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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 성경 문자 속에 나타난 이웃

 

구약 속에 나오는 이웃 사랑은 문자 그대로 나의 주위에 함께 살아가는 이웃([;re 레아흐, 동료, , 친구)을 말하고 있는데 173회나 사용되고 있다. 구약 성부시대는 영적인 축복보다는 모든 것을 육적으로만 말씀하였다. 특히 율법은 윤리적인 면과 도덕적인 면을 강조하고 있으나 신약 성자(聖子)시대에는 육적인 것보다 말씀 내용을 영적으로 보아야 하는 것이 더 많이 들어 있다. 그러므로 잘못하면 해석상 오류(誤謬)를 범할 수가 있다. 그 한 예가 바로 이웃이라는 단어이다. 육적인 이웃이 영적으로 바뀌고 육신의 만나가 영적으로 말씀의 만나가 되어지는 것이다.

신약성경을 자세히 보면 이웃이란 단어는 두 종류가 있다. 그 의미는 비슷하면서도 각각 다르게 쓰인다.

 

1) 플레시온

 

이웃을 말할 때에 플레시온과 게이톤이란 단어가 있는데 플레시온은 남성명사 단수로, 게이톤은 여성명사 복수로 나온다. 이 두 단어는 모두 이웃이라는 말이지만 그 의미는 전혀 다르게 쓰이고 있다.

 

플레시온이라는 단어가 신약에는 18번 나오는데 그 중에 16번은 남성명사 단수로 나오고 2곳이 형용부사 또는 전치사로 나오고 있다.

남성명사 단수로 나오는 이웃(플레시온)은 마태복음 543, 1919, 2239, 마가복음 1231, 1233, 누가복음 1027, 1029, 1036, 로마서 139, 1310, 152, 갈라디아서 514, 에베소서 425, 야고보서 28, 412, 사도행전 727(동무)에 있다.

형용부사나 전치사로 나오는 이웃(플레시온)은 히브리서 811(나라. 사람)과 요한복음 45(가깝고) 두 곳이다.

 

신약성경에 이웃으로 나오는 플레시온은 공관복음뿐 아니라 여러 서신서에도 남성명사 단수로 나온다. 이 땅위에 하나밖에 없는 남자, 그 분이 나의 이웃이라면 누구이겠는가? 나의 어려움을 도와주고, 괴로움과 고통을 함께 해 주고, 죽음의 구렁텅이에서 건져주신 그 분, 이 땅위에 둘도 없는 그 예수가 나의 참 이웃이 아니겠는가? 죄 많은 이 땅에 오셔서 죄를 담당하여 대신 죽으시고 새 생명을 주신 주님은 외로울 때에는 친구가 되어 주시고 괴로운 일을 만났을 때에는 함께 도와주시는 분이시다. 항상 내 곁에서 역사해 주시는 예수 그리스도만이 참 나의 이웃이기에 그분을 하나님과 같이 사랑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첫째로 창조주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은 말할 것도 없고 둘째로 죄와 허물을 용서하신 이웃(예수 그리스도)을 위해서도 나의 몸과 마음과 생명을 걸고 사랑해야 한다는 것이다. 하나님과 예수 그리스도를 함께 사랑하도록 하기 위해 우리의 몸을 사랑하는 것 같이 사랑하도록 두 계명을 함께 묶어 놓은 것이다. 그러므로 이 두 계명은 나눠질 수도 없고 떼어 낼 수도 없는 사랑이며 이 사랑은 율법에서도 선지서에서도 가장 큰 계명이라는 것이다.

 

야고보서 28절에서 이웃 사랑이 최고의 법이 된다고 한 말씀의 참뜻 속에 이웃 사랑과 영생 문제가 서로 관계를 맺고 있는 것을 발견하게 될 것이다. 하나밖에 없는 나의 이웃이 되는 남자, 이 분은 아내보다도 더 사랑하고 부모나 자식보다도 더 사랑해야 할 분이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사랑의 대상을 직접 공개하지 않고 간접적으로 표현하시면서 가장 가까운 이웃(플레시온)이라는 단어 속에 예수 자신을 숨겨 놓고 말씀하셨는데, 그 이유는 알게 될 자에게만 나타내시기 위한 하나님의 묘략인 것 같다.

 

숨은 그림 찾듯이 살짝 감추어진 그 이웃을 이제 바로 알고 깨닫게 되었으니 얼마나 감격(感激)스러운가? 내가 꼭 만나야 되고 사랑해야 할 그분을 찾아 헤메다가 만났다면 그 기쁨은 비교할 수가 없을 것이다. 성경 말씀 속에 이웃을 숨겨 놓고 하나님과 함께 사랑하라고만 했을 때에 그 뜻을 알기에는 너무나 막막하고 어려웠으나 이제 그 깊은 뜻을 깨닫고 이웃을 발견했을 때에는 하늘의 보화를 자신만이 소유한 느낌이 들게 되었다. 이제 우리의 참이웃을 함께 발견한 여러분들도 같은 감격이 있으리라 믿는다.

 

참 이웃의 대한 비유

이 사람이 자기를 옳게 보이려고 예수께 여짜오되 그러면 내 이웃이 누구오니이까 예수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어떤 사람이 예루살렘에서 여리고로 내려가다가 강도를 만나매 강도들이 그 옷을 벗기고 때려 거반 죽은 것을 버리고 갔더라 마침 한 제사장이 그 길로 내려가다가 그를 보고 피하여 지나가고 또 이와 같이 한 레위인도 그곳에 이르러 그를 보고 피하여 지나가되 어떤 사마리아인은 여행하는 중 거기 이르러 그를 보고 불쌍히 여겨 가까이 가서 기름과 포도주를 그 상처에 붓고 싸매고 자기 짐승에 태워 주막으로 데리고 가서 돌보아 주고 이튿날에 데나리온 둘을 내어 주막 주인에게 주며 가로되 이 사람을 돌보아 주라 부비(浮費)가 더 들면 내가 돌아올 때에 갚으리라 하였으니 네 의견에는 이 세 사람 중에 누가 강도 만난 자의 이웃이 되겠느냐 가로되 자비(慈悲)를 베푼 자니이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가서 너도 이와 같이 하라 하시니라(10:30-37).

앞의 설명에서 이웃이 누구인가를 말했지만 객관적(客觀的)인 입장에서 어떤 사람이 참이웃이 되느냐는 것을 강도 만난 자의 비유에서 확실하게 나타내 보이고 있다. 어떤 사람이 예루살렘에서 여리고로 내려가다가 무서운 강도를 만나 거의 죽게 되었을 때 세 사람이 그 앞을 지나가게 된다.

 

하나님과 제사의 관계를 맺고 생명을 살리는 귀한 직책을 가진 제사장도 그냥 지나가므로 강도 만난 자의 참이웃에서 탈락되었다. 왜냐하면 그는 먼저 죽음에 직면한 사람을 급히 살려야 할 사명과 의무를 다하지 않고 자신도 급히 피하여 지나감으로 하나님 앞에 책망받을 행동을 하였다.

또 둘째로 제사를 돕고 하나님을 위해 봉사하는 레위인도 당연히 생명을 살리는데 솔선수범해야 하는데 죽어가는 사람을 외면하고 그냥 지나치므로 이웃이 될 수가 없을 뿐 아니라 죽어가는 사람을 외면한 행동은 용납될 수가 없다.

 

그 다음 세 번째 사람은 천대받고 멸시받는 사마리아인으로서 여행하는 중에 그를 보고 자신의 위험을 감수(甘受)하면서까지 죽어가는 생명을 살려내는 희생적인 사랑을 하게 되므로 참이웃이 되었다고 하였다. 강도 만난 현장에서 두려움을 무릅쓰고 기름과 포도주로 상처에 붓고 싸매며 응급치료를 한 다음 나귀에 태우고 주막에 데리고 가서 주막 주인에게 그를 잘 돌봐 줄 것을 부탁하고 부비(浮費, 환자에게 드는 비용)가 더 들면 내가 돌아올 때에 갚으리라 했다. 주님은 강도 만난 자의 이웃이 누구인지 물으셨다. 이 세 종류의 사람 중에 강도 만난 자의 참이웃은 죽음의 골짜기에서 생명을 건져주고 자비를 베푼 사마리아인이라고 대답했을 때 너도 가서 이와 같이 하라고 하셨다(37).

 

이 비유에서 강도는 사탄을 상징하며 핍박과 멸시를 받는 사마리아인은 예수님을 상징하였고, 주막은 오늘의 교회를 상징하며 강도 만난 자는 신앙의 상처 입은 하나님 백성을 말한다. 실제로 유대인들은 예수를 사마리아 사람이라고 하면서 멸시하고 천대하였다(8:48).

 

강도 만난 자는 이 사마리아 사람을 만나지 못했다면 생명을 잃을 수밖에 없었다. 이와 같이 하나님의 백성들이 마귀인 사탄에게 기습을 당하여 물질과 생명의 피해를 입음으로 사업이 무너지고 가정이 파탄되기도 한다. 때로는 건강의 습격을 받아 질병의 고통으로 사경을 헤멜 때도 있고 가까운 동료의 모함으로 명예에 치명타를 입고 삶의 의욕을 잃을 때도 있다. 이러한 시련 속에서 살 소망을 잃고 죽음의 골짜기에서 헤어나지 못하고 있는 자가 강도 만난 자이다. 주님은 낮고 비참한 곳까지 찾아오셔서 연약함을 담당하시고 죄악에서 죽게 된 자를 구출하여 살려 주시는 역사를 강도 만난 자의 비유를 들어 참이웃이 주님이라는 것을 보여 주신 것이다.

택한 백성이 사탄의 기습을 받아 멸망의 구렁텅이에 빠져 고통당할 때 나를 못 본 체하지 않고 찾아와서 당신의 피와 말씀으로 싸매주시고 주막인 교회까지 인도하여 놓고 가시면서 다시 이곳으로 돌아오겠다는 약속을 해 주신 것이다. 사죄의 은총과 큰 구원의 축복을 허락해 주시고 또다시 돌아오는 재림의 아침을 기약(期約)하고 떠나가신 예수 그리스도 앞에 뭐라고 말할 수 있겠는가? 이 땅에 다시 찾아오실 주님만이 진정한 나의 참이웃이기 때문에 오늘도 주막인 교회에 엎드려 다시 만나 뵙기를 눈물로 기다리게 되는 것이다.

 

지금까지 생각해 왔던 이웃의 개념이 이제 확실히 바뀌게 되었다면 보다 더 신앙의 성장을 가져오게 될 것이다. 이제부터라도 나의 생명을 구해주신 나의 참이웃을 위해 몸과 마음과 정성을 다하고 생명까지라도 바쳐 사랑하며 다시 돌아오겠다고 약속하신 그 분을 끝까지 기다려야 한다. 또 우리도 사랑의 빚을 보답하기 위하여 강도 만난 주의 백성을 찾아 주막집인 교회로 데리고 와서 그리스도의 말씀을 가지고 치료를 하고 주인이 올 때(재림)까지 보살피고 살려야 한다. 참된 주의 종은 신앙에 상처를 받아 죽게 된 자를 하나님의 말씀과 성령의 역사로 치료하여 주님의 뒤를 따라 새 생명 안에서 영생하도록 힘을 쏟는 자가 되어야 참이웃의 길에 동참(同參)하는 자가 된다.

 

영생도 모르고 내세도 없이 금수(禽獸)와 같이 살아가는 나에게 이처럼 하늘의 복을 주셨으니 그 은혜를 영원토록 감사하며 사랑으로 보답해야 한다. 나의 죄를 위해 하늘 보좌를 버리고, 이 땅에 오셔서 만 가지의 고난을 다 당하고, 나를 살려주신 그 분에게 목숨이 아까울 것이 어디 있겠는가? 이제 내가 찾은 참 이웃인 예수 그리스도를 영원토록 사랑하며 그분을 위하여 내 모든 것을 다 바쳐 사랑의 빚진 것을 갚아야 한다. 육신의 몸을 가진 내가 세상 이웃을 내 몸과 같이 사랑할 수 없었지만, 살 찢고 피 쏟아 나를 구해 주신 그분에게는 내가 사랑의 빚을 얼마나 졌는가를 생각하며 이 생명을 주께 바쳐 사랑으로 보답을 해야 한다.

 

나의 죄 값은 내 자신이 치루면서 죽어야 할 것인데 이제 우리 대신 죄값을 담당해 주신 그 분의 뜻을 받들어 조건 없이 사랑해야 할 의무를 느끼고 그분의 뜻을 따라 말씀이 어디로 인도하든지 순종해야 된다. 내가 사는 목적이 주님을 사랑하기 위해 사는 삶이 되어야 하고 나의 사업과 배운 지식과 모든 가정생활까지 참 이웃인 주님을 위한 길이 되어야 한다. 죄로 인해 멸망 받아 지옥 불에 가야 할 나를 찾아와서 살려주신 은혜는 하늘보다 높고 바다보다 깊은 사랑이 아닌가? 그 사랑을 아낌없이 주신 분이기에 이 큰 빚을 조금씩이나마 갚기 위하여 선한 사마리아인처럼 상처받은 자를 치료하며 사명을 주신 그분에게 날마다 충성으로 보답하며 살아가도록 힘써야 한다.

 

지금까지 받은 사랑도 감사한데 주님께서는 또 처소를 예비하러 가신다고 하시며 새 하늘과 새 땅의 유업을 준비하시고 이 못난 자를 위하여 왕궁 도성까지 예비해 놓고 나를 찾아오신다고 하였으니 이렇게 나를 사랑하는 그 분을 어찌 소홀히 생각할 수가 있겠는가? 내 자신뿐 아니라 아내와 자식까지 힘과 정성을 합쳐서 사랑한다 해도 그 사랑의 빚을 다 갚을 수가 없고 측량할 수도 없다.

 

나 같은 죄인 살리신 주 은혜 놀라와

잃었던 생명 찾았고 광명을 얻었네

큰 죄악에서 건지신 주 은혜 고마워

나 처음 믿은 그 시간 귀하고 귀하다

이제껏 내가 산 것도 주님의 은혜라

또 나를 장차 본향에 인도해 주시리

거기서 우리 영원히 주님의 은혜로

해처럼 밝게 살면서 주 찬양하리라

 

좋은 이웃을 만나 참사랑을 알고 405장의 찬송을 음미(吟味)할 때 또다시 마음이 뜨거워질 것이다. 못난 죄인을 살리시려 이 땅에 오신 주님! 항상 내 곁에서 힘과 용기를 주셨고 따뜻한 손길로 이끌어 주시며 위로하신 주님! 이 땅에서 하나밖에 없는 나의 진정한 이웃이 되셨으니 내가 결혼을 하고, 자녀를 낳고, 돈을 버는 목적까지 그분을 위하여 쓰도록 생각이 바뀌게 되고 기술을 배우고 후계자를 양육해도 전부 그분을 사랑하기 위한 일이 되어야 하겠다.

 

플레시온”, 이웃이라는 이 단어를 읽을 때마다 머리 속에 주님이 떠오르고 마음이 감격해질 것이다. 나의 이웃이 되신 그 분을 내 몸과 같이 사랑하겠다는 의지(意志)가 생기고 실천으로 옮길 때 신앙의 역군(役軍)이 되고 주님의 뒤를 이어 많은 사람을 주께로 인도하게 된다. 살았으나 죽은 자였던 나를 불러주시고 조건 없이 사랑해 주셨고 영생을 약속해 주셨으니 그분의 기대에 어긋남이 없도록 살아가야 하겠다. 가실 때 다시 찾아오시겠다고 재림을 약속해 주셨으니 그 이웃에 대하여 변함없는 사랑으로 꿋꿋이 기다려야 할 것이다.

 

참 이웃(플레시온)인 그분의 뒤를 따라 천국의 기업을 바라는 자는 남편의 핍박 속에서도 교회를 찾고 환경의 어려움과 생활의 고통 속에서도 주께 나와 기도하며 눈물을 흘리며 사모하게 된다. 나의 삶의 전부요 생명의 원천(源泉)인 그분에게 무엇을 드려 보답하겠는가? 늘 울어도 눈물로써 못 갚을 줄 알아 몸밖에 드릴 것 없어 이 몸 바친다는 찬송을 부르게 되는 것이다. 순교자들은 참 이웃인 예수 그리스도를 사랑하다가 자기 가족과 재산도 포기하고 신앙의 정절(貞節)을 변함없이 지키다가 죽음의 길을 선택한 것이 아닌가? 이제 신앙이 장성한 우리는 하나님을 사랑하고 또 내 이웃이 된 예수 그리스도를 영원토록 사랑하며 힘닿는 데까지 충성을 아끼지 말아야 할 것이다. 로마서 152절에 우리의 사는 목적이 이웃을 기쁘게 하고 선을 이루고 덕을 세우려 한다고 했는데도 그 이웃이 누구인지를 알지 못했다. 우리가 아침에 눈 뜨고 저녁에 눈을 감을 때까지 기쁘게 해 드릴 이웃이 누구이겠는가. 이제는 막연한 이웃을 찾지 않게 되었고 확실한 이웃을 알게 되었으니 마음 속 깊이 감사하면서 사랑의 실천으로 그분께 보답해 드려야 할 것이다. 이러한 신앙사상(信仰思想)을 가지고 다시 오시는 나의 참이웃인 주님을 사모하고 기다린다면 그 주님이 오실 때에 반드시 나를 찾아주실 것이다.

 

이웃과의 사이는 본체와 지체

에베소서 425절에 거짓을 버리고 각각 그 이웃으로 더불어 참된 것을 말하라 이는 우리가 서로 지체(肢体)가 됨이니라고 할 때에도 그 이웃이 주님인 줄은 생각지도 못하였다.

 

이제 우리의 이웃 되시고 몸체가 되신 그분이 이 땅에 오셔서 영광을 얻으실 때가 되면 주님을 사랑하던 지체도 함께 영광을 누리게 된다. 몸체가 없으면 지체는 아무 가치도 없고 자기의 일을 찾아 할 수 없게 된다. 몸체의 필요에 따라 지체가 활동을 할 때에 환영을 받고 귀한 대접을 받을 수 있고 몸체의 즐거움을 함께 나눌 수 있게 된다. 그러나 몸체가 없으면 지체는 아무 가치도 없다. 그러므로 지체는 몸체와 떨어질 수가 없고 나누어질 수가 없다. 만약 나누어진다면 지체는 죽게 된다. 왜냐하면 몸체에서 지체로 통하는 신경이나 피와 열의 모든 에너지가 차단되기 때문이다.

지체의 체온이나 신경뿐 아니라 피까지 항상 몸체에서 계속 공급을 받고 조절을 받아야 한다. 몸체가 거룩할 때 지체도 거룩해야 하고 몸체가 말씀으로 역사할 때에 지체도 그 말씀 안에서 같은 역사로 일치가 되어야 한다. 몸에 붙어 있는 지체끼리 서로 사명이 다르다고 다른 지체를 비방하거나 대적할 수는 없다. 이제 예수 그리스도는 우리의 머리가 되시고 또 몸체가 되기 때문에 지체인 우리가 몸체 앞에 외식과 거짓이 없는 행위와 솔직한 대화를 해야 하고 그분 앞에 위증자가 되어서는 안 된다.

 

야고보서 412절에 입법자(立法者)와 재판자(裁判者)는 오직 하나이시니 능히 구원하기도 하시며 멸하기도 하시느니라 너는 누구관대 이웃을 판단하느냐고 했다. 하나님께서 결정하신 대로 진행하실 때 인간은 시비나 불평을 할 수가 없다. 미련한 인생의 생각이 모자라서 입법자가 되시고 재판관이신 이웃을 잘못 판단하므로 실족할 때가 많다. 나의 이웃이 되시는 주님 앞에 인간의 생각대로 결정하여 판단하거나 거짓을 말하는 것은 큰 실수가 되므로 조심하며 삼가해야 한다. 이사야 3322절에 대저 여호와는 우리 재판장이시요 여호와는 우리에게 율법을 세우신 자시요 여호와는 우리의 왕이시니 우리를 구원하실 것임이니라하여 분명히 입법자와 재판장이신 이웃은 예수 그리스도라고 하였다.

 

로마서 139절과 10절에 간음하지 말라(7계명), 살인하지 말라(6계명), 도적질하지 말라(8계명), 탐내지 말라(10계명)고 한 것과 그 외에 다른 계명이 있을지라도 네 이웃(플레시온)을 네 자신과 같이 사랑하라 하신 그 말씀 가운데 다 들었느니라 사랑은 이웃에게 악을 행치 아니하나니 사랑은 율법의 완성이니라라고 하였으나 여기에서도 이웃은 육신적인 이웃이 아니라 생명을 버리고 죄인 된 나를 살려주신 예수 그리스도가 나의 이웃(플레시온)이 되기 때문이다. 진정한 이웃 사랑은 주님 외에는 그 누구에게도 마음을 줄 수 없는 사랑이다. 주님을 사랑하는 것이 계명의 완성이요 그분의 법을 따라 순종하는 것이 영생의 지름길이 된다. 그렇지 못할 때에는 주님 앞에 악을 행하게 되는 것이다. 악이란 하나님의 계명에 불순종하면서 세상과 간음하는 행동을 일삼고 그분의 뜻을 저버리는 범법 행위가 악이라는 것이다.

 

참 이웃이 되는 예수 그리스도를 생명을 걸고 사랑하는 자는 악을 행할 수가 없고 거짓과 불의를 용납할 수가 없다. 나의 이웃인 예수 그리스도를 사랑하는 자는 율법을 완성하는 자요 모든 계명과 말씀을 이루게 되고 모든 죄의 법까지도 다 이길 수 있게 된다고 하였다. 다시 말해서 하나님을 사랑하고 참 이웃인 예수 그리스도를 내 몸같이 사랑하게 되면 그분께서 부탁하신 뜻을 기쁘게 순종하며 섬길 수가 있다. 사랑하는 그분 앞에서 어떻게 이방과 타협하는 간음을 할 수 있겠으며, 주님의 백성을 살인하거나 주님의 것을 도적질할 수가 있겠는가?

 

이웃이 누구인 줄을 바로 알고 사랑하기 때문에 괴로운 시험이 와도 이길 수가 있고 어려움이 온다고 해도 참을 수가 있다. 모든 계명을 순종하고 이웃인 주님을 사랑할 때에 율법을 완전히 이루는 것이다. 세상적으로 나타내는 이웃 사랑은 율법의 완성이 될 수가 없다. 이 땅위에서 참 이웃인 예수 그리스도를 바로 찾으면 나의 연약함과 부족함을 먼저 아시고 때를 따라 도와주시고 지켜 주시며 인도해 주시기 때문에 두려워하거나 염려할 것이 없다.

 

저자는 늦은 감이 있지만 숨겨진 이웃을 바로 깨닫게 되었을 때에 마음이 뜨거워서 견딜 수가 없었다. 너무나 고마운 분을 이제야 알았기에 요동치는 마음을 진정할 수가 없어서 제단 앞에 엎드려 주의 이름을 부르면서 허물 많은 죄인을 감출 수가 없었다. 말씀을 읽었어도 딴전을 피운 것 같고 이웃을 보았으나 어리석고 우둔하여 미처 알지 못한 죄인이 얼굴을 들지 못하였다. 나태한 죄인의 용서를 눈물로 간구하며 지나간 과거를 고백하면서 예전에 미처 몰랐노라고, 미련하여 찾아보지 못했다고 직고할 때에, 주께서 나의 손을 잡아 넘치는 힘과 용기를 주셨다.

 

이렇게도 못난 나를 찾아 주셨고 사랑해 주셨는데 진실을 버리고 거짓을 말할 수가 있겠는가? 죽도록 사랑하고 끝까지 그 은혜에 보답을 해야 할 것이다. 사랑하는 나의 주께서 지금까지 왜 이렇게 깊이 숨어 계셨는지 만나 줄자에게만 나타나시기 위함인가!

 

너무나 무지하여 못 찾았을 뿐인가! 너무 늦게 알아본 것 같아 한편으로는 마음이 송구스럽고 죄송할 뿐이다. 그러나 매달려 보고 싶은 이웃, 그 품에 안겨 보고 싶은 마음으로 가슴이 뭉클해진다. 감격한 마음, 누구와 비교할 자 없고 변함없는 감사와 사랑을 고백하면서 끝까지 사랑할 분이기에 저 천국에 가서라도 그분 손목 꼭 잡고 사랑한다고 고백하리라

 

 

 

 

2) 게이톤

 

지금까지 플레시온(plhsivon)이라고 하는 남성명사 단수인 예수 그리스도 이웃에 대하여 설명하였으나 성경에서는 일반적인 이웃인 게이톤(geivton)이라는 단어도 신약성경에 4번 정도 나온다. 여성명사 복수로 우리 주위에 함께 살아가는 이웃을 말할 때 사용되었다. 사람과 사람이 만났을 때의 이웃이 되는 게이톤이란 단어는 이 땅위에서 내 주변에 관계되는 모든 사람을 이웃이라고 한다. 이러한 이웃에게는 목숨을 다하고 뜻을 다하여 사랑하라든지 또 네 몸과 같이 사랑하라는 말이나 큰 계명이 된다든지 강령이란 말도 없다.

이 세상에서 인간 대 인간, 육신과 육신이 함께 어우러져 살아가는 이웃(게이톤)은 서로 사랑할 때에 영생이나 가장 큰 계명과는 아무 관계가 없다. 다만 함께 공동생활을 할 때 피차 상부상조(相扶相助)할 뿐이다. 이와 같이 이웃에 대한 정의를 내리고 성경에 나타나는 이웃을 서로 다르게 표현한 것을 알게 될 때부터 이웃을 보는 생각이나 개념이 달라지고 자신의 성숙된 신앙을 알 수가 있고 이웃에 대한 깊은 사랑도 깨닫게 될 것이다.

 

이 날까지 우리가 성경을 잘 안다고 하면서도 모르고 있었던 것이 많이 있지만 그 중 하나가 이웃에 관한 문제였다. 이웃이라는 단어는 너무 익숙하고 친근해서 주께서 말씀하실 때에 그 이웃에 대해서는 자신이 생각하고 있는 모순을 발견하지 못했던 것이다.

 

참 이웃에 대하여 바른 뜻을 깨닫고 이웃 사랑과 나의 관계를 정립하고 주께서 맡겨주신 양들에게 말씀으로 잘 가르쳐서 교파를 초월하여 한국 교계를 살려야 하지 않겠는가? 이러한 뜻을 모르고 간혹 어떤 사람들은 우리의 이웃은 이웃으로 끝나야지 다른 생각은 할 필요도 없다고 말을 하거나 이 모든 것은 말쟁이들이 말을 만드는 것으로만 단순하게 생각할 수도 있다. 혹시 뜻을 달리하는 자들이 이웃에 대하여 지나친 해석을 한다고 짜증스럽고 귀찮게 여길지 모르겠지만 다시 한번 이웃에 대하여 더 깊이 성경을 상고해 보면 주님께서 말씀하신 근본 뜻을 찾을 수가 있을 것이다. 누가복음 1412절에 또 자기를 청한 자에게 이르시되 네가 점심이나 저녁이나 베풀거든 벗이나 형제나 친척이나 부()한 이웃을 청하지 말라 두렵건데 그 사람들이 너를 도로 청하여 네게 갚음이 될까 하라고 하였는데 여기에 나오는 이웃은 게이톤이다.

 

또 누가복음 156절에 집에 와서 그 벗과 이웃(게이톤)을 불러 모으고 말하되 나와 함께 즐기자 나의 잃은 양을 찾았노라 하리라했고 9절에 또 찾은즉 벗과 이웃을 불러 모으고 말하되 나와 함께 즐기자라고 했을 때는 인간 이웃(게이톤)을 초청하였다. 요한복음 98절에 이웃 사람들과 및 전에 저가 걸인(乞人)인 것을 보았던 사람들이 가로되라고 할 때도 이웃은 게이톤이다. 보통 우리가 말하는 세상 사람들이다. 나의 이웃(플레시온)을 위한 사랑은 말할 것도 없고, 예수 그리스도에게 속한 사람들은 대인관계(對人關係)도 문제가 걸리면 안 된다. 항상 서로 신의(信義)를 지키며 참된 교제와 협력을 해야 한다.

 

3) 보이는 세상 이웃(게이톤)도 사랑하자

 

이웃(플레시온) 되시는 주님을 사랑한다고 가정과 직장을 등한히 한다면 잘못된 것이다. 이 땅위에서 내 몸과 같이 사랑하지 못하는 남편과 아내 사이일지라도 모범(模範)된 가정으로 충실(忠實)한 생활을 해야 한다. 그리고 신앙을 중심으로 합심된 가정이 되어야 가정에서부터 천국이 이루어진다. 그리스도를 소유한 자는 남을 존중히 여기고 예수 사랑을 가지고 희생과 봉사하는 맘으로 살아야 한다. 그리고 항상 나의 참 이웃이 베풀어주신 사랑의 빚을 갚는다는 생각으로 그리스도의 향기를 나타내며 이방에 본()이 되어야 한다. 예수 사랑을 부르짖으면서 남에게 마음 아픈 행동은 극히 삼가야 한다.

특히 가깝고 친할수록 생각없이 던진 말 한 마디로 마음의 상처가 되게 해서는 안 된다. 항상 겸손한 마음을 가지고 누구든지 인격적으로 대할 준비가 되어야 하고, 특히 가까운 세상 이웃끼리 물질 관계에는 시험이 되지 않도록 신경을 써야 하고 모든 계산이 정확해야 한다. 피차 상처를 입게 되면 하나님의 뜻을 이루지 못한다. 우리는 대신관계의 이웃(플레시온)뿐 아니라 대인관계의 이웃(게이톤)에게도 아름다운 교통이 이루어지기 위하여 항상 자신이 먼저 희생이 되도록 해야 한다.

 

우리의 이웃(플레시온)이 되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베풀어주신 사랑에 감사해서 나의 주위의 육적인 이웃(게이톤)에게도 사랑의 빚을 갚아야 한다. 이렇게 이웃을 바로 알고 성경을 볼 때에 감격하여 그분 앞에 더욱 감사가 나오게 되고 성경을 해석할 때 혼란이나 혼선이 없게 된다. 참 이웃을 깨닫고 즐거운 마음으로 양떼를 지도하면 주의 종들은 더욱 은혜가 되고 감사와 기쁨이 될 것이다. 나의 이웃인 예수 그리스도를 내 몸과 같이 사랑할 때 그분도 나를 정다운 이웃으로 반겨 주시고 내 곁으로 찾아와서 어려운 모든 것을 도와주신다. 나의 참 이웃인 예수 그리스도가 내 곁에 있을 때에 그 소중함은 세상에 없어질 금은보화는 비교할 수가 없다. 값진 보화가 되시고 하나밖에 없는 이웃을 소유하게 된 자는 기쁨이 충만하여 큰 용기를 얻게 될 것이다. 한 많은 이 세상살이에 참 이웃인 주님과 함께 살면 큰 위안이 되고 힘이 될 것이다.

 

세상 풍랑이 일어날지라도 두려움이 없는 감사가 나오게 될 것이다. 이렇게 귀하고 좋은 참 이웃을 너무 늦게 찾은 것 같아 죄송스러운 마음을 지울 수가 없지만 아직도 숨겨진 이웃을 찾지 못한 자가 주위에 많은 것을 볼 때 안타까워진다. 늦게라도 이웃이 되는 주님을 찾은 자는 더 늦어지기 전에 찾은 것을 더욱 감사하고 기쁘게 생각해야 한다. 지금부터라도 그분의 뜻에 따라 충성하고 늘 사랑하면서 이 세상 마치는 날까지 그 이웃과 더불어 더욱 분투(奮鬪)할 각오가 서야 한다.

 

4) 비유의 말씀을 바로 깨달아야 한다

마태복음1316절에 의하면 보는 눈과 듣는 귀가 있는 제자들은 복이 있다고 하였다. 예수님은 그 당시 서기관과 바리새인들에게 영적인 소경이요 귀머거리라고 책망하셨다.

 

세상 사람들이 살아가는 데 없어서는 안 될 떡을 가지고 자신이 하늘로서 내려온 떡이 라고 비유로 말씀하셨다(6:32-35, 47-52).

세상 포도주를 가지고 영생하는 진리의 포도주로 말씀하셨다(25:6, 55:1).

세상의 빛을 비유로 예수 그리스도가 구원의 빛이라고 하셨다(1:4, 8:12).

세상에 생명체가 살아가는 데 물이 없어서는 안 된다.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절대 필요 한 물을 진리로 비유했다. 성도는 진리의 물이 없으면 살 수가 없다(4:10, 7:37-38). 물도 세상의 물이 있고 예수 그리스도의 물이 있다.

보화(재물)도 같은 단어를 가지고 세상 보화가 될 수도 있고 예수 그리스도를 보화로 표현하고 있음도 알아야 한다(6:19, 13:44, 고후 4:7).

나무로 비유하실 때도 그 말씀이 그냥 나무인지 사람을 비유한 나무인지를 알아야 한 다.

나무도 세상 나무가 있고 하나님의 자녀가 된 나무가 있다(1:3, 5:2,7, 2:21).

- 사람을 비유할 때: 9(감람나무, 무화과나무, 포도나무, 가시나무)

- 국가를 비유할 때: 4:10-12, 5:1-7, 3:10,11:17

- 예수 그리스도를 가리킬 때: 15:1

 

성경에서 세상 이웃도 있고 그리스도의 이웃도 있음을 알아야 한다. 참 이웃과 세상 이웃을 잘못 이해하면 이웃에 대한 혼돈이 올 수도 있다. 떡도 세상 떡으로 보면 안 되듯이 좀 생소한 것 같지만 이웃에 대하여서도 한번 더 깊이 생각해 보지 않으면 안 된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자녀는 보는 눈도 있어야 되고 듣는 귀도 있어야 깨닫는 자가 축복을 얻게 된다. 가장 안타까운 것은 영생을 놓친 부자 청년은 세상 것에는 부족한 것이 없어도 영의 눈이 어두워진 소경이기 때문에 보화이신 예수 앞에서도 축복을 놓치므로 가장 불행한 자가 되었다. 누가복음 1025절에서 세상에서는 막강한 힘을 가진 율법사가 주님께 나왔고 마태복음 1916절에서 22절에는 젊고 재력을 과시하는 부자 청년이 나온다. 마가복음 1017절에서 22절에는 돈 많은 어떠한 사람으로 나타나지만 이 사람들처럼 세상 물질과 권력 때문에 영생을 포기(抛棄)하는 어리석은 자가 되어서는 안 될 것이다.

 

율법사와 부자 청년은 세상 영광과 재물에는 눈이 밝았으나 보화(寶貨) 되시는 예수 그리스도가 눈앞에 있어도 영생의 보화를 보는 눈은 어두워 보지 못했다. 이와 같이 이 땅위에 사는 인생들이 영생을 소유할 수 있는 기회가 왔으나 없어질 물질이나 명예, 또는 환경 때문에 영원한 영생을 놓칠 자가 많이 있게 될 것을 간접적으로 보여주신 것이다. 예수께서 물질을 포기하고 나를 따라오면 하늘의 보화가 네게 있으리라고 알려 주셨는데도 귀한 말씀을 듣고 순종할 줄 모르고 돌아가는 것을 볼 때에 세상의 것은 풍요롭게 가지지 못해도 예수 그리스도를 소유한 자신이 오히려 감사할 것이다. 만의 하나 자신의 행위를 지나치게 믿는 부자 청년같이 되어 버리면 영생을 눈앞에 두고도 얻지 못하고 축복을 보고도 소유하지 못하게 된다.

 

우리는 이 땅에 살면서 세상적으로는 모든 것이 부족하고 모자라는 것이 많을지라도 주님이 불러주시고 사명을 주셨기 때문에 그분의 뜻을 따라야 복이 된다. 많은 노력과 희생을 각오하고라도 따라오라고 할 때 뒤돌아보지 말고 즉시 순종해야 한다. 하늘의 보화인 그리스도를 우리에게 주셨는데 머뭇거릴 이유가 아무것도 없다. 말씀이 사람이 되어 오신 주님은 모든 범죄를 용서해 주셨고 지금도 말씀의 음성으로 권면하시지만 세상 재물 때문에 귀가 둔하여지고 눈이 열리지 않아 주를 따르지 못하고 영생을 놓쳐 버리는 제2, 3의 관원들이 없다고 대답할 수 있겠는가? 주가 인도하는 길을 알고 가야 할 곳을 알았다면 어떤 괴로움이 가로막는다 해도 나의 환경에 감사하며, 열심히 제자의 길을 걷는 자가 되어야 할 것이다.

 

위에 기록된 모든 계명은 신약시대에 우리가 반드시 지켜야 할 계명이요 순종해야 할 법이기 때문에 예수께서 마지막 종들을 위하여 관원에게 말씀하신 것을 잊어서는 안 된다. 구약시대의 율법을 아무리 완벽하게 지켰다 할지라도 예수가 오신 후부터는 그분과의 관계를 다시 맺고 그 피의 은총을 입고 하늘의 보화를 소유한 자가 되어야만이 영생을 얻게 되는 것이다. 그러나 율법의 교훈을 계속 받고 진실하게 살았다고 해도 예수의 피의 은총이 없으면 그는 영생을 놓치게 되고 약속의 땅을 빼앗길 수밖에 없다. 이 시대를 살아가는 주의 종은 물질에 끌려 다니는 노예가 되지 말고 물질을 잘 다스리는 자가 되어야 하늘의 보화인 그리스도를 소유할 수가 있다. 이제 나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참 이웃 되신 예수 그리스도를 발견하였기에 내 주위에 죽어가는 세상 이웃(게이톤)을 살리는 일에도 앞장서서 훗날에 주 앞에 설 때에는 칭찬받을 수 있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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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rofile

    감사이 다읽고 이웃에 대한 비밀 두가지

    플레시온과 게이톤 을 알고 갑니다.

    글올려주셔서  감사.....감사....

  • 주님 보시기에 합당한 관계성이 형성되어지길...

    기도합니다... 감사합니다*^^*

     

  • 처음  이웃에대한 비밀을  알았을때   그감동과 흥분이  생각나고

    또  읽으면서  감동되어  감사,감사  가  계속나오네요

    주님말씀   잊지말라고   복습하도록  글올려주셔서  감사합니다

  • profile

    감사합니다.아멘입니다.

    우리는 게이톤이란 이웃이지요.

    게이톤이 뭉처 풀레시온에게로 향해 달려갑시다.

     

    • 영광
    • Feb 27, 2011 (22:41:07)

    감사합니다.

  •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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