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광야에서 실패한 이스라엘 민족이 주는 교훈
율법의 모형적 안식일은 폐하게 되고 십자가 은혜 아래에서 새로운 안식일을 지키는 자들도 광야 사건을 돌아보면서 더욱 조심해야 한다. 광야생활에서 미혹을 받은 자들이 하나님을 원망하고 주의 종을 대적하다가 광야 길을 다 마치지 못하고 죽어간 사건 또한 우리들에게 거울이 된다. 복음을 먼저 받은 선민 이스라엘 백성은 하나님의 계명을 순종치 않고 거역하였기 때문에 안식에 들어가지 못하였다.
이와 같이 먼 훗날 신약시대가 올 때에도 말씀대로 주님께서 유월절 날에 십자가에 죽으시고 부활하신 이 날을 참안식일로 주었으나 이 날을 잘 지키지 못하면 역시 안식의 축복을 놓치게 된다. 이러한 역사적 사건을 출애굽 생활 속에 담아서 교훈해 주신 것은 오늘 이 시대 성도들이 깊이 생각해야 할 대목이다. 광야 길에서 말씀에 순종하는 것은 자신의 축복이요, 생명이라는 것을 알아야 한다. 새로운 시대가 올 때에 또다시 새 안식일을 주신 것을 감사히 받아들이고 마음을 강퍅케 하는 일이 생겨서는 안 된다. 그러나 또다시 하나님의 말씀에 불순종하는 자들이 있으므로 안식에 들어가지 못할 자들이 하나님의 백성 가운데 있다고 하신 것은 두려운 일이다.
신약시대에도 구약 때와 같이 환경 때문에 하나님을 원망하고 주의 종을 대적하고 진리를 거역하는 자들에게는 그 나라를 허락하지 않겠다는 말씀 앞에 자신을 한 번 돌아보아야 한다. 신약시대가 도래하여 하나님의 뜻을 따라 참안식일을 지키며 순종한 자들 중에 살아서 왕권의 유업을 받을 자들도 있고 유업도 없이 부끄러운 구원만으로 만족해야 할 종족(種族)들도 있다. 그러나 시험이 들어 모든 것에 불순종하며 불만이 가득하여 대적하다가 환난에 빠질 자들도 많다는 것이다. 또 세상 끝날까지 살지 못하고 순교를 당하여 죽었으나 1차 부활 때에 유업을 받게 될 자들도 있고 2차 부활에 참예하는 일반 성도들도 많이 있다. 그러나 특별히 살아서 유업을 이을 자는 말씀의 파수꾼이 되어 어둠의 세력과 타협하지 않고 그들과 싸워서 이겨야 한다. 그렇기 때문에 말씀의 전신갑주(全身甲冑)를 입고 싸우라고 하였다(엡 6:11).
주님과 함께 못박혔던 한편 강도는 전신갑주를 입지 않아도 구원받았다. 하지만 그는 유업이 없는 부끄러운 구원을 받게 되는 것이다. 성경은 이 부끄러운 구원을 위해 기록되어 있는 것이 아님을 분명히 알아야 한다. 한 생명이 천하보다 귀하다는 말씀을 누구든지 인용은 하고 있으나 실제로 해당되는 자는 그 시대에 역사할 사명자들뿐이라는 말이다.
모세와 함께 출애굽 역사를 일으켰던 아론은 2차 므리바 사건 때문에 호르산에서 그 옷을 벗길 때에 즉시 죽었다(민 20:25-29). 옷을 벗긴다는 것이 무엇을 의미하는 것인가? 그것은 사명을 거두어 간다는 뜻이다. 하나님께서 맡긴 제사장 직무를 수행할 때에는 그 사명이 생명보다 더 귀한 것이다. 그러나 그 귀한 사명을 거두어 들일 때에는 그 생명이 허무하게 쓰러지게 된다. 그러므로 천하보다 귀한 것이 생명이라면 그 생명보다 더 귀한 것이 사명이기 때문에 사명 없는 생명은 천하보다 귀하다고 할 수 없다. 말씀을 가지고 일할 자는 사명에만 생명을 걸고 충성해야 하며 미래의 영광은 주께 맡기고 현재에 충실한 종이 될 때에 천하의 그 어떤 것보다 귀한 자가 된다.
어려운 광야생활에서 하나님께 감사하며 순종하므로 가나안에 들어간 자는 여호수아와 갈렙밖에 없다. 그 외에는 다 어린 자녀들이었다. 마지막 이 시대에도 살아서 가나안 땅인 천국에 입성할 자들은 반드시 여호수아와 갈렙같은 사상으로 그 길을 따라가야 한다.
지금까지는 죽어서 천당 가는 은혜만 생각하고 감사하는 생활을 해 왔지만 이제는 주님이 예비하신 안식에 들어갈 때가 가까이 왔기 때문에 몸의 구속을 사모하면서 순종을 배우고 인내도 연습해야 하며 환경에 적응할 수 있는 훈련도 익혀야 한다. 안식일 문제와 안식년 축복을 막연(漠然)하게 생각할 것이 아니라 출애굽 사건과 광야에서 일어난 일들을 살펴보면서 주님께서 부탁하신 말씀대로 잘 지켜야 한다. 안식에 들어갈 약속이 우리 앞에 남아 있어도 놓칠 수가 있기 때문에 두렵고 떨림으로 구원을 이루기 위하여 말씀을 깊이 생각하지 않으면 안 된다.
출애굽 이후 40년 간 광야생활에서 모세와 여호수아 두 지도자 시대의 역사를 살펴보면 사람들의 행동에서 뚜렷이 나타난다. 모세 때의 백성들이 원망과 불순종의 세대라면 여호수아 때의 백성들은 순종과 감사의 세대였다. 가나안 땅을 향하여 갈 때 모세 시대의 역사는 1차, 여호수아 시대는 2차 역사로 나누어지는 것을 출애굽 역사 속에서도 발견할 수 있다. 모세의 1차 역사는 피의 역사요 홍해 도하(渡河) 사건과 이적 기사와 만나의 역사였다. 그리고 여호수아의 역사는 법궤 역사 즉 말씀의 역사로 도강(渡江) 사건 이후 약속의 땅을 정복하며 법궤를 앞세우는 전쟁의 시대였다. 이것이 신약에 와서 기독교의 1차 십자가 피의 역사와, 2차에는 피와 말씀의 역사로 나누어 볼 수가 있다.
히브리서 4장 2절에 “저희와 같이 우리도 복음 전함을 받은 자이나 그 들은 바 말씀이 저희에게 유익되지 못한 것은 듣는 자가 믿음을 화합(和合)지 아니함이라” 했다.
위의 단어에 ‘슁케케라메누스’는 “화합(和合)하다. 연합하다”란 뜻이다. 즉 모세에게 명령하신 하나님의 말씀을 믿음으로 화합(연합)하지 못하고 불순종하다가 낭패를 당한 이스라엘 역사를 되풀이하지 말라는 것이다. 광야에서 쓰러진 이스라엘 백성들도 모세를 통하여 말씀을 들었으나 그 말씀이 고향 가는 척도(尺度)가 되는 것도 모르고 그 종을 귀하게 여기지도 않았다. 하나님의 말씀을 귀넘어 들으면서 억지로 따라가기만 하면 가나안에 들어가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깊이 깨달아야 한다. 믿음과 순종이 연합되지 않으면 이 축복을 놓치게 된다는 것을 광야생활에서 보여준 것은 신약시대에도 이런 부류(部類)가 나오게 된다는 것을 보여준 것이다.
구약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좋은 지도자를 보내주고 고향 가는 말씀(율법)을 주었으나 그들은 감사할 줄 모르고 하나님의 뜻을 거역하다가 광야에서 쓰러지게 되므로 예비된 안식에 들어가지 못하였다. 양의 피를 가지고 나온 그들이 가나안을 놓친 것은 순간적인 실수로 일어난 것이 아니라 천지 창조 때부터 결정해 놓았다는 것이다(히 4:3).
하나님의 근본 목적은 영적 이스라엘 백성에게 초점을 맞추어 놓았기 때문에 이들이 광야에서 인내하지 못하고 환경을 원망하고 지도자에게 불평하고 시비하다가 다 쓰러질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이러한 실천적(實踐的) 교훈은 훗날 신약시대의 하나님의 백성들이 중요한 경고로 받아들여야 한다.
예수 그리스도의 피로 참이스라엘이 된 자들은 천국을 바라보며 그 안식에 들어가려면 어떤 일이 있더라도 원망과 시비는 금물(禁物)이다. 하나님의 말씀을 확실히 붙들지 못하고 베풀어 주신 은혜에 감사할 줄도 모르고 억지로 따라가다가 조그마한 시험도 이기지 못하고 불평을 하다 보면 그 마음 속에 마귀가 들어와서 농간(弄奸)을 부리게 되는 것이다. 신명기 29장 4절에 보면 이스라엘 백성이 가나안에 못 들어 간 것은 광야를 통과할 때에 큰 이적과 기사를 목도(目睹)하고도 보는 눈, 듣는 귀, 깨닫는 마음을 하나님께서 그들에게 주시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하였다. 세상 것은 잘 보이고 세상 소리는 잘 들렸으나 영적인 면에서는 소경이요 귀머거리가 되었기 때문에 가나안이 보이지 않고 그 말씀이 들리지 않고 마음에 믿어지지 않게 되었던 것이다.
시편 95편 10절과 11절의 내용도 믿음과 순종이 없을 때 미혹을 받게 되고 미혹을 받은 자는 “내 안식에 들어오지 못한다”고 하였다. 미혹을 받게 된 원인은 마음이 강퍅해져서라고 했다. 오늘날에도 예수를 믿는 사람들이 마음이 강퍅해지면 자신이 생각해 보아도 놀랄 정도로 악한 행동을 하게 된다. 성도가 성도를 미혹하거나 박해(迫害)하는 것도 가장 가까운 데서, 믿었던 사람 중에서 일어날 때에 견디기가 어렵다. 미혹받아 넘어진 자들은 과거에 은혜 받고 도움 받았던 때의 말은 한 마디도 하지 않고 모든 일에 악평과 모함으로 입에 담기조차 싫은 말을 수없이 쏟아낸다. 하나님께서 약속한 안식의 땅을 놓치게 되는 자들은 종의 말을 듣기 싫어하고 남에게까지 시험에 들게 하여 함께 넘어지게 한다. 지금 이 시간에도 마귀는 기회만 있으면 주님의 뜻을 따르는 자들을 찾아와서 간교한 미혹의 손길을 뻗친다.
이제 주 5일 근무하고 2일을 쉬는 제도가 보편화되면 안식일을 거룩히 지키기란 참 어렵게 된다. 지금도 마귀는 안식일을 온전하게 지키지 못하게 방해를 하고 있다. 국가의 큰 행사도 주의 날을 선택하고 또 주의 날에 즐거운 오락 프로그램도 더 많다. 텔레비전 프로도 아침부터 밤 늦게까지 더 재미 있고 눈길을 끌게 하여 시간을 뺏게 한다. 그래서 주일날 저녁에 좋은 프로가 있으면 신앙이 어린자는 저녁 예배에 못 가기가 쉽다. 이것도 시간을 빼앗는 미혹이 되는 것이다. 이러한 환경 속에서 살아가는 성도들은 구약시대를 답습하지 말고 각성해야 한다.
지금까지 구약의 모든 제도와 광야에서 일어난 사건과 내용을 다시 함축(含蓄)해 보면 그것은 신약시대를 위하여 모든 것을 진행시킨 것을 알 수 있다. 그 나라에 들어갈 종들이 미혹받아 넘어진 일들을 남의 일같이 생각하면 안 된다. 방심하거나 자만하면 마귀는 즉시 그 틈을 이용해서 마음에 들어와 자리를 잡는다. 그러므로 모든 일에 신중해야 하며 우리에게 주신 환경을 비관하거나 원망하지 말고 사명을 위한 준비 과정인 것을 깨닫고 감사하면서 극히 조심하여야 한다.
>> 계속 <<
(김경진 作)
우리들의 안식의 축복이 임하기를 기다리며
이새벽에 홈에 들어와 이말씀 잃고 갑니다.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실방으로 새벽예배 드릴려고 했는데 우리컴에 문제가 있는지....
꿩 대신 닭이라고... 말씀자체가 은혜입니다
새기고 또 새기어 귀한말씀을 살아내는 삶이 되길 기도 합니다
저는 생방안되어서 아프리카들어가서 예배드렸어요
저도 그랬습니다.
말씀주심에 감사합니다 철저히 말씀준비하여 마귀에게 이기게하소서
감사 합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