그 잔치에는 예복을 입어야 되는데 예복을 안 입은 자가 있어서 “친구여, 어찌하여 예복을 입지 않았느냐?”며 “결박하여 바깥의 어두운 데 내어 쫓으라 거기서 슬피 울며 이를 갊이 있으니라”고 했죠. 그러면 이것이 왼쪽이에요? 오른쪽이에요? 이를 갈고 있는 자 왼쪽이라는 말이고 예복을 입은 자는 오른쪽입니다. 그럼 오른쪽은 양이죠. 이렇게 계속 올라가 보니까 결론이 나오지 않아요? 제가 이것을 이번 주일에 여러분에게 막 전하고 싶어 했는데 이 말씀이 내 말씀인 줄 마음에 새기는 자가 있을 것이고, 또 안 새기는 자도 있을 겁니다. 양과 염소의 비유로 마태복음의 총 결론을 짓습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 비유가 아니면 말씀을 안 하신다고 하셨는데 그 비유가 얼마나 많은가 찾아보니까 꽉 찼어요. 세상에 그렇게 많은 줄 몰랐어요. 이것이 전부 마태복음 25장에 모든 비유의 마지막으로 결론을 맺었습니다. 이해가 되시면 크게 아멘 하십시요. 또 마태복음 13장 45절로 50절에 보면 그물을 치고 고기를 잡는데 그물에 고기가 가득 잡힐 때 물가로 끌어내옵니다. 물가로 끌어내 와서 좋은 고기는 그릇에 담고 나쁜 고기는 내어 버리느니라고 하면서 거기서도 고기가 두 종류 나옵니다. 자, 좋은 고기는 오른편 양 쪽에 속하고 못된 고기는 왼편에 속한 것입니다. 그러면서 “이와같이 세상끝에도 의인 중에 악인을 나누리라”고 했습니다. 그럼 의인 중에 악인은 양에 속합니까? 염소에 속합니까? 의인 중에 의인은 양에게 속하고, 의인 중에 악인은 염소에 속하는 것이죠. 전부다 똑같은 말입니다.

 

그래서 “천국은 마치”라고 하면서“내 아버지께서 창세로부터 예비한 나라가 있다”고 했는데 그곳이 천국이었다는 말입니다. 그리고 조금 올라가서 마태복음 13장 1절에서 8절 보면 씨 뿌리는 비유가 있습니다. 길가, 돌밭, 가시덤불, 그 다음에 옥토 밭에 씨가 떨어지매 옥토 밭에서만 백배, 육십 배, 삼십 배 결실을 한다고 했습니다. 여기서 길가나 돌밭, 가시덩굴은 왼편의 염소에 속하고 옥토 밭만이 양에게 속합니다. 전부다 비유는 주님이 이렇게 갈라놓더라고요. 그러면서 “천국의 비밀을 너희에게는 아는 것이 허락되었으나 그들에게는 아니 되었나니”라고 했는데 이 말씀이 과연 우리 동인교회 말씀인 줄로 믿습니다.

 

여러분이 이 말씀으로 확신을 가지시기 바랍니다. “천지는 없어지겠으나 내 말은 없어지지 아니하리라”고 하는 말씀을 내가 믿어야 된다 이 말이에요. 저는 좀 안 바쁘게 살았으면 좋겠어요. 어떻게 바쁜지 세상에 하늘 땅 밑에 나만큼 바쁜 사람이 없는 것 같아요. 주님 비유도 좀 알아야 되지, 이걸 또 가르쳐야 되지, 나 혼자 알면 쉬울 텐데 또 가서 소리 질러서 가르쳐야 되고 또 바로 듣는지 안 듣는지 봐가면서 가르쳐야 되죠. 몸도 맘도 얼마나 바쁜지 모릅니다. 그래도 제가 어젯밤에 이 말씀을 준비하면서 “주님, 우리 성도들 모두 받게 하시옵소서. 이 방송 듣는 분들 몽땅 받게 해주시옵소서. 비유가 아니면 말씀 안 한다 하시는 주님, 이 비유가 여기가 있군요. 여기가 목적이군요.”라고 하면서 그 비유에 대하여 정리를 해 왔습니다. 주님께서 그 비유를 마치고 이제 죽을 준비를 하십니다. 이제 이 정도면 알만 한 것들은 다 알게 될것이기에 이제 아버지의 뜻을 이루시게 될 줄로 압니다.

 

여러분, 또 보세요. 마태복음 7장 24절에 보면 또 “내 말을 듣고 지키는 자는 집을 반석 위에 짓는 자와 같으니 비가 오고 창수가 나고, 바람이 불어도 넘어지지 아니함 같을 것이요. 또 내 말을 듣고 지키지 않는 자는 그 주초를 모래 위에 집을 짓는지요 비가 나고 창수가 나고, 바람이 불면 넘어짐이 심하니라”고 하면서 그 두 가지가 나왔습니다. 그러면 반석 위에 지은 자는 어느 쪽에 속하며, 모래 위에 지은 자는 어느 쪽이며 어디에 속하는지 여기에 나오잖아요. 이해가 되시죠? 그러기 때문에 또 거슬러 올라가면 마태복음 7장 13절 이하에 보면 좁은 길과 넓은 길이 나옵니다.

 

자, “생명으로 인도하는 길은 좁은 길이요, 좁은 문이요, 찾는 자가 적지만 넓은 길로 가는 자는 많은 사람이 가지만 멸망의 문이다”고 했습니다. 그러면 넓은 길로 가는 자가 양 쪽이냐? 염소 쪽이냐? 넓은 길로 가는 자가 오른쪽이냐? 왼쪽이냐? 좁은 길로 가는 자가 왼쪽이냐? 오른쪽이냐? 여러분이 판단이 나오지 않습니까? 여러분이 확실히 알 수 있지 않습니까? 그리고 마태복음 3장 11절에 보면 주님께서 “알곡은 자기 타작마당을 정하게 하사 곳간에 넣고 쭉정이는 꺼지지 않는 불에 넣으리라”고 그러면 알곡과 쭉정이는 한 나무에서 자라지만 왜 쭉정이가 되느냐? 병들면 쭉정이가 되고. 새가 와서 까먹으면 쭉정이가 됩니다. 그리고 바람에 넘어지면 쭉정이가 됩니다. 이것이 우리가 주님 나라 갈 때 이런 쭉정이가 돼서는 안 된다는 말입니다. 그래놓고 여러분, 이제 비유의 결론이 들어갑니다. 이해가 됩니까?

 

여러분, 이렇게 천국에 관하여 전부 비유로 말씀 하셨는데 이제 결혼에 와서 “내 아버지께 복을 받을 자들이여”라고 나오는데 그러면 내 아버지께 복을 받을 자는 누구냐 이 말이에요. 오른쪽의 양들이죠? 여러분, 왼편의 염소들은 심판받을 대상이라 이 말입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 주님 오실 때 “산 자와 죽은 자를 심판하러 오시리라”고 했는데 오른쪽 양은 산 자요. 왼편 염소는 살았으나 죽은 자라는 말이에요. 여러분, 제가 수요일 날 말씀을 드렸습니다만 이걸 딱 음미하고 있는데 제가 참 맛이 있더라고요. 그래서 육의 양식은 우리 집사람이 챙겨주지만 내가 먹는 양식은 이것이구나라는 생각이 들더라구요. 내 아버지께서 주시는 양식은 이 양식이 좋은 양식이거든요. 딱 그러는데 스쳐가는 게 있어요. 은혜시대 역사와 신원의 날의 역사를 나눌 때에 두 시대가 나눠지면서 알곡과 쭉정이가 나오는데 이것은 재림 때 되어질 상황이죠? 재림 때입니다. 그런데 초림 때도 이런 일이 있다는 것입니다.

 

초림의 주님을 맞이하는 자는 알곡이었고, 율법시대 그 종들은 알곡이 아니였습니다. 종을 때리고 괴롭히고 그랬죠, 그러니까 여러분 보십시오. 초림의 주님 오실 때, 율법과 은혜시대로 나눠질 때에 율법시대 사람들은 은혜시대 사람을 공격했습니다. 율법시대 사람들은 메시야를 기다렸지만 못 맞이했습니다. 정치적인 메시야를 기다렸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은혜 시대를 깨닫고 준비한 베드로, 요한, 야고보, 바울등 사도들은 주님을 맞이 했습니다. 그러니까 율법과 은혜로 나눠질 때에도 두 가지 종으로 나눠졌습니다. 그러면 이 역시 오른쪽의 양은 바울과 베드로와 요한과 야고보가 되겠지만은 왼쪽의 염소는 율법시대의 제사장과 서기관등 율법시대의 그 사람들이 왼쪽의 염소가 아니겠습니까? 맞지 않습니까? 그러니깐 초림 때도 양과 염소가 있고 재림 때도 양과 염소가 있다는 겁니다. 그래서 에스겔서 34장 17절에 보면 “나 주 여호와가 말하노라 나의 양 때 너희여 내가 양과 양사이와 수양과 수염소 사이에 심판 하겠다”고 했습니다. 이것이 비유 아닙니까? 왜 하나님께서 무슨 짐승을 심판하러 옵니까? 마지막 때에 성도나 지도자에 대하여 심판을 말하는데 모든 민족을 주님 재림때에 나누겠다는 겁니다. 그래서 마지막 때에 주의 종 만남이 얼마나 귀한지 모릅니다. 만날 때 바로 만나야 되고, 먹을 때 생명의 떡을 바로 먹어야 되는 거에요.

 

이제 결론부분에서 창세로부터 예비한 나라를 상속받을 자들에게 뭐라고 나옵니까? “내가 주릴 때에 너희가 먹을 것을 주었고”라고 합니다. 여러분 아모스 8장 11절에 보면 “때가 이르니리 물이 없어 갈함이 아니요 양식이 없어 굶주림이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을 얻지 못한 기갈이 온다”고 그랬죠. 그럼 마태복음 24장에 45절의 “지혜롭고 충성된 종이 되어 때를 따른 양식을 나눠주는 자가 복이 있다”고 했는데 그 사람 아닙니까? 목 마를 때에 마시것을 주었다고 하였는데 마태복음에 “소자를 위해서 냉수 한 그릇이라도 대접하면 하늘에 있는 상이 크다”고 했습니다. 그러면 “목마를 때에 마실 것을 주었고 나그네 되었을 때에 영접하였다”고 했는데 우리는 유리하는 나그네입니다. 고향 찾아가는 나그네입니다. 그리고 “벗었을 때에 입을 것을 주었다”고 했는데 이는 이사야61장 10절의 “구원의 옷과 의의 겉옷”을 입혀주었다는 것 아닙니까? 지금 은혜시대는 의의겉옷을 모르고 있습니다. 그다음에 보면“옥에 갇혔을 때에 돌아보았다”고 했는데 옥은 뭡니까? 죄악에 사로잡혀서 죽음의 골짜기에 갇혀있을 때에 예수그리스도의 십자가 보혈의 공로로 구속의 은총을 받게 한것을 말합니다. 그러면 이런 사람들은 의인들입니다. 오른편에 있는 양이 의인이라고 심판주가 판결을 내렸습니다. 그래서 “의롭다하신 이가 계시니 누가 나를 정제하겠냐”고 했습니다.

 

그러면 마태복음 13장49절에 고기 중에 좋은 고기와 나쁜 고기를 갈라내듯이 의인 중에 악인을 갈라내겠다 그랬죠. 그러면 의인 중에 의인이 이 사람 아닙니까? 그때에 의인들이 대답하여 가라대 “주여 우리가 어느 때에 우리가 주의 주리신 것을 보고 공궤 하였나이까?”라고 하죠. “언제 목마르신 것을 보고 마시게 하였으며 어느 때에 나그네 되심을 보고 영접하였으며, 벗으신 것을 보고 옷 입혔나이까? 어느 때 병드신 것이나 옥에 갇히신 것을 보고 가서 돌봤나이까?”라고 하니까 임금이 대답하여 가로되 “내가 진실로 너희 의인에게 이르노니 너희가 여기 주님의 십자가 피로 맺어진 내 형제들에게 한 것이 꼭 나에게 한 것이니라”고 합니다.

 

그 다음에 왼편에 있는 악한 자에게 심판을 내립니다. 여러분, 이분들에게 저주를 받을 자라고 그랬습니다. 그리고 마귀가 그의 사자들을 위하여 예비한 불못에 들어가리라“ 그랬습니다. 의인들과 정 반대입니다. 그래서 악인은 영벌에 의인은 영생에 들어가리라고 했습니다. 한 가지 예를 들어 말하겠습니다. 여기 보면 35절부터 40절까지가 의인들이에요. 그렇죠? 그러면 41절에서부터 45절까지는 악인입니다. 이 사람들은 두종류의 종이죠? 두 종류입니다. 만약에 이사람들이 지옥 불에 가서 구원이 없다면 우편강도는 할 말이 없습니다. 우편강도는 이 사람보다 훨씬 못합니다. 그렇죠? 우편강도를 생각해 보세요.

 

또 고린도전서 5장에 보면 자기 아비의 아내를 취한자도 육은 사단에게 내어주고 영은 마지막 날에 구원한다고 했죠? 자 그러면 이것이 뭐냐면, 비유입니다. 오른쪽 양도 왼편 염소도 비유란 말이에요. 그러면 이 비유에서 오른편 양들에게는 영원한 나라를 보내지만은 왼편의 염소에게는 심판하여 영원한 불못에 가게 하는데 그 심판위에 또 심판이 남아 있습니다. 그렇죠? 이 삼판위에 무슨 심판이 남아 있습니까? 백보좌 심판입니다. 백보좌 심판대에서 악인과 죄인, 불신자와 이방인등 모두를 부활시켜서 심판 받는 것이 마지막 천년 안식 지나서 심판이 이뤄지는데 오늘 여기는 주님 재림 때에 일어난 심판이에요.

 

그러니까 여러분은 오른편의 의인인줄로 믿습니다. 창세로부터 예비한 나라를 상속받는 자가 되기를 바랍니다. 오늘 이 말씀을 마음에 새겨놓으시기 바랍니다. 이것을 놓치면 로또를 놓친 것 보다 더합니다. 꽉 내 마음에 그림을 그려놓길 바랍니다. 꼭 마음에 새겨 놓으시고 창세로부터 예비한 나라를 상속 받는 양들이 다 되기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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