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빛의 갑옷을 입을 

 





로마서 13:12-14

12밤이 깊고 낮이 가까웠으니 그러므로 우리가 어두움의 일을 벗고 빛의 갑옷을 입자

13낮에와 같이 단정히 행하고 방탕과 술취하지 말며 음란과 호색하지 말며 쟁투와 시기하지 말고

14오직 주 예수 그리스도로 옷 입고 정욕을 위하여 육신의 일을 도모하지 말라

 

 

  본문의 앞 구절에서 시기를 아는 자와 자다가 깰 때(시간)에 대해 지난 주일예배 때 말씀드렸으나 두번째는 빛의 갑옷을 입는 자에 대하여 말씀을 나누기로 하겠다.

 

  '왜 깨어야 하느냐'면 '우리의 구원이 예수를 처음 믿을 때보다 가까이 와 있기 때문에 빛의 갑옷을 입어야 된다'고 기록하였다.

 

  성경이 선포한 여러 내용 중에 "주 예수를 믿으라 그리하면 너와 네 집이 구원을 얻으리라(16:31)"고 외칠 때가 있고 주의 날이 가까이 왔기 때문에 깨어 준비하라는 경고를 할 때가 있다. 주의 계획하신 큰 뜻은 구원이다. 죄악에 빠져 하나님과 원수가 된 자를 살리기 위하여 이 땅에 주님은 임하셨고 마귀를 심판하고 거룩한 성도들의 나라를 세우기 위하여 또 임하실 때 자신의 뜻을 세우신 대로 진행하시겠다는 것을 성경으로 증명하고 있다.

 

  아담의 범죄 이후에 기나긴 밤의 시대가 지금까지 계속 되었으므로 많은 사람들이 어두움의 옷을 입고 실족하여 넘어지고 죄 아래 있었으나 이제 광명한 새 아침이 밝아 오고 있다. 이제 낮에 속한 자가 되어 빛의 갑옷을 입고 어두움과 싸워 이기고 죄과를 떠난 자가 되어야 주 앞에 설 수 있는 것이다. 그 날과 그 시는 아무도 알 수가 없고 또 알 필요가 없다. 그러나 시대적으로 볼 때에 주님 오실 때가 가까이 온 것을 알고 준비할 수 있어야 한다. 

 

  "너희가 저녁에 하늘이 붉으면 날이 좋겠다 하고 아침에 하늘이 붉고 흐리면 오늘은 날이 궂겠다 하나니 너희가 천기는 분별할 줄 알면서 시대의 표적은 분별할 수 없느냐(16:2-3)"라며 시대 분별을 하지 못하는 자를 주님은 책망하셨다.

  잘못된 종교 지도자들이 언제, 어느 날에 주가 재림한다고 헛된 소리를 하다가 기독교가 망신을 당한 적도 있었다. 그렇기 때문에 성경이 말하지 않는 부분을 인간이 말할 수는 없다.

  지금까지 예언하신 구절들을 보면 초림의 주님이 죄 많은 자를 찾아오신다는 예언이 베들레헴이라고 하신 그대로 그 땅으로 오셨고(5:2, 2:1, 2:4-7), 또 처녀의 몸을 입고 오신다고 기록하신 그대로 오셨다(7:14, 1:31, 2:5-7). 그뿐 아니라 은 30에 팔릴(11:12-13, 26:15, 27:3) 것과 십자가에 죽으시고 부활하실 것까지 다 이루어졌으나 오시는 날과 시에 대하여는 언급이 없다.

 

  하나님의 말씀은 기록된 대로 정확하게 이루어지는 것을 보면서 앞으로 이루어질 말씀도 기록된 그대로 이 땅 위에 나타날 것을 의심 없이 믿어야 된다. 또 준비하는 자는 내일을 생각하지 말고 항상 오늘이라는 시간 안에서 늘 준비하는 자가 되어야 한다.

  초림 때의 메시아를 기다리던 자들이 눈과 귀가 열리지 않았기 때문에 종교 지도자들이 하나님의 말씀을 가지고 있었으나 오시는 메시아를 알지 못하는 무지로 인하여 십자가에 못박아 죽이는 죄까지 범하고 말았다. 이 초림 때의 역사를 거울삼아 재림 때에는 이 같은 일이 재연되지 않도록 조심해야 한다.

  오늘 우리는 하나님의 깊은 뜻을 모르고 실수하는 자가 되지 말고 바로 알고 정확히 전하면서 성경이 가는데까지 따라가야 되고 성경이 멈출 때 멈출 줄 알아야 된다.

 

1. 밤이 깊었다는 것이다 (12절 上)

 

hJ()  nu;x(뉘익스)  proevkoyen(프로에콥센)

()          밤이(F.S)              깊고(F.S)

 

  밤이 깊었을 때와 낮이 가까이 올 때 우리의 자세는 어떻게 해야 되겠는가?

  지금까지 우리가 어두움의 일을 단호(斷乎)히 벗어 던지지 못했다면 깨어 일어나기가 어려워진다. 빛의 자녀들이 어두운 시대에 살지만 아침을 기다리는 파수군이 되어 늘 경성(警醒)해야 한다.

 

  밤의 시대는 세상 쾌락과 호색(好色)과 우상숭배와 싸움과 분쟁(5:19-20)의 범죄들이 난무하기 때문에 죄악의 밤이 깊어졌다는 것이다. 세상이 윤리나 도덕적으로, 살아가는 생활이 전부 밤이라는 말이다. 정치가 밤을 만났고, 경제가 밤을 만났으며, 종교가 밤을 만났다. 교회에 가도 즐거움이 없고 감사가 없어지고 기도의 힘을 잃게 되니 말씀을 들어도 영이 소성되지 못하고 마음이 뜨겁지 않게 된다. 정치, 경제, 사회, 종교, 교육이 자기 위치에서 이탈되므로 위계질서가 다 무너지고 있다는 것이다. 제자가 스승을 폭행한다는 것은 교육이 황폐화되어 버린 현상이며 인간으로써는 생각할 수도 없는 행동으로 막가는 시대의 현상이다.

 

  자식을 잘 길러 가르쳐 놓으니 부모도 몰라보고 폭행하는 일들이 일어나는 것은 혼돈의 밤을 만나 방향까지 잃어버린 행동이다. 이런 세상에서 자식을 길러도 재미가 없고, 공부를 잘 시켜서 취직을 하고, 또 결혼까지 시켜주어도 기쁨이나 웃음이 사라진다는 것은 이 땅에서는 만족이 없다는 것이다. 믿었던 동료들이 다 등을 돌리고 배신자가 될 때 사람을 믿을 수가 없고 바라보거나 의지할 곳이 없어질 때 이 땅에는 두려운 일, 괴롭고 가슴 아픈 일, 통곡할 일들이 나를 위협하고 있다.

 어둡고 긴 밤이 깊어졌기 때문에 밝고 희망찬 아침이 이제 온다는 반가운 징조들이 나타나므로 어떠한 시련이 온다 해도 주의 말씀을 붙잡고 잘 이기기를 바란다. 이런 환경이 괴롭고 고통스러울지라도 나를 강하게 만드는 과정일 뿐이며 결과는 아니다.

 

  본문에 "밤이 깊었다"라고 할 때 깊어진 '그 밤'은 단수로 단 한밤이다.

  우리가 한 가지 알아야 할 중요한 것은 육신의 생활을 위하여 매일 매일 잠을 자는 밤은 복수이다. 인생 한평생을 100년을 산다고 하면 일 년이 삼백육십 오일이라고 하는 낮과 밤이 교차(交叉)되어 36500번이 지나가야 한다면 6000년이라고 할 때 밤과 낮의 숫자가 얼마나 많겠는가? 그러나 본문은 이같이 계산되는 육의 밤들이 아니라는 것이다.

 

  아담이 에덴동산에서 선악과 사건 이후부터 지금까지 이 땅의 생활은 어두운 하룻밤밖에 되지 않았다는 것이다. 아무리 깊고 긴 밤이 계속 되었지만 아침이 오는 징조가 보인다는 것은 성도들에게는 반가운 소식이 될 것이다. 영적인 밤, 그 밤이 다 지나가면 역시 영적인 새 아침이 올 때 시온의 영광이 빛나는 아침이 된다.

 

  우리 말 번역은 "밤이 깊었다"고 했지만 원어에는 "그 밤이 다 흘러가 버렸다, 밤의 끝이 왔다"라는 말이다. 길고도 험한 밤길, 멀고도 괴로웠던 6천 년의 하룻밤이 다 흘러 지나가기 때문에 밤이 없는 낮이 가까이 오고 있다는 희망의 소리가 들리는 것이다.

 

  첫째 아담은 밤의 사람이요 어두움에 속하였으나, 둘째 아담은 낮의 사람이요, 빛에 속한 자이다. 이제 자다가 깰 때가 됐다고 하는 것은 죄악의 깊은 밤은 영원히 계속 될 수가 없고 하루가 시작되는 아침이 밝아 온다는 것이다. 새 아침이 올 때 주의 나라가 이 땅에 임하게 되므로 이날을 날마다 사모하며 기다려야 한다. 외출한 아버지가 돌아오실 시간이 가까이 왔다는 소리를 들을 때 집에 있는 식구들은 기쁘게 기다릴 수가 있을 것이다. 그러나 아무 관계가 없는 이웃집 사람에게는 기뻐하거나 반가워할 아무 이유도 없고 기다릴 필요도 없는 일이다. 그와 같이 본문 말씀도 해당되는 주의 자녀들만이 기뻐하고 반가워하며 감사하게 여길 것이다.

 

2. 낮이 가까이 왔다는 기쁜 소식이다 (12절 中)

 

"밤이 깊고 낮이 가까이 왔다"

 

hJ() de;() hJmevra(헤메라) hggiken(엥기켄)

                       낮이(F.S)                   가까왔으니(F.S)

 

  둘째로 낮이 이제 가까이 왔다고 했는데 밤이 끝나면 낮이 시작된다. 빛이 없는 어두운 밤이 지나가면 반드시 아침이 오게 되는 창조의 법칙과 같이 첫 사람 아담의 시대가 끝날 때가 되면 멀지 않아 둘째 아담의 시대로 이 땅은 바뀌게 된다는 것을 알려 주신 것이다. 

 

  이 낮 역시 단수로 되어 있다. 6천 년의 어두움이 하룻밤의 단수이듯이 우리 앞에 가까이 온다고 하는 낮도 단수로 천년동안 계속되는 그 낮이다. 새로운 낮의 시대에 주님은 만왕의 왕이 되실 것이고 우리도 주와 함께 왕 노릇하게 될 것이다. 

 

  소망의 아침을 기다리는 자에게 그 날이 언제일는지 모르지만 절박하게 아주 가까이 온 것만은 틀림이 없기에 끝까지 기다려야 한다. 밤에 속한 날이 지나고 밝은 태양이 떠오르면 어두움의 자취는 찾을 수가 없으며 아름다운 빛만이 이 땅에 가득하기에 아픈 것이나 괴로움도 없고 죽음이나 이별도 없는 영광의 나라가 온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또 예수의 피로 구원의 옷을 입은 자들이 영의 잠을 깨고 일어나 또 빛의 갑옷을 입고 승리하여야 그 나라에 들어가게 된다고 하였다.

 

  이와 같이 싸워 이겨야 하는 구원은 우편강도의 구원도 아니고, 고린도전서 5장에 나오는 아비의 아내를 빼앗은 자의 구원도 아니며, 마음으로 믿고 주의 이름을 부르는 자가 일반적으로 얻는 구원도 아니다. 마지막 구원은 빛의 갑옷을 입고 싸움에 승리하므로 의의 면류관을 쓰게 되는 자가 되어야 하며 죽도록 충성하여 영광의 새 나라가 임할 때에 생명의 면류관을 얻는 주인공이 되는 승리의 구원이다. 이 날을 소망중에 기다리는 자는 어두운 세상에 시달리고 생활의 고달픔이 온다고 하여도 끝까지 견디어 큰 구원을 쟁취해야 하고 놓쳐서는 안 된다(24:13). 또 나와 내 아내와 자식과 내 부모뿐 아니라 내 교인이 함께 가야 되며, 내 민족이 이 나라에 들어가야 한다. 앞으로 이 민족의 승리는 진리의 말씀밖에 없다.

 

3. 어두움의 일을 벗으라는 것이다

 

"어두움의 일"이 무엇인가?

 

a;() erga(엘가) tou'() skovtou"(스코투스)

 ()        일을(N.P)        ()            어두움의(F.S)

 

  어두움의 일(erga엘가)이라고 할 때 육신 생활에 수고하는 사업이나, 농사를 짓는 일반생활의 행동하는 것이나, 직장에 다니는 일을 생각하면 안 된다. 어두움의 일을 벗으라는 것은 사탄이 역사하는 행동을 중단하라는 것이다. 그 어두움의 '그 일'도 여성명사 단수이다. 다음에 나오는 '벗어버린다(ajpoqwvmeqa 아포도메타)'는 말은 1인칭 복수이다. 매일매일 계속해서 어두움의 것들을 우리는 벗어 내어야 되고 날마다 십자가의 피로 죄악을 씻어버려야 한다는 것이다.

 

  우리가 아침부터 저녁까지 어두움과 싸우며 주께 간구하지만 순간순간 원망이나 불평을 쏟아내고 남을 폄론하고 미워하는 행동을 끊어 버릴 수가 없는 것이 인간이다. 그러나 로마서 812절에 보면 우리가 육신에 지게 되면 육의 사람이 되어 육이 시키는대로 하다가 죽게 되지만 영으로써 몸의 행실을 죽이면 살게 된다고 하였다. 성령의 역사를 빌려서 이 못난 육신의 행동을 죽이면 살게 된다고 하였으나 어두움의 추한 자신의 행동을 죽이기란 얼마나 어렵고 힘이든지 모른다. "육신의 생각은 사망이요 영의 생각은 생명과 평안이니라 육신의 생각은 하나님과 원수가 되나니(롬8:6-7)"라고 하였으니 신앙생활을 수 십년동안 하면서 죄의 종노릇 하다가 하나님의 원수가 된다면 얼마나 억울하고 원통한 일인가?

 

  로마서 722절에 보아도 자신의 속사람은 하나님의 법을 따르려고 하나 내 육체속에 한 다른 법이 내 마음의 법과 싸워 죄의 법 아래로 사로 잡아간다고 하였다. 마음은 하나님의 법을 따르려고 하나 육체는 죄의 법을 섬긴다고 하였다. 이제 빛의 갑옷을 입고 영의 사람이 된 자는 육신의 어두운 행실을 물리쳐서 진리에 역행하는 일들을 막아야 한다. 하나님의 말씀의 빛을 가진자는 죄의 세력을 완전히 제거하며 사망으로 끌고 가는 어두움의 행동은 끊어버리고 깨끗이 청산되어야 한다.

 

  우리말은 '벗어버리라'고 했으나 '아포 도메다(apjoqw;meqa)'로 이것을 벗어버리는 것 뿐 아니라 '밑에 깔아버리라, 포기해라, 관계를 끊으라'는 말이다. 다른 옷을 갈아입기 위하여 입었던 옷을 다 벗어 버리듯이 육신의 미운 생각, 불평과 분쟁하는 마음, 죄의 행동을 완전히 끊어야 벗어 버리는 자가 되는데 결심하고 5분도 채 되지 않아 불평할 일이 생기는 것을 보면 인간작심이 약하기 때문에 성령의 도우심을 항상 간구하며 그 힘을 빌려서 이겨나가야 할 것이다.

 

  광야에서 이스라엘 백성들이 모세를 원망하고 미워하다가 고향가는 도중에 쓰러진 것 같이 너희는 이같은 행동을 벗어버리라고 하였으나 아직까지 내 힘으로 잘라버리지도 못하고 또 이것들이 떨어져 나가지도 않고 있다. 사실 신앙의 결심을 하면 마귀가 더 달라붙는다. 기도로, 말씀으로 떼어 놓으면 또 달라붙고 멀리하면 더 가까이 찾아오는 행동이 반복이 되니 마음은 원하지만 육체가 약하기 때문이라고 하신 말씀을 실감하게 된다. 그러나 이제 생명을 걸고 그것을 잘라내고 뿌리까지 뽑아  내어야 한다. 수십 년 동안 가지고 있던 어두움의 습관을 하루아침에 뽑아 버리기가 어렵기 때문에 신의 능력을 빌려야 되고 성령의 도움을 받아야 옛 사람은 죽어지고 새 사람으로 부활하는 자가 될 것이다.

 

  이스라엘 백성이 고향가는 길에 셀 수 없이 많은 사람이 쓰러진 것은 하나님을 믿지 않는 이방 불신자들이 아니다. 율법을 가진 하나님의 백성들에게 좋은 지도자를 주시고 신비의 만나를 주셨으나 광야에 나와서까지 애굽에 살던 행동을 벗어던지지 못하고 입술로 범죄하다가 도중에 탈락자가 된 것이다. 이 광야 세상에 살면서 최고의 축복이 무엇이냐면 좋은 영적 지도자를 만나는 것과 생명의 만나를 배불리 먹는 것이다. 왜냐면 영생문제와 관계되기 때문이다. 이스라엘 백성은 좋은 지도자를 통하여 좋은 법을 주시면서 가나안 땅을 주겠다고 약속을 했는데도 감사할 줄 모르고 하나님의 뜻을 따라 순종하지도 않고 오히려 대적자가 된 것은 어두움의 일을 벗어버리지 못했기 때문이다.

 

4. 빛의 갑옷을 입자

 

ejndusw;meqa(엔뒤소메다) ta;() opla(호프라) tou'() fwto;"(포토스)

입자(V.XP)                                    ()         갑옷을(N.P)          ()           (N.S)

 

  갑옷이라는 말을 먼저 생각해 보면 일반 생활하는 데에 필요한 것이 아님을 짐작할 수가 있다. 이 옷 자체가 농사짓는 농부나 고기 잡는 어부에게 필요한 옷이 아니다. 그렇다고 제사장들이 제사 때에 입는 옷은 더더욱 아니다. 갑옷이란 말을 하면 싸움을 연상하게 한다. 군인이 전쟁터에 가려고 하면 갑옷은 생명과 관계되기 때문에 필수적인 무기이다.

 

  본문에 기록된 '빛의 갑옷'은 세상 군사가 입는 갑옷이 아니다. (fwto;" 포토스)으로 된 갑옷은 하나님의 말씀의 빛으로 무장된 영적인 옷으로써 어두움과 그에 속한 영들과 싸우는 특수한 갑옷이기 때문이다.

 

  에베소서 610절에서 17절에 보면 "종말(終末)로 너희가 주 안에서와 그 힘의 능력으로 강건하여 지고 마귀의 궤계(詭計)를 능히 대적하기 위하여 하나님의 전신갑주를 입으라 우리의 씨름은 혈과 육에 대한 것이 아니요 정사와 권세와 이 어두움의 세상 주관자들과 하늘에 있는 악의 영들에게 대함이라 그러므로 하나님의 전신갑주를 취하라 이는 악한 날에 너희가 능히 대적하고 모든 일을 행한 후에 서기 위함이라 그런즉 서서 진리로 너희 허리띠를 띠고 의의 흉배(胸背)를 붙이고 평안의 복음의 예비한 것으로 신을 신고 모든 것 위에 믿음의 방패를 가지고 이로써 능히 악한 자의 모든 화전을 소멸하고 구원의 투구와 성령의 검 곧 하나님의 말씀을 가지라"고 하였다.

 

  마지막 싸움은 육신의 피를 흘리는 전쟁이 아니라는 것이다. 사탄과 그의 세력과 어두움의 주관자들과의 싸움이기 때문에 반드시 하나님의 전신갑주를 입지 않으면 안 된다고 하였다. 진리의 말씀으로 무장된 종이 되어야 악한 날에 사탄의 세력을 능히 대적하고 모든 싸움을 승리한 후에 주 앞에 설 수 있다는 것이다.

 

  또 갑옷과 함께 진리로 허리에 띠를 띠고 의의 흉패를 가슴에 붙여야 적의 화살을 막을 수가 있고 복음의 신을 신어야 자유롭게 활동할 수 있고 넘어지지 않게 된다는 것이다. 그뿐 아니라 믿음의 방패를 들어야 원수가 공격해 오는 검을 피할 수가 있고 구원의 투구를 써야 가장 중요한 머리 부분을 보호할 수 있게 된다.

 

  지금까지는 방어에 치중을 하였으나 이제 내가 공격할 무기를 가져야 하는데 성령의 검 곧 하나님의 말씀을 가져야 한다는 것이다. 은혜시대는 성령을 이른 비 역사로 표현하였으나 마지막 때에 내리는 늦은 비 성령의 역사는 전쟁의 날이기 때문에 말씀의 무기가 있어야 한다고 하였다.

 

  또 전쟁에서 빼놓을 수 없는 것이 통신이다. 통신이 끊어지고 마비가 되면 그 전쟁은 승리할 수가 없다. 그와 같이 아무리 말씀의 무기가 좋고 모든 것이 완벽하게 준비되었다 하더라도 하나님과 교통하는 기도와 간구가 없으면 안 된다. 마지막 십자가의 군사는 하나님과 기도의 교신이 끊어진다면 승리할 수가 없다. 빛의 갑옷을 입는 군사는 큰 무기 중에 하나가 기도요, 하나님 앞에 엎드려 간구하는 이 특수 무기는 적들이 가지지 못하는 것이다.

 

본문의 처음 믿을 때보다 가까이 온 구원은 자다가 깰 때가 된 것을 알아야 되듯이 무장하여 싸울 준비를 하고 빛의 갑옷을 입어야 전쟁터에 나가서 승리자가 될 수가 있다는 것이다. 어두움 속에서 활동하는 원수 마귀와 싸워야 하기 때문에 말씀의 무기로 빛의 갑옷을 삼아야 한다. 다시 말해서 말씀으로 적의 공격에서 방어할 수 있는 갑옷과 투구 등 모든 무기를 갖추는 것은 필수이고 공격용 최신 무기인 말씀도 있어야 큰 전쟁에서 이길 수가 있다는 것이다. '입는다'는 말은 '차려입으라, 정장을 하라, 내 몸에 빛의 옷으로 치장을 하라, 단장을 하라'는 것인데 이 빛의 갑옷으로 치장을 해야 구원의 승리가 된다고 한 것이다.

 

  요한복음 14절과 5절에서 보면 생명의 "빛이 어두움에 비취되 어두움이 깨닫지 못한다"고 했다. 요한복음 319절에는 "빛이 세상에 왔으되 사람들이 자기 행위가 악하므로 빛보다 어두움을 더 사랑한 것이니라"고 했다. 태양빛은 육안으로 분별할 수 있지만 이 빛은 눈에 보이는 가시광선(可視光線)이 아니다. 성경이 말하는 빛은 예수 그리스도의 진리의 빛이기 때문에 육의 눈으로 보는 빛이 아닌 것을 알아야 한다.

 

  하나님께서 당신의 뜻을 나타내실 때 언제나 의합된 종들을 세워 진리의 빛으로 역사 하게 하시고 친히 영광을 받으신다. 그러므로 인간 사회에서 신의 대변자로 선택받은 종들은 말씀에 바로 서서 양들을 잘 이끌어 나가면서 시대의 흐름을 바로 보고 잘 다스려야 한다. 만약에 주의 종들이 성도들을 바로 인도하지 못한다면 이 세상을 다스리는 임금보다 더 높고 크신 하나님께 책임 추궁을 당하게 될 것이다. 진리로써 무장하고 빛의 갑옷을 입고 자신과 먼저 싸워 이길 때에 세상의 타협도 물리칠 수가 있고 양떼들도 바로 이끌어 갈 수가 있을 것이다.

 

  이 땅의 모든 사람들이 열심히 하는 일이라도 하나님의 뜻에 대적이 될 때에는 어두움의 길인 줄 알아야 한다. 이 시대는 점점 안식일을 지키기가 어려워지고 진리를 따라 살아가기도 힘들어 지기 때문에 교회 중진들뿐 아니라 주의 종까지도 예배의 중요성을 잃게 된다. 하나님께서 안식일을 거룩히 지키라고 하셨으면 즉시 순종하여 말씀대로 지켜야 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안식일은 그분의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회사에 출근하듯이 잠깐 출근 예배를 드리거나 틈날 때 인터넷 등으로 예배를 대처하면 말씀의 불순종뿐만 아니라 성도의 교통이 옛날 같지 않게 되므로 성도의 신앙도 빈약해 지게 된다. 이와 같은 시대를 만나고 보니 그날이 가까이 올수록 더욱 모이기를 힘쓰라고 하시던 주의 말씀이 새로워진다.

 

  주님은 "나는 세상의 빛이니 나를 따르는 자는 어두움에 다니지 아니하고 생명의 빛을 얻으리라(요8:12)"고 했다. 진리의 빛은 곧 생명의 말씀이신 그리스도 자신이라는 것이다. 빛이 밝지 못하면 어두움의 세력이 기승을 부리지만 밝은 빛 앞에는 어두움이 접근 할 수가 없다.

 

"이기는 자와 끝까지 내 일을 지키는 그에게 만국을 다스리는 권세를 주리니 그가 철장을 가지고 저희를 다스려 질그릇 깨뜨리는 것과 같이하리라 나도 내 아버지께 받은 것이 그러하니라(2:26-27)"고 한 말씀으로 얻는 마지막 환난 때의 구원과 십자가의 피를 믿음으로 얻어지는 초보 때의 구원과는 비교해 본다면 큰 차이가 나게 된다.

 

  시편에 환난 날에 제사로 언약을 맺은 성도들을 모으라고 했다(50:5). 약속을 가진 종으로서 빛의 갑옷을 입고 꼭 이긴 자의 반열에서 영과 육이 축복을 누리는 종들이 되기를 힘써야 할 것이다.

 

  성도 여러분! 예수를 믿는 즉시 얻은 구원의 역사와 마지막 날에 전신갑주를 입고 싸워 이긴 자가 얻는 구원과는 크게 차이가 날 뿐 아니라 이긴 자에게는 상급의 면류관이 예비 되어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우편강도나 삭개오가 면류관을 썼다는 소리를 듣지 못했을 것이다. 그뿐 아니라 이들에게 빛의 갑옷을 입으라고 하지 않았고 너와 함께 낙원에 가자고 하였을 때나 이 집에 구원이 왔다고 할 때에도 다른 말은 하지 않았다. 분명히 이긴 자에게 예비 된 상급의 월계관이 예비 되어 있음을 알아야 한다.

 

1) 낮에 속한 자의 단정한 생활 (13절 上)

 

  시대를 잘 분별할 줄 알고 진리 따라 순교적인 사상으로 생활을 하며 어두움과 타협하지 않는 행동을 하는 자는 낮에 속한 자다. 밤의 시대는 기독교인들이 믿음을 사수하기가 얼마나 힘이 드는지 모른다. 자신의 위치에서 탈선하지 않고 열심히 주를 섬길 때에 어두움은 물러가게 된다. 만약 성도가 시대도 분별하지도 못하고 세상 술에 취하여 깊이 잠든 자가 되어 새벽이 오는 징조가 나타나고 먼동이 트는 것도 모르고 잠꼬대만 하다가 아침이 밝을 때는 크게 놀라 당황하지 않을 자 누구이겠는가?

  말씀 안에서 깨어 준비하는 종들은 주의 강림의 징후가 점점 더해 갈 때에 그 징조를 바라보면서 두려워할 이유가 없다. 오히려 즐거워할 것이다.     

 

“낮에와 같이 단정하게 행하라”

 

wJ"(호스) ejn() hJmevra(헤메라) eujschmovnw"(유스케모노스) peripa-

같이              에와         낮                            단정히                                              행하고

thvswmen(페리파테소멘) 

 

  단정히 하라는 말은 '예절 바르게'라는 뜻이다. 행하라는 것은 '살아가다, 걸어가다, 교제하다'는 의미이다. 이제 단정히, 예절 바르게 생활하여 생활의 변화가 있어야 하고, 또 아름다운 성도의 교제가 있어야 할 것이다. 빛의 자녀로서 오실 주님을 기다리는 자는 먼저 대인(對人)관계와 대물(對物)관계가 깨끗해야 대신(對神)관계가 잘 이루어지게 된다.

  빛의 자녀의 생활은 낮에 속한 자들이기 때문에 조그마한 흠이라도 있는 자가 되어서는 안 된다. 죄와 허물은 날마다 십자가의 피로 씻어야 한다. 택한 백성의 죄를 위하여 초림의 주가 이스라엘 땅으로 왔으나 그 축복을 유지하지 못할 때에 빼앗아 버렸다.

 

  이제 재림의 주께서 모든 주의 백성을 찾아 이 땅에 다시 오실 때에는 조용한 아침의 나라의 백성들이 큰 복을 먼저 받아야 한다. 왜냐면 우리나라처럼 시련이 많은 나라도 없다. 항상 강대국의 틈에서 대리전쟁을 960번이나 치루었지만 이 민족은 망하지 않았고 들풀처럼 끈질긴 생명력으로 지금까지 버티어 왔다. 이 나라는 민족의 이념과 갈등 속에서 분단국이 되어 싸워왔으나 하나님께서 도와주시므로 지금과 같은 축복을 받았다. 이 민족은 두세 사람만 모여도 교회를 세웠고 수요예배, 금요철야, 새벽기도회 등 많이 예배를 드리는 나라이다. 분명히 이 나라, 이 민족을 통하여 하나님께서 영광을 받으실 줄 믿는다.

 

  지난 월드컵을 통하여 한국에 대한 이미지가 얼마나 올라갔는지 모른다. 뉴욕타임즈에 발표된 것을 보니까 동북아시아의 손바닥보다 작은 대한민국이라는 나라가 남과 북이 갈라져 있으며 북쪽은 1인 독제체제 하에 인권은 유린(蹂躪)당하고 추위와 굶주림에 시달리는 백성이고 남쪽은 노사분규나 하고 데모 잘하는 나라, 또 개고기나 먹는 미개하고 못된 나라인 줄 알았더니 그런 나라가 아니라 단합할 줄도 알고, 눈물도 흘릴 줄 알고, 기뻐할 줄도 아는 민족으로 세계에서 이런 민족이 없다면서 세계를 깜짝 놀라게 했다고 보도했다. 21C에는 분명히 이 민족을 세계에 알리는 계기가 되었고, 또한 이 민족을 통해 하나님의 뜻과 섭리를 세계 민족 앞에 나타낼 때에 이 나라에서 나타나는 진리 앞에 또 한 번 크게 놀랄 것이다.

 

  우리가 하나님도 없는 북한 땅에 태어나지 않고 신앙의 자유가 있는 대한민국에 태어난 것을 감사하고 이 땅에서 예수를 믿게 된 것을 더욱 감사하면서 국가를 사랑해야 한다. 사실 우리가 누리는 오늘의 축복과 큰 부흥이 있기까지는 많은 신앙의 선배들이 순교의 피를 흘렸기 때문이다. 그런데 오늘날 성도들은 더욱 분발하지 못하고 점점 퇴보하는 상태가 되는 것 같아 부끄러울 정도다.

 

  그리스도의 빛을 가진 성도들은 어두움에 속한 자 앞에 모범이 되어야 하고 단정히 행하여야 한다. 예수 안에서 이방인의 조롱이나 손가락질 받는 행동은 삼가해야 하며 존경함을 받는 기독교인이 되어야 한다. 그리고 본인 자신이 마음에 기쁨과 은혜가 넘치는 자가 되어 즐거운 모습으로 항상 남에게 부담을 주지 않는 자가 되어야 할 것이다. 그래야 전도가 되고 죽어가는 영혼을 살릴 수가 있다. 영혼을 살려야 육의 생활도 살아나게 되지만 육만 살면 영혼이 죽어 버린다. 낮에 속한 자로서 단정히 행한다고 할 때에 신앙의 모범이 되는 생활과 하나님의 말씀 안에서 순교적인 사상으로 어두움과 타협하지 않는 성도가 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만약 하나님의 뜻에 합당하지 아니한 일로 나에게 큰 도움이나 이익이 있어도 단호하게 잘라버려야 되고 진리라고 생각하면 손가락질이나 욕을 먹는다 하여도 순교적인 사상으로 그 길을 가야 하는 것이다.

 

2) 어두움의 일을 던져 버려라 (13절 下)

 

  어두운 밤에 입어야 할 옷을 입고 대낮에 거리를 활보(闊步)한다면 죄가 되는 행동은 아니라 할지라도 부끄러운 망신을 당하게 된다. 그와 같이 낮의 시대가 오고 있는데 성도들이 이방의 어두움의 옷을 벗어 버리지 않고 있으면 안 된다. 어두운 시대의 옷은 마귀에게 속한 범죄이기 때문에 벗어버리도록 해야 한다. 어두움이 극성을 부릴 때 빛의 자녀들이 남에게 피해를 주지도 않았고 아무 잘못이 없는데 핍박을 받고 물질까지 빼앗기고 심지어는 생명까지 잃게 되어 가정이 파괴가 되는 일이 많았다. 내가 그러한 피해를 입지 않고 예수를 믿으니 편안한 예수를 믿은 것 같지만 오늘날 우리에게 이 복음이 오기까지 얼마나 많은 순교의 피를 쏟았는지 모른다. 이것은 어두움의 시대이기 때문에 빛의 자녀가 진리를 사수하려고 하다가 계속 수난을 당하였다.

 그러나 오늘 이 시대 신앙인은 편안한 예수를 믿으려 하기 때문에 조그마한 시험이 와도 잘 넘어지는 허약한 성도들이 많고 또 눈에 보이는 세상 복만 받으려고 하다가 뜻대로 안 될 때 하나님을 원망하고 신앙생활에 실족하게 된다. 

 

  바울은 복음을 위해 매를 맞는 것도 감사했고 옥에 가는 것도 감사했으며 원수 앞에서 사십에 하나 감한 매를 다섯 번 맞고 3번 태장으로 맞고, 세 번 파선하는데 일주야를 깊음에서 지냈으며, 여러 번 여행에 강의 위험과 강도의 위험과 동족의 위험과 이방인의 위험과 시내의 위험과 광야의 위험과 바다의 위험과 거짓 형제 중의 위험을 당하였어도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을 못 끊는다고 고백을 했다(고전11:24-26). 이는 그가 이 땅의 소망보다 내세를 바라보았기 때문이다.

  만약에 내세의 축복이 없이 이 세상 이대로 끝난다면 사도 바울은 저주받은 사람이요, 예수님 역시 마찬가지일 것이다. 33세에 이 땅에서 생명이 끝났다고 하면 그런 저주가 어디에 있는가? 그것도 자연사가 아닌 십자가 처형이었고 바울은 참수(斬首)형을 받았으니 결혼도 못한 혈혈단신의 몸으로 이 같은 저주가 어디에 있는가? 그러나 세상을 이겼다고 하였다. 

 

첫째로 어두운 생활은 “방탕과 술취한” 자의 생활이다.

 

kwvmoi"(코모이스) kai;(카이) mevqai"(메다이스)

방탕(M.P)                                        술취함(F.S)

 

  지금 세상 사람들이 얼마나 방탕하고 술 취한 자의 생활을 하는지 모른다. 무절제한 세상 쾌락과 주색(酒色)에 젖어 하나님의 뜻을 저버리는 시대가 되었다는 것이다.

 

  히랍의 철학자 디오게네스란 사람은 희랍의 수도인 아테네에서 그 당시의 세상이 너무나 추하고 더럽고 어두워서 대낮에 등불을 들고 다니면서 세상을 꼬집는 소리를 하고 다녔다고 한다. 세상이 너무 혼탁하고 추한 세상이 되어가는 모습을 안타깝게 여긴 나머지 참 빛이 없음을 탄식한 것이다. 그런데 그 시대 사람들은 철학자의 비웃는 행동을 몰랐다.

 

  지금은 옛날보다 몇 배나 더 혼탁해 있다. 수많은 사람들이 목적도 없이 흥청망청하는 생활 속에 방탕과 술 취한 자들은 내일이 없이 살아가고 있다. 빛의 자녀도 건전한 마음과 진실한 생활에서 굳세지 못하면 무절제한 자와 함께 넘어지게 되며 세상 향락에 빠져 신앙 길에서 방황하다가 암초에 부딪치어 좌초(坐礁)하게 된다. 

 

  본문 말씀은 로마교회에 보낸 편지가 아니고 우리 교회에 보낸 편지요 더욱이 나에게 보낸 각성(覺醒)의 편지라고 생각해야 한다. 이 땅에 살면서 세상으로 가는 길은 사방팔방으로 넓고 크게 다 열려 있다. 하늘의 소망을 잃고 어두움의 종이 되어 세상 꿈에 취하여 헤어날 수가 없는 삶은 멸망의 길이다.

 

  앞으로 주 5일 근무제를 하면 교회가 얼마나 텅텅 비게 될는지 중앙일보에 나온 만화에 보면 목사의 얼굴은 근심스러운 표정으로 노인들 몇 분만 앉혀놓고 있고 절간의 중은 팔장 끼고 웃고 있는 모습을 그려 놓았다. 공기 좋고 물 좋은 곳으로 찾아오라는 것인데 만화로 비평을 해놓았지마는 사실로 이어질 것 같아 씁쓸한 느낌마저 든다.

 

  교회는 잠깐 출근했다가 가는 곳이 아니다. 교회는 나의 빈 마음에 예수 그리스도로 채우러 오는 곳이며 세상의 때 묻은 것을 씻으러 오는 곳이다. 아픈 상처를 위로받으러 오는 곳이며 나의 신앙의 잠을 깨우러 오는 곳이기도 하다. 주일이 왔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교회에 잠깐 왔다가 가는 것은 은혜 아래에 있는 율법주의자이다. 주일을 그리워하고 사모하다가 맞이하는 날이 되어야 한다. 이 날은 돈을 가지고도 해결할 수가 없는 날이요, 노동을 가지고도 해결할 수가 없고 명예를 가지고도 해결할 수가 없는 날이다.

  "내가 아버지 집에 가야지, 주여 왔습니다. 내가 빈손 들고 왔습니다. 당신이 내 속에 들어와 주시옵소서"하는 마음으로 와서 그분을 만나야 나의 갈 길이 보이게 될 것이다. 하나님을 잃어버리고 내일의 멸망을 모른 채 지금 모두가 방향을 잃고 어둠 속으로 점점 빠지고 있는데 기독교가 끌어낼 힘을 잃고 있으면 큰 문제에 직면하게 된다.

 

  베드로전서 2장에 너희가 전에는 어두움이더니 이제 그 어두움에서 불러냈다고 했는데 예수를 믿기 전에 우리는 어두움에 종노릇 하였으나 이제는 예수 그리스도의 빛 가운데로 들어가서 빛의 자녀가 되었다는 것이다. 우리가 이제 하나님의 친자녀가 되었기 때문에 '아버지'라고 부끄러움 없이 부르게 된 것이다. 지금까지는 아무것도 몰라도 예수만 믿으면 하나님의 자녀가 되고 구원이 성립되므로 다른 준비를 말하지 않고 예수를 믿으라고 하는 말만을 해 왔다.

 

  예수를 너무 잘 믿는 어느 며느리와 믿지 아니하는 시아버지에 대한 웃지 못할 이야기가 있다.

  목사님이 심방을 가서 "어르신 교회에 나갑시다. 자부(子婦)되시는 분은 교회에 열심히 나가고 있지 않습니까?"라고 할 때 우리 며느리처럼 예수 잘 믿는 사람은 없다고 대답했다고 한다. "며느리가 구원 받으면 영감님은 어떻게 하겠습니까?"라고 하니 "목사님! 우리 며느리가 시장 가면 시아버지 좋아하는 것 다 사다 주는데 예수도 좋은 것이라면 나한테 왜 말하지 않겠습니까? 한 번도 말을 안 하는 것을 보니 예수는 별로 좋은 것이 아닌 모양입니다"라고 했다고 한다. 그 소리를 들은 며느리가 충격을 받아 "아버님 이제 교회에 나가야 됩니다"라고 하니까 "얘야 이날까지 네가 교회 가자고 하는 말은 한마디도 안 하더니 목사하고 이제 짰느냐? 젊은 너나 잘 믿어라. 네가 아버지라고 부르는 것을 보니 그분은 나의 사돈인데 늙은 내가 어떻게 사돈한테 가서 빌겠느냐"라고 대답하였다고 한다.

  시아버지를 구원 얻게 하기 위하여 며느리가 교회에 나갈 것을 계속 권유하니 그 며느리 말이 고마워서 내가 한번 가지하고 교회를 나갔는데 교회에 가서 며느리 옆에 앉아 며느리가 "눈감으세요"하면 감고, "눈을 뜨세요"하면 뜨고, "찬송 하세요"하는데 찬송은 부를 줄 몰라서 못하지만, 기도는 직접 해 보라고 하였다. 노인은 가만히 앉아 있다가 며느리가 "아버지"라고 부르면서 기도하는 것을 시아버지가 듣고 하는 말이 "사돈 영감 내가 오늘 초면에 와서 죄송합니다. 나야 늙었으니 사돈 역시 딸 자식 하나 보내 놓고 걱정이 많겠습니다. 걱정하지 마십시오. 며느리가 자꾸 사돈한테 무엇인지는 몰라도 달라고 하니 시아버지인 내가 잘 보살피겠습니다. 그렇게 걱정할 필요는 없습니다"라는 기도를 했다고 한다.

  왜냐면 자기 며느리가 아버지라고 하면서 달라는 기도를 계속하니 시아버지께서는 너무나 민망하여 사돈 하나님께 걱정 말라고 하면서 며느리를 향하여 내가 곁에 있는데 사돈한테 자꾸 달라고 하면 내 입장이 어떻게 되느냐 세상에서 가장 어려운 것이 사돈인데 내가 사돈 영감한테 와서 무슨 말을 해야 되겠느냐 라고 말했다는 웃지 못 할 이야기가 있다.

  어쨌든지 은혜시대는 어떤 방법으로든지 많은 사람을 주께로 인도하는 일이 하나님을 가장 기쁘시게 하는 일이다.

 

  오늘 이 시대 흐름을 보면 하나님의 뜻보다 자신의 생각대로 생활하기 때문에 참 신앙인을 찾아보기가 힘이 든다. 오늘의 사회는 하루가 다르게 변하고 있기 때문에 정신을 차리지 않으면 자신도 모르게 세상으로 빠져 들어가게 되고 돌이킬 수 없는 함정과 올무에 걸리게 된다. 그러므로 이 시대는 전도하기가 너무나 힘들다. 지금 교회들이 불신자 전도보다 믿는 성도를 끌어 오기가 바쁘고 성도들은 또 개척교회는 잘 가지 않으려고 하기 때문에 약한 교회가 일하기는 너무나 어렵고 힘들어진다. 

 

  이 같은 원인은 복음의 씨를 뿌리는 시대가 지나가고 거두어들여야 할 추수 때가 오기 때문이다. 하나님보다 세상 향락문화에 젖어 쾌락으로 빠져 들어가는 이 세상은 심판기가 왔다는 것이다. 이 세상은 땅의 즐거움에 취해 목표를 잃어버리고 꿈과 비전이 없는 삶을 살아가고 있는데 이는 내일이 없는 자들의 모습이다. 이때에 세상 술에 취한 자들은 빛을 싫어하기 때문에 이 땅에는 빛을 찾을 길이 없고 어두움이 땅을 다 덮고 있다고 했다.

 

둘째로 어두운 생활은 “음란과 호색”의 생활을 하게 된다.

 

koivtai"(코이타이스) kai;(카이) ajselgeivai"(아셀게이아이스)

음란(F.P)                                           호색(F.P)

 

  방탕과 술에 취한 자의 행동이 음란(淫亂)과 호색(好色)이다. 많은 사람들은 육체적인 세상 음란과 종교적인 영적 음란에 빠지게 된다는 것이다.

 

㉠ 육체의 음란이 난무(亂舞)하는 시대이다

  이 시대 성()은 개방되어 있고 그 성이 상품화되어 버렸다. 오늘날 모든 삶의 방향이 눈으로 보고, 귀로 듣고, 말하는 것 모두가 성적인 묘사와 탈선된 생활로 돌아가고 있다. 그렇지 못한 자는 안방 깊숙이 파고 들어온 매스컴이나 TV화면을 통하여 대리만족을 즐기고 있다. 이뿐 아니라 과학이 발달하므로 인터넷이나 또 다른 여러 개방된 매체를 통한 육체적 음란은 청소년들뿐 아니라 어린 학생들의 세계까지 만연되어 있으니 오늘의 시대는 소돔과 고모라 보다 7배나 더 악한 도성이 되어 버렸다. 얼마 전 신문과 TV에서 우리나라에서 성 매매에 사용된 돈이 무려 24조 원이나 된다고 보도하는 것을 볼 때 참으로 놀라운 일이 아닐 수 없다. 

 

㉡ 종교적인 음란이 난무하는 시대이다

  하나님의 백성이 이방 불신자의 행동을 본받고 절간이나 신접한 자를 찾아간다면 하나님 앞에 간음하는 범죄가 된다. 장난삼아 손금이나 관상을 보거나 수상, 족상을 보는 행동 역시 종교적인 음란이 된다. 그것은 신의 말을 듣고 즐거워하며 시키는 말을 마음에 새겨 따르고 우상의 사상과 타협하는 행동을 하게 되는 것이다.

 

  우리가 사랑하는 사람을 바라보면 그 사람 외에는 다른 사람이 보이지 않아야 하듯이 내가 믿는 하나님의 신을 두고 다른 신을 바라본다는 것은 영적으로 간음이 되는 것이다. 오늘날 기독교가 종교적 음란이 만연해져 있으며 다른 신을 찾아가서 묻고 지도를 받는 일이 교회 안에서 일어나고 있으며 이러한 행동은 성도들 사이에 일반화되어 버렸다.

  예레미야 36절에서부터 보면 북쪽 이스라엘뿐 아니라 남쪽 유다도 다 행음하고 이 땅을 더럽히고 하나님께 진심으로 돌아오지 않았다고 말씀하고 있다.

 

  그뿐 아니라 또 다른 간음과 우상숭배가 있음을 알아야 한다. 골로새서 3장에 보면 탐심도 우상숭배라고 했다. 나의 지나친 욕심이 우상숭배가 된다는 것이다. 오늘날 성도들이 절간에 가고 무당 앞에 찾아가는 것만 우상숭배가 아니다. 자녀가 우상이 되어 자녀들이라면 꼼짝 못하는 부모들이 있는가 하면 자신이 우상이 되기도 하고, 자기의 직위나 명예가 하나님 앞에 우상이 될 수가 있으며, 과학자는 과학이 우상이 될 수 있는 현대판 우상숭배가 자신도 모르게 판을 치고 있다. 오늘날 기독교인의 진리가 어두워지니 우상 섬기는 불신 세계에서 "너희 하나님이 어디 있느냐?"라고 하며 기독교를 얼마나 비웃고 있는지 모른다. 일반교인이 점쟁이를 찾아오는 것은 말할 것도 없고 교회 장로나 권사들까지 와서 묻고 가면서 용하다고 선물을 사주더라면서 하나님을 비웃는 일들이 신문지상에 가끔 보도되기도 한다. 

 

  기독교가 얼마나 힘을 잃고 어두워졌기에 이런 비난의 소리를 듣고 있는가? 이 세상이 한없이 오래갈 것 같지만 일어나는 일들과 되어지는 것들을 보면 많이 남은 세상이 아닌 것 같은 느낌이 든다. 우리가 이 땅에서 잘 살고 못사는 것은 축복의 척도(尺度)가 아니요 단지 훈련장일 뿐이기에 좀 윤택하게 사는 훈련도 있고 어려운 훈련도 있을 뿐임을 알고 환경에 넘어지는 자가 없기를 바란다. 우리의 소망은 주님 나라에서 영생의 축복이 약속되어 있음을 잊어서는 안 된다. 이 약속은 추상적(推想的)인 것이 아니다. 이 몸이 변화되어서 신과 같이 되어 영원히 사는 날이 있다고 성경은 여러 곳에 기록하고 있다. 영원히 산다는 것은 끝이 없는 날을 말하는 것인데 그 약속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그날이 올 때까지 참고 기다리며 살아가야 하는 것이다.

 

  지금 우리가 사는 현실에다가 축복의 잣대를 대면 안 된다. 잠깐 머물다가 영원한 곳으로 가야 할 과정이란 것을 잊어서는 안 된다. 내가 살고 있는 이 땅은 조그마한 시골 역의 불편한 대합실에서 고생하다 열차가 오면 자기 지정된 좌석에 앉은 때까지의 불편인 것이다. 지금 눈에 보이는 세상이 아름답고 화려하게 보이는 것 같지만 방향을 잃은 세상 바벨론에 미련 둘 이유가 없다.

 

  이제 막가파 시대가 되니 배운 자의 머리도, 있는 자의 물질도 모두 쾌락에 사용되고 있기 때문에 노력하고 수고한 대가를 가지고 살기보다는 남에게 속이며 재물을 빼앗고 사람의 생명을 노리는 것이 공공연한 현실이요, 사회 형편이 되어 버렸다. 이 세상은 항상 불안하고 파도가 일어나는 바다와 같아서 부유하거나 빈곤의 관계없이 사회가 모두가 가슴을 펴지 못하고 불안해하고 있다. 머리가 발달한 사람은 발달한 대로, 힘이 있으면 힘이 있는 대로 육을 위해서 살아가는 것이 오늘날 이 시대가 아닌지 해마다 달라지는 우상 숭배 앞에서 이제 우리는 정신을 차릴 때가 온 것이다.

 

셋째로 어두운 생활은 “쟁투와 시기”를 하는 시대이다.

 

eridi(엘리디) kai;(카이) zhvlw(젤로)

쟁투(F.S)                             시기(M.S)

 

  싸움과 분쟁, 또는 시기(猜忌)와 모함(謀陷)하는 세상이 오게 된다. 싸움이 시작되는 분쟁이 일어나고 투쟁하고 남을 시기하는 것은 피차 모두 죽는 일이다. 주님 오실 때가 될 때 이 땅에 나타나는 현상들이 방탕하면 술 취하게 되고 음란하면 호색하게 되는 행동들이 둘씩 짝지어져 있다.  

 

   '쟁투와 시기'는 어두움 속에 있는 사람들끼리 얼마나 싸우는지 진흙탕에서 같이 뒹구는 난장판이라는 것이다. 쟁투(爭鬪)와 투쟁(鬪爭)은 같은 말인데 회사는 회사대로, 생산기업체는 기업체대로, 학교는 학교, 정부는 정부대로 투쟁을 한다. 나라를 걱정하는 단체들은 서로가 입에 담지 못하는 비방과 중상모략은 도를 넘을 정도가 되어 위험 수위에 온 느낌이다.

 

  지난번 16대 대통령 선거전은 피차 혈투요 난타전이었다. 내 마음에 맞지 아니하면 상대를 죽일 자로 몰아붙이고 내일이 없는 사람같이 행동을 하는 시대임을 보여줬다. 항상 분쟁과 시비가 일어나는 가정이나 사회나 국가는 일어설 수가 없다. 오늘날 사탄이 역사 하는 힘을 얻은 자들은 자신이 잘 되는 것보다 남이 잘못되면 더 즐거워한다. 참 성도는 남이 잘 될 때 오히려 감사해 하고 내가 어려워도 상대가 좋아지면 기뻐해야 되는데 오히려 반대의 현상이 나타나는 현실이 되었다. 이 같은 세상을 바라볼 때 주님 오실 때가 아주 임박한 느낌이 든다.

 

  방탕과 술 취함, 음란과 호색, 쟁투와 시기하는 세상이 되어 이 범죄가 하늘에 사무치고 어두움이 극에 달했을 때 밝은 태양이신 그리스도의 낮이 점점 가까이 오게 되는 것이다. 학생이 교복을 입듯이, 법관이 관복을 입듯이 오늘 이 시대 성도들이 구원의 속옷과 의의 겉옷을 입어야 한다(61:10).

 

  성경에서 "이 시기를 알거니와"라고 한 말씀이 무슨 시기를 말하는 것인 줄 성도들은 반드시 알아야 한다. 이제는 어두운 시기가 지나갈 때가 되었고 밝은 아침의 시기가 바로 온다는 것이다. 우리 기독교가 신앙의 잠에서 깨어야 할 시기가 왔다는 것은 주님이 다시 오실 때가 임박한 것을 깨닫고 전해야 한다는 것이다.

 

 

Facebook 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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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맞아요. 이젠 빛의 갑옷을 입고 어둠의 옷을벗길때가

    온것 같네요. 올려주신 말씀 감사이 읽고 갑니다.

    수고하셨습니다.

  • profile

    빛의  갑옷을 입고   그때에  쓰임받게  하옵소서....감사 합니다..

  • 올려주신  글  감사합니다

  • 하늘에 속한 자 답게 행하는 지체이길 원하옵나이다

  • profile

    아~ ~ ~멘      아~ ~ ~ ~멘   입니다.

  •     귀한 말씀 감사합니다

     빛의 갑옷을 입고  승리하는 종되게 하옵소서

     

  • 하나님의신은  너무 거룩하셔서  우리  마음가운데  시기 ,질투 , 욕심, 자존심  이 있으면  절대로

    은혜주시지도  않은것을  체험하면서    정말  마음을  관찰하신 분이란걸  느겼네요!!

    이젠  빛의 갑옷을 입고  새로  거듭나고 ,깨어있어서  주님맞이하는  종 되게하소서

  • profile

    아~ ~ ~멘 아~멘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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