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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구원과 영생은 거저 주신 선물이다
에베소서 1장 4절에 보면 선악과 사건 훨씬 이전부터 우주도 만들기 전에, 이 땅이 생기기도 전에 우리를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이미 결정해 놓으신 것이다. 하나님께서 지구를 중심으로 이 넓은 우주를 창조하시기도 전에 이와 같은 설계가 이미 예정되어져 있다는 것은 하나님만이 하실 수 있는 능력이다. 창세 전에 그리스도 안에서 선택되었다는 말은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하나님의 자녀로 미리 결정해 놓았기 때문에 반드시 이루신다는 말씀이다. 선택은 하나님의 주권하에서 우리가 어느 시대에 어디서 예수를 어떻게 믿어야 될 것과 어느 교회에 가서 말씀을 붙들고 준비할 것인지에 대해서도 하나님의 예정된 섭리대로 이루어지는 것이다.
우리 인간이 하나님의 예정된 프로그램을 바꿀 수가 없고 진행 과정도 벗어날 수 없다. 이 예정과 선택은 무조건 그분의 사랑 안에서 결정되었기 때문에 기도의 응답도 예정 안에서만이 얻을 수가 있다. 예수 그리스도와 인간과의 관계를 맺을 수 있었던 것은 범죄한 자가 죄의 문제를 스스로 해결할 수 없기 때문에 아들을 이 땅에 보내어 희생하므로 죄를 용서받게 하였다. 이러한 결정까지도 범죄하기 전에 이미 예정되어 있기 때문에 그 누구도 이러한 뜻을 막을 수가 없다. 그러므로 아담이 선악과를 먹게 되므로 하나님의 계획이 바뀐 것은 아니다. 또한 진행 과정에 뜻하지 않은 사고가 생기므로 예정이 취소되거나 어떤 변동(變動)이 온 것도 아니다.
우리가 얼핏 생각하기에는 아담과 하와가 연약하여 미혹을 받으므로 실패한 것 같지만 더 큰 뜻을 이루기 위하여 각본대로 뱀을 등장시켜 자기의 맡은 역(役)을 충실히 하도록 한 것이다.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지는 진행 과정에서 하나님의 자녀로 선택받은 자는 자신이 잘나서가 아니고 가문이 좋고 지식이 있어서도 아니다. 이 축복은 똑똑해서 얻어지는 것도 아니며 그 누가 부탁해서 된 것은 더더욱 아니다. 예정과 선택 자체가 아무 조건이나 값도 없이 주신 하나님의 은혜요 선물(膳物)인 것이다.
'내가 예수를 믿고 구원을 받아야겠다'고 생각하고 태어난 사람은 아무도 없다. 선택을 입은 자는 전혀 몰랐는데 하나님이 우리를 창세 전에 예정해 놓았다가 때가 될 때에 불러주신 것이 오늘의 현실로 나타난 것이다. 하나님의 백성으로 예정을 입은 자는 부족하다고 포기하거나 때가 왔는데도 연기하지도 않고, 반드시 어떠한 방법으로든지 불러내어 예수를 믿게 하고 자기의 사명을 수행하게 하는 것이다. 이와 같이 하나님의 심오(深奧)한 목적을 창세 전에 세워 놓으시고 그 각본(脚本)대로 모든 일이 질서 있게 이루어져 가는 과정 중의 하나가 선악과 사건이다. 미련한 인생은 선악과 사건과 메시야를 통한 구원의 역사를 깊이 생각해 보지도 못하고 받은 축복을 고마워할 줄도 모를 때가 많다. 첫 아담 때문에 모든 사람이 죽음을 얻게 된 것 같이 마지막 아담인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영생의 선물을 얻게 해 주신 은혜를 잊어서는 안 된다. 그러므로 죽음의 고통을 알지 못하는 자는 영생이 얼마나 귀한 것인 줄 모른다. 귀한 것을 모르면 귀한 것을 주신 그분께 고마워할 줄도 모르게 되는 것이다.
환난을 당했을 때 평안의 감사를, 질병의 고난에서 건강의 감사를, 멸망에 빠지는 것을 볼 때 구원의 감사를 하게 되는 것이다. 인생은 어려움이 왔을 때 체험을 통하여 귀한 것을 알고 감사하는 것을 배우게 된다. 항상 축복만 있을 때에는 감사할 줄 모르는 것이 미련한 인생인 것이다. 창조 후 지금까지 인생이 살아가는데 없어서는 안 될 태양과 공기를 값없이 주신 하나님께 감사하여 한 번이라도 감사 예물을 드린 적이 있는가? 가장 귀한 것인데도 귀한 줄도 모르고 감사할 마음조차 없지 않았던가. 그 이유는 그것에 대한 고통을 느껴보지 못했기 때문이다. 직접 체험해 보지 못한 인생은 감사에 너무나 인색(吝嗇)한 것이다. 그러므로 이 땅에 사는 주의 백성들이 당하는 시련은 주의 나라에 가서 감사할 조건이 되는 것이며, 또 감사를 배우기 위한 것이라는 것을 알아야 한다.
5) 하나님을 아버지라 부르게 된 동기는 선악과 때문이다
하늘에 속한 신령(神靈)한 복을 주시기 위하여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예정하시고(엡 1:4),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아들들이 되게 하셨다. 또 죄를 용서하시고 하늘에 있는 것이나 땅에 있는 것이 그리스도 안에서 통일되게 하려 함이라고 했다(엡 1:10). 아담으로부터 구약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을 아버지라고 한 번도 부르지 못했다. 하나님을 아버지라고 부르게 된 동기는 선악과 때문이다. 선악과 때문에 죄가 들어왔고 그 범죄 때문에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 땅에 오셔서 죄의 문제를 해결하시고 창조주 하나님과 원죄의 담을 헐어 버리신 것이다. 그러므로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 땅위에 오셔야 모든 것이 그분 안에서 통일되어 하나가 되는 것이다. 선악과로 인해 죄가 이 땅에 들어왔고, 죄의 댓가는 두려움이요 그 결과는 사망이었으나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인류의 모든 죄를 다 해결하게 되었고, 또한 현재부터 과거나 미래까지 어떠한 죄라도 예수의 피로 깨끗하게 할 수 있도록 하신 것이다.
하나님의 자녀가 되어 영생을 얻게 되고 영원한 나라를 약속받은 것은 예수 자신의 십자가의 피가 없었다면 상상하기도 어려운 일이다. 이 큰 역사를 하나님께서 이루었다는 것을 모세를 통해 기록해 놓았고 훗날 사도와 선지자들을 불러 이 사건을 다시 확인해 놓았다.
"하나님은 약속을 기업(基業)으로 받을 자들에게 그 뜻을 변치 않으신다"는 약속까지 하셨고, 그뿐 아니라 하나님께서는 이 일에 대하여 거짓말을 하지 않으신다고 말씀하셨다(히 6:17-18). 이 약속은 앞에 있는 소망을 얻으려고 피하여 가는 자들에게 확신을 주는 말씀이요, 큰 용기와 위안이 되는 말씀인 것이다. 하나님께서 모든 것을 예정하실 때에 하나님 자신의 영광을 위하여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선택된 백성은 하늘 이 끝에서부터 땅 저 끝까지 다 찾아내신다고 하였다. 그리고 또 선지자들을 통하여 약속하신 말씀은 하나님 자신의 명예를 걸고 실천에 옮기시는 일이기 때문에 진행하실 때에 거짓말이 있을 수 없다.
하나님은 첫 아담은 폐(廢)하시고 마지막 아담인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세워질 나라를 위하여 기나긴 세월 동안 어두움도 이용하였고 빛도 나타내었고 자연 환경도 적절하게 사용하여 역사를 계속 진행하였다. 이러한 목적 속에 하나님께서 창조한 모든 것들이 필요치 않은 부분이 없고 역사하시는 과정에서도 악한 자나 선한 자를 적절히 사용하시므로 섭리하신 뜻을 이루고 계신다. 하나님은 예수 그리스도를 보내기 전에 아담을 먼저 세우셨으나 육의 사람을 통해서 나라를 이루실 목적은 아니었다. 전지전능하신 하나님께서 천지 창조와 구속의 방법을 계획하실 때에 얼마든지 다른 방법을 세워서 영광을 받으실 수 있으나 창세 전에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낮에 속한 나라를 회복하시겠다는 계획을 세워 놓았기 때문에 변할 수 없다.
에베소서 2장 4절을 보면 "긍휼에 풍성하신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신 그 큰 사랑을 인하여 허물로 죽은 우리를 그리스도와 함께 살리셨고 너희가 은혜로 구원을 얻은 것이라"고 하였다. 하나님께서는 인간들의 범죄를 용서하기 위하여 아들을 예비하시고 죄로 죽었던 자를 살려주시는 사랑을 베풀어 주신다는 약속을 하였다. 요한일서 4장 9절에서 10절을 보면 "하나님의 사랑이 우리에게 이렇게 나타난 바 되었으니 하나님이 자기의 독생자를 세상에 보내심은 저로 말미암아 우리를 살리려 하심이니라 사랑은 여기 있으니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한 것이 아니요 오직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사 우리 죄를 위하여 화목제(和睦祭)로 그 아들을 보내셨음이니라"고 하였다.
아무 조건 없이 아들을 보내시고 죄를 그에게 담당시켜서 화목제물로 삼으셨다고 하신 것은 그 누구도 생각할 수 없는 십자가의 사랑을 실천하도록 하신 것이다. 우리 인간의 사랑은 이익을 전제(前提)로 한 계산적인 사랑이다. 계산적인 사랑은 자신의 이익이 있을 때는 사랑하고 이익이 없을 때는 사랑을 버리게 된다. 그런데 주님의 사랑은 무조건 희생하며 주는 사랑(ajgaph아가페)이다. 예수 그리스도의 희생적인 사랑 안에서 우리를 택하시고 그의 피를 통하여 흠이 없게 하셨고, 아들의 영을 받게 되었다. 그러므로 창조주 하나님이 나의 친아버지가 되었고 죄인 되었던 우리는 아들의 자격으로 사랑을 받게 된 것이다.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의 피가 아니면 아들의 자격을 얻을 수가 없다. 그러므로 천지 만물을 창조하시고 주관하시는 신을 아버지라 부를 수 있는 종교는 기독교밖에 없다. 그러나 첫 아담이 하나님을 아버지라고 부르지 못하였고 그 유명한 믿음의 조상 아브라함이나 모세나 사무엘, 엘리야 그 어느 누구라도 하나님을 아버지라고는 한 번도 불러보지 못하고 죽었다.
아버지와 아들의 관계는 혈통의 관계이기 때문이다. 첫 사람 아담으로부터 예수가 이 땅에 올 때까지 수천 년 동안 모든 백성들이 하나님을 아버지라고 부르지 못하였으나 우리가 아버지라고 부를 수 있다는 것은 예수님의 피의 은총(恩寵)을 입었기에 예수께서 부르시는 아버지를 우리도 아버지라고 부끄러움 없이 부르게 된 것이다. 우리는 모두 범죄로 인하여 죽었던 자였으나, 마지막 아담인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의 죄를 대신하여 죽으시고 새 생명 안에서 다시 살려주셨으니 이것만도 감사한 일인데, 아들의 영을 또 주셔서 하나님을 아빠(ABBA) 아버지라 부르게 하셨으니 영원히 잊을 수 없는 은혜를 입혀 주신 결과가 아니고 무엇이겠는가(갈 4:6).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못박혀 죽으시고 부활하신 날 아침에 막달라 마리아가 향유를 가지고 무덤에 왔을 때에는 이미 부활하신 이후였다. 마리아는 시신이 없는 빈 무덤을 바라보고 기뻐해야 되는데 슬픔에 잠겨 울고 있을 때에 부활하신 주님께서 "누구를 찾느냐"고 물으셨다. 그 때 마리아는 동산 지기인 줄로 알고 우리 선생님의 시신을 어디다 두었는지를 물었으니 사랑했던 주님을 알지 못하고 있었던 것이 분명하다. 예수께서 "마리아야" 하시거늘 마리아가 돌이켜 "랍오니여(선생님이여)"라고 하며 잡으려고 하였다(요 20:15-16). 예수께서 "나를 만지지 말라 내가 아직 아버지께로 올라가지 못하였노라"고 하시면서 "내 아버지 곧 너희 아버지, 내 하나님 곧 너희 하나님"이라고 부활하신 날 아침에 비로소 막달라 마리아에게 주님이 하나님을 너희 아버지라고 소개했다(요 20:17).
이와 같이 선악과 사건이 없었다면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일이나 하나님을 아버지라고 부를 수가 없다. 그러므로 결과적으로 볼 때는 선악과가 우리에게 미치는 축복이 얼마나 크고 감사한 일인지 모른다. 만 입이 내게 있어도 그 입을 가지고 나를 구원해 주신 축복의 은혜를 늘 찬양해도 부족할 것이다. 이렇게 다정다감(多情多感)하신 주님께서는 지금도 보좌 우편에서 연약한 우리를 위하여 간구하시며 대언기도를 쉬지 않고 계신다(롬 8:33-34). 그러나 이제 이 땅에 다시 오시겠다고 하신 말씀을 기억해야 할 때가 왔다.
주께서 가실 때에 너희가 본 그대로 다시 오시겠다고 약속하였고(행 1:11), 구름 타고 강림하실 때에 각인의 눈이 그를 보겠고 그를 찌른 자들도 보게 된다고 하였다(계 1:7). 또 가실 때 처소를 예비하고 반드시 우리를 찾아오시겠다고 하였으니(요 14:1-3), 그 말씀을 붙들고 성도들은 기다리지 않을 수 없다. 많은 사람들은 종말에 전 인류(人類)의 심판이 오는 것을 무척 두려워한다. 그러나 이러한 과정은 반드시 한 번은 통과해야 새로운 날이 오게 되고, 어두움의 분수령(分水嶺)을 넘어야 찬란한 새 아침이 밝아지는 것이다. 하나님께서 준비해 두신 자녀들은 주님을 맞이할 수 있도록 독수리의 날개로 특별히 보호하실 것이기 때문에 크게 두려워할 이유가 없다. 이제 예수 그리스도의 재림과 심판은 어두운 밤 시대의 마침이요 빛의 역사가 시작되는 낮의 시대로 바뀌게 된다.
재림의 아침은 추수 때에 택한 백성들을 한 자리에 모으는 일이기 때문에 즐거운 소망 속에 오히려 그 날을 두려움 없이 감사하므로 기다려야 한다. 찬송가 중에 '시온의 영광이 빛나는 아침'이나 '황무지가 장미꽃 같이'를 찬양하는데 이것은 마지막 아담을 통해 회복(回復)하는 아침의 역사를 찬양하는 기쁨의 표현인 것이다. 천지는 없어질지라도 하나님의 계획하신 뜻은 다 이루어질 것이다. 빛의 아들들은 아침의 역사에 함께 참여하는 자가 되어야 한다. 이렇게 글을 쓰다 보니 찬송가 259장이 내 마음을 흔드는 것 같아 가사를 적어 보기로 하겠다. 우리 다 함께 힘차게 불타는 사명감을 가지고 불렀으면 좋겠다.
1절 빛의 사자들이여 어서 가서 어둠을 물리치고
주의 진리 모르는 백성에게 복음의 빛 비춰라
후렴: 빛의 사자들이여 복음의 빛 비춰라
죄로 어둔밤 밝게 비춰라 빛의 사자들이여
2절 선한 역사 위하여 힘을 내라 주 함께 하시겠네
주의 넓은 사랑을 전파하며 복음의 빛 비춰라
3절 주님 부탁하신 말 순종하여 이 진리 전파하라
산과 바다 건너가 힘을 다해 복음의 빛 비춰라
4절 동서남북 어디나 땅끝까지 주님만 의지하고
어두워서 못 보는 백성에게 복음의 빛 비춰라
먼동이 트는 새 아침의 날이 밝아 오기를 우리 빛의 아들들은 하루를 천 년같이 기다렸던 것이다. 그러므로 소망했던 빛난 아침의 나라를 사모하며 어둠의 옷을 벗어버리고 빛의 갑옷을 입자. 시온의 영광이 임하는 아침이 올 때에는 죽음이나 눈물, 고통이나 이별이 없는 나라라고 하였다. 이같이 하나님의 계획하신 뜻을 선지자들과 사도들의 입을 통하여 알려 주셨으나 그들은 그 나라를 멀리서 바라보고 사모(思慕)하였고 환영하면서도 살아서 얻지 못하고 죽었다. 이제 마지막 시대를 살아가는 성도들은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이 나라의 약속을 받았기에, 날마다 사모하면서 끝까지 참고 인내하면서 기다려야 한다. 힘들고 괴롭고 지루한 날들이 나를 괴롭히더라도 약속의 말씀이 있기에 참고 기다릴 수밖에 없지 않는가? 그러므로 모든 것을 주님께 맡기고 자신의 십자가를 벗지 않고 끝까지 참고 기다리는 자에게는 멀지 않아 좋은 일이 있게 될 것이다.
나무그림자 (2009作)
감사합니다.
항상 기뻐하며, 쉬지말고 기도하며, 범사에 감사하는 하루가 되길....
감사합니다*.*
감사 합니다..
주신 말씀 감사합니다.
선악과 사건으로 인한 축복 감사합니다
그동안 원어가 안나오고 깨진 문자가 나왔는데... 그동안 미뤄왔던 폰트작업을 좀 했습니다.
오늘 부터 원어가 나오도록 수정했습니다. 모든 pc에서 원어가 나올 것입니다.
혹시 안나오는 분은 댓글 달아 주십시오.~~
저도 원어를 잘몰라서..ㅠㅠ 이곳에는 아가페라는 단어가 원어로 쓰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