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01.19 23:22
환난 날에 제사로 언약한 백성을 모으라
(시편 50편 1절 ~ 6절)
“전능하신 자 하나님 여호와께서 말씀하사 해 돋는 데서부터 지는 데까지 세상을 부르셨도다 온전히 아름다운 시온에서 하나님이 빛을 발하셨도다 우리 하나님이 임하사 잠잠치 아니하시니 그 앞에는 불이 삼키고 그 사방에는 광풍이 불리로다 하나님이 그 백성을 판단하시려고 윗 하늘과 아래 땅에 반포하여 이르시되 나의 성도를 내 앞에 모으라 곧 제사로 나와 언약한 자니라 하시도다 하늘이 그 공의를 선포하리니 하나님 그는 심판장이심이로다(셀라) ”
오늘 본문인 시편50편 윗 부분에 보면 ‘아삽의 시’로 되어 있습니다. 아삽이라는 분은 역대상 16장 4절에서 5절에 보면 그는 레위지파에서 음악가의 우두머리로 나옵니다. 성경에는 ‘두목’이라고 되어 있는데 아마 레위지파에서 음악의 아주 권위 있는 사람인 것 같습니다. 그 분의 시의 서두 부분을 보면 “전능하신 하나님께서”라고 하면서 시작합니다. 그래서 본문에 보면 “참으로 전지 전능하시며 능력이 많으신 하나님께서 해 돋는 동쪽에서부터 해지는 서쪽까지 세상을 불렀다”라고 하면서 시작합니다. 오늘 여러분, 잘 들어주십시오. 우리 기독교는 형식이나 외식에 치우치면 안 되는 종교입니다. 그리고 예배를 통해서 하나님과 바른 관계를 맺고 그 분과 더 가까이 가고 그 분과 더 친숙해 질 수 있어야 합니다.
그런데 오늘 본문에 하나님께서 “이 세상을 불렀다”라고 했습니다. 우리말 성경에는 “이 세상”이라고 했지만 원문에는 “이 땅”으로 되어 있고, 또한 “부르셨다”고 했는데 이는 “소환했다”는 말로 되어 있습니다. 그럼 왜 하나님께서 이 땅을 소환했을까요? 본문 2절에 보면 “아름다운 시온에서 하나님의 빛을 발하셨다”고 했습니다. 여기의 빛은 이사야 60장의 빛의 역사입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시온의 빛을 발하게 하신이후에 왜 이 지구인 땅을 소환하신다고 했을까요? 이는 하나님께서 보실 때에 외식하고 범죄하고 하나님의 뜻을 저버리는 이 땅의 백성들을 불러서 공의로운 심판을 하시겠다는 것입니다.
오늘 여러분, 여러분은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예배에 참여하시기를 바랍니다. 구약시대 예배는 율법 중심이죠. 은혜시대 예배는 십자가 피가 중심이었습니다. 성경 내용을 잘 몰라도 괜찮았고 그저 예수 십자가 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백성이 되면 되었습니다. 그래서 ‘누구든지 예수 믿으라’고 외쳤는데 이는 안 믿는 자들에게 십자가 피 안으로 들어오라는 겁니다. “예수 믿습니까?”라는 말은 이미 하나님의 백성이 아니라는 소리입니다. 그러니까 예수 믿고 하나님의 백성이 되라는 겁니다. 이것이 은혜시대 역사입니다. 이제는 또 시대가 바뀝니다. 그래서 제일 큰 문제가 시대의 전환을 모르면 부끄러움을 당하게 되어 있습니다. 만약 농사짓는 사람이 씨 뿌리는 철이 언제이며, 가꾸는 철이 언제이고 추수기가 언제인 줄 모르면 그 농사는 폐농하고 맙니다. 절기를 잘 알아야 농사에 실패를 하지 않습니다.
오늘 우리도 시대의 전환점을 잘 알아야 됩니다. 제가 이번 지방에서 있었던 집회에서 주로 목사님들이 중심이었기 때문에 시작부터 시대에 대한 강의를 중심해서 했습니다. 강의를 듣는 분들이 목사님들이기 때문에 왜 이 시대를 알아야 되는지에 대하여 중점적으로 말씀을 나누며 함께 은혜를 받았습니다. 그리고 마지막 시간에는 안식교를 어떻게 대처해 갈 것이냐에 대하여 가르쳤습니다. 딱 찬송가 뒤에 보면 안식일을 거룩히 지키라고 하는 십계명이 나오는데 그 출애굽기 20장의 말씀을 내놓고, 신명기5장을 중심하여서 안식일이 어떻게 바뀌는지 그 변천사에 대한 공부를 쭉 하면서 마치는 시간에는 세 시간을 강의를 했습니다. 그 목사님들과 참여한 분들이 너무 좋아서 춤을 춰요. 우리가 육이 기뻐도 얼굴에 표가 나고요, 영이 기뻐도 얼굴에 표가 납니다.
오늘 하나님께서 그렇게 아름답고 귀하고 좋은 빛을 시온에 발하고 난 다음에 공의로 심판을 하겠다고 하시면서 이 땅을 소환시켰다라고 했습니다. 그렇다면 땅을 소환시켰단 말은 무슨 의미일까요? 이 땅에 사는 인간들이 하나님 앞에 범죄하고 있다는 겁니다. 그런데 여기 3절에 보면 놀라운 것은 “우리 하나님이 임하신다”고 하셨습니다. 이는 남의 하나님도 아니요, 이스라엘의 하나님도 아니고 바로 우리의 하나님이라는 겁니다. 그 우리의 하나님은 천지를 창조하신 분이에요. 천지를 창조하신 그 분을 우리가 아버지라고 부릅니다. 본문을 기록한 아삽이라는 분은 그저 “전능하신 하나님 여호와”라고 불렀습니다. 만약에 오늘 여러분이 이 시를 쓴다면, ‘전능하신 하나님 여호와’라고 하면서 그 뒤에 반드시 ‘아버지’라는 단어를 썼을 겁니다.
그런데 오늘 본문에 “우리의 하나님이 임하셔서 잠잠치 않으시겠다”고 했습니다. 우리 하나님이 임하셔서 잠잠치 않으시겠다고 하는 말씀 속에는 무서운 심판이 들어있습니다. 여러분, 하나님이 이렇게 말씀을 하셨는데 이 세상이 천년만년 가는 줄 알면 오산입니다. 시대의 흐름을 보나, 세상 징조를 보나, 인간들이 하는 행실을 보나, 지금 모든 것이 갈데까지 가버렸습니다. 그런데 이것을 우리가 알고 준비하지 못하면 안 되게 되어있습니다. 제가 우리 교회에서도 말씀드리고 이번에 집회에서도 말씀드렸지마는 아무리 좋고 값비싼 밍크 털 옷이라도 두꺼운 그런 옷은 여름에는 벗어야 됩니다. 그것을 입고 있다면 그 사람은 바보입니다. 그리고 아무리 비싼 옷이라고 자랑하고 싶어도 여름에는 그런 옷을 자랑할 수 없습니다.
그리고 여름옷이 아무리 비싼 것이라도 지금 겨울에 그 옷을 입고 온다면 본정신이 아니라고 봅니다. 육체의 입는 옷도 철을 따라 입어야 되고, 철을 따라 입을 때 무엇을 생각합니까? 색깔을 봅니다. 요사이 의상들을 보니까 호화찬란하더라고요. 남자들의 옷은 별로입니다. 그저 바지가 넓었다가 좁았다가 하고, 그다음에 고작 해봤자 뒤를 텄다가 붙였다가 하는 것 밖에는 없습니다. 그러나 여자들은 눈이 부시고 눈이 아프도록 화려한 옷들이 많이 나옵니다. 여자들 옷은 색깔이 다양하고 디자인도 다양합니다. 그래서 ‘의복이 날개다’라고도 하고, ‘음식이 분이다’라는 말이 있습니다. 우리 선조들이 한 말입니다. “아이고, 의복이 날개구나”, “음식이 분이로구나”라는 말을 들은 적이 있습니다.
이처럼 오늘 이 시대에는 말씀의 옷을 입어야 됩니다. 그래서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예배, 하나님이 원하시는 예배를 드려야 합니다. 여러분, 이 제단에 와서 예배드리다가 아픈 곳이 나아지기를 바랍니다. 마음의 병도 나아지고, 그다음에 육신의 병도 나아지고, 정신병도 나아지고 해서 마음에 평안이 오고 기쁨이 오기를 바랍니다. 그래서 우리는 이 시대에 하나님이 원하시는 예배가 무엇인가를 알아야 합니다. 구약에는 주로 제사라고 말하고 신약에는 예배라고 표현을 합니다. 그러나 신약에도 제사로 표현한 데가 여러 곳에 있습니다.
오늘 빛을 발하신 다음에 하나님께서 임하실 때에 그 하나님이 누구의 하나님이 아니라 곧 “우리의 하나님”이라고 했습니다, 그것을 더 축소하면 “나의 하나님”이고, 더 직설적으로 말하면 저는 “박성목의 하나님”이라고 말할 수가 있습니다. 여러분, 그렇게 축소하시고 좁혀서 “내 아버지, 내 하나님” 이라고 한다고 해서 주님께서 “시건방진 녀석”이라고 안 합니다. 그럴수록 더 사랑합니다. 그럴수록 더 주님이 예뻐해 주십니다. 지난 주간 많이 추웠지요? 제가 텔레비전을 보면서 알았지 저는 추위를 하나도 몰랐습니다. 왜냐면 밥 먹고 강의하고, 강의하고 밥 먹고, 또 좀 이상하면 화장실 가고 하면서 지내다보니 추위를 몰랐습니다. 그러나 저희는 눈 속에 있었어요. 논산 지역에 눈이 많이 왔더라고요. 그래도 전부가 얼굴이 화사해요. 왜 그럴까요? 말씀 속에 있을 때에는 우리의 아버지이신 나의 하나님께서 신령한 만나를 저희에게 공급해주셨기 때문인 줄 압니다.
오늘 여기 3절을 봐 보십시오. 하나님께서 강림하시겠다고 하면서 “잠잠치 아니하시니 그 앞에는 불이 삼켜지고 그 사방에는 광풍이 불어 일어나겠다”고 했습니다. 여러분, 광풍은 무서운 전쟁을 말하는 것입니다. 여러분, 예배 시간에 여러분의 머리가 점점 맑아지기를 바랍니다. 세상의 보약 중에 이런 보약이 없을 것이고, 치료하는 약 중에 말씀의 약만큼 좋은 약이 또 어디에 있겠습니까? 여러분, “광풍이 무섭게 분다”고 했는데 원어에는 이 바람을 무서운 돌풍같이 부는 바람이라고 했는데 한문 성경에는 ‘미칠 광’ 자를 썼습니다. “바람이 미쳐버렸다”는 말입니다. 그래서 그 강한 바람이 사람을 해하도록 한다는 것인데 이것이 뭐냐면 전쟁의 바람이 이렇게 엄하게 불 것이다라는 겁니다. 요한계시록 7장에 보면 “땅 사방의 바람을 붙잡아 우리가 우리 하나님의 종들의 이마에 인치기까지 땅이나 바다나 해할 바람이 불지 못하게 하겠다”고 했습니다. 그리고 예레미야 4장 12절에 보면 강한 바람이 불어와 심판 한다고 했습니다. 왜 자꾸 바람이라고 그랬을까요? 이 바람은 심판의 바람입니다. 예레미야 30장 23절에 보면 “여호와의 노가 발하여 폭풍과 회리바람처럼 악인의 머리를 칠 것이라” 그랬습니다.
오늘 여러분, 아삽이란 분은 음악가이면서도 이런 시를 썼다고 하는 것은 신의 감동으로 기록한것이며 그것을 또한 우리에게 주신 줄로 믿습니다. 여러분, 출애굽기19장 18절에서 하나님께서 시내산에 현현(顯現)하시는 모습을 보면 여호와의 신이 그 산에 나타나시면서 불 가운데 임하시는데 그 강림하실 때에 연기가 옹기점의 연기 같이 떠오르고 온 산이 크게 진동을 했다고 그랬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이 임재하실 때에 모세가 굉장히 무서워합니다. 찬송가 중에 ‘우리 주 목소리 한 번 발하시면 천하에 있는 것 다 망하겠네’라는 가사가 나옵니다. 오늘 여러분, 그러나 우리 하나님이 이런 심판을 하시지만 자기 백성은 분명히 건지실 줄로 믿습니다. 만약에 집에서 어머니가 애들이 다 어지럽게 해놓은걸 치울 때에 다 쓸어버리지는 않습니다. 귀한 것은 챙겨놓습니다. 이처럼 하나님께서 마지막에 악인을 심판하시면서 택한 백성은 반드시 다 챙기실 줄로 믿습니다.
여러분, 본문에 “여호와께서 임하신다”고 하셨는데 구약에는 전부 하나님이 임하신다고 그럽니다. 그러나 신약에는 예수그리스도입니다. 또 말씀드립니다. 구약에는 성부시대이기 때문에 하나님이라는 말씀을 많이 합니다만 신약시대는 성자시대이기 때문에 “주께서 강림하신다”고 하십니다. 계시록 19장을 보면 주님이 강림하실 때에 백마 타고 강림 하신다고 그랬습니다. 오늘 여러분, 왜 말 타고 강림하십니까? 말은 전쟁을 상징하는 것입니다. 하박국 3장 6절에 “그 분이 서신즉 땅이 진동하고 그가 보신즉 열국이 전률하며 영원한 산이 무너지며 무궁한 작은 산들이 엎드러지나니 그 행하심은 예로부터 그러하시다” 그랬습니다. 오늘 여러분, 그렇게 두려운 하나님을 우리는 아버지라고 부릅니다. 그리고 그분을 오늘 우리는 다시 오시도록 간구하며 기다립니다. 여러분, 초림의 주님께서는 오실 때에 참으로 낮은 곳에, 짐승의 밥으로, 죄인의 친구로 오셨지만 다시 오시는 주님은 그렇지 않습니다. 그래서 오늘 여러분은 그 주님과 마음이 딱 들어맞기를 바랍니다. 주님과 여러분 생각이 일치하기를 바랍니다. 그래서 우리가 보통으로 말할때에 부부가 이체지만 일체라고 하는데 이것은 목적이 하나요, 방향이 하나며, 사상이 하나요, 생각이 하나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성부와 성자와 성령이 일체라고 하는 것은 구원의 목적이 하나요, 창조의 목적이 하나며 성령의 역사로 모든 것이 한 목적을 향하여서 이루시기 때문에 예수그리스도를 중심해서 삼위일체라고 말합니다. 그래서 심판 날을 기다리는 여러분에겐 삼위 하나님의 역사로 승리하는 날이 되기를 바랍니다.
그래서 여러분, 이렇습니다. 보통 시험은 공부 잘한 사람을 놓고 시험을 봅니다. 공부 잘한 사람은 시험을 두려워하지 않습니다. 시험이라는 것 때문에 성적이 나오는 겁니다. 그러기 때문에 공부한 사람을 위해서 시험이 있고, 시험 친 사람을 위해서 상급이 있는 겁니다. 오늘 여러분, 우리에게도 예수 잘 믿는 사람에게 심판이 오고 말씀대로 사는 사람을 위해서 심판이 있습니다. 그러니까 알곡과 쭉정이를 나누는 심판이 오지만 알곡은 두려워 할 이유가 없습니다. 알곡과 쭉정이가 함께 섞여 있지만 심판 날에는 심판장이신 주님께서 알곡은 알곡대로, 쭉정이는 쭉정이대로 나눕니다. 그래서 그 하나님을 히브리서 12장 26절에 보면 “내가 또 한 번 땅만 아니라 하늘도 진동할 것이다”라고 했는데 왜 이렇게 진동이란 말을 말하느냐면 그 하나님은 위엄의 하나님이요, 두려운 하나님이라는 것을 우리가 알아야 된다는 것입니다.
이제 오늘 본문 4~6절에는 축복이 나옵니다. 여러분, 이렇게 무서운 환란 날이 올 때라도 우릴 위해서 하나님이 하실 일이 따로 있습니다. 여러분, 4절 한 번 보세요. “하나님이 그 백성을 판단하시려고 윗 하늘과 아래 땅에 반포하여”라고 했지요? 여기 ‘판단’이라는 단어가 원어는 ‘딘’인데 그 뜻은 “재판한다, 심판한다, 원한 갚는다”는 뜻입니다. 그러니까 하나님께서 그 백성을 재판하고 원한을 갚기 위해 “윗 하늘과 아래 땅을 향하여 명령을 내리셨다”고 했습니다. “야, 내가 이제 윗 하늘과 아래 땅은 봐라. 내가 이제 그 백성들을 ‘딘’하겠다. 재판을 하겠다”는 것입니다.
심판 날을 기다리시는 여러분, 대학교 가는 학생들이 까지껏 대학교 안 갈 바에야 수능고사가 뭐가 필요 있겠습니까? 날씨가 덥든지, 춥든지 아무 관계가 없습니다. 그러나 대학갈 사람에게는 수능고사 치는 날도 생각해야 됩니다. 건강도 생각해야 됩니다. 시험 문제집도 생각해봐야 됩니다. 여러 가지가 내 마음과 생각을 짓누르는 것이 대학갈 자들의 마음인데 왜냐면 그 관문을 통과해야 내가 원하는 대학교에 갈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시험이라고 하는 것은 공부한 자에게 대학에 들어가기 위해서 절대로 필요합니다. 만약에 시험이 없다면 그런 관문도 없습니다. 오늘 우리에게 시험은 승리하기 위한 시험입니다. 주님을 맞이하기 위한 시험입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이렇게 명령하시면서 “나의 성도들을 내 앞에 모으라”고 하였습니다. 마태복음 24장에 보면 “택한 백성을 하늘 이 끝에서부터 땅 저 끝까지 일일이 한 사람도 빠짐없이 다 모을 것이라”고 그랬습니다. 여기에 하나님은 실수가 없으십니다.
그러나 사람은 모으면 다칠 수가 있고 실수가 있습니다. 사람이 하는 일은 완벽하지 못해요. 사람은 보는 것도 완벽하지 못하고 듣는 것도 완벽하지 못해요. 행하는 것도 완벽하지 못합니다. 완벽하다면 신입니다. 그래서 완벽하지 못한 우리가 완벽하신 신을 붙들고 도와달라고 하며 행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나의 성도들을 내 앞에 모으라”고 했는데 왜 모으라고 했을까요? 이는 그들을 위험한 곳에 두지 않겠다는 겁니다. 여기 5절을 보십시요. 참으로 감사한 것은 이렇게 무서운 광풍과 무서운 환난의 바람을 일으키면서 말씀하시기를 “나의 성도들을 내 앞에 모아 달라”고 했습니다. 여기보면 “내 사람들”이라고 했습니다. 여러분, 어떤 일이 있어도 내 사람은 챙기게 되어 있습니다. 주님의 사람은 직접 당신께서 챙기겠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왜 그 성도들을 모아야 되느냐면 “하나님과 제사로 언약을 맺은 사람들이기 때문이라”고 했습니다. 여기 “제사로 언약을 맺었다”는 단어를 찾아봤더니 “제사로 서약을 했다, 제사로 계약을 했다, 제사로 동맹을 맺었다”라는 단어로 되어 있습니다. 오늘 이 예배가, 오늘 이 제사가 하나님과 동맹을 맺는 예배가 되기를 바랍니다. 여러분, 대통령과 언약을 맺어도, 대통령과 동맹을 맺었어도 그 사람은 출세를 합니다. 그런데 대통령들의 공약은 100%를 실현하지 못합니다. 만약에 공약의 100%를 실행 한다면 그 사람은 이 땅의 사람이 아니에요. 어느 정도는 하겠지만 그렇게 못합니다. 그런데 오늘 이것은 하나님과 인간의 공약입니다. 이 공약은 하나님이 절대적으로 행하시겠다는 겁니다. 하나님의 공약은 빈틈이 없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죄 많은 우리가, 미련하고 어리석은 우리가 하나님과 제사로, 예배로 계약을 맺었다”는 것을 믿기를 바랍니다. 그래서 오늘 하나님께서 계약을 맺은 자들이니까 “그들을 내 앞에 모으라”고 한 것입니다. 왜냐면 구원하시겠다는 겁니다. 여러분, 여기의 구원은 영혼 구원만이 아닙니다. 영과 육이 얻는 구원입니다. 어제도 지방에서 은혜 받은 분들에게 전화가 왔어요. “목사님, 목사님 세상에 말씀이 이럴 수가 있습니까?” 하면서 교제물 없이 성경 본문만 가지고 한주간에 그렇게 많은 은혜를 받은 것은 처음이라며 얼마나 기뻐하며 전화를 하는지 제가 피곤했지만 그런 전화를 받을 때마다 힘이 났습니다. 그 분들이 너무 좋아해요. 너무 좋아하니까 제가 만족하죠? 저의 말씀은 본문 그대로 소개했을 뿐인데 그들은 그리 좋아하더라고요. 이번 집회에서 두 시대에 대해서 집중적으로 공부를 했거든요. 여러분도 반드시 두 시대 공부는 해야 합니다. 앞으로 우리 기독교인들이 두 시대의 역사를 모르면 부끄러움 당하게 됩니다.
열 처녀가 있는데 다섯은 예비된 기름을 가지고 기다리고, 다섯은 등만 가지고 기다린다고 하는 비유는 두시대 역사를 말하는 겁니다. 그래서 등불이 꺼져가는 그 시대 가지고는 주님을 못 맞이한다는 말이거든요. 예비한 기름이 있어야 된다는 말 아닙니까? 그러니까 미련한 처녀는 등만 가져갔고, 지혜로운 처녀는 예비한 기름을 더 가져갔습니다. 만약에 신랑이 일찍 왔다면 등과 예비된 기름을 가져간 처녀가 오히려 미련한 자들입니다. 돈을 더 들여가면서 또 기름병을 들고 기다리는 그런 어리석은 자가 어디 있습니까? 그런데 신랑이 더디 옴으로 말미암아 예비한 기름을 가져간 자가 신랑을 맞이했어요. 그것이 뭐냐? 신랑이 더디 온다고 하는 것이며 은혜시대에는 주님이 오시지 않는다는 겁니다. 그래서 시대를 알아야 된다는 겁니다. 제가 바로 첫 날에 로마서 3장부터 시작했는데 “이제는 율법 외에 하나님의 한 의가 나타난다”고 하는 시대의 변화를 말했습니다. ‘율법 외’에라는 말이 무슨 말입니까? 이제는 율법시대가 아니라는 겁니다. 그러면 이제는 십자가 피를 붙들어야 된다는 말입니다. 그런데 여러분, 이제 신약 말기에 와서 십자가 피 외에 말씀을 붙들어야 됩니다. 그래서 계시록에는 전부 피와 말씀으로 이긴 자라야 한다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러기 때문에 오늘 이 자리에 계신 여러분, 오늘도 이 설교를 듣고 계신 여러분, 또 외국에서 설교를 듣는 여러분, 여러분은 제사와 언약을 맺고 살아가는 분들이 되시고 반드시 피와 말씀으로 이기는 종들이 되기를 바랍니다. 중국성경은 ‘제사’를 ‘제물로 언약을 맺다’로 되어 있더라고요. 제사와 제물이 따로 따로 쓰여졌지만 내용은 같은 것으로 되어 있습니다. 여러분, 제가 지난 1년동안 성도님들의 헌금 통계를 낸 것이 다 나와서 가지고 있습니다. 제가 그 통계를 책상위에 놓고 보면서 기도하고 있습니다. “여기에 낸 이 헌금들이 그냥 헌금으로만 하지 마시고 상급의 축복으로 복귀해 주십시오”라고 기도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여러분, 우리교회서 지난해에 내신 성미가 18가마가 나왔습니다. 전에 외국에 계신분이 저에게 이런 질문을 했습니다. 시간이 좀 갑니다만 들어보십시요. 참으로 대한민국은 성미를 낼 수 있으니까 좋다고 그래요. 빵 먹는 나라는 밀가루를 퍼내겠느냐는 겁니다. 그러면서 참으로 대한민국은 복을 받을 수 밖에 없다고 그래요. 저 노르웨이나 북 유럽쪽의 핀란드의 헬싱키등 그런쪽에는 주식이 감자입니다. 거기는 밀가루가 주식이 아니라 감자가 주식이에요.
그래서 서유럽이나 남유럽, 미국도 마찬가지로 밀가루가 주식이라 성미를 낼 수가 없다고 그래요. 그러면서 코리아 넘버원이라고 그래요. 그저 보리쌀도 떠내고 쌀도 떠내고 팥도 떠내고 하는데 자기들은 그렇게 할 수가 없다고 그래요. 그러면서 ‘우리는 어떡하면 좋으냐?’고 하는 질문을 전에 받은 적이 있습니다. 그래서 ‘내가 아느냐? 당신들 마음대로 해라’ 안 그러면 한국으로 이민을 오든지하면 간단하다고 그랬어요. 여러분, 우리교회에서 성미 18가마가 나왔다는 것은 대단한 겁니다. 그것 역시 책상위에 얹혀놓고 기도를 하고 있습니다. 여러분, 우리나라 역사에서 옛부터 성미 내고 복 못 받은 역사가 없습니다. 우리나라가 축복받은 것이 절대 정치를 잘해서 축복받은 것이 아닙니다. 정치는 엉망이어도 하나님이 사랑하는 기독교인이 있기 때문에, 새벽예배가 있기 때문에, 성미를 바치기 때문에 이 나라가 축복을 받은 것입니다. 절대 정치 잘해서 축복받은 나라 아닙니다. 하나님의 기뻐하는 종들이 있기 때문입니다.
오늘 여러분, 제사로 무엇을 맺고 있어야 된다고 했습니까? 예배를 통해 계약을 맺어야 됩니다. 그러면 환난 날에 하나님이 반드시 그를 구원하십니다. 하나님은 분명 제사로 언약을 맺은자를 모은다고 했습니다. 이것이 신원의 날의 역사입니다. 이 심판 날에 구원하시는 역사는 영혼구원뿐 아니라 영과 육의 구원입니다. 오늘날 제사로 계약을 맺은 자, 제사로 동맹을 맺은 자는 말씀을 붙든 자입니다. 여러분은 말씀대로 될 줄 믿고 이 말씀을 그대로 붙드시길 바랍니다.
여기 본문에 공의로운 재판장이 나오시는데 하나님은 절대로 부정이 없는 분입니다. 인간은 아무리 재판을 잘해도 우리 재판장이신 주님만큼 재판을 못합니다. 주님은 공의로운 재판장이요 의로운 재판장이십니다. 여기 재판한다는 단어가 ‘샤파트’입니다. 공정하게 재판 하겠다는 겁니다. 그리고 본문을 자세히 보면 “나의 성도들”이라고 그랬습니다. 처음에는 “우리의 하나님”이라고 하시더니 “나의 성도”라고 한 것을 보십시요. 그러면서 “그들을 내 앞에 모으라 곧 제사로 나와 언약한 자니라 하시도다”라고 합니다. 그리고 “하늘이 그 공의를 선포하리라”고 했는데 “이런 심판과 구원이 행해졌다고 하늘이 선포좀 하라”는 것입니다. 또한 ‘하나님 그는 재판장이심이로다’라고 하면서 이렇게 만물 앞에 선전 포고하는 것이 나옵니다. 오늘 이 아삽의 시를 보면요 벌써 천몇백년 전에 마지막 날을 내다보고 이 말씀을 하시고 그 말씀을 오늘날 우리에게 주십니다. 오늘 여러분은 “환난 날에 제사로 언약한 백성을 모으라”고 할 때에 그 주인공들이 되셔서 환난 날에 육체구원을 받는 귀한 종들이 다 되시기를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