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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다가 깰 때



 

 

로마서13:11-14

11또한 너희가 이 시기를 알거니와 자다가 깰 때가 벌써 되었으니 이는 이제 우리의 구원이 처음 믿을 때보다 가까웠음이니라

12밤이 깊고 낮이 가까웠으니 그러므로 우리가 어두움의 일을 벗고 빛의 갑옷을 입자

13낮에와 같이 단정히 행하고 방탕과 술 취하지 말며 음란과 호색하지 말며 쟁투와 시기하지 말고

14오직 주 예수 그리스도로 옷 입고 정욕을 위하여 육신의 일을 도모하지 말라

 

 

  기다림이란 만남의 대상이 있기 마련이다. 그런데 누구를 무엇 때문에 언제 어떻게 만나느냐에 따라서 결과는 다르게 나타난다. 이 땅 위에 사는 우리는 반드시 만나야 할 분이 있고, 또 그분을 기다려야 할 의무가 있다. 왜냐하면 그 분이 가실 때 다시 오시겠다고 약속을 하였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성도가 주님을 기다릴 때 아무 때나 약속도 없이, 준비도 하지 않고 기다릴 수는 없다. 하나님께서 약속해 주신 말씀의 문서대로 기다렸다가 그분을 따라 어두운 이 땅을 떠날 준비를 해야 한다.

 

  우리가 세상에서 살다 보면 별의별 사연으로 사람들을 만나게 되는 일이 있다.

 

  지금으로부터 18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 사건이다.

  미국 L.A에서 변호사 업을 하는 존헨리펙헴 이라는 사람이 자기 아내와 함께 1979년 크리스마스 때에 호화 여객선을 타고 세계 여러 미항을 여행하던 때였다. 이들 부부는 약간의 피곤함을 달래며 배 선상에 올라와서 망망한 태평양바다의 석양을 바라보면서 맥주를 나눠 마시고 장난 삼아 그 빈 병 속에“이 메세지를 발견하는 사람을 초청할 테니 아래 주소로 연락을 주십시오”라고 쓴 메모지와 1달러를 함께 넣어서 뚜껑을 닫고 재미 삼아 태평양 넓은 바다에 띄워 보냈다.

  그 후 여행을 잘 마치고 돌아와서 까마득하게 잊고 있었는데 뜻밖에도 3년이 지난 어느 날 타일랜드에서 호아벤엔구엔이라는 사람에게서 답장이 날아왔다. 변호사 부부는 첫 편지를 받았을 때 1달러로 맥주나 몇 병 사먹고 말 것이지 바보 같은 사람도 있다라고 하며 별스럽지 않게 생각하였다.

  얼마 후에 애절하게 쓴 두 번째 편지가 또 도착했다. 편지를 써 보낸 사람은 베트남 군인이었던 사람으로 동생과 함께 자기 나라를 탈출하여 낡은 보트를 타고 타일랜드로 도망가는 긴박한 순간에 파도에 출렁대며 떠 있는 맥주병을 발견하였던 것이다.

  태평양 바다 위에서 띄워 보낸 병 속에 메시지가 9000마일을 흘러 베트남 난민촌에 들어간 것도 신기하지만, 병 속에 동봉한 1달러로 편지를 부치는데 썼다는 엔구엔의 글을 더 신기하게 읽은 변호사 부부는 마음에 감동을 받아 답장을 써 보내기 시작했다. 짤막하게 기록한 메세지 때문에 국경을 넘어 서로의 사귐이 본격화되었고 엔구엔은 월남전 때 미군 병사로부터 배운 영어실력으로 쉽고 간단한 의사소통은 할 수가 있었다. 몇 년간의 교제기간 동안 엔구엔씨는 세 곳이나 난민 캠프를 전전하며 결혼도 하고 아기도 낳았다.

  엔구엔씨의 가족이 이국 땅에서 어려운 생활을 하며 살아가던 어느 날 미국에서 최고의 반가운 소식이 날아왔다. 메시지 내용은 펙헴 자신이 초청한다고 입으로 시인하고 직접 글을 썼으니 본인이 책임을 지겠다는 것이었다. 펙헴씨는 서둘러 엔구엔씨 부부와 아들 그리고 동생까지 미국으로 오는 이민 수속을 밟아 그들은 1985년 4월26 미국 L.A공항에 도착하게 하였다.

  L.A공항에서 처음 상면(相面)한 이들 양쪽 가족들은 반가움에 인사도 제대로 나누지 못하고 한동안 감격의 눈물을 흘리며 울고 있었다. 그 후 한참의 시간이 지난 다음 "참으로 잘 왔다! 기쁘다! 내 아들이라고 한들 누가 뭐라 하겠느냐!"며 반겨주는 펙헴씨의 말에 엔구엔씨는 그저 고맙다는 말 밖에 다른 말이 없었다. 엔구엔 가족은 난민 생활 때 쓰던 모든 것을 다 버리고 초청장 하나만을 들고 미국땅에 왔으나 펙헴 부부가 정성껏 마련해 놓은 아파트에서 새살림을 장만하고 신천지의 삶을 시작했다는 것이다

(1985년5월27 신문기사 중에서).

 

  바다 위에서 사경을 헤매며 살길을 찾던 형제가 빈 병 속의 메세지를 붙잡고 기적의 사나이로 탈바꿈했는데 오늘 이 시대에 우리는 병 속의 메세지보다 더 확실한 하나님의 편지를 붙잡고 있기 때문에 소망 중에 참고 기다리면 미국 L.A가 아닌 하나님의 보좌에서 최고 최대의 반가운 소식이 오게 될 것이다. 이 세상 모든 사람들은 허무한 것을 찾고 요행을 기다리고 있지만 우리는 반드시 이루어질 말씀을 수천 년 전에 선지자들과 사도들을 통하여 약속하여 주셨기 때문에 그 말씀을 믿고 어려움 속에서도 흐트러짐 없이 이 시간까지 기다려 왔다. 주님께서 이 땅 위에 다시 오시겠다고 하신 말씀을 붙잡고 낙심하지 않고 끝까지 기다린 자에게는 가장 기쁘고 복된 소식이 나타날 때 이 땅에서 힘들었던 날들은 모두 잊게 될 것이다.

 

  본문에 '때와 시기'라는 말씀이 나온다. 우리가 맹목적으로 기다리는 것이 아니라 약속의 시기가 있고 성취될 때가 있다는 것이다. 하나님께서 인류 구원을 목적하고 성육신하여 이 땅에 오셔서 죽으시고 부활하여 보좌 우편에 가신(110:1, 3:21, 2:35, 1:20) 이후로 2000년이 지나도록 다시 오시겠다는 약속을 기다리며 살았으나 너무 더디 오시는 것 같다. 그러나 기록하신 말씀대로 정한 때가 되면 승천하실 때 약속한 그대로 모든 사람들이 볼 수 있게 오신다고 하신 것을 믿고 기다려야 한다(13:26, 1:11, 1:7).

 

  천국의 소망을 가지고 살아가는 데는 신앙의 장애물이 너무나 많다. 세상은 물질의 풍요로움 속에 젖어 성도들의 시련과 고난의 끝은 보이지 않고 낙심과 좌절이 가로막을 때가 많으나 실망하여 넘어져서는 안 된다. 하나님께서 정해 놓으신 때가 있고 계획하신 시기가 있기 때문에 조급하게 서두르거나 이단자들의 소리에 흔들려서도 안 된다. 말씀하신 시대가 올 때까지 흔들리지 말고 기다려야 한다.

 

1. 시기를 아는 성도가 되어야 한다 (11)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살아가는 자는 구원받은 자로서 정죄함이 있을 수 없고 하나님의 친자녀가 되는 특권을 얻게 되었다. 그뿐 아니라 주와 함께 후사가 되고 함께 영광을 누리도록 미래가 약속이 되어 있는 것이다 (8:17).

 

  신의 계시된 말씀 속에서 시대를 내다보면 어두움이 온 땅에 덮여 빛을 만날 수가 없을 때 초림의 주님이 오셨던 것과 같이 신약말기 재림의 주님이 오실 때가 된 지금도 어두운 악의 세력이 하늘을 덮고 깊은 밤이 계속 진행되므로 의인이 발붙일 곳이 없는 세상이 된 것은 밝은 새 아침이 가까이 오고 있다는 증거이다.

 

  신앙생활을 하다가 뜻밖에 질병 때문에 괴로움이 올 때나 사업의 실패 때문에 자신의 앞길이 어둡고 답답한 일을 만날 때가 있다. 그리고 또 뜻밖에 예기치 못한 가정의 일들 때문에 사별한 사건이나 험한 세상에서 자신의 삶을 잔인하게 위협하는 실망의 그림자가 여러 모양으로 내 인생을 방해하고 있지는 않은가? 영적 밤이 계속되므로 어두운 터널을 지나가기가 힘들지만 이제 찬란한 새 아침이 밝아 올 먼동이 트고 있다는 것은 반가운 소망의 소식이 될 것이다. 주께서 새 하늘과 새 땅을 다시 회복하시는 영생의 아침이 밝아오고 있다는 말이다.

 

  "저녁에는 울음이 기숙(寄宿)할지라도 아침에는 기쁨이 오리로다(30:5)"라고 한 말씀이 얼마나 소망이 되며 위안의 말씀인가! 이제 세상 꿈을 꾸며 누워 있을 때가 아니라 정열적으로 힘을 쏟아 일어나야 할 때가 되었다. 지금까지 그리스도인들은 밤에 속한 자들의 멸시와 위협 속에서 살아왔으나 이제 무거운 짐을 진 자의 어두웠던 생활은 멀리멀리 사라질 때가 온 것이다.

 

  본문에 '시기'라는 단어가 나오는데 자기에게 주어진 일을 하는 자에게 시기는 가장 중요한 것이다. 일터에 나갈 자나, 다음날 누구를 꼭 만나야 할 약속이 있는 자는 언제까지 자고 일어나야 하는지 본인은 그 시간을 생각하고 미리 준비한다. 이와 같이 어두운 밤이 지나가고 약속의 아침을 기다리는 자는 반드시 제시간에 깨어나야 하는 그 시점을 놓쳐서는 안 된다.

 

  시기()라고 할 때 '크로노스(cro;no")'라고 하는 단어가 있고 '카이로스(kairov")'라는 단어가 있다. 크로노스는 '흐르는 시간', 또는 '시대'를 나타내는 단어로 신약성경에 56회나 사용되었다. 즉, 나그네로 있을 때(cro;no")를 두려움으로 지내라(벧전1:17)고 할 때 계속해서 흘러가는 뜻으로 크로노스가 사용되었다. 본문에 자다가 깰 때라고 하는 카이로스는 흐르는 시간이 아니고 '멈추어져 있는 시간', 혹은 '시대'로 86회나 신약성경에 사용되고 있다.

 

  "이 예언의 말씀을 읽는 자와 듣는 자들과 그 가운데 기록한 것을 지키는 자들이 복이 있나니 때(kairov")가 가까움이라(계1:3)" 할 때 여기에 쓰인 카이로스는 주님께서 정해 놓은 약속된 시간이기 때문에 변하지 않는다는 뜻이다. 

 

  바울이 예수 십자가의 구원을 로마교회에 전하면서 바로 임박한 재림을 서둘러 준비하라고 가르쳤는데 그때도 때가 가까이 왔다고 하였다. 그러나 그 이후 2000년이 지나가도록 재림의 소식은 없기 때문에 지금까지 기다리던 자에게는 절망이 될 수밖에 없다. 인간의 생각으로는 허무한 것 같고 막연하게 기다리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며 어떤 때는 기다리는 자체가 미련해 보이기도 하고 실망이 되기도 할 것이다.

 

  하나님의 날들과 시간에 관하여 인간의 머리로서는 알 수가 없다. 사람들은 과거가 있고 현재와 미래가 있어서 흘러가는 시간 속에서 그 모든 것을 생각할 수 있으나 하나님은 항상 현재에 나타나는 시간 속에서 말씀하신다. 그분에겐 미래와 과거가 없으시다. 왜냐면 지구의 자전과 공전의 시간은 인간에게 필요로 하는 시간이지 하나님의 신은 인간의 시간과 아무 관계가 없이 진행하신다. 그러므로 성도들은 언제나 자기에게 주어진 시대, 또는 시간 안에서 각성하며 준비하는 자세로 깨어 있는 신앙이 되어야 한다. 

 

  "너희가 이 시기를 알거니와"라고 한 말씀은 세상 끝날에 되어질 일에 관한 내용이지 그 당시의 로마교회를 향하여 세상 끝날에 되어질 시기를 안다고 하는 말씀이 아니다. 여기에서 '시기'는 '톤 카이론(to;n kairovn)'으로 남성명사 단수로 되어 있다. 시기에도 복수가 있고 단수가 있는데 예를 들어 1주간 동안 베풀어지는 잔치 날은 복수가 되는 날들이지만 결혼식 날은 변동할 수 없는 단수의 한 날이다. 손님을 영접하는 잔치는 며칠 동안 계속될 수가 있지만 결혼식은 한번 밖에 할 수가 없기 때문이다.

 

  예수님은 제자들이 나라 회복하심이 언제냐고 질문을 하였을 때 그 날과 그 시는 아버지 외에 아는 자가 없다(25:13)고 하시면서 그 시대에 일어나는 징조에 대하여 자세히 보고 분별하여 준비하라고 하였다. 예수님께서 이 땅에 계실 때 제자들에게 깨어 준비해야 할 시기를 비유로 말씀을 하실 때 "저녁 엘는지, 밤중 엘는지, 닭 울 때 엘는지, 새벽 엘는지"라고 한 내용 속에 반드시 준비해야 할 어느 한 '때'가 들어 있기 때문에 가장 중요한 시점을 성도들은 찾아야 된다(13:34-37).

 

  누가복음 1235절에서 37절의 내용을 보면 "허리에 띠를 띠고 등불을 켜고 서 있으라 너희는 마치 그 주인이 혼인(婚姻)집에서 돌아와 문을 두드리면 곧 열어 주려고 기다리는 사람과 같이 되라 주인이 와서 깨서 있는 것을 보면 그 종들은 복이 있으리라"고 하였을 때의 시간이 2경에나 혹 3경까지를 말하였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밤시간을 세 등분하여 저녁부터 그다음 아침까지를 1경에서 3경으로 나누었고 로마시간으로는 밤을 네 등분(1경에서 4)으로 하였다. 이렇게 나누어진 그 밤시간들 안에 하나님께서 정해놓은 한 때가 들어 있음을 알아야 한다. 밤시간을 세 등분이나 네 등분으로 나누었지만 주인을 기다리는 종은 항상 깨어 있어야 하지만 주인이 오는 시기와 종이 깨어 준비해야 할 시기는 모두 다 마지막 시간대에 초점이 맞추어진 것을 짐작해 볼 수가 있다. 그렇다면 내가 살고 있는 이 시대 역시 3 또는 4경이 되는 새벽 시간대가 가장 중요하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그 날과 그 시간은 우리가 알 수 없으나 말씀하신 내용을 면밀히 살펴보면 대강 짐작해 볼 수가 있도록 암시를 하고 있다.

 

  '시기'라는 단어에 관사를 붙여 '톤 카이론(to;n kairovn)'이라고 했는데, 하나님께서 정해놓은 그 시기와 약속의 날은 바꾸거나 변경될 수도 없을 뿐 아니라 취소되거나 연기할 수도 없도록 정해 놓았다는 것이다. 오늘을 살아가는 성도들은 언제 어느 시기인지는 몰라도 주님이 오실 한 시대는 약속이 되어 있기 때문에 항상 오늘이라는 마음으로 늘 깨어 준비를 해야 된다. 그러나 마귀는 언제나 다음, 또는 내일이라는 말로 미루게 하여 준비하지 못하도록 방해를 한다(24:48).

 

  간교한 사탄의 정체를 알아야 미혹을 이길 수가 있는데 에베소서 413절에는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것과 아는 일에 하나가 되어 온전한 사람을 이루어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이 충만한 데까지 이르리니"라고 하였다. 예수를 믿는 자가 신성인 그리스도를 알 수 있는 데까지 장성한 사람이 되어야 거짓 선지자들의 간사한 유혹이나 세상 풍조에 요동치 않게 된다고 하였다. 우리가 안다고 하는 것이 신앙생활에 푯대가 되고 무기가 되기 때문에 실수하거나 넘어지지 않게 된다. 

 

  어떤 노인이 축구 경기를 보다가 공 하나를 가지고 왜 저렇게 뛰어다니고 싸우느냐 공 하나를 더 넣어주면 덜 싸울 것이 아니냐고 했다. 이치적으로 얼마나 멋진 소리인가? 그러나 이 노인은 축구가 뭔지 경기 자체를 전혀 모르고 있는 것이다. 차라리 가만히 보고만 있었더라면 더 좋았을 것이다. 이 시대 기독교인들도 뭔가를 잘 모르면서도 말들을 많이 하고 있다. 많은 문서 중에 신이 기록한 말씀을 알게 된다는 것이 얼마나 귀한지 모른다. 신의 도움이 없이는 신의 소리를 깨달을 수 없고 기록한 말씀을 이해할 수가 없다. 하나님께서는 말씀을 준비해야 할 자에게는 자신의 뜻과 계획을 알게 하시고 그 시대의 선구자가 되게 하신다.

 

  마태복음 2439절에 보면 홍수가 나서 저희를 다 멸할 때까지 죽임을 당할 자는 깨닫지 못하는 것과 같이 인자가 임할 때에도 그와 같은 사건이 발생한다고 하였다. 그 당시에 양을 잡아 제사 드린 가정이 노아 한 가정밖에 없었겠는가? 양을 잡고 피를 뿌리며 하나님께 제사 드리는 백성이 많았으나 물 심판은 피할 수가 없었다. 노아의 가정만 미리 방주를 준비하였기 때문에 구원을 얻게 된 것이다. 창세기 6장에 보면 노아는 의로운 자라고 하였고 하나님의 명령에 따라 방주를 준비하였다. 그러나 다른 사람들은 심판의 경고를 무시하고 아무 준비도 하지 못했다고 하였다. 이러한 일들은 우리의 거울이 되어 마지막 불심판 날에도 노아 때와 같다고 하였다면 깨달아야 할 자가 깨닫지 못할 때에 자신의 비극뿐 아니라 남에게까지 환난을 당하게 할 자가 많다는 것이다.

 

  하나님께서 정해놓은 마지막 시기는 우리에게 반복적으로 오는 것이 아니다. 우리가 계절의 변화와 나타나는 상태를 보고 '아! 봄이 왔구나!, 여름이 왔구나!'하고 그 시기를 알듯이 마지막에도 역시 우리 앞에 일어나는 징조를 살펴볼 줄 알아야 한다. 이 시대에 일어나는 사건을 보면 이 세상이 어느 시점에 와 있는지 짐작할 수가 있고 이 어두운 밤의 때가 지나면 날이 새어 아침이 올 것도 내다볼 줄도 알아야 한다.

 

  첫째 아담의 후손들은 어두운 밤에 속해 있기 때문에 모든 활동이나 생활들이 사망과 관계를 맺고 있으나 마지막 아담이신 주님은 낮의 사람이기 때문에 그에게 속한 자들은 모든 죄의 고통과 사망의 그늘에서 벗어나게 되었고 다시 오셔서 영원한 나라를 세우시고 친히 왕 노릇 하실 때에 성도들에게도 기업을 주신다고 하였다. 지금까지 첫째 아담에게 속한 긴 밤의 시대는 고달프고 괴로운 날들을 지루하게 지나왔으나 이러한 날도 이제 멀지 않았다. 이 밤의 마지막 시간대의 경점이 지나가면 둘째 아담이신 예수 그리스도의 역사로 시온의 빛나는 아침이 반드시 오게 될 것이다.

 

  학생이 아침에 깰 시간을 잊어버린다면 학교 가는 일을 망치게 되며 회사원이 일어날 시간을 놓쳐 버리면 출근을 망쳐 버린다. 성도가 주님 맞이할 준비를 놓친다면 바깥 어두운 곳에 떨어져 슬피 울며 이를 갊이 있게 된다고 하였다(8:12, 13:42, 22:13, 24:51, 25:30).

 

  주님 다시 올 때에 "세상에서 믿음을 보겠느냐(18:8)"고 하신 말씀은 여간 부담이 가는 구절이 아니다. 그렇게도 많은 성도들은 어떤 신앙생활을 하길래 이 말씀을 하셨을까? 지금까지 대한민국에 성도의 양적인 수가 1천만이 넘는다고 자랑을 하였으나 지금 이 시대에 와서는 양적 뿐만 아니라 질적으로도 줄어들고 있다. 현재 기독교인이 4백만에서 5백만 명이 줄었다는 신문 보도가 나왔다면 신앙의 매력은 잃어가고 전도의 문은 점점 좁아지고 있는 것이다. 얼마 전 개척하는 동역 자의 입에서 이 시대는 예수님이 오셔서 교회를 개척을 해도 부흥시키기가 어려울 것이라는 탄식의 쓴웃음을 지었는데 과히 오늘 이때가 어떤 시대인가를 짐작할 수가 있을 것이다.

 

  목사는 과잉 생산이 되어 전국에 목사 실업자가 1만 명이 넘는다는 통계 자료가 나왔으며 서울 시내만 해도 700명이 넘는 목회자가 택시기사나 부동산 및 기타업계에 종사하고 있다고 한다. 대책이 없는 지도자 양산(量産)으로 목자의 위계질서가 무너지고 불미스러운 일들이 종종 일어나는 것은 아름다운 일이 될 수가 없고 이방의 빛이 될 수도 없다. 이렇게 되다 보니 개척교회를 세워놓고 교인쟁탈전이 벌어지고 성도들 앞에 눈살을 찌푸리는 일들이 벌어지는 것은 환영할만한 것이 못 된다. 이 시대 많은 기독교인들의 신앙 상태도 하루가 다르게 퇴보하여 말씀을 듣는 귀는 점점 막혀버리고 영의 눈은 감겨진 상태가 되었다. 신앙의 불구자들은 성경책만 들고 습관적으로 교회생활을 하다 보면 형식적인 성도가 되고 믿음이 없는 의무적인 행동을 할 수밖에 없다.

 

  성도들이 신앙생활을 할 때 구속해 주신 주님의 사랑을 잊지 않고 항상 감사하는 마음으로 섬겨야지 변하면 안 된다. 사람에게도 은혜를 입었으면 고마워해야 하는데 주님께서 베풀어 주신 은혜를 소홀히 해서는 더욱 안 된다.

 

  지난해(2002년 4월20) 신문기사에 소설가 김○연의 아름다운 사랑이야기가 실렸었다. 신혼도 아닌 중년 부인의 하루일과를 소개한 것을 보면서 21세기를 살아가는 지금 이 시대에도 이러한 사람이 있다는 것은 놀라운 일이다.

  김 여인은 맨 먼저 잠자리에서 일어나 수돗물을 큰 그릇에 받아서 약품성분이나 불순물을 가라앉힌 다음 남편이 일어날 시간에 맞추어 맨 위에 맑은 물을 떠서 양치나 세수를 할 수 있도록 준비해 놓는다. 그다음에 그날 하루 동안 먹을 쌀을 목판에 올려놓고 뉘나, 반 토막 난 쌀을 골라내고 온전한 쌀로 밥을 짓는다. 사랑하는 식구들이 먹는 아침밥을 아무렇게나 지을 수 없다는 것이다. 밥을 지을 때도 식구들이 일어나 밥상에 앉는 시간에 맞추어 뜸을 들이고 방금 솥에서 떠 담은 밥을 먹도록 시간을 잘 맞춘다고 한다. 이 집에는 전기밥솥이나 보온밥통도 없다. 재래식 가마솥에 밥을 짖고 알맞게 눋게 해야 밥맛도 있고 숭늉을 끓일 수가 있기 때문이다.

  식사를 할 때는 남편 옆에 앉아 신문을 읽어주는 아내, 그뿐 아니라 그날에 입고 나갈 옷과 넥타이를 챙기고 그 다음에는 자기 남편이 더러운 땅을 밟고 가지 말라고 마당을 깨끗이 쓸어 놓아 남편이 발자국을 남기고 즐겁게 출근을 하게 한다. 그리고 퇴근해서 돌아올 때까지 남편이 못다 읽은 중요한 기사를 골라 비닐케이스에 끼워 응접실이나 침실 위에 놓아두고 좋은 서적을 읽어 놓고 기다리고 있다는 것이다.

  그뿐 아니라 메모지에 음식 이름을 적거나 음식 사진을 오려 냉장고 문에 붙여 놓고 식구들의 선택을 기다린다. 먹고 싶다는 의견이 있으면 곧 만들어 먹는다. 아무 반응이 없으면 다른 메뉴를 바꾸어 놓는다. 본인이 옷을 사 입을 때도 자기 마음대로 하지 않는다. 식구들이 좋아하지 않으면 자기가 마음에 들어도 포기한다고 한다. 친구들이나 이웃사람들은 성격적으로 문제가 있지 않으냐 그렇게 살면 얼마나 피곤하겠느냐고 동정을 하면 사랑이 있기 때문에 피곤한 생각을 한 번도 느껴본 적이 없고 늘 기쁘다고 섬기는 마음 자세가 흐트러짐이 없었다고 대답했다고 한다.

 

  오늘의 세상은 여성이 남성 우위에 올라가는 시대인데도 사랑하는 남편에게 이와 같이 정성을 쏟는다면 우리는 나의 참 남편 되신 주님 앞에 어떤 행동이 비춰지고 있는지 자신을 돌아볼 때 얼마나 부끄러운가? 우리는 나의 영원하신 참 남편 앞에 이 여인보다 더 정성을 들이고 섬길 수 있어야 하지 않겠는가? 나의 온전한 남편인 예수 그리스도 그분이 날 찾아오실 때에 혹시 마음이 상하여 섭섭해하실까? 나를 쳐다볼 때에 내 얼굴에 다른 것이 끼어 있어서 마음에 실망을 끼쳐 드리지 않을까 우리는 주의하며 살아가는 것이 신부의 기본자세일 것이다.

 

2. "자다가 깰 때가 되었다"고 하였다 (11절 中)

 

  11절에 시기를 말씀하신 다음 "자다가 깰 때가 되었다"라고 하였다.

  지금 이때가 잠을 잘 때인지, 깨어 일어나야 할 시간인지를 종이 알지 못하면 얼마나 미련한 자인지 모른다. 주인이 올 때를 기다리는 자는 아무 때나 기다릴 수 없고 그렇다고 마냥 잘 수도 없다. 만약에 기다리는 자가 초저녁부터 밤새도록 기다렸다 할지라도 새벽녘에 잠들면 더더욱 일어날 수가 없다. "너희가 이 시기를 알거니와"라고 한 것은 잘 때인지, 깨어 일어날 때인지를 아는 자가 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지혜로운 자는 제 시간에 일어날 줄 아는 자라야 자기 일을 찾아 할 수 있는 자가 된다. 일을 해야 할 자가 자기 일은 생각지 않고 계속 자고 있다면 자기가 맡은 일은 낭패가 될 것이다.

 

  본문 내용은 그 당시 로마 교인에게 해당되는 말씀이 아니고 오늘날 우리에게 필요한 말씀으로 보낸 것이다. 왜냐면 로마 교인들은 주님이 다시 오실 때까지 살지를 못했기 때문이다. 어두운 밤 시대가 지금까지 계속되므로 잠을 자고 일을 할 수가 없었으나 이제는 어두운 구석구석까지 빛이 비치게 되는 아침이 밝아오기 때문에 깨어 일어날 시기를 놓치지 말라는 것이다. 왜냐면 다시 오시는 신랑을 맞이할 준비를 해야 하기 때문이다. 그 신랑은 왕권을 가져온다고 했다(16:28). 새 하늘과 새 땅에서 영원한 축복과 영광을 베풀기 위하여 친히 강림하신다고 하였다. 이러한 놀라운 약속이 있는데 깨어 준비하지 않고 등한히 하면 이 축복을 빼앗기게 된다.

 

"자다가 깰 때가 벌써 되었다"

 

oti(호티) wra(호라) hdh(헤데) e;x(에크) upnou(휩누) e;gerqhjnai(에게로데나이)

되었으니      때가(시간)     벌써            …부터          자다가(M.S)        깨다(VP)

 

  위의 '때'는 '호라(wra)'로 시간을 나타내는 말이다. '벌써'는 지금이라는 말로, '지금 일어날 시간'이 되었다는 것이다. 우리 기독교가 지금까지 어두움에 머물러 있었으나 빛의 시대가 임박했기 때문에 깨어 일어나 준비를 하고 서둘러야 한다는 것이다.

 

  마지막 시대의 지도자들이 깨어 준비하지 못하면 소경이요 무지하여 짓지 못하는 벙어리 개라고 했다(56:10).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등한히 여기게 되면 큰 구원을 놓치고 흘러 떠내려갈까 염려하라고 하신 말씀이 자신에게 하신 말씀인지 눈여겨보아야 할 대목인 것이다(2:1-3).

 

3. 처음 믿을 때보다 가까이 온 구원이다 (11)

 

h?() ote(호테) ejpisteuvsamen(에피스튜사멘)

 보다                        처음믿을

 

  처음 믿을 때보다 가까이 온 구원이란 무엇인가? 내가 예수를 처음 믿기 시작할 때 구원은 이미 이루어졌는데 가까이 또 구원이 왔다는 것은 무슨 뜻일까?

 

  로마서 109절에서 10절을 보면 "네가 만일 네 입으로 예수를 주로 시인하며 또 하나님께서 그를 죽은자 가운데서 살리신 것을 네 마음에 믿으면 구원을 얻으리니 사람이 마음으로 믿어 의()에 이르고 입으로 시인(是認)하여 구원에 이르느니라"고 하였고, 13절에 보면 "누구든지 주의 이름을 부르는 자는 구원을 얻으리라"고 했다. 예수를 나의 구주로 믿고 입으로 시인하는 동시에 구원이 성립된다.

 

  누가복음 191절에서 10절까지 보면 세리장이요 부자인 삭개오가 뽕나무에 올라갔다가 예수를 영접한 사건이 나온다. "예수께서 그곳에 이르사 우러러보시고 이르시되 삭개오야 속히 내려오라 내가 오늘 네 집에 유하여야 하겠다 하시니 급히 내려와 즐거워하며 영접하거늘"이라고 하였다. 삭개오는 즉시 예수께 내 재산 절반을 가난한 자에게 주겠사오며 만일 남의 재산을 토색한 일이 있을 때에는 사배나 갚겠다고 하였을 때 예수께서 이 집에 구원이 이르렀다고 하였으며 이 사람도 아브라함의 자손이라고 하였다. 그런데 이 집에 "구원이 오고 있다"라고 하지 않고 "오늘 구원이 왔다"라고 했다. 

 

  사실 이 세상에서 제일 귀한 것이 목숨이고, 그 다음이 재산인데 그 재산의 절반을 내어 놓겠다고 하는 것이 절대로 쉬운 일은 아니다. 부자 청년도 예수께 왔다가 모든 소유를 가난한 자들에게 나눠주라고 하니까 재물이 많은 고로 근심하여 돌아갔다고 했는데 삭개오는 예수를 소유한 것이 너무나 뜻밖이며 큰 축복을 받으므로 물질에 마음을 두지 않았다. 또 지금까지 삭개오가 뽕나무에 올라갔기 때문에 주님을 맞이하였으며, 그래서 또 구원을 얻은 것이라고 말해 왔다. 그러나 뽕나무에 올라간 것과 구원과는 별개의 사건이다. 삭개오가 뽕나무에 올라간 것은 키가 작기 때문에 올라갔을 뿐이다. 만약 키가 3m 정도의 키가 큰 사람이었다면 나무에 올라갔겠는가? 예수님은 뽕나무에 올라간 삭개오를 보고 온 것이 아니라 삭개오가 사는 동네에 주님이 오셨기 때문에 삭개오에게 구원이 이루어진 것이다.

 

  누가복음 2342절에서부터 보면 우편강도가 주님의 나라가 임할 때 자기를 기억해 달라고 하였다. 이때 주님은 "오늘 네가 나와 함께 낙원에 있으리라"고 하지 않았는가? 이것은 구원이 바로 이루어졌다는 것이다. 예수를 믿을 때 구원은 즉시에 단회적으로 이루어진다. "주 예수를 믿으라 그리하면 너와 네 집이 구원을 얻으리라(행16:31)"고 한 것처럼 누구든지 예수를 믿게 되면 구원은 그에게 선물이 되어 장래가 보장이 되는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구원은 본문에 처음 믿을 때보다 가까이 온 구원과는 차이가 나게 된다.

 

  범죄한 인생이 하나님도 알지 못하고 이 땅에서 금수와 같이 살았지만 예수를 만남으로 하나님의 자녀가 되고 그의 피를 힘입어 이루어지는 구원의 은혜는 아무 조건이나 어떠한 대가도 없이 일반적으로 베풀어 주신 사랑인 것이다. 그러나 본문에 나타난 미래의 정점(定點)이 있는 이 구원은 아무 때나 얻어지는 것이 아니라 세상 끝 날에, 즉 주님이 오실 때에 이루어지기 때문에 기독교 역사에서 최고 축복의 꽃이요 놀라운 영광과 승리가 되는 것이다.

 

  그래서 구원은 예수 십자가 피를 믿는 즉시에 성립되는 영혼 구원과, 말씀 따라 순종하며 살다가 끝날 주님 재림 때에 쟁취하는 영과 육의 구원받는 종류로 나누어지는 것을 알아야 한다. 천국은 침노하는 자가 빼앗는다(11:12)고 한 것은 마지막 영과 육이 사탄의 세력과 싸워 이기므로 얻는 구원이기 때문이다. 이 시대 성도들은 끝까지 견디어 믿음을 굳게 지켜 이긴 자들이 되어야 이 같은 구원을 소유하는 자가 될 것이다.

 

  지금까지는 구원을 나누어보지도 않았고 또 나눌 필요도 없었다. 그냥 예수를 잘 믿고 헌금하면서 열심히 봉사하며 주를 섬기기만 하면 모범적인 기독교인이 되어 구원을 얻은 것으로 만족하게 생각해 왔다. 이러한 영혼의 구원은 성경이 있기 전에도, 또한 성경 말씀은 잘 몰라도 성립이 되었다. 아브라함이나 노아 때뿐 아니라 그 이전에도 많은 사람들에게 구원은 이루어졌다. 그런데 오늘 이 시대에는 왜 기록된 성경 말씀대로 준비하라고 하고 많은 교훈들을 우리에게 전하는 것일까? 성경은 예수를 알게 하는 신의 말씀이요, 천국을 이루실 계약이요, 축복받을 백성에게는 상급의 약속이요, 영생의 길을 안내하는 이정표가 되기 때문이다. 

 

  데살로니가전서 523절에 "너희 영(pneu'ma푸뉴마, 영혼)과 혼(yuch;푸쉬케, 생명)과 몸(sw'ma소마, 육체)을 주 예수 오시는 날까지 흠이 없도록 보전하라"고 했다. 이것은 영혼 구원의 축복뿐 아니라 육체까지 함께 구원의 축복을 받을 자들에게 영혼과 생명과 몸까지도 흠이나 티가 없도록 잘 보전하라고 말씀하신 것이다. 지금까지 모든 사람의 신앙은 몸은 죽고 썩었지만 그 영혼은 구원을 얻어 주께로 가는 것을 믿고 만족하였으나, 앞으로 우리 앞에 다가오는 구원은 죽을 몸이 죽지 않고 썩을 몸이 썩지 않고 사망을 삼키는 큰 구원의 역사인 것이다. 우리는 이 말씀을 믿고 준비해야 한다(고전15:50-54).

 

  마태복음 721절에 "나더러 주여주여 하는 자마다 천국에 다 들어갈 것이 아니요 다만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대로 행하는 자라야 들어가리라"고 했다. 영과 육이 그 나라에 들어가는 축복은 예수를 믿는 믿음만으로 되는 것이 아니고 내 아버지 뜻대로, 즉 하나님 말씀대로 살아가는 자라야 한다는 것이다. 사실 우편강도가 아버지 뜻대로 살지 못했다. 십일조를 내거나 주일 한번 제대로 지키지 않았으나 그에게는 구원이 임했다.

 

  이제 처음 믿을 때보다 가까이 왔다는 구원은 주님 오실 때 이루어질 구원이기에 작년보다 올해가 더 가까이 왔고 어제보다 오늘이 더 가까이 온 것임을 알아야 한다. 초림의 주님은 죄악에 묶여 죄의 종이 된 자를 찾아왔기 때문에 세리와 창기를 찾아왔고, 병자를 찾으셨고 강도와 같이 악한 자와 천한 자를 찾아오셨다. 그러나 다시 오실 주님은 그렇지 않다. 죄와 상관없이 자기를 바라고 기다리는 자를 구원해 주시기 위해서 다시 한 번 더 나타나신다고 했다. 죄를 심판하러 오시는 주님은 죄 있는 자를 긍휼히 여기시거나 자비를 베풀지 않으시고 용서하지도 않으신다. 앞으로 이루어지는 구원은 주 앞에 설 수 있도록 준비한 자만이 쟁취하게 되는 영생이기 때문에 두 번째 나타나는 이 구원이 중요한 것이다.

 

  이사야 5920절에도 "구속자가 시온에 임하여 야곱 집에 죄과를 떠나는 자에게 임하리라"고 한 내용도 역시 은혜시대에 대한 내용이 아니다. 초림으로 오신 예수는 죄과를 떠난 자보다 죄악에서 벗어나지 못한 자들을 찾아오셨으나 앞으로 다시 오실 그리스도는 죄와 상관없이 주님을 바라보고 기다리는 자에게 임한다고 하였다. 구속자가 임하실 때는 죄과를 떠난 야곱을 찾아오신다고 했는데 옛날 야곱은 죽고 없으나 마지막 주님 맞이할 자를 향해 야곱이라고 했다. 모태에서 복을 받기로 예정된 자가 야곱이요(9:9-13), 하나님의 축복을 자신이 생명을 걸고 빼앗아 낸 자의 이름이 야곱이기 때문에 마지막 주 앞에 설 자도 역시 싸워 이겨야 하고 자기 것으로 빼앗아 내는 자이어야 하기에 그 이름이 야곱이라는 것이다.  

 

  히브리서 928절에도 이 말씀의 뜻과 같은 짝을 찾아볼 수가 있다. "그리스도도 많은 사람의 죄를 담당하시려고 단번에 드리신 바 되셨고 또 구원에 이르게 하기 위하여 죄와 상관없이 자기를 바라보는 자들에게 두 번째 나타나시리라"고 말씀하였다. 첫 번째 오셨을 때에도 많은 죄를 친히 담당하시고 십자가에서 단번에 죽으심으로 죄로 인하여 죽었던 우리가 구원을 얻었다(9:28). 또 구원을 베풀기 위하여 주께서 이 땅 위에 두 번째 오시므로 이루어지는 구원은 영혼뿐 아니라 육체까지 구원을 얻는 영광이 되는 것이다. 주께서 첫 번째 오실 때 베풀어 주시는 영혼구원과 두 번째 오실 때 나타나는 육체구원은 차이가 너무나 크다.

 

  이같은 큰 구원과 놀라운 승리는 예수 그리스도의 피와 영혼의 양식이 되는 말씀으로만이 이루어진다. 마태복음 2442절부터 보면 너희는 깨어 준비하고 있으라고 했고, 또 충성 되고 지혜로운 종이 되어 때를 따라 양식을 나누어 주는 자가 복이 있다고 하였는데 때를 따라 얻는 양식은 무엇인가를 알아야 한다.

 

  구약시대에 이스라엘 백성들이 율법을 떠나서는 살 수가 없었듯이 은혜시대는 십자가 피가 없이는 살 수가 없고, 이제 마지막 환난 날, 즉 신원의 때는 말씀의 양식이 없으면 승리할 수가 없다. 가까이 온 구원은 말씀을 먹음으로 육체까지 변화를 받는 축복이기 때문에 일반으로 얻은 구원과는 다르게 역사 하신다. 우리는 이미 십자가의 피를 믿음으로 구원을 얻었으나 말씀의 양식으로 무장하여 적그리스도와 싸워 이겨서 마지막 환난에서 살아남는 자들이 되어야 한다. 주님 오실 그때를 대비하여 '자다가 깰 때'가 되었기 때문에 준비하라고 말씀하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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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올려주신 말씀 감사이 읽고 갑니다 ·

  • 주님의말씀이 내입에 꿀송이 처럼 달도록 깨닫게 은혜 베풀어

    주시니 감사감사 합니다 온 가족이 하나님의 전신갑주를 입고

    어떠한 궤계에도 넉넉히 이기고 남는 종으로 쓰임받길 기도합니다

    • 영광
    • Jan 12, 2011 (21:15:07)

    주신 말씀 감사합니다.

  • 너무나 귀하고 귀한 영생의 말씀입니다.놀라운 신원의 날에 대한말씀 정말 감사합니다.

  • profile

    주님의   정하신 때에  쓰임받게   하옵소서...

  • 이 시대 우리에게 주신 말씀입니다

  • 이 시대  이시기를  알게하신  하나님께  감사합니다

    • 선장
    • Mar 13, 2011 (22:03:32)
    감사 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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