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 새 생명을 얻은 구속의 안식일
“너희의 아는 바와 같이 이틀을 지나면 유월절(逾越節)이라 인자가 십자가에 못박히기 위하여 팔리우리라 하시더라”(마 26:2).
“무교절의 첫날 곧 유월절 양 잡는 날에 제자들이 예수께 여짜오되 우리가 어디로 가서 선생님으로 유월절을 잡수시게 예비하기를 원하시나이까 하매”(막 14:12).
“유월절이라 하는 무교절이 가까우매 대제사장들과 서기관들이 예수를 무슨 방책(方策)으로 죽일꼬 연구하니 이는 저희가 백성을 두려워함이더라”(눅 22:1-2).
처음에는 천지 창조의 안식일을 기념하여 지키게 하신 하나님께서 두 번째는 애굽 땅에서 해방받아 나온 구속의 안식일을 잊지 말고 지키도록 하셨다. 이같은 역사는 정한 때가 올 때까지 모형적인 안식일을 지키게 하기 위함이었다.
참 안식일을 지키게 할 때에는 짐승의 피 대신 하나님의 독생자를 이 땅에 보내셔서 그 피를 가진 자들에게 사죄의 은총(恩寵)을 입혀주시고 새 생명 가운데서 살게 하신 날을 기념하며 이 날을 안식일로 지키도록 허락해 주신 것이다. 그러므로 고린도전서 5장 7절에 “우리의 유월절 양 곧 그리스도께서 희생이 되셨느니라”고 하였다. 하나님께서는 애굽에서 고생하던 노예 민족의 해방과 광야생활 속에서 제사 방법과 안식일을 준수하는 모든 과정을 통과하게 하신 것은 신약시대에 나타날 그림자로 출애굽 때에 미리 보여주신 것이다.
히브리서 10장 1절에 “율법은 장차 오는 좋은 일의 그림자요 참형상이 아니라”고 했다. 9절에 “첫 것(율법)을 폐(廢)하심은 둘째 것(십자가 구속)을 세우려 하심이니라”고 한 것을 보면 더욱 확실해진다. 구약시대의 모형적인 안식일은 한 주간의 끝날이 되는 그 주(週)의 마지막 토요일 날을 안식일로 지켰다. 천지 창조의 날을 기념한 안식일과 출애굽한 은혜를 기념한 안식일은 모두 토요일에 안식하였다. 이것은 모두가 모형적인 날이기 때문에 변동이 없으나 성취되는 신약시대에 와서는 어린양 되신 예수께서 다시 살아나는 역사가 있기 때문에 날을 바꿀 수 있도록 하신 것이다.
하나님 앞에 잡아드린 짐승의 피가 모형이면 제사제도도 모형이요, 제사를 드리는 안식일이나 이스라엘 민족까지 모형이 되는 것이다. 구약 백성들이 토요일을 안식일로 삼고 “황소와 염소의 피로 제사를 드려도 능히 죄를 없앨 수가 없다”(히 10:4)고 하신 것은 훗날 예수 그리스도의 피의 제사만이 사죄의 능력이 있으므로 그 때가 올 때까지 짐승의 피가 제사에 뿌려졌던 것이다.
ⓛ 주님께서 부활하신 날이 참 안식일이다
죄인을 위하여 이 땅에 오신 예수는 구약 유월절 날(금요일)에 맞추어 죽으셨고 제3일에 사망을 이기시고 부활하신 새로운 날(일요일)을 기념하는 것은 자연스러울 수밖에 없다. 만약 예수께서 유월절이 아닌 다른 날에 십자가의 죽음과 부활이 일어났다면 구약의 유월절의 구속과는 별 의미가 없게 된다.
신약시대에 와서 구약의 유월절에 드렸던 양의 피 대신 예수 그리스도의 피로 우리의 죄를 구속해 주신 날이 참제사 드리는 안식일 날이 되고 영원히 기념할 날로 성취된 것은 당연한 일이다. 구약의 유월절은 양 잡아 피를 뿌리는 법을 지키므로 출애굽의 구속을 기념하였으나 부활의 역사가 없기 때문에 날의 변동은 있을 수 없다. 그러나 신약시대의 어린양 예수는 유월절에 죽음으로만 끝나는 것이 아니다.
자신의 피를 흘려 죄인을 구속하였고 다시 살아나신 부활의 승리가 있으므로 영생을 소유하게 해 주신 날이 참안식일이 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유월절의 희생이 된 예수의 피와 부활의 영광은 나에게 직접 관계가 되기 때문에 잊을 수 없는 날로 영원히 기념해야 한다.
모든 것을 완벽하게 진행하시는 하나님께서 오랜 후에 어린양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다른 한 날을 예비하셨기 때문에 창조의 안식일의 개념이 출애굽한 구속의 안식일로 미리 바꾸어 그림자로 삼고, 참 안식일이 올 때까지 예표가 되도록 하신 것이다.
구약에 짐승의 피와 안식일 제도는 훗날에 변혁(變革)되는 안식일이 올 때까지 유한(有限)적으로 지키도록 하신 것을 깨달아야 한다. 구약 안식일 제도 때문에 오랜 후에 어린양 예수를 제물로 드리는 날이 오게 되고, 그 예수는 다시 살아나시게 되므로 부활하신 그 날을 기념하는 것이 참안식일이 될 것을 성경은 말하고 있다. 예수께서 부활하신 날을 기념하여 새로운 안식일이 되고 이 날을 지키는 백성들이 천국에 들어가서 안식을 누리게 되는 약속이 우리 앞에 남아 있다고 하신 것이 오늘의 주일 날인 것이다.
② 구약 안식일은 신약 안식일의 모형이다
구약 창조의 안식일 개념이 출애굽 때에 양의 피를 뿌리고 구속받은 것을 기념하는 안식일로 바뀌게 하신 근본 뜻을 알아야 한다. 이것은 신약시대에 예수 그리스도 피의 구속으로 이루어질 안식일을 그림자로 보여주기 위한 것이다. 안식일의 피는 모형이었으나 실제로 성취될 때는 예수 그리스도 자신의 피로 구속하였다.
히브리서 4장 4절에서 7절에 보면 “제 칠일에 관하여는 어디 이렇게 일렀으되 하나님은 제 칠일에 그의 모든 일을 쉬셨다 하였으며 또 다시 거기 저희가 내 안식에 들어오지 못하리라 하였으니 그러면 거기 들어갈 자들이 남아 있거니와 복음 전함을 먼저 받은 자들은 순종치 아니함을 인하여 들어가지 못하였으므로 오랜 후에 다윗의 글에 다시 어느 날을 정하여 오늘날이라고 미리 이같이 일렀으되 오늘날 너희가 그의 음성을 듣거든 너희 마음을 강퍅케 말라”고 하면서 다른 안식일을 거론하였다.
그러므로 히브리서 4장 9절에 “안식할 때가 하나님의 백성에게 남아 있도다”라고 한 것은 신약시대에 해당되는 말씀이다. 히브리서 4장 8절에 “만일 여호수아가 저희에게 안식을 주었더면 그 후에 다른 날을 말씀하지 아니하셨으리라”고 했다. 여호수아의 인도를 따라 가나안에 들어간 백성들에게는 여호수아를 통하여 다른 안식일을 주지 않았고 줄 수도 없었다.
구약의 모형적인 이스라엘 백성들이 안식일을 지키며 가나안을 가다가 실패했기 때문에 다른 어느 한 날을 다시 정하여 지키도록 하겠다고 했는데, 다윗 시대는 물론 아니었다. 열왕(列王)들의 시대에 와서도 날을 정하지 못했다. 안식하는 날은 아무 날이나 정할 수가 없다. 왜냐하면 안식일을 지키는 것은 구속과 관계되는 날을 지켜야 되기 때문이다.
구약 백성들이 고향으로 가면서 출애굽의 기념 안식일을 지킨 것처럼 신약시대에도 고향 갈 때에 새롭게 정해지는 구속의 안식일을 지키며 그 나라에 들어갈 것을 예언으로 기록해 주셨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신약의 안식일은 창조의 안식일이 아니고, 율법의 안식일도 아니다. 주께서 친히 십자가 피의 권세로 승리하신 안식일이요 죽었던 백성을 구속해 주신 것을 영원히 기념하여 지켜야 할 안식일인 것이다. 예수님께서 죽으시고 부활하실 날을 오랜 후에 다윗의 글에 다시 어느 한 날을 정한다고 하였다. 그 한 날은 사망 권세를 깨뜨리고 새 생명을 허락하신 날인데 그 날이 바로 안식일 날로 예비된 것이다(히 4:7-9). 예수께서 다시 살아나신 때부터 사도들이 중심이 되어 주님이 부활하신 것을 기념하여 예배를 드리며 구제도 하고 안식일 날로 지키게 되었던 것이다(마 28:1, 막 16:1, 눅 24:1, 요 20:1).
요한복음 20장 19절을 보면 안식 후 첫날 저녁 때에 제자들이 모였고 26절에 또 모였다. 사도행전 20장 7절을 봐도 사도들이 안식 후 첫날에 모여서 떡도 떼고 예배도 드렸다. 고린도전서 16장 2절에 보면 매주일 첫날에 고린도교회가 모여 연보를 했다. 계시록 1장 10절을 봐도 사도 요한이 계시를 받을 때에 주의 날에 성령에 감동되어 계시를 받았다고 기록되어 있다. 주님이 부활하신 날은 우리에게 산 소망을 주신 날이며 죽음에서 승리한 날이기에 이 날을 안식할 날로 정하여 지키는 것은 너무나 자명(自明)한 일이 아니겠는가?
구약의 모든 피와 제사제도는 예수 그리스도가 올 때까지 그림자로 나타낸 것뿐이요, 온전케 할 수 없는 제사이기 때문에 개혁할 때까지만 존재할 뿐이다(히 9:10). 왜냐하면 짐승의 피가 죄를 없이 하지 못한다고 했기 때문이다(히 10:4). 신약시대에 예수 그리스도께서 단번에 죄를 해결하셨고 개혁된 안식일 예배를 우리에게 허락하신 것을 감사하여야 한다. 히브리서 7장 12절에 “제사의 직분이 변역한즉 율법도 반드시 변역하리니”라고 했다. 신약시대가 오면 “한 사람도 제단(祭壇) 일을 받들지 아니한 다른 지파(支派)에 속한 자를 가리킨다”고 하였는데 곧 예수 그리스도를 말하는 것이다.
구약시대의 제사가 신약에 와서 그 법과 제도가 바뀌게 되므로 제사(예배)의 날도 바뀌었다. 구약시대의 제사장은 레위 지파에서 나왔는데 신약시대의 제사장은 유다 지파에서 예수님이 나왔다. 한 번도 제사 직분을 맡아보지 않은 유다 지파에서 제사장이 나와서 모든 것을 다 바꾸어 버렸고 개혁을 하신 것이다(히 7:14).
③ 한 주간의 첫날을 안식일로 지켜야한다
구약의 안식일은 매주 마지막 날에 드리게 되고 우리의 안식일은 매주 첫날을 하나님께 드리게 된다. 한 주간 실컷 일을 하고 끝날에 피곤한 몸으로 성전에 와서 드리는 예배와 한 주간의 첫날에 먼저 하나님께 감사드리고 나머지 6일을 내 날로 일하는 것과 어느 것이 하나님께 올바르게 드리는 안식일이 되며, 또 하나님이 기뻐 받으실 예배가 되겠는가? 성경적으로 보아도 하나님은 언제나 첫 것을 기뻐하시고 좋아하신다. 첫 열매, 첫 새끼, 첫 아들, 어느 것이든지 먼저 것을 하나님은 참으로 좋아하신다. 그렇다면 일주일 중에 어느 날이 하나님께서 좋아하시는 날이 되겠는가?
한 주가 시작되는 첫날에 예배드리는 것을 하나님께서 기뻐하실 것이다. 그러므로 한 날을 먼저 주께 드린 후 나머지 6일은 육신의 날로 정하여 열심히 일하는 것이 성경적인 것이다. 사업의 수입도, 농사의 첫 열매도, 가을 추수 때도 먼저 십일조를 떼어서 하나님께 드리고 나머지를 가지고 사용할 때 하나님은 기쁘게 받으신다.
그와 같이 날도 처음 시작되는 한 날을 먼저 드린 후에 남은 6일은 우리가 활용할 수 있도록 허락을 받았으니 열심히 사용해야만 한다. 하나님께서는 생활의 수입은 십일조를 요구하시고 날은 칠일조를 요구하신다. 어쨌든 우리 믿는 성도들은 토요일이든 일요일이든 어느 한 날을 의무적으로 지켜야 하지 않겠는가? 토요일과 일요일 두 날 중에 한 날을 택하게 된다면 어느 날을 선택하겠는가? 죽었던 나를 살려주신 주님을 생각하며 안식일로 지키는 오늘의 주일이 더 은혜가 되고 감사가 될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에게 주신 이 날을 감사하고 즐거워하면서 지킬 때에 주께서는 신령한 복을 주시고 육의 축복까지도 주시게 된다.
혹자는 주님이 부활하신 날이 태양신을 섬기는 날이라고 비난하고 있으나 안식일의 깊은 뜻을 잘 알지 못하기 때문이다. 만약 내가 결혼하고 기념하는 그 날이 북한 괴뢰정부의 괴수였던 김일성 생일이라고 꺼려할 이유가 있겠는가? 김일성과 내 결혼 기념일과 무슨 관계가 있단 말인가? 내 구주 예수께서 나를 대속해 주시기 위하여 죽으셨다가 부활하여 새 생명을 주셨고 하나님의 친자녀가 되게 해 주셨는데 그 날이 이방인들이 태양신을 섬기는 날이면 어떻고 태음신을 섬기는 날이면 어떤가? 우리를 살려주신 그 날이 얼마나 감사한 날인가?
이 날이 없었더라면 하나님을 모르는 백성이 어떻게 구원을 받을 수 있으며 우주의 창조주이신 하나님을 아버지라고 부를 수가 있었겠는가? 주님께서 부활하신 날을 자손만대로 기념해야 하고 주님 오실 때까지 주의 죽으심과 부활하신 날을 잊지 말고 늘 감사해야 한다. 신약의 안식일이 오기 전까지 구약의 안식일뿐만 아니라 모든 제사와 예법들까지 어김없이 율법 안에서 지키도록 하였으나 이것들은 훗날에 이루어질 예표(豫表)로 하나 하나 보여주셨고 신약시대에 와서는 이러한 제도를 폐지하셨다. 이와 같이 새로운 안식일을 주신 하나님께 깊은 감사를 드려야 하지 않겠는가? 복 되고 기쁜 이 날을 부담스럽게 여기거나 반쪽 안식일을 지켜서는 안 된다.
>> 계속 <<
(김경진 作)
감사히 읽고 갑니다.
보혈을 지나 하나님품으로~~~
(생략)
준귀한 주보혈이 내영을 새롭게 하시네...
주님~!! 감사합니다
감사 합니다..
주신말씀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